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21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7) >
“다이로.”
제이콥은 놀란 눈으로 데미안을 내려다봤다.
즉사다.
죽어버렸다.
“이 미친놈, 데미안을 죽이면 어쩌자는 거야?”
쯧쯧쯧.
다이로가 혀를 차며 총으로 자신의 머리를 톡톡 두드렸다.
“내가 말했잖아. 난 감이 좋다고. 위쉬안 말이 맞아. 더는 끌려다니면 안 돼. 봤잖아. 우리가 어떤 곳에 있었는지. 저 감옥 다음은 뭐 같아? 바로 묻히는 거야.”
으.
제이콥은 으르렁거리며 다이로를 노려봤다.
그런 제이콥을 다이로가 위로하듯이 말했다.
“우리 브라질로 가자. 더는 미국은 힘들 것 같은데. 어때?”
후.
제이콥은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여기서 할 일도 없고 할 이유도 없다.
특히 투마로우를 건드렸으니 잡히는 건 시간문제다.
다이로는 데미안 손에 들려있는 보온병 같은 것과 스위치를 주워들었다.
이거 진짜 신기하던데.
이걸 이렇게 대고 이 스위치를 누르면 뭔가 사라지고 다시 스위치를 누르면 멈추던데, 맞나?
다이로가 스위치를 눌렀다.
꾹, 꾹, 꾹, 꾹.
되는 거 맞아?
왜 변화가 없어?
“다이로, 결정했으면 움직여.”
제이콥이 다이로를 제촉했다.
“언제는 뚱하더니. 알았어.”
둘은 차에 올라타고 급하게 출발했다.
스스스스.
자기 복제를 중단했던 나노봇들이 다시 자기 복제를 위해 탄소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한참의 시간이 흐르고.
저벅, 저벅, 저벅.
목에 나노봇 차단 목걸이를 단 위쉬안이 나타났다.
툭, 툭.
위쉬안은 데미안을 발끝으로 톡톡 찼다.
“죽었냐? 어째 너희들은 ‘블랙’이 예상한 것과 한 치의 오차도 없냐? 으휴, 한심한 놈들.”
위쉬안은 일단 들고 온 박스를 열어 냉기가 피어오르는 주사기를 꺼내 데미안의 척수에 꽂았다.
“됐다.”
그리고.
으차.
위쉬안은 데미안을 어깨에 둘러맸다.
“야, 너 진짜 이번엔 1억 달러 줘야 한다.”
다이로와 제이콥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 뒤 반대 방향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위쉬안의 위로 경비행기 한 대가 날아오고 있었다.
***
FBI.
쾅, 쾅, 쾅.
크리스토퍼 국장은 책상을 거칠게 내려쳤다.
“도대체 뭐로 공격한 거야?”
“근처엔 공격할 무기는 보이지 않았습니다. 살아남은 간수들에 의하면 콘크리트 벽이 군데군데 공중으로 분해되면서 건물이 주저앉았다고 합니다.”
뭐라는 거야?
“도주할 만한 곳은 전부 차단한 거야?”
“CCTV 추적 결과 25번 도로를 타고 내려갔습니다. 멕시코로 넘어가려는 게 확실합니다.”
“길목을 확실히 차단했겠지.”
“멕시코 국경을 넘을 수는 없습니다. 이미 DEA가 출동하여 주요 밀입국 경로에 병력을 배치했습니다.”
“반드시 잡아야 해. 반드시.”
크리스토퍼가 지도를 보며 이동 경로를 확인하고 있는데,
“국장님.”
요원 하나가 헐레벌떡 들어섰다.
“뭐야?”
“플로렌스 주변이 원인 모를 현상으로 잠식당하고 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여기 이걸 보십시오. 방금 CCTV로 확인한 영상입니다.”
요원이 내민 영상에서 괴상한 현상이 목격되었다.
말 그대로였다.
도로가 푹푹 파이고 교도소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유니온 하이랜드 묘지가 심하게 훼손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치치치직하며 CCTV 화면이 꺼졌다.
도대체 이게 뭐야?
“교도소 목격자들의 증언과 비슷합니다.”
“인간은?”
“인간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했습니다.”
“국립과학범죄센터에 이 영상 보내고 당장 원인을 조사하라고 해. 당장.”
크리스토퍼는 입술을 깨물고 왔다 갔다 했다.
뭐지? 이게 도대체 뭐란 말이야.
점점 주변을 잠식하는 미생물이라도 나타난 건가?
크리스토퍼가 시계를 봤다.
아, 이 새끼들. 영상 하나 보는 데 뭔 놈의 시간이 이렇게 걸려.
띠리리리링.
왔다.
“나야.”
-저희로서는 판별이 불가능합니다.
“뭐야?”
-공기 중에 바이러스나 세균이 있는 것 같은데……. 그놈들도 물질을 갈아 먹을 정도는 아닙니다.
“그럼, 이걸 알아볼 수 있는 곳이 어디야?”
-가까운 곳에 핵융합 발전소, 그러니까 거기 진코퍼레이션이 있습니다.
“뭐?”
-거긴 최첨단 장비와 진이 있습니다.
“그래? 일단 끊어.”
크리스토퍼가 통화를 끊고 보니 이미 요원 하나가 진코퍼레이션으로 통화를 마치고 끊는 중이었다.
일머리 하난 있네.
“뭐래?”
“영상을 판독하고 직접 조처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저희도 사우스다코타로 출발할까요?”
“당연하지, 나도 갈 거야. 당장 비행기 대기시켜.”
“네.”
***
진코퍼레이션.
이건, 나노봇이다.
진은 FBI가 보내온 영상을 보고 단번에 알아봤다.
“‘블랙’.”
【네.】
“전 세계에 있는 알루미늄을 모두 사들여.”
【네.】
나노봇이 탄소를 이용해 자가 복제를 하고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7000만 종이 넘는 화학물질 중 절대다수가 탄소로 만들어졌다.
탄소와 상관없는 물질은 구리, 코발트, 리튬, 우라늄, 알루미늄 정도.
진은 알루미늄으로 나노봇의 확산을 차단할 생각이었다.
탄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석탄, 탄소 덩어리다.
비닐과 합성섬유, 비료나 온갖 귀중한 의약품에도 탄소가 쓰인다.
배탈이 났을 때 지사제로 쓰이는 약의 주성분도 탄소다
또한, 원유에는 탄소가 83~87%나 들어 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꽃이나 나무, 동물들, 사람들의 기본 골격을 구성하고 있는 것도 탄소다.
우리가 입고 다니는 옷도 탄소로 이뤄진 화합물이다.
목화로 만들어진 무명천부터 나일론, 수십 종의 합성섬유가 모두 탄소화합물이다.
우리가 사용하는 플라스틱 그릇, 가구, 심지어 음식들에도 모두 탄소가 포함돼 있다.
담배 필터의 흡착성이 뛰어난 차콜도 탄소다.
까만 설탕도 탄소를 통과하면 흰 설탕으로 바뀐다.
강이 오염됐다면 제일 먼저 사용하는 것이 탄소로 이뤄진 활성탄이다.
가볍고 강도 높은 재료를 필요로 하는 스포츠용품에도 거의 탄소가 쓰인다.
우주선도 전지부터 각종 부속품을 포함한 몸체까지 탄소가 포함되지 않은 곳이 없다.
탄소로 이루어진 인간은 탄소로 만들어진 물질이 없으면 죽는다.
나노봇 또한 탄소나노튜브로 만들어졌고 자가 복제도 탄소를 사용한다.
“‘블랙’.”
【네.】
“저 나노봇의 이동 속도는 얼마지? 우리가 사용한 로터 맞지?”
【시속 10m의 속도입니다. 로터는 혈류에 쓰이는 모델입니다.】
로터는 나노봇이 이동을 위한 일종의 생체 모터다.
혈류 속을 이동하기 위해 제작되어서 회전이 느리다.
그래서 공기 중에서 이동하는 나노봇은 진행이 빠르지 않았다.
원래대로라면 불과 120시간 만에 지구 전체 탄소가 나노봇으로 변하겠지만 데미안이 우연히 만든 나노봇은 느려도 너무 느렸다.
벌컥.
급하게 문이 열렸다.
“진, 이게 무슨 소리야?”
진이 재준을 보며 손가락으로 화면을 가리켰다.
“나노봇이 공기 중에서 자가 복제를 진행하고 있어요.”
“공기 중?”
“네, 원래는 몸 안 혈류를 타고 이동하게 설계되어 있는데, 누군가 강제로 공기 중에서 이동하게 변형시켰어요.”
“누가?”
“데미안이겠죠.”
미친놈.
“그놈 당장 잡아다 가두어야겠어. ‘블랙’ 데미안 위치 추적해줘.”
【데미안의 생체 신호가 잡히지 않습니다.】
“뭐? 그럼 죽은 거야? 누가 죽인 건데?”
【다이로입니다.】
“다이로? 그놈들 플로렌스 교도소에 갇혀 있는 거 아냐? 교도소에서 또 탈출했어? 또 데미안이야?”
【네.】
“탈출 후에 다이로가 데미안을 죽이고?”
【네.】
와 이 또라이.
진짜 미친놈이네.
아니, 아니, 이게 문제가 아니지.
“저 나노봇을 어떻게 막아?”
“알루미늄 돔으로 콜로라도 지역을 봉쇄해야 해요.”
“콜로라도주를 봉쇄한다고?”
콜로라도주 면적은 한국 면적의 2.5배에 해당하는 크기다.
“콜로라도가 얼마나 넓은데 그걸 돔으로 덮어? 설마 만들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렇게 크지 않아도 돼요. 대략 지름 1km² 크기의 알루미늄 돔으로 나노봇이 뭉쳐 있는 곳만 덮으면 돼요. 한 개로 안 되면 여러 개를 만들어서라도요.”
그래, 그렇겠지. 그래도 1km²도 굉장한 크기인데.
“나노봇을 직접 없앨 방법은 없어? 우리 나노봇을 통신으로 제어할 수 있잖아.”
“복제된 나노봇은 통신 주파수가 달라요.”
후.
미치겠네.
일단 돔으로 덮고 보자.
“시간은 충분하고?”
“시간이 없어요.”
“얼마나 있는데?”
“계산상으로 대략 3년이지만 개체 수가 늘어나면 어떻게 될지 몰라요. 당장 손을 써야 해요.”
플로렌스 교도소에서 가장 가까운 주 접경지역까지 거리를 대략 300km로 잡고 시속 10m의 나노봇 속도라면 다른 주까지 도달하는 데 3년이 넘게 걸린다.
어디까지나 계산상 그렇다는 것이고 변수가 너무 많았다.
나노봇을 겪어 봤어야 예상이라도 하지.
이때.
벌컥.
크리스토퍼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어떻게 됐습니까? 원인을 알아냈습니까?”
“크리스토퍼, 이리 와요. 내가 설명해줄 테니.”
재준은 크리스토퍼를 데리고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
재준이 설명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크리스토퍼의 동공도 점점 커졌다.
“그러니까 콜로라도주를 봉쇄한다고요?”
“시간이 없어요.”
“아니, 그럼 콜로라도 주민 대피부터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
“당연한 걸 왜 물어요?”
“주지사가 그걸 허락할 것 같습니까?”
“그걸 왜 나한테 묻냐고요?”
“그럼 콜로라도는 사람이 살지 않는 땅이 되잖아요.”
“그렇다니까 자꾸 왜 똑같은 걸 묻냐고?”
크리스토퍼는 재준에게 혹시 잘못 알았다고 말해주세요, 라는 표정을 지었다.
“알았습니다. 일단 콜로라도 주지사를 만나보겠습니다.”
“시간 없습니다. 저 넓은 지역에서 나노봇을 돔만으로 차단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고요.”
돔?
이건 정말 말이 안 되는 짓이야.
재준은 스마트폰을 꺼냈다.
“맥케이.”
-네, 어쩐 일이십니까?
카터리포트의 빌리 맥케이 기자가 당황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영상 하나랑 같이 간단한 설명을 보낼 테니. 일단 인터넷에 뿌리고 당장 이리로 달려와요.”
-네?
“급하니까 빨리.”
-네, 알겠습니다.
재준의 통화를 들은 크리스토퍼가 재준에게 손을 뻗었다.
“기자는 안 됩니다.”
“무슨 소리 하는 거예요. 그럼 저 안에 있다가 자기도 모르게 죽는 사람은 어쩔 건데?”
“콜로라도 전체가 패닉에 빠질 겁니다.”
“이봐, 크리스토퍼, 그게 죽는 거보다 나아. 이게 영화에서 나오는 불확실한 상황도 아니고 다 밝혀진 사실을 왜 숨기려고 하는 거야?”
허.
크리스토퍼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재준이 다가가서 확신에 찬 톤으로 말했다.
“이걸 해결할 과학이 아직 우리에게는 없어. 그냥 보고 당하는 거라고. 저게 인간의 눈에 보이기나 해? 저건 나노봇이야. 복제는 기하급수로 늘어나고 있고. 단순 계산으로 3년이지, 한 달 안에 미국이 사라질지도 몰라. 정신 차려.”
“그래도 언론은 좀 더…….”
“시간이 없다고.”
언론은 언제나 과잉 반응을 일으킨다.
집요하게 보도하고 위험을 크게 부풀린다.
사람들의 상상력은 미디어에 납치당해 과몰입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금은 그 과몰입이 필요하다.
공포로 인해 콜로라도에 모든 사람들이 빠져나가는 시간이 단축될수록 해결할 시간이 많아지니까.
***
[콜로라도주 ADX 플로렌스 교도소를 기점으로 주변에서 기이한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사물에서 탄소가 사라지면서 물체 형상이 변하거나 공기 중에서 흩어지고 있습니다. 인간도 예외는 아닙니다. 지구상의 물질 중에 탄소를 가진……. (중략). 콜로라도 주민은 당장 다른 지역으로 대피해야 합니다.]
으아아아아악.
카터리포트가 인터넷 언론에게 자료를 제공하자 인터넷은 그야말로 나노봇의 공포로 뒤덮였다.
목숨을 걸고 U튜브 방송을 하는 이들이 동영상을 배포하면서 나노봇의 실체가 그대로 드러났다.
우측으로 얼마 지나지 않은 곳에 ‘소모 골프 빌리지’가 있었다.
이곳의 식물들이 공중으로 사라지는 모습은 그동안 설마 하는 안일한 생각을 한 사람들을 끌어내기에 충분했다.
식물이 사라지고 땅이 서서히 황무지로 변한 후 푹푹 꺼지는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결국, 도로는 주차장으로 변해 버렸고 콜로라도 상공을 지나가는 항로는 전부 변경되었다.
주민들은 도보로 피난을 갈 수밖에 없었다.
콜로라도는 아무도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21세기 미국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
< 제421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7)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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