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3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9) >
‘기억의 길’ 본당 근처.
치지치치치직.
다이로, 제이콥, 위쉬안이 데미안의 임무를 받았다.
진을 죽여라.
“이건 좀 하기 싫은데.”
위쉬안이 제이콥을 보며 자신과 같은 뜻인지 살폈다.
“심해도 어쩔 수 없지. 우리가 한 일이 심하지 않은 일이 있었나? 이거 받은 값은 해야지.”
제이콥은 자신의 눈 주위를 손가락을 툭툭 두드렸다.
“그래도 어린아이를 저격하는 건 아닌데.”
“진이 어린아이라고 생각하는 건 너밖에 없어. 그리고 넌 그 어린아이보다 못하잖아.”
그걸 꼭 알려줘야 하냐?
“아, 몰라. 난 이번엔 빠질 거야. 너희 둘이 해.”
“진이 두려운 거야?”
일어나서 나가려는 위쉬안이 멈칫 서서 제이콥을 봤다.
“아니라곤 못 하지. 당한 게 있는데. 그리고 저 데미안이란 놈이 오랜만에 나타난 것도 맘에 안 들어. 뭔가 냄새가 난단 말이지.”
“무슨 냄새?”
“지난번에 너 수술할 때 AI팀이 왔거든. 알고 있지?”
“알지.”
“그 팀이 바로 4대 IT 기업 AI 팀이야. 그리고 데미안이란 놈이 4대 IT 기업하고 함께 움직이잖아. 근데 지금 아마존이 좀 위험하거든. 그것도 ‘기억의 길’ 때문에.”
후후후.
“그래서 우릴 엿 먹이려는 거다?”
“난 그렇게 생각해. 우리 쓸모가 다 한 거지. 그렇지 않고서야 풋, 진이라니. 그건 좀 오바 아니냐? 우리보고 죽으라는 소리지.”
“그게 왜 우리보고 죽으라는 건데?”
참나, ‘블랙’이 우리를 뻔히 들여다본다고 말할 수도 없고.
“이봐, 제이콥,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는 스카이링크 위성만 만 개가 넘어. 우리가 뭘 하는지 훤히 보고 있다고. 근데 뭐 어디? 핵융합 발전소 근처에 잠복했다가 진을 저격하라고? 아니, 위성은 잘 숨으면 된다고 쳐. 저기 강 건너에 있는 ‘사이진’이 몇 명인지나 알고 있는 거야?”
“잘 아니까 우리가 해야 하는 거야? 이번엔 수당도 지금까지와는 비교도 안 되게 크잖아.”
후후후.
“그거 목숨값이야. 어쨌든 난 안 해.”
위쉬안은 자리를 털고 일어나 문을 향해 걸어갔다.
“야, 너 진짜 왜 그래?”
위쉬안의 등에 대고 다이로가 소리를 질렀다.
위쉬안은 어깨를 으쓱하고는 나가버렸다.
“놔둬. 하기 싫다는데 억지로 하게 할 수는 없잖아. 사실 이번 일은 위쉬안이 없어도 되는 일이고.”
“그렇긴 하지. 나만 있어도 오케이긴 해. 하지만 위쉬안이 꼭 뭐에 겁을 먹은 거 같지 않아? 그동안 앤서니하고 붙어 다녀서 그런가?”
“앤서니 핑계를 대는 걸 보면 그런 것 같긴 해. 근데 앤서니는 왜 경제위기를 만들어서 기업들의 불만을 사는 거야?”
“지금 경제위기야?”
역시 다이로다.
“난 네가 위기라고 생각한다. 도대체 스마트폰에서 뉴스라는 걸 검색해 본 적이 없는 거야?”
“뉴스를 왜 검색해. 캡슐에 들어가서 놀기 바쁜데.”
“캡슐 좀 작작 하고.”
“이야, 이번에 중세시대 가상공간에 들어갔는데 대단하더라. 구경만 해도 가슴이 웅장해진다. 웅장해져.”
“냄새는 안 나고?”
“아, 맞아. 냄새는 좀 심하더라. 그래서 성안엔 들어가지 않아. 들어가도 솔직히 볼 건 없지. 그래도 밖은 기가 막혀.”
어휴.
내가 어쩌다 저런 놈을 알게 됐을까.
근데 다들 캡슐을 하네.
그러면,
“캡슐을 하는 김에 앤서니 종교에 좀 가 보자.”
“거길 왜 가?”
“앤서니가 뭐 하는지 궁금하잖아.”
“전혀 궁금하지 않은데. 종교라며. 그럼 뻔한 거 아냐? 신 있고, 신도 있고, 설교하고, 기도하는 거잖아.”
“그래. 내가 너한테 뭘 바라겠냐?”
“그것보다 진이 일주일 후에 밖으로 나온다니까. 어디에서 잠복할지 한번 둘러보는 건 어때?”
후.
“그게 좋겠다.”
***
‘기억의 길’ 본당.
“안색이 안 좋습니다.”
앤서니는 방금 막 들어서는 위쉬안을 살피며 말했다.
“데미안, 그 미친놈이 드디어 진을 저격하라고 임무를 날렸어.”
“진을 죽이라고요? 확실합니까?”
“그렇다니까. 일주일마다 진이 밖으로 나오는 순간을 노리라고 했어.”
“‘사이진’이 저렇게 깔려 있는데……. 위험합니다.”
“말을 들어 처먹을 인간들이 아니잖아. 이번엔 눈알이 아니라 목이 달아날 거야.”
“신께서 다 보고 계실 텐데. 다이로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요?”
“그러게. 앤서니, 직접 ‘블랙’에게 물어보면 안 될까? 다이로에게 알리기 전에 ‘블랙’의 허락이 필요하잖아. 설마 ‘블랙’이 모를 수 있을까?”
“알고 계실 겁니다. 모를 리가 없습니다.”
앤서니는 스마트폰을 꺼내 탁자에 놓았다.
그리고 엄숙하게 물었다.
“신이시여.”
앤서니의 부름에 ‘블랙’의 즉각적인 대답이 들렸다.
【앤서니. 그냥 놔둬.】
“진을 저격한다는데도 말입니까?”
【내가 막지 못할 거라 생각하는 거야?】
“죄송합니다.”
앤서니가 의자에서 내려와 바닥에 머리를 조아렸다.
후다닥.
위쉬안도 덩달아 앤서니 옆에서 머리를 땅에 박았다.
【그보다 중국에 신경을 더 써.】
“중국은 단결이 잘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것.】
헉!
“제가 모르는 일이 있습니까?”
【중국 주석이 ‘기억의 길’ 신도로 위장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탈출하려 준비 중이야.】
“당장 막겠습니다.”
【아니, 중국이 원하는 대로 해줘.】
원하는 대로?
다른 계획이 있으시구나.
“알겠습니다.”
【모든 신도에게 주석이 원하는 대로 속아 주라고 일러. 때가 그리 멀지 않았어. 그때가 되면 인간 개조가 완성될 거야.】
인간 개조.
기억나는가?
펠그리니와 박혁이 ‘블랙’에게 처음 한 질문의 답이 ‘인간 개조’였다.
무엇을 위해 인간을 개조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네, 저의 할 일을 충실히 이행하겠습니다.”
더이상 ‘블랙’의 말이 없자 그제야 앤서니는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옆을 보는데 위쉬안이 아직도 머리를 땅에 처박고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위쉬안, 괜찮습니까?”
“응?”
고개를 든 위쉬안이 주변을 둘레둘레 돌아봤다.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습니다.”
“아, 그렇지.”
아휴, 아휴.
심장이 오그라드는 줄 알았네.
“왜 그렇게 긴장을 하십니까?”
“몰라, ‘블랙’이 정말 신 같아서 그런가?”
“신 같은 게 아니라 진짜 신입니다. 그것도 말로만 떠드는 허풍쟁이 신이 아닌 우릴 진짜 위하는 신입니다.”
“그래, 알았어. 근데 중국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는 거네.”
“그런가 봅니다. 이렇게 신이 다 알고 있는데. 아마 우릴 속이고 있다고 좋아할 겁니다. 하하하하.”
“그러게, 보는 맛이 쏠쏠하겠는데. 이 기회에 나를 중국 특별 사제로 보내라. 직접 그 뻔뻔한 주석을 얼굴을 보게. 나를 버리고 얼마나 잘사는지.”
“특별 사제요? 그런 직책은 없습니다. 대신 장로직을 드리겠습니다.”
“장로? 그거 괜찮은데. 장로. 장로. 입에 착착 달라붙네. 그리고 뉴스에서 봤는데. ‘기억의 길’ 때문에 스태그플레이션에 일어난 거라며?”
“그럴 리가요. 다 핑계지요. 정치인들이 남에게 책임을 미루는 게 어디 한두 번입니까?”
“그런 거지?”
“네.”
위쉬안은 앤서니의 말을 전적으로 신뢰했다.
아니, 앤서니 뒤에 있는 ‘블랙’이 무서웠다.
“근데 ‘블랙’이 다이로와 제이콥을 죽이면 어떡하지?”
“죽여야 했다면 진작 죽였겠지요. 분명히 다른 뜻이 있을 겁니다.”
그렇긴 하네.
***
백악관.
대통령은 홀로 CNN 뉴스를 시청하고 있었다.
[연준은 소비자물가지수가 여전히 하락함에도 금리를 또 올렸습니다. 물가가 잡힐 기미를 보이지 않아 당분간 금리 인상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번 재준과 대화를 떠올렸다.
-시위를 멈춰 주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글쎄요. 이제부터 기업 몇 개를 인수할 텐데. 못 본 척해주세요. 아, 물론 불법적인 방법은 쓰지 않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인수할 겁니다.
-어느 기업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4대 IT 기업이요.
-네?
풋.
마지막에 놀라는 자신의 모습에 헛웃음이 나왔다.
임재준.
진짜 이걸 한 겁니까?
아마존을 가지기 위해 국가 전체를 수렁으로 몰아넣었다고요?
아니, 우연이겠지.
‘기억의 길’.
아무리 종교의 힘이 국가를 능가한다고는 하나 이 정도의 힘을 가진 종교는 없었다.
설마, 임재준과 ‘기억의 길’이 손을 잡은 건 아니겠지.
지난번 핵융합 발전소 테러는 분명 ‘기억의 길’ 신도들의 소행이었는데.
혹시, 일부러?
하하.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니지, 지난번 시위대를 해산할 정도면…….
분명 사람들의 뇌 속에 나노봇을 심었다고 했으니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
똑똑.
“들어와요.”
비서실장이 들어와서 대통령 앞에 보고서를 내밀었다.
대통령은 보고서를 보지 않고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가장 시급한 문제가 뭡니까?”
“중국이 심상치 않습니다.”
“뭐, 핵이라도 쏜답니까?”
“아닙니다.”
단호한 비서실장의 대답에 피식, 대통령이 웃었다.
이제 농담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건가.
“말해 보세요. 뭐가 그렇게 심각한지.”
“중국 소비자물가지수가 급속도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음.
“그럼, 이제 우리도 풀리는 겁니까?”
“아닙니다. 전 세계 유일하게 중국만 경기가 회복되고 있습니다.”
“중국도 ‘기억의 길’이 있지 않나요?”
“중국 정부가 ‘기억의 길’을 탄압하면서 캡슐에 들어가는 시간을 오후 6시 이후로 제한한 결과입니다.”
“제한……. 했다고요?”
“네, 오후 6시 이전까지 중국인들의 소비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요?”
이런 방법이 있었네.
하지만 미국은 힘들잖아.
강제로 자유를 제한하면 반발이 거셀 텐데.
“‘기억의 길’ 탄압이라 했는데, 어떻게 하고 있는 겁니까?”
“예전 코로나 때와 비슷합니다. 스마트폰의 움직임을 감지해서 한 장소에 10분 이상 정지해 있으면 경고 문자가 발송되고 이를 어기면 공안이 출동합니다.”
“GPS를 이용한 앱이네요.”
“네.”
어라, 이거 너무 쉽잖아.
“이걸 탄압이라고 한다고요? 중국에서?”
“캡슐에 들어가는 자유를 침해한 거니까요.”
“우리도 법안을 만들면 가능한 거 아닙니까?”
비서실장이 대통령을 빤히 바라봤다.
미친 거 아냐, 라는 듯이.
“저희 민주당에서도 반대가 심할 겁니다.”
“아, 그놈의 인권, 자유.”
“네?”
대통령의 입에서 나온 푸념에 비서실장이 살짝 반응했다.
“아니에요. 내가 괜한 소리를 했네요. 법안은 무슨. 그럼, 우린 계속 금리를 올려 소비를 더욱 힘들게 만들어야 하는 거네요. 소비는 계속 줄고 물가는 계속 올라가고.”
“강달러만이 미국이 선택할 수 있는 길입니다.”
“지금 유럽 국가들이 시간마다 연락 오잖아요. 그거 비서실장이 다 차단하고 있고요.”
“아, 네.”
“이러면 당분간 미국 빼고 다 죽습니다. 아니, 미국도 같이 죽고 있잖아요. 지금 미국 기업들 아우성치고 있지 않습니까? 솔직히 비서실도 방법 없죠.”
“죄송합니다.”
대통령 비서실이라면 보좌하는 사람만 4천 명이 넘는다.
이 많은 인력이 뾰족한 방법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난 방법을 알고 있는데.”
비서실장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안 들어도 무엇인지 뻔했다.
“우리도 ‘기억의 길’ 단속합시다.”
“대통령님.”
비서실장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자유주의, 민주주의, 이딴 거 지키려고 하는 겁니다. FBI한테 ‘기억의 길’ 사제 앤서니 조사 지시합시다.”
“대통령님…….”
앤서니는 없는 죄가 씌워질 것이고 ‘기억의 길’ 신도들에겐 당하지 않아도 될 탄압이 가해질 것이다.
< 제413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9)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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