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3) >
십여 명의 경비대가 본당으로 진입하자 수십 명의 경비대가 입구를 막았다.
그리고.
철컥.
다가오면 발포합니다.
총이다.
피난민과 경비대가 대치 상황이 되었다.
서로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제 본당에서 누군가가 나오면 상황은 급변한다.
이때,
쾅, 쾅.
누군가 힘차게 발을 굴렀다.
-누구야?
-저기 옥상.
방독면을 쓴 남자아이가 ‘기억의 길’ 옥상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뭐지?
아이는 말없이 자신의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공 모양의 캡슐을 경비대와 피난민이 있는 중앙을 향해 던졌다.
파삭.
캡슐이 깨지고 사람들의 시선이 고정되었다.
뭐야? 아무것도 없잖아.
잠시 정적이 흐르는데.
끄아아아악.
캡슐 가까이에 있던 사람 하나가 기괴한 모습으로 쓰러졌다.
관절이 이리저리 꺾이며 온몸에서 피를 토하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리고 다시.
끄아아아악.
그 옆 사람이
끄아아아악.
그 옆 사람이.
차례로 악마에게 고문이라도 당한 얼굴을 하며 피를 토했다.
끄아아아악.
삽시간이었다.
수십 명의 사람이 몸이 뒤틀리며 쓰러졌다.
-뒤로 물러나.
누군가 비명을 질렀다.
-나노봇이다.
나노봇?
으아아아아악.
사방에서 비명이 난무했다.
삽시간에 죽음의 공포가 공간을 물들였다.
몇몇이 ‘기억의 길’ 본당 안으로 뛰어들자 정문을 지키고 있던 경비대가 경고도 없이 발포했다.
탕.
한발로는 어려웠다.
그다음은 총성이 연달아 들렸다.
탕, 탕, 탕, 탕, 탕, 탕, 탕.
픽픽, 사람들이 쓰러지고 경비대 전체가 ‘기억의 길’ 정문 쪽으로 이동했다.
십여 명이 본당 안으로 또 뛰어 들어가고 안에서 총성이 울렸다.
탕, 탕, 탕.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앤서니를 끌고 나왔다.
끼이이익.
기다렸다는 듯이 트럭들이 세워지고,
어서 올라타.
경비대를 싣고 이 아비규환의 현장에서 멀리 사라졌다.
방독면을 쓴 남자아이는 아래를 내려다보며 갸우뚱 고개를 비틀었다.
그리고 뒤편으로 유유히 사라졌다.
사람들이 죽은 사람들을 피해 덜덜거리며 물러나고 있을 때.
위이이이이이이이.
드론 수십 대가 대략 지름 100m의 알루미늄 돔을 운반하더니 시체들 위에 수직으로 떨어뜨렸다.
쾅, 쾅, 쾅.
그리고.
휙.
다다다다다닥.
메렛 세 기가 각각의 알루미늄 돔 중앙을 향해 달렸다.
순식간에 중앙에 도착한 메렛이 돔 가장 윗부분을 해치를 열고 아래에 소이탄을 집어넣었다.
쿠웅~웅~웅~웅.
거대한 울림이 일어나며 알루미늄 돔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20,000도가 넘는 고열이 돔 안 모든 것을 태워 버렸다.
탄소마저도 남아나지 않았다.
두두두두두두두.
헬기 한 대가 날아왔다.
여기도 남자아이 하나가 헬기에서 내려 주변을 둘러봤다.
주변 땅의 움직임을 뚫어지게 본 후 작은 측정기를 꺼내 사방으로 움직였다.
작게 고개를 끄덕이고.
저 멀리에서 자신을 지켜보는 피난민을 보았다.
그리고 본당 앞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를 보았다.
저벅, 저벅, 저벅.
피난민을 향해 걸어갔다.
맨 앞에 있는 청년에게 자신이 가지고 있는 측정기를 내밀었다.
“여기에 빨간 불이 들어오면 나노봇이 있는 거예요. 지금은 괜찮아요.”
진은 청년에게 측정기를 건네며 주변 죽은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기 총에 맞은 죽은 사람들 무덤이라도 만들어주세요. 무덤은 최소한 1km 떨어진 곳에 만들어야 해요. 자칫 잘못하면 세균에 노출될 수 있어요. 화장을 하면 더 좋고요.”
응.
청년은 울 것 같은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진도 고개를 숙인 후 대기하고 있는 메렛과 함께 헬기에 올랐다.
두두두두두두두두.
헬기가 멀어졌다.
그제야 사람들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인지하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뭘 본 거야?
그리고 여기서 일어난 일에 대한 영상이 SNS를 통해 퍼져 나갔다.
***
연방재난관리청(FEMA).
“저희도 나노봇이 아칸소강으로 들어간 거 확인했습니다.”
그레이가 지도에서 아칸소강을 손가락으로 죽 따라가며 주 이름을 하나씩 불렀다.
“콜로라도, 캔자스, 오클라호마, 아칸소, 큭큭큭, 그리고 미시시피?”
이거 그냥 끝났다고 봐야겠는데.
동시에 모든 주를 봉쇄하면 모를까.
“탄소나노튜브라……. 물속에 탄소 많잖아. 그렇지?”
“강이나 바다나 탄소 덩어리라고 보시면 됩니다.”
“그래, 그래. 나도 그렇게 알고 있지. 큭큭큭. 이거 어떡하지? 알레한드로는 뭐라고 그래?”
엄밀히 말해 알레한드로는 그레이의 상사다.
그레이가 인정도 하지 않고 알레한드로도 그레이 앞에서 고개를 숙이지만.
“긴급 대책 회의를 열어야 한다고 합니다.”
“멍청한 놈. 머리도 쓸 줄 모르는 놈들이 회의는 해서 뭐 해? 그 시간에 투마로우 임재준 엉덩이나 핥아주는 게 낫지. 안 그래?”
“우리가 먼저 투마로우에 접촉할까요?”
“당연히 뭐라도 만져줘야 좋아할 거야.”
“국토안보부 회의는 불참입니까?”
“당연한 걸 왜 물어. 오랜만에 할 일이 생겼는데, 머리 나쁜 놈들이랑 노닥거릴 시간이 어딨어. 그렇지?”
“맞습니다.”
역대 FEMA의 청장들도 선천적으로 말을 들어 처먹는 인간들이 아니었다.
FEMA 주요 임무 중 하나가 국가 재난 시에는 전체주의 체제를 도입하고 체재에 도전하는 인간들을 수용소로 끌고 가거나 죽이는 임무를 수행한다고 한다.
아직 그 정도의 국가 재난이 일어나지 않아서 확인된 바 없지만.
FEMA가 나설 정도의 재난이면 외계인 침공? 아니면 운석 대충돌? 또 뭐가 있을까, 제2의 흑사병, 아, 유인원의 반란, 아니면 이번과 같은 나노봇이 만들어 내는 그레이 구 정도.
이러니 FEMA는 청장부터 요원까지 생각하는 방식과 크기가 다른 기관과 달라도 많이 다른 싸이코 집단이다.
실제 재난이 없이 오랜 시간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에 대통령이나 장관을 지나가는 ‘개’ 정도로 취급하는 인간들이다.
대통령도 이들이 맘에 안 든다고 자를 수가 없다.
워낙 오랜 시간 축적된 데이터를 다룰 수 있는 이들은 이들뿐이니까.
“대통령은 어떻게 할까요?”
“대통령이 우리 기구의 존재는 알고?”
“이 정도 재난이면 알지 않을까요?”
“글쎄. 과연? 이게 재난이야?”
“알레한드로 입에서 우리 이름이 나왔습니다.”
“큭큭큭, 어지간히 급했나 보네.”
“급했다기보단 아무거나 나불거린 게 아닐까요?”
“그게 훨씬 타당하네. 워낙 쓰레기를 다 주워 놨으니 말야.”
국토안보국은 국가안보에 위협이 되는 상황을 대비해 온갖 기구들을 전부 쓸어 모아 놓았다.
해안경비대, 이민·세관 집행국, 연방 보호 경찰, 이민국, 관세국경보호청, 연방 사법연수원, 비밀경호국(Secret Service), 교통안전청, 연방재난관리청(FEMA)까지.
요기 보면 대통령 경호를 담당하는 Secret Service도 국토안보국 소속이다.
“쓰레기 하니까 생각나네. 빌라는 잘 관리되고 있지?”
“이제 채워 넣을까요?”
“그래, 그래. 깨끗이 치우고 채워 넣어. 더러운 건 질색이니까.”
빌라는 FEMA이 관리하는 수용소를 가리킨다.
이 수용소가 음모론을 양성하는 곳이다.
“그리고 ‘기억의 길’ 사건은 어떻게 처리할까요?”
“그러게 알레한드로가 좀 심하긴 했는데. 언론에 슬쩍 흘려. 그래야 지들끼리 지지고 볶지. 아, 데미안 얘기는 빼고.”
“네, 그럼 임재준과 미팅을 잡겠습니다.”
“응, 빠르면 빠를수록 좋은 거 알지?”
“네.”
그레이는 다시 지도를 보며 씨익 웃었다.
나노봇이 언제 물속에서 기어 나올까?
하여튼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은.
한 천만 명쯤 죽으면 저절로 해결될 일을.
진짜 재앙은 따로 있는데.
“그렇지?”
“네?”
“아냐, 엘리자베스 소식은 없지?”
“워낙 꼭꼭 숨겨 놓아서요.”
“그렇겠지. 다이로는 잘 갔고?”
“쿠바를 통해 브라질로 들어갔습니다.”
“음, 잘 갔네. 아쉽네. 위스키라도 한잔 사주고 보내는 건데.”
“곧 다시 보게 될 것 같습니다.”
“그래, 그래. 그래야지. 크리스토퍼는 중국에서 여전히 헛짓거리하고 있지?”
“네, 오늘쯤이면 주석을 만나고 있을 겁니다.”
“그래, 그래.”
“근데 진짜 대책회의에 안 가보실 겁니까?”
“안 간다니까. 부른다고 쪼르르 달려가면 그놈들 버릇 나빠져. 지들이 언제부터 대통령이고 장관이었다고. 안 그래? 정 걱정되면 부장을 보내든가.”
“아니요. 불참으로 가닥을 잡겠습니다.”
“응, 그래, 그래.”
***
긴급 재난 대책회의.
대통령을 포함해서 각부의 장관과 국토안보부 산하기관장들이 모였다.
“CCTV 영상을 보셔서 아시겠지만, 나노봇이 알루미늄 돔을 빠져나온 건 확실합니다. 그리고 아칸소강을 타고 이동하고 있습니다. 공기 중보다 몇 배 빠른 속도로 움직일 수 있다고 하니 조만간 남쪽으로 미시시피강과 북쪽으로 투르쿠아즈호와 만난다면 미국 전역의 강으로 번지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쿵쿵쿵.
대통령이 자신 앞의 책상을 강하게 두드렸다.
“투마로우에게 맡기는 게 아니었어요. 괜히 일만 커졌잖아요.”
대통령의 말에 절반 이상의 장관이 얼굴을 찡그렸다.
저 정도도 못하면서.
“차라리 처음부터 전략핵을 사용하는 편이 나을 뻔했습니다.”
저걸 말이라고 한다.
물론 전략핵을 사용했다면 이론상 도시 하나 정도는 날려 버릴 수 있으니 일정 지역의 나노봇을 녹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성공을 하든 실패를 하든 피폭은 어떻게 할 거며 방사능으로 오염된 지역 정화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알레한드로 장관, 지금 단계에서 대책이 있습니까?”
대통령의 지적에 깃을 바짝 올린 국토안전부 장관이 마이크를 잡았다.
“일단 모든 강에 대한 접근 금지를 내리고 나노봇이 육지로 올라올 때를 대비해 7,000도에 가까운 화염 방사기를 준비하는 겁니다.”
“모든 강과 하천에 군인, 경찰을 다 동원해도 인원을 감당하기 어렵습니다.”
국방부 장관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군인과 경찰은 필요 없습니다. 각 도시와 마을에 민병대를 조직하고 화염 방사기를 지급하면 됩니다.”
“민병대에게 무기를 지급한다고요? 그건 무리입니다. 차라리 민병대에 화염 방사기를 다룰 수 있는 군인이나 경찰을 하나나 둘씩 배치하는 건 어떨까요?”
“경찰은 안 됩니다.”
내무부 장관이 단호한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지금 폭도들이 설칠 가능성이 가장 클 때입니다. 경찰은 시민을 보호하려 해도 모자랄 판입니다.”
“지금 폭도들 관리하다가는 다 사라집니다.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생각해야 할 때입니다.”
“장관님, 책임지실 수 있습니까?”
“뭐요?”
“폭도들이 설치는 걸 방치한 걸 책임질 수 있냐고 말하는 겁니다.”
“그럼, 다 죽자는 겁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습니까?”
탕, 탕, 탕.
대통령이 인상을 쓰며 탁자를 내리쳤다.
“국토보안부 장관님, FEMA는 왜 안 보이는 겁니까?”
“분명 메시지를 전달했습니다.”
“이런 국가적 재난 시기에. 당장 들어오라고 하세요.”
가장 중요한 시기에 이 사람이 정말.
“대통령님, 지금 당장 결정 내려야 합니다. 그레이 청장을 기다릴 시간이 없습니다.”
대통령은 회의실에 있는 사람들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죽 둘러봤다.
반드시 재난 상황에서는 FEMA에게 자문을 구하라 했는데.
“그럼 일단 경찰을 배제한 민병대와 군인으로 강과 하천에 일정 거리를 두고 배치합시다.”
“네.”
“그리고 국방부 장관, 전략핵 준비하세요.”
“네.”
전략핵이란 말에 국방부 장관의 입꼬리가 올라갔지만 다른 장관들은 팍 썼다.
내무부 장관이 대통령에게 얼굴을 들이밀었다.
“절대 안 됩니다.”
< 제42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3)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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