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2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8) >
진코퍼레이션.
진은 ‘블랙’과 홀로그램으로 완성된 돔을 확인하고 있었다.
“‘블랙’, 혹시 틈 같은 거 없지?”
【지금까지는 없습니다.】
“좋아, 일단 나노봇 위치를 파악하고 덮은 다음 문제점을 찾아서 해결해.”
【네.】
나노봇이다.
워낙 작은 크기라 바람이나 비 같은 자연 현상으로 인해 알루미늄 이음새에 틈이 발생하는 건 당연히 각오해야 한다.
틈으로 나오는 나노봇을 어떻게 처리하느냐가 또 다른 문제로 대두되었다.
어쩌면 시간이 오래 걸릴지도 몰라.
나노봇을 죽이는 나노봇을 만드는 게 가장 빠른 해결책이야.
진이 이런저런 고민을 하는 사이,
“진.”
건축공학을 전공한 알리샤가 진에게 도움이 될 만한 친구 십여 명을 데리고 도착했다.
“응, 알리샤, 너희들도 어서 와.”
알리샤는 진과 눈인사를 하고 홀로그램을 봤다.
“뭐야?”
“돔, 지름이 1km²짜리인데 공중에서 나노봇이 있는 곳에 낙하시켜 덮어 버리려고.”
“재질은?”
“알루미늄.”
“알루미늄이면 한 번에 건조하기엔 크기가 너무 크고. 조각조각 나누어서 아크로 접합하면 되겠네. 이게 고민인 거야?”
“설마.”
피식.
그렇겠지.
진이 이따위 일로 날 부를 리는 없을 거고.
“그럼 뭔데?”
잠깐만.
진이 손을 옆으로 밀어서 돔의 홀로그램을 치웠다.
그리고 양손을 펼치자 폴더가 열리고 원하는 파일을 집어 공중에 던지자 새로운 홀로그램이 나타났다.
“알리샤가 만들어 줘야 할 돔은 여기 핵융합 발전소를 덮을 돔이야.”
핵융합 발전소?
“진, 뭐라는 거야?”
“30만m²짜리 알루미늄 돔.”
30만m²?
“야, 여기서 올림픽이라도 열게?”
전 세계에서 가장 넓은 돔은 카타르 아시안 게임을 연 어스파이어 돔이다.
축구장 11개를 합쳐 놓은 29만m²라는 크기를 자랑한다.
“어쩔 수 없어. 나노봇 한 개라도 발전소에 들어오면 건물이 무너지는 건 순식간이야. 이 기회에 핵융합 발전소 전체를 돔으로 덮어 버려야겠어.”
“아무리 그래도, 무식해도 어지간히 무식해야지. 30만m²라니.”
놀라는 알리샤에게 진이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앞으로 인류가 이 정도 크기의 돔에서 살아가야 할지도 몰라.”
“우리만 쓰는 게 아냐?”
갸우뚱.
알리샤가 눈동자를 위로하고 잠시 상상을 해 보았다.
인류가 알루미늄 돔 안에서 산다고?
“나노봇을 알루미늄 돔으로 덮어 버리면 끝나는 거 아냐?”
“공기 중에서 복제가 가능한 나노봇이 여기만 있는 게 아닌 것 같아.”
“뭐? 또 있어?”
“응, 이번 것은 전체 중 일부일 뿐이야. 여기 있는 나노봇을 돔으로 덮어둔다고 해도 다른 나라에서 미국으로 다시 유입될 수 있어.”
“이야, 이거 좀 심각하네. 눈에 보이지도 않는 게 꽤 거슬리잖아.”
“거슬리지…….”
진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노봇이 복제를 계속해서 덩치가 커진 끝에 소설에나 등장하는 그레이 구(Grey Goo)가 된다면 어떤 일이 발생할지 아무도 모른다.
그레이 구는 거대한 나노봇 떼를 말한다.
마치 메뚜기 떼가 곡식 농장을 쓸고 지나가면 식물이 남지 않듯이 나노봇 떼가 쓸고 지나가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과연 막을 수 있을까?
그레이 구에 대한 데이터가 하나도 없다.
아직 그레이 구의 성격뿐 아니라 본질조차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
도시를 파괴하고 수백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후의 데이터가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때가 되면 안전한 영역이 존재하기는 할까.
그 전에 좀 더 과감한 대응이 필요한데 섣불리 행동에 옮길 수가 없다.
정부가 그레이 구를 막는다는 구실로 국민 위에서 군림하며 박해를 가할 수도 있다.
그때는 어떻게 하지?
***
백악관.
쾅, 쾅, 쾅.
“또 투마로우입니까? 또.”
대통령은 책상을 내리치며 FBI 국장 크리스토퍼을 노려봤다.
그거 하나 막지 못하고 뭐 했냐는 눈빛이었다.
대통령이 변했다.
지난번 시위 해산에서 임재준에게 도움을 받을 때만 해도 온건한 성격이었는데 정치 상황이 한계까지 몰리자 본성이 드러났다.
“누구 맘대로 언론에 노출을 한단 말입니까? 누구 맘대로. 지금 콜로라도뿐만 아니라 미국 전역이 동부와 서부로 몰리고 있습니다.”
크리스토퍼는 고개를 숙이고 얼굴을 찡그렸다.
그걸 왜 나한테 이야기하는데?
아니, 위험지역에서 되도록 멀리 벗어나면 좋은 거 아닌가.
“다이로와 제이콥은 잡았습니까?”
“아직입니다.”
“비서실의 이야기는 남미로 흘러 들어갔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중간에 차를 바꿔 타고 사라지긴 했지만, 아직 남미로 흘러 들어간 건 확실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남미로 간다면 뭘 할 거 같습니까?”
“숨어 지낼 겁니다.”
“숨어 지내요? 그놈들이요?”
“네.”
그럼, 어떻게 내 입으로 다시 마약상의 대부로 부활할 거라고 얘기합니까?
“만약 남미에서 발견된다면 그 나라 군대와 공조하여 반드시 다시 잡아야 합니다. 지금 나노봇 사태의 진상을 알고 있는 건 그들밖에 없지 않습니까?”
“네.”
에이.
못마땅한 얼굴의 대통령은 퉁명스럽게 다음 질문을 했다.
“아마존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기억의 길’과 엮을 수 있겠습니까?”
“지금 제프 베조스가 중국에서 안 들어오고 있습니다. 들어오는 대로…….”
쯧쯧쯧.
“하염없이 기다리겠다는 겁니까?”
“아직 혐의 확정이 안 되어서 강제 연행은 불가능합니다.”
“그럼, 중국으로 직접 가서 설득을 하든 협박을 하든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본인이 직접 못 가면 누구라도 보내든지 하세요.”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에이, 늦었어요. 이미 많이 늦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걸렸다.
“나노봇으로 인해 기회가 아주 사라진 건 아닙니다. 제프를 만날 게 아니라…… 그냥, 바로 아마존이 ‘기억의 길’의 배후라는 걸 발표하고 수뇌부를 잡아들여 혐의를 씌우세요.”
“…….”
뭐?
나노봇으로 여론이 쏠리고 당분간 풀릴 기미가 없으니까 이 기회에 ‘기억의 길’에게 혐의를 씌우겠다고?
그거 불난 집에 기름을 붓는 격이 될 수도 있는데.
눈앞에 닥친 현실에 대해 곧바로 판단하기란 매우 어렵다.
그렇다고 예상을 당연시하고 실행하는 것은 굉장히 위험하다.
‘기억의 길’이 지금은 온순한 사람처럼 캡슐 안에서 하루 종일 앤서니의 강연이나 들으며 미래를 기다린다고 하지만 앤서니에게 거짓 혐의가 씌워지면 온순한 양들은 성난 늑대로 변할 수 있다.
그런 예는 역사에 너무 많다.
우리가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들의 대부분이 민중이 봉기한 것 아닌가.
지금 대통령은 소비를 이끌어 내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한 일을 자신의 치적으로 두고 싶어 한다.
그러나 위험을 자초할 수도 있다.
나노봇과 ‘기억의 길’…….
지금은 둘 사이에 전혀 관계가 없는 것 같지만 어떤 연결 고리가 만들어지면 그 파장은 예상보다 거세질 것이다.
***
‘기억의 길’ 본당.
크리스토퍼의 연결 고리에 대한 걱정은 현실이 되었다.
얘기는 ‘기억의 길’ 신도들의 선의에서 발생했다.
니콜라모터스는 ‘투마로우 드론 배송 시작과 함께 드론 택시도 같은 날 운행을 시작한다’라고 발표했다.
그래야 서로 데이터를 주고받으면서 안전 운행을 달성할 수 있으니까.
그래서 드론 택시의 시운전자를 모집했다.
그런데 시운전자가 예상보다 많지 않았다.
이유야 뻔하지.
지금 같이 돈이 문제가 아닌 시대에 굳이 위험을?
엘론은 안전하다고 했지만, 공중에서 사고가 나면 죽을 확률은 도로에서 죽을 확률보다 훨씬 높았다.
이때, ‘기억의 길’ 신도들이 대거 몰려들어서 드론 택시 시운전 장소로 콜로라도를 요구했다.
오잉?
피난민을 위해서?
엘론도 흔쾌히 승낙했다.
드론 택시 홍보에 이만한 게 있을까?
역시 피난민들은 꽉 막힌 도로에 차를 버려두고 아주 먼 거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 북동쪽 하늘을 가득 메운 드론 택시들이 스타워즈 음악을 배경에 깔고 나타나 사람들을 밤낮없이 실어 날랐다.
사우스다코타와 와이오밍, 네브래스카로 가는 사람들이 대상이었다.
이 시운전은 피난 행렬이 끝날 때까지 밤낮으로 계속될 예정이었다.
‘기억의 길’ 신도들은 교대해가며 드론 택시 시운전에 동참했다.
그러다 보니 50만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기억의 길’ 본당 근처에 피난촌을 형성했고 그들 대부분이 ‘기억의 길’에 호감을 갖게 되었다.
-아, 정말 아름다운 사람들이야.
-그럼, 여기 와서 지내면서 단 한 번도 싸우는 걸 본 적이 없어.
-전부 자기 할 일만 딱 하고 캡슐에 들어가 버리더라.
-사실 ‘커뮤니티 서밋’에 들어가 봤는데…….
-가봤어?
-정말 아름답더라. 이건 마치 종교라기보다는 부족 사회 같은 느낌이랄까!
-야, 그럼 앤서니도 봤어?
-아, 봤지, 봤어. 그분이야말로 진정한 사제라고 할 수 있지. 너, ‘기억의 길’은 헌금 같은 돈 일절 안 받는 거 알지.
-그래? 그럼 어떻게 운영을 해?
-앤서니 사제의 자율 주행 특허가 몇 개 있는데. 그게 니콜라모터스에 사용되나 봐. 그 특허로 받는 금액을 전액 ‘기억의 길’ 운영에 쓴대.
이 부분에서는 ‘블랙’의 도움이 컸다.
-정말 훌륭한 사람이네.
-‘기억의 길’ 신도들이 항상 주장하는 게 ‘자기 일만 잘하자’, 뭐 그런 거야.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자신만 잘하면 평화가 온다는 거지.
-그래? 그래도 이기적인 사람이 있을 거 아냐?
-사람들이 싸우는 거 다 돈 때문이잖아.
-뭐……. 그렇지.
-근데 ‘기억의 길’ 사람들이 딱히 돈 욕심 부릴 일이 어딨어?
-그래? 나도 ‘커뮤니티 서밋’에 들어가 볼까?
난민촌엔 평화로운 나날이 이어졌다.
문제의 그 날이 다가왔다.
다다다다다닥.
애애애애애앵.
헬기가 등장하고 수십 대의 차량이 ‘기억의 길’ 본당 앞에 나타났다.
FBI입니다.
모두 물러서세요.
다다다다다, 착.
수십 명의 중무장한 요원이 정문 앞에서 일렬로 늘어섰다.
그리고 잠시 후.
앤서니와 몇몇 신도가 요원들과 함께 본당에서 나왔다.
어딜 데려가!
정문의 광경을 본 요원의 얼굴이 새파랗게 질렸다.
소식을 들은 피난민들이 모였다.
신도들 대부분이 캡슐 안에 있는 틈을 노렸다는 걸 안 피난민들이 FBI 앞을 가로막았다.
“무슨 일로 사제를 잡아가는 거야?”
요원이 후들거리는 걸음으로 나섰다.
“공, 공무집행 중입니다. 물러나세요.”
-무슨 공무집행? 여기서 한 발짝도 나간 적이 없는 사람을 왜 잡아가는 거야?
-경제 침체 때문에 없는 죄를 뒤집어씌우는 거 아냐?
-일부러 돈을 쓰게 하는 네놈들이 잘못된 거지. 저분들이 무슨 법을 어겼다는 거야?
“그런 말 한 적 없습니다. 짐작하지 마세요.”
-그럼 죄목을 말해봐.
-앤서니 사제님 같은 사람만 있으면 세상이 평화로워질 거다. 이렇게 살기 어려운 건 다 네놈들 때문이잖아.
-당장, 풀어주지 못해?
우르르.
으르렁거리는 피난민들이 FBI 요원을 향해 앞으로 천천히 다가가며 외쳤다.
-당장 꺼져라.
-우리 가만 안 있는다.
위협을 느낀 요원이 앤서니를 놓고 뒤로 물러나며 경고했다.
“당신들 전부 공무집행 방해로 체포합니다.”
공무집행 방해?
-그래, 차라리 우릴 잡아가.
-어디 한번 해보자.
피난민들의 기세가 거세졌다.
FBI가 뒤로 뒷걸음질 치다 못해 멀찍이 뒤로 물러났다.
앤서니가 그 모습을 보고,
후.
긴 숨을 쉬었다.
골치 아프게 됐구나.
신이시여.
< 제422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8)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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