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3) >
먼발치에서 바라보던 대통령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크리스토퍼 국장님.”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불린 크리스토퍼는 재빨리 대통령 옆으로 다가섰다.
“네.”
“아마존, 뒤져 보세요. 우리에게 한 줄기 빛이 비치고 있습니다.”
“네.”
크리스토퍼의 대답은 간결하고 힘이 실려 있었다.
대통령의 의중을 알았다.
아마존.
지금까지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우기에 이만한 이름도 없다.
“그리고.”
대통령은 아마존 하나로 부족하다 생각했다.
“‘기억의 길’과 엮으세요.”
“네?”
‘기억의 길’까지?
한 번에 모든 걸 해결하겠다는 건데 너무 무리수가 아닐까?
크리스토퍼와 생각이 같은지 비서실장이 나섰다.
“대통령님, 아마존 하나로 끝내시죠. ‘기억의 길’은 자칫 잘못되면 사태가 더욱 악화됩니다.”
“비서실장.”
대통령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기회란 놈은 자주 오지 않습니다. 잡을 수 있을 때 잡는 건 기회가 아닙니다. 잡을 수 있을 만큼 잡아야 기회가 되는 겁니다.”
“그래도…….”
비서실장의 팔을 크리스토퍼가 잡았다.
나서지 말라는 의미였다.
“제가 알아서 엮어 넣겠습니다. 아마존부터 빠른 시간 내에 처리하고, ‘기억의 길’은 협상의 여지를 남겨 놓고 진행하겠습니다.”
음.
“일리 있는 말입니다. 그렇게 하세요.”
잡을 수 있는 만큼 잡되, 천천히 꽉 쥐어 버리겠다는 생각이었다.
문제는 아마존의 자리에 누군가 대신할 기업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세르게이를 부르세요.”
“세르게이가 아마존을 인수하길 바라시는 겁니까?”
“그의 생각을 들어보고 싶습니다.”
구글은 ‘구글쇼핑’이라는, 상품 가격을 비교하고 해당 기업 사이트에 연결하는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구글이 이커머스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지 않는 이유는 바로 아마존과 손을 잡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아마존의 몰락이 예상된다면 세르게이로서는 구글쇼핑을 단순 가격 비교 서비스에 머물게 놓아두지 않을 것이다.
“아서는 그다음 만납시다.”
아서는 왜?
***
AAG 빌딩 66층.
다이로, 저 싸이코, 저게 나한테 주는 선물이야?
그냥 죽이는 게 낫지 않을까?
재준은 FBI 안으로 사라지는 다이로를 TV로 보면서 주먹을 쥐었다 폈다를 반복했다.
그래, 우선은 엘리자베스가 살았다는 확신이 먼저다.
미국이 보호하는 기업이고 나발이고 지구상에서 어떻게 지워지는지 보여줄게.
그리고 다이로 넌 평생 감옥에서 내가 보낸 인간말종들과 같이 사는 게 얼마나 힘든 것인지 느껴 봐.
재준이 눈에 너무 힘을 주고 있자 윌켄이 TV를 끄며 대화를 유도했다.
“아마존이 위험하겠는데요.”
재준이 윌켄을 슬쩍 보며 피식 웃었다.
“진짜 그렇게 생각해요?”
“아닙니까?”
“제프쯤 되는 인물이 범죄자가 자신을 지목한다고 ‘내가 그랬소’ 할 리가 없잖아요. 비싼 변호사 왕창 데려다가 정신 감정부터 들먹이며 시간을 끌겠죠. 그러면 또 흐지부지 지나가는 거고.”
“그럼 보스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작정이세요?”
음.
재준은 일어나서 창가로 갔다.
오늘은 안개가 없는 화창한 날이라 월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다.
여기는 월가이다.
그럼 월가의 방식대로 해야지.
제프, 말라 죽어라.
“아마존은 알리바바 O2O 사업 부분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채권을 발행할 겁니다. 주식 맞교환은 제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을 테니까요.”
“월가의 은행 대부분이 채권 발행에 참여할 겁니다. 막을까요?”
“아니요, 그 반대입니다. 채권 발행에 투마로우도 적극 참여하세요.”
“알겠습니다.”
채권은 빚.
채권단으로 목줄을 쥐겠다는 것일까?
“제프는 은행에 무엇을 담보로 제공할지 예상되죠?”
“아마존이 가지고 있는 게 주식밖에 더 있습니까?”
“맞아요. 모든 기업들이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요. 우린 그때를 노립시다. 채권이 발행되는 순간 담보로 잡은 아마존의 주식을 끌어 내리는 겁니다.”
“생각해 둔 방법이 있으십니까?”
“불매 운동을 벌이는 겁니다.”
윌켄은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음.
불매 운동…….
‘사이진’을 이용하면 어렵지는 않겠네.
“아마존 매출이 떨어지면 주가는 하락할 테니, 채권단에서 담보의 가치가 떨어져서 마진 콜을 부를 걸 예상하시는 겁니까?”
“그 정도는 아마존이 버틸 수 있는 수준이니까, 조금 더 몰아붙여야겠죠.”
“언론을 이용하시게요?”
“뭐, 언론도 떠들게 만들어야겠지만, 언론이 아무것도 없이 떠들면 약발이 먹히질 않잖아요.”
“언론이 덤빌 만한 먹이라고 있습니까?”
“알리바바의 매출 하락을 추가합시다.”
음.
알리바바 O2O 사업 부분을 인수했는데 여기도 매출이 하락하면 아마존의 주가는 추가 하락을 한다.
그럼, 채권 담보의 가치는 더 떨어지고 월가의 은행들은 아마존을 향해 마진 콜, 추가 자금이나 담보를 더 요구한다.
만약 아마존이 추가 자금이나 담보를 제공하지 못하면 부도가 난다.
“정부가 아마존의 부도를 지켜만 볼 리는 없을 것 같은데요.”
“정부도 정부지만 서로 손잡고 있는 4대 IT 놈들이 있잖아요. 그들이 아마존을 도와주려고 하지 않을까요?”
“아마존은 추가 채권을 발행하고 4대 IT 기업이 그 채권을 매입해 준다는 겁니까?”
“그렇게 만들어야 합니다.”
“4대 IT 기업이 도와주면 아마존은 다시 살아나는 거잖아요.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건데요?”
“글쎄요. 아마존 부도 문제가 언론에 퍼지면 시장이 경색될 겁니다. 은행은 위험한 기업 대출을 꺼리게 되고 그럼 물가는 더욱 올라갈 거고.”
“정부는 금리를 또 올려야 한다?”
“그리고 아마존의 주가는 추가 하락하고요.”
“그러면 또 추가 채권을 발행하고 4대 IT 놈들이 또 도와줄 수 있을까요?”
“이번에도 뛰어들게 만들어야죠.”
“그럼 정부가 가만있지 않을 텐데요.”
“그 부분입니다. 4대 IT 기업과 정부의 싸움. 우린 거기까지 몰고 가는 겁니다.”
음.
엘리자베스 때문에 힘들 줄 알았는데 의외로 차분하네.
“근데 보스, 괜찮으십니까?”
재준이 윌켄의 표정에서 애잔함을 보았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세요. 힘든 건 윌켄도 마찬가지잖아요.”
“전 아내를 보낸 적이 있잖습니까?”
“그런 것도 경험자가 유리한 건 아니잖아요.”
에휴.
윌켄의 한숨이 길게 늘어졌다.
“그리고 진이 엘리자베스를 살린다고 했습니다.”
“보셨습니까?”
“아니요. 진이 보여주질 않아요.”
“어쨌든 진이 아직 소식을 전하지 않는 걸 보면 엘리자베스가 최악의 상황은 아니라는 거네요.”
“그렇게 생각하고 싶습니다.”
윌켄은 더는 묻지 않았다.
아무도 엘리자베스의 상태를 모른다.
보스도 진을 믿고 기다리고 있다.
그 일 이후 ‘블랙’을 호출하지도 않는다.
***
빌&멀린다 게이츠 재단.
“빌.”
세르게이는 다급하게 빌의 집무실로 들어서며 빌을 불렀다.
“세르게이, 어서 오세요.”
“다이로가 아마존을 불었습니다. 보셨죠?”
빌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대처해야 하겠습니까?”
“우리가 문제가 아니라 제프의 행보를 보고 결정해야지.”
“제프는 법무팀을 강화하고 중국 알리바바 O2O 사업부 인수를 강행하려고 합니다.”
후.
어리석은 사람 같으니라고.
“기다려 봐야지.”
“다이로가 추가로 입을 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습니까?”
“그래도 상관은 없어. 미국 법이 그렇게 허술하지 않으니까.”
“그럴까요?”
“문제는 시장이야. 하필 이런 시기에 주목을 받게 되면 좋을 게 없는데.”
후.
빌은 고개를 들고 두 눈을 감았다.
투마로우를 너무 심하게 건드렸다.
데미안,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일을 벌인 것이냐.
투마로우를 자극해서 어떤 이득이 있다고.
“시장이라뇨?”
“우린 플랫폼 기업이잖아. 지난 10년간은 저금리 시대였고. 그래서 높은 PER을 받아서 좋았지. 하지만 지금은 숨을 죽일 필요가 있는 거야.”
저금리 시대는 소비를 권장하니 성장주 기업들이 높게 평가를 받았다.
반대로 말하면, 고물가, 고금리 시대에 가장 많은 타격을 받는 기업이 바로 플랫폼 기업이 되는 것이다.
특히 언택트 때문에 온라인 기업의 광고 매출, 온라인 쇼핑으로 시장의 돈을 빨아들였다.
주가가 몇 배씩 뛰었고 몇 단계 레벨업이 되었다.
“주목을 받으면 안 된다는 겁니까?”
“주목은 바로 주식의 하락으로 직결되니까. 10년 전의 주가로 가장 먼저 돌아갈 거야. 주가 하락은 성장성이 둔화되는 것과 같아. 특히, 투마로우와 적대 기업으로 찍히면 돈이 마를 수밖에 없어.”
“설마…….”
빌은 심각한 표정의 세르게이를 향해 한숨을 쉬었다.
“투마로우도 제프가 알리바바 O2O 사업을 인수하는 걸 모를 리가 없잖아. 제프는 월가에서 채권을 발행해서 자금을 마련하겠지.”
“그건 당연한 거 아닙니까?”
“근데 말이야. 투마로우가 제프의 채권 발행을 방해한다면 다행이겠지만 만약 아무런 저지를 하지 않는다면 문제가 커지는 거야.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오라고 기다리는 거지.”
“그러나 채권일 뿐 아닙니까? 갚아 버리면 되는 건데요.”
“세르게이. 기업이 채권을 갚는 걸 본 적 있어? 채권을 갚을 때는 기업이 파산해서 청산할 때야. 채권 만기에는 다른 채권을 발행해서 돌려막는 거라고. 그래서 추가 채권을 발행해서 빚을 만드는 건 신중하게 결정하는 거야. 새로운 빚은 기업 성장의 발목을 잡을 수 있다고.”
“그럼, 제프를 말려야 하는 겁니까?”
“그래야지. 할 수만 있다면…….”
세르게이는 빌의 걱정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투마로우에게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건가?
아마존이?
이커머스 사업이야 매출 대비 영업이익이 그리 크지 않다 쳐도 클라우딩 서비스는 30%에 가까운 영업이익을 남겼다.
이때.
“빌.”
아서가 들어서며 빌을 불렀다.
“세르게이, 언제 온 겁니까?”
“금방 왔습니다. 근데 제프는 언제 오는 겁니까? 항상 제일 먼저 도착했는데.”
“제프…….”
후.
아서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렇게 말렸는데 오늘 오전에 중국으로 떠났어요.”
“네?”
“알리바바 O2O 사업을 꼭 인수하겠다는 거예요.”
“아서도 제프가 무리한다고 생각하는 겁니까?”
“당연하죠. 지금은 다들 몸을 사리는 시기잖아요.”
“그래도 중국은 소비가 늘고 있잖아요.”
“그게 독이 될 수도 있어요. 더 비싼 가격을 지불해야 하니까. 주식 교환이라면 가격과 상관없이 추가 자금이 들어가지 않지만. 제프는 절대 아마존 주식을 넘기지 않을 거란 말이죠. 하지만…….”
아서가 뒷말을 잇지 못하자 세르게이가 대신 답을 주었다.
“주가를 걱정하시는 거죠?”
“우린 아직 IT 기업이니까. 무너지면 끝이니까. 성장주에서 가치주로 인식이 되면 기업 주가는 3분의 1로 할인이 들어가는 거예요.”
“차라리 가치주가 될 거라 예상하고 움직이는 게 낫겠습니다.”
“그러는 편이 마음은 편하겠네.”
빌도 세르게이의 말에 동조했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제프가 어떤 결정을 내리든 채권을 최대한 우리가 매입합시다. 투마로우가 쥐고 흔드는 순간 어떤 상황으로 변할지 모릅니다.”
음.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때,
띠리리링.
세르게이의 스마트폰이 울렸다.
대통령 비서실장?
< 제41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23)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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