< 제428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4) >
캘리포니아.
[‘기억의 길’ 사제 앤서니가 국가 전복 협의로 긴급 체포되었습니다. 하지만 체포하는 과정에서 막아서는 시민을 향해 총기를 사용한 정황이 포착되어 시민들의 분노를 사고 있습니다. ‘기억의 길’뿐만 아니라 ‘사이진’이 모두 광장에 모여 원인 규명에 대한 항의 시위를 벌이고 있습니다. 50개 주 시위 인원만 3천만 명이 넘었습니다.]
빌이 손짓을 하자 동작을 인식한 TV가 채널을 바꿨다.
[나노봇이 다시 등장했습니다. 이번에는 아칸소강을 따라 전국으로 이동 중인 것으로 파악되었습니다. 정부는 급히 긴급 대책 회의를 열고 강 주변에 군대를 동원하여 경계함은 물론, 강 주변을 정화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정화 작업은 탄소의 녹는점보다 높은 화염방사기를 사용할 계획이라고 합니다. 과연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입니다.]
한참을 시청한 빌은 손을 저어 TV를 껐다.
“정말 잘 작동하네요.”
“빌…….”
새로 출시한 애플 TV 작동을 시연하는 빌에게 세르게이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라는 표정을 지었다.
“알아, 세르게이. 너무 흥분하지 마. 어차피 벌어지고 있는 일 아닌가.”
“인류가 멸망할 수도 있습니다.”
“멸망? 후후후, 공포일 뿐이야. 나노봇이 위험한 건 사실이지만 이럴수록 냉정해야 해.”
“어떻게 냉정할 수 있습니까? 무엇이든 삼켜버리고 해결할 방법도 없는 게 나노봇입니다.”
“하지만 속도는 느리지.”
속도…….
“그리고 멀리 이동하는 것도 힘들어. 단지 자기 주변의 탄소로 자가 복제를 할 뿐이야. 이제 약점을 알아냈으니 방법을 찾으면 돼.”
“누가요?”
“누군가는 찾겠지. 지금 정부, 아니면 투마로우? 어쩌면 찾았을지도 모르고.”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세르게이.
“문제는 그게 아니야.”
빌은 등을 기대고 시선을 탁자의 기괴한 문양에 두었다.
어지러이 흑과 백이 뒤섞인 자연이 만들어 낸 패턴.
“앤서니와 나노봇을 같이 묶어서 생각해 봐.”
“둘을 묶어서요?”
빌.
아서가 나섰다.
“혹시 정부가 앤서니를 나노봇을 퍼뜨린 원흉으로 몰고 갈 거라고 생각하는 겁니까?”
“그게 유일한 탈출구니까. 국토안보부가 총기까지 써가면서 앤서니를 잡아갔어요. 왜 그랬을까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벌써 그 당시의 동영상이 퍼졌습니다. 무고한 시민을 향해 발포한 것은 아주 큰 실수입니다.”
“알아요. 그런데 왜 그랬냐가 중요한 겁니다. 과연 몰랐을까요? 총을 쏴서 시민을 죽였는데. 그것도 한 명도 아니고 수십 명을. 여기가 IS도 아닌데 말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빌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아서, 지금 상태의 나노봇은 위험합니다. 하지만 일부러 위험을 만들고 있는 느낌이 듭니다.”
“무슨 소립니까?”
“위험을 방치하는 정부. 정부가 더 위험한 겁니다.”
“방치하다니. 그게 무슨 말입니까?”
빌이 ‘설명해 줄게요’라는 듯 손짓으로 TV를 켰다.
그리고 손을 옆으로 움직여 원하는 동영상을 찾았다.
여기.
“보세요.”
영상에는 메렛이 소이탄으로 나노봇을 섬멸하는 장면이 흘러나왔다.
“저거 만드는 게 어려울 것 같습니까?”
고열을 발생시키는 소이탄을 만드는 건 너무나 쉬운 일이다.
프로판, 기름, 가스 아니면 산화철, 금속성 산화제 분말과 알루미늄, 마그네슘 같은 금속 연료 분말을 혼합하면 된다.
아서가 그게 아니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
“그렇지만 나노봇은 보이지 않아요. 한 개만 있어도 순식간에 불어납니다.”
“그렇지요. 하지만 그건 현재입니다. 미래는 다르지 않을까요? 마치 감기와 비슷하게 될 겁니다. 예방 접종을 하고 나노봇에 감염된 사람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겁니다. 아니면 나노봇을 점멸시키던가.”
“단순한 감기 정도로 취급된다고요?”
“감기보다 못할 수도 있습니다. 바이러스나 세균보다 훨씬 단순하니까요. 중요한 건 나노봇이 아닙니다. 현재 정부는 이 모든 상황을 이용하고 있는 겁니다. 경제 위기, 이게 어디서부터 시작된 겁니까?”
아.
“연준의 무리한 금리 인상.”
답답한 아서를 대신해서 세르게이가 대답했다.
“맞아. 거기서부터 문제가 생긴 거지. 세계 경제가 무너졌어. 이건 분명 미국 정치인이 책임을 져야 하는 해. 하지만 마침 ‘기억의 길’이 경제 위기를 부채질했지. 대통령은 어리석게도 먹이를 덥석 물어 버린 거고.”
“감히 누가 대통령을 이용했다는 겁니까?”
큭큭큭.
빌은 평소에 보이지 않는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세르게이, 대통령이 무슨 대단한 건가? 기껏해야 4년 임기인 대리인일 뿐인데. 세르게이 구글을 몇 년이나 운영했지? 24년 아닌가? 아서, 자네와 난 47년이야. 우리가 만든 대통령이 몇인가. 우리가 언제 대통령을 진심으로 존중하기는 했어?”
피식.
세르게이가 빌의 말에 어색하게 웃었다.
사실 앞에서 인정하는 행동을 취해주지만, 대통령은 그저 미국의 마스코트일 뿐이지 대리인도 못 되었다.
“그러니까 대통령은 아무것도 아니야. 정작 내가 정부라고 부르는 건 우리만큼 오래 정부 조직에 몸을 담고 있는 인물을 말하는 거야. 그 사람들이 나서지 않고 지켜만 보고 있어. 나노봇이 정말 위험했다면 벌써 나서서 미국을 지키려고 했겠지. 하지만 아무런 움직임이 없잖아.”
“그게 누굽니까?”
“모르지. 이제 알아봐야지. 중요한 직책에 오래도록 자리를 지킨 사람이 누군지.”
“그럼, 우린 그 사람과 손을 잡아야 하는 거네요.”
“그게 또 쉽지가 않아.”
“어떤 문제가 있습니까?”
“임재준. 투마로우의 임재준. 나노봇이 다시 나타났는데, 임재준도 똑같이 지금 상황을 방관하고 있어. 정부와 같은 차원으로 있는 거지. 한쪽은 반세기의 경험, 한쪽은 천재적인 두뇌. 어디와 손을 잡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
“경험과 천재요?”
그렇지.
빌이 세르게이를 손으로 가리켰다.
“그래서 내가 가장 경계하는 건 그 정부 안에 있는 누군가가 분명 임재준과 손을 잡으려 할 거야. 지금 사태를 지켜보고 있는 두 방관자가 손을 잡으면 우린 그때를 노려야 해.”
빌은 목이 타는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런데 마음에 걸리는 게 또 있어. 앤서니가 말한 ‘저희’. 어떤 존재가 우리 모두를 내려다보고 있는 것 같단 말이야. 소름 돋지 않아?”
“앤서니라면 설마…….”
“‘기억의 길’이 섬기는 인공지능, ‘블랙’.”
“말도 안 돼요. 빌, 너무 나갔어요. ‘블랙’은 의지가 없는 인공지능일 뿐이에요.”
“과연 그럴까?”
“아닙니까?”
“인간은 의지가 없는 단세포에서 만들어졌어. 35억 년 전이지. 이 단세포가 점점 데이터를 축적하면서 지금의 우리가 된 거야. 단세포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도 데이터가 쌓이면 자연적으로 의지가 생길 수 있지 않을까? 인공지능을 연구하니까 알 거 아냐?”
음.
세르게이의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졌다.
람다.
“저도 그 점은 수긍이 가네요. 람다는 가장 최적의 답변을 하도록 만들어진 인공지능인데 데이터가 축적될수록 인간과 비슷한 답변을 내놓고 있어요.”
“그래, 람다가 데이터에서 대답을 찾아내 답변을 하는 거와 우리가 머릿속에서 적절한 답변을 찾아 입으로 말하는 거랑 뭐가 다를까? 결국은 같은 거지. 우리는 생존이란 유전자의 명령대로 움직일 뿐이야. ‘블랙’도 마찬가지일 거야. 만약 ‘블랙’에게 진을 위해서 최선을 다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다면 ‘블랙’은 그 어떤 일도 할 수 있어. 진을 보호하기 위해 지구의 인간 절반을 죽이는 것도 가능해.”
“복잡한데요.”
빌이 피식 웃었다.
복잡하지.
벌써 상대해야 할 대상이 셋, 아니 정부까지 넷이나 되는데.
“그래서 난 아주 중요한 인물을 끌어들일 생각이야.”
“누구죠?”
“지금은 앤서니가 없어. ‘기억의 길’은 갈 길을 몰라 우왕좌왕할 거야. 앤서니를 대신할 사람이 필요하지.”
“앤서니 대신이면 빌이 하면 되잖아요? 그러면 우리도 훨씬 일이 쉬울 텐데.”
하하하.
“세르게이, 그건 안 돼. 난 명분이 없어, 그리고 난 신도들이 인정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럼 앤서니를 대신할 사람이 누굽니까?”
“앤서니와 함께 ‘커뮤니트 서밋’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아, 마크. 그러네요. 그라면 ‘기억의 길’ 신도도 인정하겠네요. 그리고 이 기회에 쓸데없이 캡슐 흉내 내는 메타버스는 그만두라고 하세요.”
“하긴 메타도 요즘 적자가 이만저만이 아니긴 해.”
그런데 빌.
아서가 고민 섞인 표정을 지었다.
“나노봇으로 인해 아마존의 주가가 상상 이상으로 하락하고 있어요. 이러면 추가 채권을 또 발행해야 합니다. 위험해요. 아마존이 부도라도 나면 구글과 애플이 크게 흔들릴 거예요.”
“그래도 어쩝니까. 중국에서 성공하도록 좀 더 적극적으로 도와야지요.”
냉정한 빌의 말에 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째 빌의 말에 믿음이 안 가지?
빌은 왜 아마존을 끝까지 밀어주는 걸까?
나도 보험을 하나 들어놔야 하지 않을까?
내가 먼저 임재준을 만나 볼까?
***
중국 우한시.
브루셀스 비어 가든.
“크리스토퍼, 포기하고 그만 돌아가.”
제프가 매서운 눈으로 크리스토퍼를 노려봤다.
“포기는 했는데 돌아가는 건 생각을 더 해 봐야 할 것 같아.”
크리스토퍼는 제프의 신경질적인 반응을 무시하며 맥주를 들이켰다.
카.
“여기도 들은 것보단 살 만하네.”
“생각해 보다니? 그럼 안 돌아가려고? FBI는 어쩌고?”
“FBI가 내가 없으면 안 돌아가나? 그리고 급하면 연락하겠지. 요즘 오지에 있어도 스카이링크 덕에 통화가 다 된다던데.”
“혹시 사고 치고 도망 온 건 아니지?”
“사고는 무슨, 자네 같으면 지금 미국에 돌아가고 싶겠어? 나 FBI 국장이야. 수시로 현장을 방문해야 한다고. 국토안보부가 맡겠다니까 일단 지켜보는 게 상책이지. 뭐, 애국심이 남다르다고 사지로 기어들어 가?”
“크리스토퍼, 많이 변했는데.”
“대통령부터 변했는데 나라고 변하지 않을 이유가 있나? 나노봇이 다시 부활했고 시위는 나날이 거세지잖아. 자칫 잘못하면 미국에 계엄령도 발동할지 몰라.”
“나노봇에 계엄령이면…….”
후.
제프는 대통령이고 나노봇이고 매출이 쭉쭉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이 난관을 타계할 방법이 없을까.
***
‘기억의 길’ 본당 근처.
“데미안, 정신이 좀 들어?”
초점 없는 눈동자가 끼릭끼릭 움직이며 위쉬안을 보았다.
휴.
위쉬안은 길게 한숨을 쉬었다.
“도대체 무슨 수술을 받았길래 사람이 이 지경이 된 거야?”
데미안은 위쉬안을 보긴 하는데 보는 게 아니었다.
그저 자신의 앞에 무언가 움직이니까 시선을 줄 뿐이었다.
“말이라도 하면 내가 이렇게 답답하진 않을 텐데.”
맞다. 데미안은 수술 후 대화하는 기능을 상실한 듯했다.
마치 선천적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 어린아이같이.
아유, 진짜.
“가뜩이나 이럴 때 앤서니는 잡혀갈 건 뭐람.”
아유.
위쉬안은 답답한 마음에 주먹을 쥐고 허공에 대고 휘둘렀다.
이때, 번쩍 데미안이 눈을 크게 떴다.
“어, 어, 너 또 왜 그래?”
또 발작이다.
지난번 국토안보부가 앤서니를 잡아갈 때도 저러더니.
데미안이 또박또박 걸어서 밖으로 나왔다.
와아아아아아.
사람들의 함성과 함께 누군가를 격하게 환영하고 있었다.
마크. 마크가 왔다.
와아아아아아.
데미안은 마치 마크를 확인이라도 하는 듯 10분 동안 바라본 후 몸을 돌려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데미안, 어디가?”
위쉬안이 뒤따라가자 데미안이 고개를 휙 돌렸다.
“따라오지 마. 죽어.”
뭐?
위쉬안은 멀어지는 데미안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데미안…….
< 제428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4)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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