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5) >
“근데 엘리자베스, 무슨 일로 미국에 온 거야?”
이제야 본론이 궁금한 재준이 물었다.
“그걸 몰라서 묻는 거예요? 인도보다도 넓은 땅만 휙 던져 주고 가면 나보고 어쩌라는 거예요? 언론에 난 기사를 보니 거기다 곡물 아파트를 짓겠다고 하던데. 그럼, 로봇이라도 지원해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요!”
엘리자베스는 재준이 말할 기회도 주지 않고 입에 속사포를 단 것처럼 몰아붙였다.
“아니, 같이 한번 땅을 죽 둘러보고 뭘 심을지 고민하려고 했지.”
“고민은 무슨 고민. 일단 원래 짓고 있는 곡물을 심어야죠. 그 지역 주민들도 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을 텐데. 그다음 세계 곡물 상황을 살피고 추가로 뭘 재배할지 결정해야죠.”
“그래, 알겠어. 알겠다고. 아니 애가 날이 갈수록 성질만 날카롭게 변하는 거 같아. 너 혹시 노처녀 히스테리 같은 거 있는 거 아냐?”
에휴.
“말을 말아야지. 어쨌든 곡물 아파트보다 더 중요한 게 있어요. 먼저 국경에 메렛이나 배치해 주세요. 중국 군대가 물러나고 있는데 집적거리는 인간들이 많아요.”
“이야, 거참 인간들 진짜 학습이 안 되는구나. 언론에 그 지역을 투마로우가 임대했다고 하면 알아서 정부 차원에서 관리 좀 해야 하는 거 아냐?”
“그 지역이 세계에서 분쟁이 가장 많은 곳이에요. 정부가 힘도 못 쓰는 곳이라고요.”
“알았어. ‘블랙’.”
【네.】
“이야기 다 들었지?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국경에 킬러 로봇 배치해.”
【네.】
“됐지?”
엘리자베스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입술을 비죽이 내밀었다.
“또 왜?”
“근데 지금 미국에서 무슨 일을 벌이는 거예요?”
“아니, 꼭 범죄조직처럼 이야기하네. 우리 투자은행이야. 투자은행이 뭐 하겠어? 상황 봐서 기업 도와주고, 기업 인수하고 합병하고 하는 거지.”
픽.
엘리자베스는 재준을 포기하고 윌켄을 바라보았다.
“윌켄 아저씨, 이번엔 어디예요?”
“나?”
윌켄이 살짝 당황하면 물었다.
“네, 이번엔 어디를 인수하려고 하냐고요.”
“아, 아마존.”
껌뻑, 껌뻑.
엘리자베스가 눈을 두 번 감았다가 떴다.
“저 혹시 제가 알고 있는 전자상거래 세계 1위 업체 아마존 맞는 건가요?”
“응, 맞아. 그 아마존.”
헐.
“이제 하다 하다 전자상거래까지 하려고요?”
“우리 투자은행이라니까. 적당한 인수자를 물색해서 팔아야지.”
재준이 대꾸했다.
“아, 적당한 인수자? 뭐, 알리바바한테라도 팔려는 거예요? 그럼, 아주 알리바바가 좋아하겠네요.”
“어떻게 알았어? 알리바바에게 팔 건데.”
“정말?”
이 인간이 이제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업을 강탈해서 공산주의 국가에 팔아먹기까지 하네.
“원래 알리바바와 입을 맞추고 시작한 건데.”
“아니, 그러다 나중엔 미국도 팔아먹겠어요.”
“그럴 리가 있나.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돼. 미국은 덩치가 너무 커서 적당한 인수자가 없잖아.”
참나.
“내 말이 그 말이에요? 해도 해도 너무하니까 하는 말이죠. 아마존이 무슨 동네 편의점도 아니고. 인수한다고 인수가 돼요? 그리고 알리바바라뇨. 그거 이적행위예요. 이적행위.”
“아유, 걱정도 팔자야. 지금이 어떤 시대인데. 그리고 시기를 잘 봐. 지금 소비 활동이 극도로 위축되면서 가장 타격을 받는 산업이 IT 산업이란 말이야. 그 중심에 아마존이 있는 거고. 만약 아마존이 이대로 파산해 봐. 미국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크겠어. 내가 미국 시민은 아니지만 이건 애국이라고.”
와.
“애국이요?”
“그래. 이적행위는 ‘기억의 길’이 하는 거고.”
“‘기억의 길’? 그 친밀한 종교단체 말하는 거예요?”
“친밀한지는 모르겠고, 암튼 종교단체 맞아. 아주 이제 유명해졌네. 인도에서도 유명한가?”
“엄청나죠. 근데 인도에는 캡슐이 없잖아요. 커뮤니티 서밋에 대한 동경이 장난 아니에요.”
“그래?”
인도에 팔아야겠는데.
음, 하지만 어려운 나라야.
빈부격차도 너무 심하고 문맹률도 너무 높고.
그래도 천천히 생각해 볼 가치는 있지.
인구가 몇인데.
“어쨌든, ‘기억의 길’ 신도들이 소비 활동을 최소화하는 바람에 전 세계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촉발하고 있다고.”
“아니, 왜 소비 활동을 안 해요?”
“그거야 나도 모르지. 분명한 건 예전에는 시중에 돈을 풀면 국민들이 어느 정도 소비에 가담해서 경제를 안정시켰는데 지금은 그 약발이 안 먹힌다는 거야.”
“저러다 ‘기억의 길’ 전부 죽는 거 아니에요?”
“죽긴 왜 죽어? 소비 좀 안 한다고 누가 사람을 죽여?”
“스태그플레이션을 일으킬 정도면 누가 죽여도 죽이겠죠. 정부라든가, 아니면 기업이라든가.”
엘리자베스의 눈빛이 재준을 노려봤다.
“너 날 왜 그렇게 봐? 난 아니야. 너 인도에서 아주 나쁜 것만 배운 것 같아. 이번엔 아마존 인수할 때까지 미국에 있도록 해.”
“안 돼요. 마가리따 언니가 기다려요.”
“마가리따 아줌마는 루바스가 있잖아. 딸도 셋이나 있고. 이번 기회에 가족만의 시간을 즐기게 해줘.”
가족만의 시간?
“그럴까?”
“그래, 너 근데 할아버지한테는 가보고 있냐?”
“음, 할아버지도 본 지 오래됐네. 이번에 한번 들를까?”
“와, 이런 불효녀를 봤나. 그러면서 나한테 뭐라 그러는 거야? 난 그래도 1년에 한 번은 할아버지를 보러 가는데.”
“그러네, 나 당장 할아버지 보고 올게요. 비행기 좀 빌려주세요.”
“그래, 인간다운 정서 좀 키우고 와.”
흥.
엘리자베스는 재준을 한 번 더 노려보고는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
알리바바.
마윈은 시장 점유율을 보고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자그마치 O2O 시장에서 아마존과 대등한 점유율을 달성했다.
하하하하.
“이봐, 왕징춘, 타오바오 매출은 어때?”
“저 그게, 매출이 대폭 하락했지만, 점유율만은 그대로입니다.”
“그래? 괜찮아. 괜찮아. 점유율만 지속하면 매출은 언제든 올라.”
타오바오는 마윈의 C2C 거래 사이트다.
타오바오도 아직은 시장 점유율을 지켜주고 있었다.
마윈 회장의 행복과는 반대로 왕징춘 비서실장은 마윈의 심기를 건드리려니 은근히 눈치를 봤다.
“소비자 지수가 엄청나게 떨어졌습니다. 이대로라면 매출이 오르지 않아 돈 안 되는 사업 몇 개 정리해야 합니다.”
“그 정도로 심각해? 그 ‘기억의 길’이란 종교 때문이지?”
“내 예상보다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 이번 분기까지만 지켜보고 결정하자고.”
“저, 그리고 알리페이 대출 문제가 서서히 부각될 조짐을 보입니다.”
“뭐? 알리페이?”
알리페이란 말만 들어도 소름이 돋는 마윈이다.
그도 그럴 것이 바로 이 알리페이 때문에 한때 중국 정부의 미움을 사 회장에서 물러난 적이 있지 않은가.
마윈은 ABS(자산유동화증권)를 통해서 사업을 확장해 왔는데, 사실 ABS는 금융에서 보편적인 상품이었다.
하지만 마윈은 저신용자에게도 마구잡이로 돈을 빌려줘서 서브프라임 모기지와 비슷한 방식이 되어 버렸다.
마윈의 ABS는 제도금융에서 배제된 저신용자들에게도 대출을 해주고 이를 유동화 증권으로 만들어 유통시켜 추가 자산을 확보했다.
중국 정부는 마윈의 ABS를 보고 2008년 같은 금융위기를 중국에서 훨씬 큰 규모로 일으킬 수 있다는 위기의식을 느꼈다.
자칫 중국 금융당국의 통제력을 벗어나는 상황을 우려했다.
여기에 알리페이라는 결제수단도 맘에 안 들었다.
이건 국가가 독점하고 있는 화폐발행권에 도전하는 마윈의 의지가 담겨 있었다.
중국 정부는 대규모 금융위기를 부를 수 있고 정부의 금융 통제력을 훼손시킬 수 있다고 판단했다.
결국 마윈은 면담 한 번 하고 고비 사막으로 떠났다.
“어디가 문제야? 설마 ‘카리브’야?”
“‘카리브’는 안전합니다. ‘카리브’를 통하지 않은 대출이 문제입니다.”
“‘카리브’가 추천하지 않은 대출을 전부 닫아.”
“그럼, 파장이 클 겁니다.”
“괜찮아. 이 시기에 문제가 터지는 것보다 나아.”
“알겠습니다.”
차라리 파이낸싱 사업을 접는 게 낫지, 다시 고비 사막으로 갈 수는 없어.
이때.
삐.
내선 알림음이 울렸다.
“뭐야?”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 CEO가 방문하셨습니다.
“뭐? 예약하고 온 거야?”
-아닙니다.
이 인간이 또 무슨 음모를 꾸미려고.
“일단 접견실로 모셔.”
-네.
툭.
통화를 끊고 마윈이 왕징춘을 바라봤다.
“뭐 짚이는 거 없어?”
“시장 점유율이 점점 떨어지니까 뭔가 딜을 하려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까 무슨 딜?”
“합병이나 인수를 원하는 게 아닐까요?”
“미친.”
그런 일은 절대 없지.
내 뒤에 중국 정부도 있고 투마로우도 있는데.
우리한테 인수를 제안하면 어떻게 하자는 거야?
중국 아마존을 우리가 인수하고 미국 아마존을 투마로우가 인수하면 나는 다시 고비 사막행인데.
왕징춘이 급하게 말했다.
“그럼, 달러 때문 아닐까요?”
“달러? 그래, 달러는 지금 연일 오르고 있지…….”
가만, 달러와 위안화의 가치가 점점 더 벌어지고 있다.
아마존이 중국에서 사업을 시작하고 자그마치 17%나 벌어졌다.
중국에서 아무리 많이 벌어도 달러로 환전하면 17% 이상 손해가 발생한다.
그렇다고 아마존이 위안화를 환전을 안 하고 장기간 가지고 있을 수 없다.
미국이나 유럽 기업에 결제는 달러로 해야 하니까.
알리바바의 상품 구성은 중국산과 유럽산 비중이 대등했지만, 아마존은 미국산과 유럽산 비중이 높고 중국산 비중이 낮았다.
17%면 벌어도 번 게 아니지.
이게 아마존을 인수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 아닐까?
아니면 O2O 사업 부분을 아마존에 팔아?
“일단 가보자.”
“네.”
접견실로 향하는 마윈은 인수에 관한 이런저런 경우를 고민하며 걸어갔다.
접견실에 도착하고 흠, 흠, 목을 가다듬고 문을 열었다.
“아이고, 이런 어려운 걸음을 다 주시고 미리 연락이라도 하시면 준비라도 했을 텐데요.”
하하하하.
“그냥 지나가다 생각이 났을 뿐입니다.”
제프는 애써 크게 웃으며 마윈에게 악수를 청했다.
악수를 나눈 마윈은 제프에게 자리를 권했다.
“자, 앉으시죠.”
둘이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지만 서로 비수 한 자루씩을 숨긴 자객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 지나가다가 무슨 생각이 드신 겁니까?”
마윈의 선공에 제프가 미소를 지었다.
“단도직입적으로 얘기하죠. 아마존과 알리바바가 상품을 분리하는 게 어떠십니까?”
“분리요?”
“예로 우린 미국과 유럽의 상품을 취급할 테니. 알라바바는 중국 제품을 취급하는 겁니다.”
아, 그러니까, 우린 쓰레기를 팔고 넌 명품을 팔겠다는 거네.
“글쎄요…….”
마윈은 말을 얼버무려서 거절의 메시지를 확실히 전달했다.
“하하하, 그게 맘에 안 드시면 패션과 가구로 나누는 건 어떠십니까?”
가볍고 돈 되는 건 네가 하고 무겁고 돈 안 되는 건 내가 하라고?
“그것도 글쎄요…….”
하하하하.
제프가 한바탕 웃고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
“아니면 둘 다 망할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우린 잘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혹시 어려우신 건 아니죠?”
훅 들어오는 마윈의 말에 제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건 나만이 아닌 것 같은데 라는.
“지금 소비가 둔화되고 있는 건 아실 겁니다.”
“잠깐 지나가는 경기 둔화일 뿐이라고 생각하는데요.”
“과연 그럴까요?”
“아닙니까?”
“지금 중국 정부가 양적 완화 통화정책을 쓰고 있는데, 소비가 늘어날 기미가 보입니까?”
마윈이 왕징춘에게 시선을 보내자 왕징춘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시장이 안 좋다는 신호였다.
제프가 찾아오기까지 한 것 보면 시장이 생각보다 정말 안 좋은 모양이네.
알리페이 대출에 문제가 있는 것도 그렇고.
그러면,
내가 먼저 팔아 버리면 되지.
그러다 아마존이 어려워지면 다시 사들이고.
“뭐, 복잡하게 상품을 구분할 필요 없이 아마존이 알리바바의 O2O 분야를 인수하는 건 어떠십니까?”
제프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너무 세게 나오는 거 아닌가?
단지 상품만 따로 팔아도 되는 일을.
지금 시장 점유율도 오르고 있는 분야를 팔아 버리겠다고?
잘나갈 때 팔아 버리는 것도 기업가의 덕목이긴 하지만.
“생각해 볼 만한 제안이네요.”
사실 생각하고 말고 할 문제가 아니었다.
O2O 중국 시장을 다 가져?
미국 아마존은 금리 인상으로 당분간 매출은 감소한다.
하지만 중국은 아직 물가가 오르지 않아서 양적 완화를 더 해야 한다.
기회다.
< 제40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5)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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