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4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0) >
AAG 빌딩 66층.
[여기는 투마로우가 건설 중인 핵융합 발전소 현장입니다. 투마로우가 나노봇을 가두기 위한 지름 1km의 알루미늄 돔 수십 개가 만들어졌으며, 지금도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현재 나노봇의 상황을 알고 있는 건 진코퍼레이션이 유일하며, 사람들은 알루미늄 돔의 개수를 통해 피해 구간을 짐작하고 우려를 표하고 있습니다. 아, 저길 보십시오. 지금 대형드론 수십 대가 알루미늄 돔 하나를 공중으로 끌어 올리고 있습니다. 굉장한 장면입니다.]
쩝.
재준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과연 잘 될까?
윌켄은 재준의 표정을 보고 걱정이 되었다.
“보스, 근데 나노봇은 정말 해결 가능한 겁니까?”
“글쎄요. 알루미늄으로 가두고 소멸시킬 방법을 찾는다니까 믿어보는 수밖에요.”
“그렇군요.”
“우리가 걱정한다고 해결될 문제는 아니니까 우린 우리 일을 하죠.”
“네.”
“요즘 월가는 어때요?”
후.
윌켄이 나노봇으로 심각해진 표정이 더 심각해졌다.
“말해 뭐하겠습니까? 거의 초상집 분위기죠. 모든 주식이 바닥 밑의 바닥을 다시 확인하는 중이에요. 채권 금리는 치솟고요. 이게 내가 아는 월가가 맞나 싶을 정도입니다.”
“유럽은요?”
“유럽만 얘기해 봐야 소용없고 전 세계가 동시에 미국보다 심하게 추락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콜로라도 사건이 전 세계 경제를 또 한 번 강타했다.
카터리포트에서 나노봇이라는 보도가 나가자 전 세계 무역은 그대로 올 스톱 되었다.
특히 미국에서 생산된 모든 상품은 수입이 아예 전면 금지되었다.
미국은 만성 무역 적자에서 완전 무역 적자를 달성했다.
나노봇이라는 대형 핵폭탄에 비하면 ‘기억의 길’이 일으킨 스태그플레이션이란 폭탄은 귀여운 수준이었다.
수입이 막히자 글로벌 공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겨우 연명하는 수준이었고 미국 내에 공장을 가지고 있는 기업은 줄줄이 파산을 예고했다.
국내 기업들이 은행으로 몰렸다.
모두 하나같이 채권을 발행해서 이 위기를 극복하려고 했다.
하지만 AAA급 채권 10년 만기 물 금리가 10%를 넘어가는데도 은행은 발행을 거절할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도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 힘들었다.
“아마존 추가 채권 발행은요?”
“구글와 애플이 보증한다고 해도 아무도 발행을 하지 않습니다. 3년 만기도 손사래를 치고 있습니다.”
“그렇겠지요. 지금 이 상황에 구글이나 애플이 3년 후에 살아남아 있으라는 보장이 어디 있다고.”
채권에서 제일 기간이 긴 채권이 30년 만기 채권이다.
뭐, 30년 만기가 도래하면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으니 60년이라고 생각해도 된다.
그리고 60년이 지나 리파이낸싱 해버리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하는 거고.
영원히 돌고 도는 게 채권이다.
근데 3년 만기 물이면 이자도 높고 원금도 빨리 회수되기 때문에 3년 만기 채권을 꺼리는 증권사는 거의 없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안 좋아도 너무 안 좋다.
3년이 아니라 1년도 어렵다.
구글, 애플 같은 기업이 아닌 미국이 발행한다고 해도 거절이다.
딱.
재준은 손가락을 튕기며 말했다.
“구글과 애플이 보증 선다는 채권 우리가 발행합시다.”
“보스, 위험합니다.”
“위험하니까 하는 거예요.”
“네?”
“이대로 가면 아마존만 파산합니다.”
아마존만?
“구글과 애플을 같이 끌고 들어가시게요?”
“앞으로 상황이 얼마나 끔찍할지 아는 사람은 우리뿐이잖아요. 언제 회복될지 아는 것도 우리고요. 이참에 지금까지 뭘 그렇게 안에서 꽁꽁 숨기고 개발을 했는지 한번 보고 싶은데요.”
구글과 애플의 목줄을 쥐고 안을 훤히 들여다보겠다?
“그렇다면야 뭐…….”
윌켄은 재준의 말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였다.
임모탈의 시작은 구글이었으니 구글이 뭘 또 숨기고 있는지 모를 일이었다.
또한, 구글이나 애플이 인공지능에 천문학적인 투자를 하는 건 다 아는 사실이었고.
죽는 걸 두렵다고 표현한 구글의 인공지능 ‘람다’ 사건도 있지 않은가.
그리고 재준의 머릿속에 또 다른 미래가 떠올랐다.
“진의 예상대로 알루미늄 돔 안에서만 살게 된다면 검색과 스마트폰은 인간 생활에서 더욱 중요한 수단이 될 거예요.”
“돔 안의 생활이라면 배송과 드론 택시도 마찬가지네요.”
“맞아요. 뭐, 나노봇이 세상을 쓸어 버린다면 별 쓸모가 없겠지만 우린 살아남을 때를 대비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그럼 아마존과 구글, 애플을 한 바구니에 담겠습니다.”
“수고해 주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오랜만에 큰 건 하나 터뜨려 볼까.
윌켄은 오랜만에 스마트폰을 힘차게 꺼냈다.
띠리리리링.
“아서, 윌켄입니다.”
-오, 정말 오랜만이군요.
“캘리포니아에 갈 일이 있는데 볼 수 있을까요?”
-저를요?
“네.”
***
애플 본사.
빌, 아서, 세르게이는 침통한 표정으로 CNN 생중계 뉴스를 보고 있었다.
화면에서는 수만 대의 드론이 지름 1km의 대형 알루미늄 돔 백여 개를 들고 콜로라도 상공에서 대기하고 있는 영상이었다.
[기다리던 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습니다. 투마로우가 이 대규모 나노봇 방어전략을 세운 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플로랜스 교도소 중심으로 주변 10km에 해당하는 지역에 알루미늄 돔을 촘촘히 떨어뜨린다는 리포터의 설명이 계속 반복되어 들렸다.
드디어.
부우우우우웅.
드론이 내려앉으며 돔들이 서로 맞닿도록 내려앉기 시작했다.
텅, 텅, 텅, 텅.
자그마치 1km의 알루미늄 돔 백여 개가 동시에 땅에 떨어지고 드론 수만 대가 하늘로 날아올랐다.
그리고 다음 순간.
드론의 하단이 열리고 알 수 없는 용액을 쏟아부은 다음 지상을 향해 초음파로 그 위를 덮어 버렸다.
알루미늄 돔은 원형이기에 돔과 돔 사이의 공간에 남아 있을 나노봇을 화학적으로 분리시키려는 계획이었다.
그것으로 끝난 게 아니었다.
잠시 후 알루미늄이 견딜 수 있는 수준의 강한 산이 그 위에 뿌려졌다.
주변이 산으로 인해 뿌연 연기로 자욱했다.
그야말로 지옥이 따로 없었다.
“당분간 콜로라도 전체에 사람 살기는 힘들겠어.”
빌의 목소리가 무척 불안한 듯 떨렸다.
인구 5백만이 살던 지역이었다.
270,000km²의 땅이 고작 10km² 때문에 사람들이 꺼리는 땅이 되어버렸다.
“그런데 저런다고 나노봇의 공포가 사라질까요?”
말을 이어가는 세르게이의 음성도 떨렸다.
“사람들이 저 장면을 보고 어떻게 나올지 감을 잡을 수가 없어.”
“911테러 때와 같이 심한 트라우마에 시달릴 겁니다.”
빌은 화면을 보면서 앤서니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방주.
트라우마에 시달린 사람들을 종교의 품으로 끌어모으기에 방주만 한 게 있을까.
앤서니, 사람들의 공포를 이용하는 겁니까?
설령 나노봇을 다 처리했다고 하더라도 사람들이 보이지 않는 나노봇의 공포를 이겨낼 수 있을까?
“빌, 앤서니와 손을 잡아야 할까요?”
세르게이가 물었다.
빌의 시선이 화면에서 세르게이로 천천히 옮겨졌다.
“글쎄. 지금은 어떤 생각도 할 수가 없어.”
“차라리 투마로우와 손을 잡는 건 어떠세요.”
“투마로우와?”
“그렇잖아요. 앤서니가 임재준만큼 능력이 있어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저 장면만 보더라도.”
“그렇지.”
“제 생각이지만, 일단 정부와 손을 잡는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너무 무능해요. 투마로우가 나노봇을 없애기 위해 노력하는 동안 정부는 구경만 하고 있습니다. 아무것도 한 게 없어요.”
“그건 저도 동의합니다.”
아서가 세르게이와 같은 의견임을 보였다.
정부를 배제하는 건 빌도 찬성이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정부가 아니면 다음은 앤서니인데. 과연 ‘기억의 길’이 투마로우만큼 능력이 있을까요? 자금이나 기술력이나 모두 처집니다.”
“그렇긴 하지……. 그런데 말이야. 그 말,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모르겠어.”
“무슨 말이요?”
“앤서니가 말한 ‘저희’. 그 말에는 누군가 ‘기억의 길’ 뒤에 있다는 거잖아. 그때 우리 봤잖아. 데미안을 치료하는걸.”
“우리가 모르는 인공지능이 앤서니에게도 있는 게 아닐까요? ‘기억의 길’ 자체가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잖아요.”
“그럴지도 모르지. 아서, 당신 생각은 어때요?”
빌이 아서에게 물었다.
아직 앤서니에 대한 미련이 남아 있었다.
아서도 빌의 마음을 알았다.
“일단 양쪽에 발을 걸칩시다.”
“양쪽에다…….”
그것도 괜찮은 방법이긴 하네.
이때.
삐, 내선이 울렸다.
딸깍.
-윌켄이 도착했습니다.
올 것이 왔다.
“들여보내세요.”
벌컥.
문이 열리고 윌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랜만입니다.”
활짝 웃는 얼굴로 윌켄이 들어서자 모두 일어나서 맞이했다.
“윌켄 반갑습니다. 이게 도대체 얼마 만입니까?”
“20년은 된 것 같은데요.”
“벌써 그렇게 되었군요.”
한동안 추억을 그리는 이야기가 오고 가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윌켄이 먼저 꺼냈다.
“오늘 나노봇을 처리하는 저희 영상을 보셨습니까?”
끄덕, 끄덕.
모두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보스가 그러더군요. 이제 아마존이나 알리바바아메리카의 매출이 올라가는 소리가 들린다고.”
“정말 임재준이 그랬습니까?”
“네, 모두 봐서 알겠지만, 오늘 영상은 사람들에게 깊은 좌절감을 주었을 겁니다. 이제 집 밖에서 무얼 한다는 것이 부담되는 시대가 될 겁니다.”
“모든 상품이 배송으로 처리된다는 말이군요.”
“맞습니다.”
“그래도 예전만큼 사람들의 소비가 일어나지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니죠. 더 많이 일어날 겁니다.”
“어째서죠? 밖을 안 나가는데 돈 쓸 일이 무엇이 있습니까? 전부 캡슐 생활을 할 것 같은데.”
“그겁니다. 예전에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에 돈을 썼다면 이제 자신이 하고 싶지 않은 일에 돈을 써야 하는 시대가 온 겁니다.”
하고 싶지 않은 일?
하하하하.
빌이 윌켄의 말을 듣고는 웃었다.
“그러네요. 재난 용품을 말하는 거군요.”
“잘 짚으셨네요. 이제부터 사람들의 주요 관심사는 바로 재난입니다. 옷을 사더라도, 이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옷보다는 자신을 보호해주는 옷 위주로 소비가 이루어질 겁니다. 나머지도 마찬가지죠. 심지어 주택도 대대적인 보수가 이루어질 겁니다.”
아.
이렇게 되면 모든 상품이 ‘보호’라는 트렌드로 이동할 것이다.
“역시 투마로우군요.”
“이제 여러분도 그쪽을 염두에 두고 투자를 하셔야 할 겁니다.”
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이번에 아마존 추가 채권 발행은 투마로우가 책임을 지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아서의 얼굴이 밝아졌다.
이대로 시간을 조금 더 지체하면 마진콜을 외치던 증권사들이 아마존 주식을 시장에 내다 던질 판이었다.
손해가 나도 먼저 던져서 조금이라도 돈을 건져야 하는 게 그들이니까.
“하지만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구글과 애플이 보증을 서 주세요.”
“보증이요?”
“네, 원래 다른 증권사에도 보증을 제시한 거로 아는데요.”
음.
“좋습니다.”
아서가 먼저 승낙했다.
평소 같으면 보증이라면 신중히 생각하고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하지만 시대가 변했다.
윌켄의 말한 트렌드의 변화는 현실 가능성이 충분했다.
물론 아마존이 파산할 수 있다.
그러면 이커머스를 투마로우에 줘버리면 되는 일이다.
그러니.
“대신 저도 조건이 있습니다.”
“말해보세요.”
“만약 아마존이 파산한다면 투마로우는 이커머스를, 저희는 클라우딩 서비스를 나누어 가지는 겁니다.”
“그렇게 하시죠. 아마존이 파산할 리는 없으니까요.”
“그렇죠. 아마존은 파산할 수가 없습니다.”
하하하하.
아서와 빌은 서로 표정을 보며 미소지었다.
이렇게 투마로우에 한쪽 발을 걸쳤다.
***
콜로라도 플로렌스.
백여 개의 알루미늄 돔이 마치 무덤을 연상시켰다.
고요……
휘이이이잉.
바람 소리만 겨우 들린다.
동물은 물론 식물도 전부 죽었다.
곤충의 움직임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러나.
스스스스스.
소리가 들린다.
스스스스스.
알루미늄 돔 아래 땅속으로 무엇인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린다.
스스스스스.
< 제424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30)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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