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5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1) >
중국 우한시.
제프는 세르게이와 통화하며 들뜬 목소리를 주체하지 못했다.
“정말 추가 채권이 발행 가능하단 말이죠.”
-그래요. 대신 구글과 애플이 보증을 섰습니다.
“그건 내가 평생 잊지 않을 겁니다. 평생.”
-중국 내 분위기도 심상치 않던데.
“그렇긴 해요. 갑자기 테러가 벌어지고 공안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습니다. 그래도 중국은 곧 풀어질 겁니다. 내수가 죽으면 중국의 성장을 할 수가 없는 구조니까요.”
-알 수 없는 변수로 추가 하락이 있을지 모르니 항상 긴장을 늦추지 마세요.
“하하하, 걱정해줘서 고맙습니다.”
-그럼, 이만 끊습니다.
툭.
통화를 끊고도 허전한 마음이 좀처럼 가시질 않아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하필이면 사업을 확장할 때 이런 일이 연속으로 발생해서.
그래도 마진콜을 막았으니 채권자들이 아마존 주식을 시장에 던지지는 않아서 얼마나 다행인가.
후.
한숨이 길게 나왔다.
안도인지 걱정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반응이었다.
정신을 차리자.
성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
띠링.
문자 벨에 화들짝 놀란 제프가 스마트폰을 들었다.
깜짝이야.
요즘 이런 사소한 일에도 충격을 받았다.
[크리스토퍼가 중국에 도착했습니다. 주석과 함께 만나 보시겠습니까?]
중앙판공청 주임 딩쉐이의 문자.
우한시 테러 이후 몇 번 만나 인연을 만들었더니 중요한 사안이 있을 때마다 이렇게 문자를 주었다.
크리스토퍼? FBI 국장이 중국엔 왜?
제프는 크리스토퍼와 안면이 있는 사이였다.
아마존에게 당한 중소기업들 처리를 도맡아 해주면서 알게 되었다.
딩쉐이가 나와 크리스토퍼 사이를 아는 건가?
일단은 큰 그림으로 물어보고.
[미국과 중국 경제에 관한 문제로 온 겁니까?]
일단 답장을 넣었다.
딩쉐이의 반응을 살피고 다음 행동을 결정하고 싶었다.
예전의 크리스토퍼라면 당연히 미국 4대 IT 기업인 자신에게 찾아와 조언을 구한 뒤 주석을 만났을 텐데.
온다는 사실도 몰랐다니 서운하고 답답했다.
[같이 자리를 마련해 드릴까요?]
동문서답의 답장이 날아왔다.
이유가 뭔지 물었는데 대뜸 동석을 하라니.
크리스토퍼라…….
좀 뜬금없는 그림이긴 했다.
FBI 국장이 경제 문제를 풀기 위해 중국을 방문하는 게 맞는 퍼즐인가?
왜 방문한 건지.
그리고 딩쉐이는 왜 자신을 그 자리에 초대하는지.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래, 일단 부딪쳐보고 나서 결정하자.
[네, 시간은 언제입니까?]
[한 시간 뒤에 중난하이로 올 수 있으십니까?]
한 시간 뒤?
꽤 급한 만남 아닌가?
내가 낄 자리가 아닌 것 같은데.
아니야, 딩쉐이가 이러는 걸 보면 분명 뭔가 있어.
어쩌면 중국 사업에서 활로를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가겠습니다.]
답장을 하고.
삐.
내선으로 비서를 호출했다.
-네.
“차 대기 시켜. 중난하이로 갈 거야.”
-네.
***
중난하이.
하하하하.
“그런 일이 있었습니까?”
시앙핑 주석은 크리스토퍼와 예전 일을 놓고 서로 오해가 있었던 부분을 풀고 있었다.
“그때는 참, 죄송했습니다.”
“에이 다 지난 일인데요. 지금 일어나는 일만 해도 머리가 깨질 것 같은데. 과거야 뭐. 그런데 이번에 그 알루미늄 돔은 직접 보셨습니까?”
“아, 투마로우 작품 말씀하시는군요.”
“네, 굉장할 것 같던데. 1km짜리 알루미늄 돔 백여 개면, 엄청난 크기 아닙니까.”
“아쉽지만 저도 못 봤습니다.”
“이런, 이런. 나중에 나노봇이 정리되면 굉장한 관광자원이 될 것 같던데.”
“아, 네.”
크리스토퍼는 멋쩍어서 물을 한 모금 마셨다.
그게 사람 목숨이 왔다 갔다 하는데, 관광자원이라니.
“나노봇은 다 해결된 거죠?”
“전문가들의 의견이 해결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그럼요. 임재준이 하는 일인데. 그 독종이 일을 허투루 할 리가 없을 겁니다.”
욕 같은데 칭찬 같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거,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알리바바아메리카가 미국에서 장사 좀 하는데 미국 정부가 싫어하는 건 아니죠?”
“그럴 리가요. 미국 정부는 미국 내에서 하는 사업은 국적에 상관없이 다 보호합니다.”
“그래야지요. 우리도 그러니까.”
“세금 내는 곳이 국가 아닙니까.”
“세금?”
하하하하.
“그렇습니다. 맞아요. 맞아. 글로벌 시대에 세금 내는 곳이 바로 자기 나라죠.”
시앙핑이 자기 말에 좋아서 호탕하게 웃자 크리스토퍼는 자신이 해야 할 말을 꺼낼 준비를 했다.
“그래서 말입니다.”
말투가 은근하게 밀려오자 시앙핑의 눈매가 살짝 가늘어졌다.
“네, 뭐 할 말이라도 있으십니까?”
“아마존이 미국에 안 좋은 사건에 연루가 되어 있습니다.”
“안 좋은 사건이요?”
“혹시 ‘기억의 길’이란 종교를 아십니까?”
“아주 잘 압니다.”
자그마치 주석인 내가 거기 신도야.
“‘기억의 길’이 테러 집단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벅벅벅벅.
시앙핑이 말을 듣자마자 자신의 볼을 마구 긁었다.
“테러 집단이요? 맞아요? 테러 집단?”
“네, 미국의 안보에 중대한 위협을 가할 것으로 판명이 났습니다.”
“미국 안보에 중대한 위협이요?”
“네. 왜 그러십니까?”
질문을 받은 시앙핑의 입술이 쌍욕을 하고 싶어서 옴짝달싹했다.
왜 그러십니까?
이런 미친놈들을 봤나.
내가 봐도 수가 너무 뻔하잖아.
아니 소비 좀 자제했다고 그걸 테러 집단으로 몰아버려?
가만, 아마존이 여기에 연루가 됐다, 이거네.
그럼 아마존이 테러 집단이란 말이고.
지금 중국에 미국을 테러할 집단의 우두머리가 있다고?
이 무슨 밭 갈던 소가 배를 까뒤집고 웃을 소리야?
“‘기억의 길’은 그렇다 치고 아마존이 왜 테러 집단이 된 겁니까?”
“연루된 거지 아마존이 테러 집단이란 말은 아닙니다.”
“아, 연루만 된 거군요.”
“네.”
개를 고양이라고 하면 개가 고양이가 되냐?
언젠간 토사구팽할 거면서 잠시 봐주는 척하는 거잖아.
언제든 아마존을 후루룩 짭짭하려고.
이것들이 아마존은 중국 거라고 도장을 찍어놔야 손을 떼려나.
이거 아주 손버릇이 나쁜 놈들이네.
“그래서 중국 정부가 도와줄 일이라도 있습니까?”
“제프를 추방해 주실 수 없습니까?”
추방?
아니, FBI씩이나 돼서 추방할 수 있는 경우를 잘 모르고 있는 건가?
아니면 나를 자기 꼬봉 정도로 생각하고 말을 하는 건가?
“죄 없는 사람을 어떻게 추방을 합니까?”
“그거야 방법을 지금부터 찾아보면 될 것 같습니다.”
“아, 그 말이군요. 그러니까 이렇게 저렇게 해서 뭔가 하나 큰 거 씌워서 미국으로 강제로 돌려보내 달라. 맞습니까?”
“네, 그렇게만 된다면 신장 위구르 건은 저희가 마무리하겠습니다.”
얘가 요즘 정신이 없긴 없구나.
근래에 FBI가 뭘 했는데 정보에 둔감해진 거야?
혹시 임재준과 싸운 거 아냐?
“거기서 중국군이 철수한 지 꽤 됐습니다. 투마로우가 임대했잖아요.”
“아니, 임대로 줬다고 군대도 철수했습니까?”
“그럼요. 메렛이 우리보다 잘하는데 굳이 뭐 하러 거기 남아 있습니까?”
“중화사상을 포기하신 겁니까?”
“포기한 건 아닌데. 이제 신장 위구르에서 굳이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투마로우가 알아서 이슬람을 막아주고 있거든요.”
다른 걸 꺼내 봐.
“그럼 티베트는…….”
“거기도 이미 투마로우에게…….”
“그럼 인도 분쟁 지역을 저희가…….”
“거기도 이미 투마로우가…….”
크리스토퍼는 써먹을 카드가 하나씩 사라질 때마다 입술이 마르고 눈알이 따끔거렸다.
어쩔 수 없이 딩쉐이를 바라봤다.
“여기 물 한 잔만 주시겠어요. 아니, 한 주전자를 가져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맞아요. 임재준 이야기를 하다 보면 목이 마를 수밖에 없어요.”
에이, 나쁜 놈.
나도 목이 마르네.
둘이 애매한 물 잔만 만지작거리고 있는데 딩쉐이가 물 주전자와 제프를 데리고 들어왔다.
“주석님, 제프가 도착했습니다.”
딩쉐이의 말에 화들짝 놀란 크리스토퍼가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표정을 급하게 온화하게 변화시키고.
“제프, 오랜만이네.”
“음, 꽤 된 것 같긴 해.”
괜히 서로 악수를 하면서 악력을 테스트하고 자리에 앉았다.
셋이 어떤 말을 먼저 꺼낼지 몰라 침묵이 흘렀다.
먼저 말을 꺼내는 놈이 진다.
흠, 흠.
할 수 없이 딩쉐이가 조용히 한마디 했다.
“주석님, 미국에서 국토안보부가 움직였다고 합니다.”
“아, 그래?”
“나노봇의 위험이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증거 아니겠습니까?”
“그 알루미늄으로도 안 되는 거야?”
“미국 외 지역에 나노봇이 또 있다는 정보가 있습니다.”
미국 외 지역?
“그게 무슨 말입니까?”
결국 제프가 벌떡 일어나려다 참는 반응을 보였다.
“제프, 아직 나노봇이 끝난 게 아니야.”
이렇게 자연스럽게 크리스토퍼와 제프의 대화가 연결되자 딩쉐이가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며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끝난 게 아니라면 또 어느 나라에 있다는 거지?”
“남미라는 정보가 있지만 확실한 건 아니야.”
“남미…….”
휴.
제프가 은근하게 안심이 섞인 한숨을 내쉬자 시앙핑이 주먹을 살짝 쥐었다.
한 대 치고 싶네.
저 표정 뭐야, 꼭 그 나라가 중국이 아니라서 다행이란 표정이잖아.
“아마존이 남미에도 꽤 매출을 발생시키지 않았습니까?”
“그래도 미국 시장이 죽는 것보다는 낫습니다.”
“그럼 이제 아마존에게 중국 시장도 중요하게 된 겁니까? 하하하. 이거 참, 내가 말하고도 민망하네.”
“민망이라뇨. 중국은 아마존에게 가장 중요한 시장입니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내수가 60%, 정부 투자가 30%, 수출이 10%다.
수출이 10%밖에 안 된다고? 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이다.
중국의 경제성장은 내수 소비가 어마어마한 비중을 차지한다.
그러니 이제 제프도 여기에 목숨을 거는 수밖에 없다.
크리스토퍼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제프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이러면 안 되는데.
제프를 미국으로 데려가서 ‘기억의 길’과 엮어야 하는데.
시앙핑이 원래 제프를 응원하는 거였어?
그럼 괜히 추방 얘기를 꺼냈잖아.
이런 바보 같은.
분위기를 바꿔야 한다.
“나도 아마존이 중국 경제발전에 크게 도움이 됐으면 해.”
제프가 뜬금없는 크리스토퍼의 말에 의뭉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근데 왜 나랑 같이 주석님을 보자고 한 거야? 자네 FBI 국장 아닌가?”
“그게…….”
“‘기억의 길’ 때문 아닌가?”
“알고 있는 거야?”
“당연히 알고 있지. ‘기억의 길’ 때문에 미국 내수 시장이 망가졌으니 ‘기억의 길’을 치기 위해 아마존을 총알받이로 내세우는 게 백악관의 그림이잖아.”
크리스토퍼가 시앙핑과 제프의 얼굴을 번갈아 여러 번 왔다 갔다 했다.
이런 이야기를 여기서 막 해도 되나?
“크리스토퍼, 난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아마존은 투마로우에게 넘어가게 돼 있어.”
뭐?
뭐?
뭐?
제프 빼고 셋 모두 흠칫 뒤로 물러났다.
후.
“오늘 세르게이와 통화를 했어. 추가 채권을 투마로우가 발행했다고. 이미 채권 규모가 주식 가치를 넘어섰어. 중국이 나의 마지막 보루야. 미국에 가서 소송에 휩싸이고 왔다 갔다 로비할 시간 자체가 없다고. 자칫 잘못하면 구글과 애플도 투마로우가 가져갈 수 있어. 그러니까 ‘기억의 길’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백악관이 알아서 하라고 그래.”
시앙핑이 제프의 말을 듣고 주전자를 들고 벌컥벌컥 물을 마셨다.
임재준 이 나쁜 놈, 이럴 줄 알았어.
뭐? 나보고 ‘기억의 길’ 신도 흉내 내라고?
내가 창피한 것도 무릅쓰고 손을 동그랗게 마는 동안 너는 구글과 애플까지 꿀꺽하는 그림을 그리며 날 비웃었을 거 아냐.
아이고 내가 미쳐.
< 제425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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