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12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8) >
“주석님을 만나러 왔습니다.”
제프가 재준을 향해 빈정거리는 투로 대답했다.
“안 바빠요? 미국 시장 매출이 많이 떨어졌던데.”
“남의 사업에 관심이 많으십니다.”
“그럼요. 관심을 가져야 시장도 가지는 거잖아요. 앞으로 잘해 봅시다.”
“뭐요? 내가…….”
재준이 제프의 다음 말을 무시하고 딩쉐이에게 들어가자는 신호를 보냈다.
문이 열리고 재준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갔다.
쾅.
제프는 닫힌 문을 멍하니 바라봤다.
나를 무시해?
후.
길게 심호흡을 하고 한참을 문을 노려보았다.
여기서 내가 뭘 할 수 있지?
내가 천문학적인 자산을 가지고 있어도 중국에선 일개 기업인일 뿐인 건가?
빌어먹을 중국.
반드시 내 발아래 놓고 짓밟아 주겠어.
제프가 한창 분노에 찬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있는 그때,
“제프,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누군가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뒤를 돌아본 제프는 익숙한 얼굴이 다가오는 걸 보았다.
마윈?
이놈은 또 뭐야?
“마윈, 당신이 왜 지금 나타나는 겁니까?”
마윈은 제프를 보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건 제가 궁금한 건데요?”
전에도 그러더니, 이 인간은 미팅 약속을 잡지 않고 나타나는 게 취미인가?
“오늘 임재준과 주석님하고 미팅이 있습니다.”
“임재준과요?”
“네.”
“왜 마윈이 임재준과 미팅을 합니까?”
“알리바바 O2O 사업부를 아마존에 넘기려면 임재준이 허락해야 하거든요.”
“임재준이 허락해야 한다고요?”
어?
“아실 텐데요. 저희가 투마로우 드론을 사용하고 있잖아요.”
“…….”
제프의 말문이 막혔다.
“아마존이 알리바바를 인수해도 투마로우 드론은 사용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
할 말이 없나?
“그럼, 저는 이만 들어가 봅니다.”
마윈도 제프를 지나쳐 비서에게 요청하자 비서가 노크했다.
똑똑.
쾅.
제프는 다시 닫힌 문을 바라보았다.
빌어먹을.
***
마윈이 도착하기 10분 전.
재준이 집무실을 막 들어섰을 때.
“아이고, 주석님. 얼굴이 말이 아니네.”
재준은 시앙핑을 보자 안쓰러운 표정을 지었다.
“빨리 앉아 봐요.”
재준이 시앙핑 앞에 앉았다.
“‘기억의 길’하고 좀 아는 사이입니까?”
시앙핑이 다짜고짜 재준에게 물었다.
“그럼요. 잘 알죠. 거기 사제가 앤서니잖아요. 나랑 꽤 인연이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지금 그 소비 최소화인지 뭔지 좀 그만하자고 합시다. 이러다 다 죽어요.”
재준이 빙글 웃었다.
“근데 그 인연이 악연인데.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예요.”
“네? 서로 죽고 죽이는 사이?”
“네, 진짜 서로 총질도 몇 번 했어요. 그 사건 아시잖아요. 미국 핵융합 발전소 폭파 사건. 그거 앤서니가 한 거예요. 뭐, 증거 불충분으로 흐지부지됐지만.”
진짜로 총질하는 사이네.
“악연이네. 아주 지독한 악연.”
“그렇다니까요.”
아.
시앙핑이 멍한 눈으로 천장을 응시했다.
이제 어쩐다.
하하하,
재준이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러나 소비를 촉진하는 방법이 아예 없는 건 아닙니다.”
뭐?
“방법이 있습니까?”
“그럼요.”
“그게 뭡니까?”
“아무리 캡슐에서 하루 종일 일을 한다고 해도 밥은 먹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캡슐의 가장 큰 단점이죠.”
“밥? 그럼 곡물 가격을 올리자는 겁니까?”
“그것도 아주 많이 올리는 겁니다. 아~주 많이.”
흠.
일리 있는 말이긴 한데.
뭔가 당하는 느낌이 드는데.
“그것 말고는 없습니까? 곡물 가격을 올리면 ‘기억의 길’ 신도가 아닌 인민의 부담이 너무 가중되는 것 같은데.”
“그렇죠. 그럼 또 다른 방법도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기억의 길’은 모임 장소로 캡슐의 가상공간을 이용하고 있는 건 아시죠.”
“옳지. 그러네. ‘기억의 길’ 가상공간을 닫아 버리면 되겠네.”
이런 일차원적인 인간이 어떻게 주석이 된 거야?
아니지, 일차원이니까 주석이 된 거지.
사차원이었어 봐. 바로 핵전쟁이 일어나고도 남지.
“에이, 그러면 안 되죠. 그럼 오프라인에서 만날 텐데요?”
“오프라인?”
“내가 알기로는 중국 내에서 신도가 5억 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그들이 한자리에 모이면 어떻게 되겠어요?”
5억이 한자리에?
“5억 명이나 됩니까?”
“그래요. 모르셨어요?”
“우리가 집계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서. 대략 2천만 명 정도인 줄 알았는데. 5억 명이면 많아도 너무 많은데요.”
“그렇다니까요. 아주 큰일 나죠. 한자리에 모여서 동시에 뛰면 도시 하나는 주저앉을 것 같은데.”
“그건 안 됩니다.”
“그러니까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주석님 측근 몇 명이 들어가면 됩니다.”
“어딜?”
“‘기억의 길’ 신도로.”
멍…….
이게 무슨 개소리일까?
공산주의 선두주자인 중국의 공산당원이 ‘기억의 길’ 신도로?
물론 중국은 무신론 국가이고 종교의 자유도 보장한다.
중국에서 가장 탄압을 많이 받는 기독교도 대략 1억 명 정도 신도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그러니 다른 종교도 많을 것이다.
공산당원이라고 종교를 가지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그건 아니지, 아니 우리가 명색이 공산당인데 사이비 종교 신도가 되라니 이게 말이 됩니까?”
“어허, 정말 답답합니다. 답답해요. 아니, 그걸 누가 대놓고 나 ‘기억의 길’ 신도요 합니까? 숨겨야죠.”
“그건 또 무슨 말입니까?”
“아니,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 거, 모두가 의심하는데 본인은 아니라고 잡아떼는 거. 그거. 아유, 답답해.”
나도 답답해. 이 인간아.
보다 못한 딩쉐이가 시앙핑에게 다가와서 속닥거렸다.
그런 거였어?
“양쪽을 다 속이라고?”
“그래요. 그거. ‘기억의 길’ 신도 행세를 하는 겁니다. 그리고 주석님은 ‘기억의 길’을 탄압하는 척하는 거죠. 이 얼마나 완벽한 해결책이냐고요.”
“아니 그게 무슨 해결책이 됩니까?”
재준이 딩쉐이를 바라봤다.
야, 너.
“힘들겠어요.”
딩쉐이의 입술이 삐죽이 튀어나왔다.
그래, 그래.
재준이 주석을 바라봤다.
“주석님, 신도를 탄압하는 척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요?”
“그럼 신도들에게 대부분 감시가 붙겠죠?”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감시합니까?”
아유, 진짜.
재준이 스마트폰을 들어 보였다.
“이거, 이거. 위치추적.”
“아, 그걸로?”
“네, 그리고 저녁 6시 이후에 감시를 풀어줍니다.”
“6시 이전까지는 소비 활동을 하게?”
“그렇죠. 그러니까…….”
“그러다 탄압한다고 시위를 하면 큰일 나는데.”
내가 지금 말하고 있잖아.
좀, 말을 끝까지 들어 봐.
“그러니까, 슬쩍 소문을 내야죠. 사실은 주석도 신도다. 하지만 공산당의 입장이 있어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뭐 이렇게.”
와, 이게 말이 되나?
그때.
똑똑.
“마윈 회장 도착했습니다.”
셋의 고개가 문을 향했다.
마윈이 들어서며 90도로 인사를 했다.
“늦었습니다.”
재준은 마윈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기 또 오네요. ‘기억의 길’ 신도가 될 사람.”
“마윈까지?”
“그래야 아마존이 나가떨어지죠. ‘기억의 길’ 신도가 전부 알리바바와 거래를 할 텐데.”
헉!
시앙핑은 살짝 존경의 눈빛을 재준에게 보였다.
원래 임재준이 그린 그림이 이런 거였나?
그래서 자신 있어 한 거구나.
근데 저놈은 왜 저러고 있는 거야?
“마윈, 일단 와서 앉아 봐.”
“네.”
마윈이 영문도 모르고 멀찍이 떨어져 앉았다.
“잠시 기다려 봐. 우리 이야기 좀 마무리하고.”
“네.”
시앙핑은 다시 재준을 봤다.
“근데 어떻게 ‘기억의 길’ 신도라는 걸 믿게 합니까?”
“아니, 그거 지금 다른 종교 지도자들이 하고 있는 거잖아요.”
“하고 있다고요?”
“그럼요. 미국이나 남미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환경 규제나 세금 문제에 개입해서 여론을 형성하고 있는 건 아시죠.”
“그건 압니다.”
“근데 성경에 무슨 환경 규제와 세금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까? 그거다 카를 마르크스나 밀턴 프리드먼, 프리드리히 하이에크 같은 경제학자들이 제시한 이론이잖아요. 이자를 올리든, 세율을 낮추든, 정부 독점을 민영화하든, 국제 관세협정에 서명하는 게 다 종교와 상관없는 거잖아요. 그러니까 기독교 지도자들도 일단 경제 이론을 공부하고 해결책이 만들어지면 대충 성경의 정당한 문구를 끼워 넣어서 ‘이게 하나님의 섭리입니다’라고 떠드는 거예요.”
“그게 그렇게 하는 겁니까?”
“그렇죠. 자, 주석님도 이제부터 정책을 발표하면서 앤서니가 말한 내용 중 적당하다 싶은 부분을 마지막에 슬쩍 끼워 넣으면 되는 겁니다.”
허, 이거 참.
지금도 기독교를 비롯한 이슬람, 힌두교 등 다양한 종교는 유물론과 자본주의, 독재 정권을 비난한다.
마치 자신들의 종교가 세계를 지배하면 전혀 그렇지 않을 것처럼.
하지만 7세기 이전에 쓰인 성경, 쿠란, 베다 등등등 어느 경전에서도 현대 문제를 해결할 만한 정확한 지식은 없다.
‘해석’을 그럴듯하게 한 것이지.
기독교 경제학이나 이슬람 경제학 같은 게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종교에서 성경 구절이나 쿠란의 구절을 인용한 경제 정책은 전부 현대 과학 이론이나 경제 이론이지 종교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러면 신도들이 믿을 거다?”
“그렇죠. 오히려 낮에 캡슐을 이용하지 못하는 신도들이 주석님의 발표를 곱씹으며 ‘기억의 길’에 대한 믿음을 키울지도 모르죠.”
“머리가 나쁜 신도도 있을 거 아닙니까?”
“‘기억의 길’ 신도들이 서로 인사할 때 사용하는 상징 아세요? 이렇게 하는 거.”
재준은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보여줬다.
시앙핑도 재준을 따라 손을 동그랗게 말았다.
“이게 그들의 상징입니까?”
“네, 이걸 가끔 실수인 척 언론에 흘리세요. 알죠? 인사하는데 마치 무의식적으로 하는 것 같은 그림. 이게 효과가 좋아요. 효과가 바로 나타나거든요.”
“아, 이렇게.”
“그리고 앤서니가 입는 의상이 있거든요. 그것도 가끔 입고 다니고. 알죠? ‘우리’.”
“음, 정체성을 드러내라.”
“맞습니다.”
정체성을 드러내는 것만큼 종교의 충성심을 이끌어 내는 것은 없다.
‘우리’라는 단어와 ‘그들’이란 단어는 종교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이자 충성심을 끌어 낸다.
가끔? 아니, 자주? 반드시 엄청난 비극을 만들지만.
그 비극의 정점은 바로 ‘신도’라는 일본 종교에서 볼 수 있다.
미국이 스마트 폭탄을 사용해 이라크 전쟁에 승리하기 전, 그때보다 훨씬 전인 수십 년 전에 일본은 정밀 유도 미사일을 개발했다.
이 정밀 유도 미사일은 태평양 전쟁에서 미국 군함 10여 대를 침몰시키며 한때 미국이 패전국이 될 수도 있음을 보여줬다.
진짜 원자폭탄이 없었으면 어쩔 뻔했어.
어쨌든 바로 이 정밀 유도 미사일은 일본의 종교 ‘신도’를 믿는 이들이 개발한 ‘가미카제’다.
가미카제.
종교의 이름으로 자신을 미사일로 착각하게 만들 만큼 강한 충성심을 발로였다.
원래 ‘신도’는 정령과 신령, 귀신에 대한 애니미즘 사상이었다.
이 사상에 일본의 민족 우월성과 사무라이 충성, 일본 황제는 태양의 여신의 후손이라는, 살아 있는 신의 사상을 뒤섞어 놓았다.
이 무슨 신석기 시대의 부족에서나 있을 법한 말이냐 하겠지만, ‘신도’는 아직도 일본을 지배하고 있다.
종교는 정말 알아도 아는 것 같지 않은 인간 사이의 신비한 현상이다.
솔직히 ‘신도’에 비해 ‘기억의 길’을 믿는 게 이성적이 아닐까?
“이제 아시겠죠.”
“자~알 알겠습니다.”
시앙핑은 이제야 마윈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다 들었지?”
“뭘요?”
“뭐긴 뭐야? 이제부터 마윈도 ‘기억의 길’ 신도가 되는 거지.”
“아니, 제가 왜…… 요?”
“그럼 안 할 거야?”
“그게 제가 종교 지도자 어쩌고 하는 부분부터 이야기를 들어서 잘 이해가 안 됐습니다.”
“음, 그럴 수도 있겠네. 그건 이따가 딩쉐이에게 자세히 듣고. 아마존하고 인수 얘기가 오고 갔다며?”
“아, 네. 아마존에게 알리바바를 인수하라고 제시했습니다.”
“알리바바를 인수하면 아마존이 중국의 O2O 시장을 장악하는 거지?”
“네.”
시앙핑은 재준을 바라봤다.
“어떻게 생각합니까?”
“음, 아마존이 인수하게 하죠.”
“그래도 되겠어요? 기껏 키운 건데.”
“그 대신 우린 돈이 들어오잖아요. 그리고 곧 아마존은 중국에서 철수할 거예요. 헐값에 다 팔아 버리고.”
“그건 또 무슨 이야기입니까?”
“지금까지 우리가 한 이야기를 거꾸로 하는 거예요. ‘기억의 길’의 적으로 만들면 아마존은 중국에서 철수할 겁니다. 그 후에 마윈은 ‘기억의 길’ 신도가 되는 거고요. 마윈은 좀 나중에 신도가 됩시다. 매출은 그때부터 올라갈 테니까.”
마윈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악귀 같은 놈.
< 제412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8) > 끝
ⓒ 번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