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6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2) >
플로렌스 리버 공원.
방호복을 입은 두 사람이 공원을 돌며 순찰 중이었다.
약 10km 떨어진 곳에 백여 개의 알루미늄 돔이 보였다.
석양에 물든 알루미늄은 마치 불덩이를 가두어 놓은 것처럼 지랄 맞았다.
“저거 볼 때마다 으스스해.”
“그러게 마치 무덤 같아.”
“실제로도 무덤이지 뭐. 저 안에 나노봇의 시체가 빽빽하게 있을 텐데.”
“아유, 생각하기도 싫어.”
부르르.
둘은 몸서리를 치며 아칸소강을 따라 혹시나 모를 비상사태를 위해 눈을 부라리며 주변을 살폈다.
“그런데 사우스다코타 지역에 사람들이 그렇게 많이 몰린다며?”
“거기 ‘기억의 길’ 본당하고 핵융합 발전소가 있잖아. ‘사이진’도 몰려 있고. 사람이 바글바글하다던데.”
“콜로라도와 그리 멀지 않은 곳인데. 위험하지 않을까?”
“이 친구가 미쳤나. 뭐, 나노봇이 다시 살아나기라도 한 것처럼 말하네. 물론 나노봇만 생각하면 자다가도 화장실로 달려가고 싶어지기는 해.”
윙윙윙윙윙.
그 둘의 머리 위로 드론 한 기가 지나갔다.
그들이 드론을 쫓는 시선이 머무는 곳엔 수천 대의 드론이 하늘 위를 뒤덮고 있었다.
드론은 알루미늄 돔 위를 돌며 촬영 영상을 실시간으로 전송했다.
“저렇게 감시하는데 큰일이야 생기겠어? 조금이라도 이상한 낌새가 보이면 바로 황산을 쏟아붓는다잖아.”
“그런데 투마로우는 이렇게 애를 쓰는데 국방부는 뭐 하고 있는 거야?”
“군인? 나노봇이 뭐 총으로 되겠어?”
“화염 방사기 있잖아. 그걸로 확 지져버리면 타버리지 않을까?”
“이런 무식한 친구. 화염 방사기 온도가 높아 봐야 2,000도라고. 하지만 탄소의 녹는점은 3,600도가 넘어. 화염 방사기로 지져봐야 괜히 바람만 불어대서 나노봇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게 돼.”
“그래?”
“요즘 TV만 틀면 온통 나노봇 이야기잖아. 공부 좀 해.”
“뭐 또 들은 이야기 없어?”
“있지. 지금 나노봇은 로터인가 모터인가 하는 게 영 효과적이지 못해서 이동이 인간보다 느리다고 하더라고. 일단 우리도 순찰을 돌다가 뭔가 보이면 죽어라 뛰면 살 수 있다는 거야.”
“오호, 내가 또 어릴 때 한 달리기 했지.”
“그리고 이놈들이 위로 올라갈 힘이 없어서 바닥에 뭉쳐서 움직인대. 이렇게 지렁이처럼 꿈틀꿈틀.”
“그럼 우리도 땅을 유심히 봐야겠네.”
“그렇지. 저렇게……. 뭐야 저거?”
“뭐? 뭔데?”
“저기.”
한 사람이 손으로 공원 옆을 지나는 이스트 메인 스트리트 도로를 가리켰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있어?”
“도로가 꺼졌잖아.”
“뭐? 어디? 도로는 원래 꺼진 곳이 많아. 보수 공사를 잘 안 하잖아.”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저기를 잘 봐.”
두 사람이 도로를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때.
푸석, 푸석, 푸석.
도로가 군데군데 아주 조금씩 주저앉는 게 보였다.
나노봇이다!
“야, 야, 야, 달려.”
“이런 미친. Fucker.”
둘은 미친 듯이 달려서 자동차에 도착했다.
“야, 야, 야, 빨리 타.”
한 사람이 문을 거칠게 열고 타려는데.
콰직.
문이 통째로 뜯어져 나갔다.
그리고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이미 타이어가 푸석푸석하게 변했다.
나노봇이다.
“야, 야, 야, 일단 강 건너로 달려.”
둘은 죽을힘을 다해 아칸소강을 건넜다.
방호복이 아니었으면 자신들도 저 타이어 꼴이 됐을 거란 생각에 다리에 힘을 쭉 풀렸지만, 거침없이 달렸다.
강을 건너고도 한참을 달린 후에 멈춰서 주변 바닥을 보았다.
꿀렁이거나 푸석거리는 곳은 없었다.
“괜찮은 거지?”
“응, 그런 것 같아. 빨리 본부에 연락해. 빨리.”
“하고 있어.”
본부, 본부.
여기는 리버 공원, 여기는 리버 공원.
나노봇이 나타났다.
다시 말한다. 나노봇이 나타났다. 나노봇이 나타났다.
***
잠시 후.
다다다다다다닥.
신고가 들어 온 아칸소강 부근에 캠프가 세워졌다.
다다다다다다닥.
하늘에는 나노봇의 이동 경로를 피해 헬기 수십 대가 날아다니며 물자를 실어날랐다.
무브, 무브, 무브.
지상에는 흰색 천막이 세워지고 흰색 방호복을 입은 백여 명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여기야?”
“네.”
중절모를 비스듬히 쓰고 마스크를 착용한 70대의 노인과 검은 양복을 입은 몇 명의 남자가 도착하자 둔한 방호복을 입은 연구원이 뛰어나와 맞이했다.
“오셨습니까?”
“응, 샘플은 채취했어?”
“네, 강과 흙, 양쪽에서 다 존재합니다.”
노인은 알았다는 듯 손을 훠이훠이 저으며 막사 안으로 들어갔다.
막사 안에서 뭔가를 들여다보던 연구원들이 노인을 보자 일제히 일어섰다.
“오셨습니까?”
“인사는 됐고 샘플부터 가져와 봐.”
연구원 하나가 조심스럽게 작은 병을 가져왔다.
“여기 있습니다.”
노인이 등불에 병을 비춰보았다.
아무것도 들어있지 않은 빈 병처럼 보였다.
“확실히 확인한 거야?”
“네, 청장님.”
“이 안에만 수백만 개가 존재한단 말이지?”
“그런 것 같습니다.”
노인이 방금 말한 연구원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같습니다는 뭐야? 있는 거야 없는 거야?”
“아, 네. 있습니다.”
“그러면, 강에서 다시 육지로 나올 확률은?”
“100%입니다.”
“그다음은?”
“강에서 육지로 올라온다면 땅속의 탄소를 이용해 번져나갈 겁니다.”
“그럼 다 죽은 거네.”
“네?”
“그렇잖아. 강물이 땅에 스며드는 건 당연한 거고, 땅속의 탄소를 이용하는 건 너무 쉽고, 나노봇이 인간에 붙으면 탄소를 빼앗아서 죽인다며.”
“네.”
“그럼 막을 방법은 있어?”
“아직은 없습니다.”
“강을 따라 지역을 봉쇄할 수 있어?”
“불가능합니다.”
“그럼 나노봇을 직접 죽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겠네.”
“네.”
“대답만 하지 말고 당장 찾아.”
노인의 노기에 연구원들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노인은 다시 병을 연구원에게 건네며 보좌관에게 말했다.
“투마로우는 여기서 얼마나 떨어져 있지?”
“1,000km 좀 넘습니다.”
노인이 거칠게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사라진 노인을 보고 연구원 하나가 책임 연구원에게 물었다.
“누구예요?”
“FEMA(연방재난관리청)의 청장 그레이 크릭.”
“FEMA요?”
그레이 크릭, 그 악명 높은 FEMA의 청장이다.
FEMA(연방재난관리청)에 대해서는 워낙 많은 음모론이 제조되었고 실제 증거도 넘쳐나는 기관이다.
1979년에 대통령 직속 기구로 창설되었는데 원래 FEMA 청장은 장관급 대우였다.
2002년 국토안보부가 생기고 그 산하기관으로 들어가면서 장관급 대우가 사라졌다.
노인은 밖으로 나와 사우스다코타를 바라보았다.
손을 까딱거리자 보좌관이 붙었다.
“저기 알레한드로가 있다고 했지?”
알레한드로는 국토안보부 장관 이름이다.
“네, ‘기억의 길’로 향했습니다.”
노인은 자신의 볼을 긁적이며 심드렁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새끼들.”
“그리 갈까요?”
“아니, 아니, 됐어. 가서 괜히 우리한테 불똥이 튈 텐데. 그냥 애들 몇 붙이고 우린 돌아가. 오랜만에 나왔는데 별 소득도 없네.”
“가시죠.”
노인과 보좌관이 차를 타고 멀어져갔다.
***
같은 시각.
‘기억의 길’ 본당 주변.
국토안보부 소속 경비부대 수천 명이 본당 주변을 포위했다.
당연히 콜로라도 피난민들과 또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전부 물러나세요. 공무집행을 방해하면 강제 해산할 수밖에 없습니다.”
경비부대원들이 각자 허리에서 진압봉을 꺼내 들었다.
한 명 한 명의 눈에 살기가 어렸다.
협박이다.
움찔, 피난민 앞쪽에 있던 사람들이 살짝 뒷걸음질을 쳤다.
하지만 이대로 물러설 수 없다는 결단에 용감하게 소리 질렀다.
-이제 죄 없는 국민에게 폭력을 행사하려 하네.
-이거 찍어. 인터넷에 다 올려 버려. 어디 한번 쳐봐.
사람들이 일제히 스마트폰을 꺼내 촬영하기 시작했다.
후, 사람들 진짜.
“다시 한번 부탁드립니다. 테러 단체를 옹호하는 것은 큰 죄입니다. 물러나시기 바랍니다.”
-테러 단체? 와, 이런 썩어빠진 놈들을 봤나. 도대체 어느 대목에서 테러 단체로 낙인찍은 건데? 조용히 종교 활동한 거? 아니면 불쌍한 피난민들에게 지낼 곳과 음식을 제공한 거? 어느 대목이야?
-그냥 들어오라니까.
-어디 한번 해 보자.
경비대와 싸우는 건 두렵기는 하지만 피난민도 불만이 가득 차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무능한 정부, 너희들이 우리에게 해준 게 뭐가 있어?
-5백만이 넘는 피난민이 전국으로 퍼졌는데 제대로 된 피난소도 없고, 심지어 이거, 이거, 이런 물 한 병이라도 준 적 있냐고? 이거 다 ‘기억의 길’에서 우리한테 준 거야. 이 나쁜 놈들아.
-그래놓고 뭐, 테러 단체? 요즘은 테러를 음식 나누어주는 거로 하냐?
허, 거참.
멀리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국토안보국 장관이 쓴 입맛을 다셨다.
“쉽지 않겠는데.”
“이들이 애초에 정부에 대한 불만이 많았습니다. 저희가 이 점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
“그러게, 이대로 물러날 수도 없고.”
큰소리 뻥뻥 치고 왔는데.
이때, 모두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뭐야?
국토안보부 장관이 스마트폰을 꺼냈다.
[콜로라도 지역에 나노봇 출몰, 아칸소강을 타고 전국으로 확산 중.]
뭐?
국토안보부 장관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이 정도면 계엄령을 발동할 만한 긴급 상황인데.
국토안보부는 911 테러 이후 미국 본토가 공격당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에 대응하기 위한 기구다.
국가안보는 물론이고 사후의 상황 발생 시에 대응까지 전담하는 것을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국토안보부 장관은 스마트폰의 통화 버튼을 눌렀다.
“대통령님. 문자 받으셨죠. 상황이 안 좋습니다.”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현 사태를 진정시키세요. 아칸소강을 따라 번진다면 미국 전역이 나노봇의 위험에 노출되는 겁니다.
“지금 당장 연방재난관리청을 동원하겠습니다. 하지만 어려울 수 있습니다.”
-무슨 수를 써도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막으세요.
“네.”
툭.
스마트폰을 끊고 멀리 대치 중인 경비대와 피난민을 바라봤다.
모두 스마트폰을 보며 우왕좌왕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기회인가?
모두의 시선이 나노봇에 쏠려 있다.
그래, 하나는 해결하고 가야지.
나노봇을 살포한 범인은 ‘기억의 길’이 되는 거야.
“보좌관.”
“네, 당장 진압하고 ‘기억의 길’ 수뇌부들 전부 잡아들여.”
“네? 지금 나노봇이 출몰했습니다.”
“그러니까 나노봇의 출처를 먼저 색출하는 게 우선 아니야?”
“그러면…….”
“당장 테러 분자들 정리해.”
“하지만.”
무고한 시민입니다.
“정리하라는 내 말 안 들려?”
인상을 팍 쓴 보좌관이 무전기를 들었다.
“진압 시작해.”
와아아아아.
경비대가 진압봉을 들고 피난민을 무자비하게 폭행하기 시작했다.
-저 미친놈들. 지금 이럴 때가 아니잖아. 나노봇이 다시 나타났다고. 우리가 아니라 나노봇을 잡아.
-막지만 말고 우리도 패.
으아아아악.
피가 튀고 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들린다.
서로가 분노에 차 있다.
어딘가에 자신의 분노를 표출해야 살 것 같다.
이건 경비대만이 아니다. 피난민들도 마찬가지다.
경비대를 향해 각목과 쇠파이프를 날렸다.
하지만 군인과 민간인의 차이는 엄연히 다르다.
피난민은 여자도 있고 아이도 있고 노인도 있다.
훈련이 잘되어 있고 진압 작전도 세운 경비대와 싸워 시민들이 이길 수는 없었다.
난전이 벌어지는 사이 십여 명의 경비대가 ‘기억의 길’ 본당으로 밀고 들어갔다.
시민들은 필사적으로 달려들었다.
-잡아.
-못 들어가게 해.
< 제426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2)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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