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8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4) >
AAG 빌딩 66층.
재준과 윌켄이 ‘블랙’에게 이것저것을 물어봤다.
구매관리자지수인 PIM 지수가 실제 기대치보다 매우 낮게 나왔다.
굉장히 부정적인 신호였다.
“진짜로 소비가 급격하게 얼어붙고 있습니다.”
윌켄의 걱정에 재준은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걱정이 되긴 하지만 우리한테 잘된 일이에요.”
시장에 돈이 넘쳐나는데 소비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연준은 다시 금리를 높여야 하고 물가는 치솟을 것이다.
제조업자에게는 힘든 시기이지만 은행에게는 또 다른 기회였다.
은행이 하는 일이 기준금리에 추가 이자를 붙여서 시장에 대출해주는 게 다인데, 물론 대출 이자가 오르면 부동산 가격이 무너질 수 있다.
2008년 금융위기처럼.
하지만 이미 월가의 인공지능들은 부동산 대출에 대한 파생상품을 잘 관리하는 알고리즘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투마로우는 투자은행인데 부동산 가격이 무너지는 것과 별로 연관이 없었다.
오히려 파산하는 기업을 싸게 살 기회였다.
그래서 아마존을 인수하기 좀 편해졌잖아.
재준과 윌켄이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데.
“아저씨.”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엘리자베스. 어서 와.”
“얼굴이 포동포동한 걸 보니 누군지 괴롭힘을 아주 제대로 당하고 있나 보네요.”
“또, 또, 오자마자 시비는.”
“이번에 보니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지역을 강탈했던데. 괴롭힘의 대상이 또 시앙핑 주석이에요?”
“괴롭힘은 무슨, 서로 상부상조하는 거지.”
흥.
엘리자베스의 눈매가 가늘어지며 재준을 노려봤다.
그리고 풋, 하고 눈을 풀었다.
“근데 세계 시장이 아주 안 좋아요. 미국도 마찬가지인가요?”
“그렇지. 미국이라고 별다르겠어. 그동안 시장에 적용하던 공식이 안 먹히는 상황이 발생했거든.”
‘기억의 길’로 인해 소비가 얼어붙은 상황을 겪어 본 적이 없었다.
사우디와 전쟁까지 치르며 겨우 잡았던 물가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돈이 시장이 풀릴 만큼 풀렸는데도 소비가 경색되어 버리니 기업은 상품의 가격을 올릴 수밖에 없었다.
물가가 오르니 연준은 금리를 인상할 수밖에 없고.
중요한 건 금리 인상의 바닥을 확인했다고 생각했는데 바닥이 아니었다.
“언제 좋아져요?”
“글쎄, 아직 지하실 확인이 안 되고 있는데, 이제 경기 둔화잖아. 진짜 위기인 경기침체는 아직 오지 않았어.”
경기 둔화와 경기 침체, 절대 헷갈리면 안 된다.
“그래프도 좀 이상했어요. V자가 아니라 L자형에 가깝던데. 있잖아요. L자인데도 올라가는 L자가 아니라 좀 꺼지는 L자.”
엘리자베스가 손가락으로 미끄러지는 L자를 그렸다.
“오, 공부 많이 했구나? 경기 곡선도 알고.”
“인도가 많이 안 좋아요. 오늘 아침에 보니까 채권시장안정 펀드 뭐 그런 이야기도 하는 것 같던데.”
채권시장안정 펀드는 채권시장 경색으로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유동성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한 펀드다.
“금리가 너무 높고 기업들에게 자금줄이 없으니까.”
“주식이 엄청 떨어졌는데 우리도 위험한 거예요?”
“우리? 전혀 상관은 없는 건 아니지만 딱히 걱정할 필요도 없어. 우린 제조업이 아니잖아.”
“그럼 제조업은 위험한 거예요?”
“많이 위험하지.”
기업의 자본은 자기자본과 타인 자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자기자본은 당연히 주식이다.
주가가 떨어지면 자기자본금이 줄어들면서 안정성이 떨어진다고 본다.
안정성이 떨어지면 부채비율이 높아지고 자기자본 대비 타인 자본이 많아지게 된다.
부채 규모가 크니까 부채의존도가 높아진다.
근데 빚에라도 의존해서 기업을 이끌어갈 상황이면 좋겠는데 기업에 대출해줄 수 없는 상황이다.
소비가 침체됐는데 기업에 어떻게 대출을 해 줄 수 있겠는가.
“미국은 얼마나 위험한 거죠?”
“글쎄. ‘블랙’.”
【네.】
“영업 이익으로 이자를 못 갚은 업체 비율이 어느 정도 예상되지?”
【30% 이상이 영업 이익만으로는 이자를 못 갚을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렇다네.”
“내가 들어도 심각하네요.”
“근데 이게 끝이 아니지. 중요한 것은 금리의 고점이 아니라는 거야. 더 추가적으로 상승할 가능성이 높아.”
금리가 더 오르면 30%가 아니라 50%의 기업이 될지도 모른다.
“불어나는 이자를 어떻게 기업들이 상환해요?”
“사업 중에서 지금 당장 돈 되는 사업은 유지하고 돈은 안 되는 사업은 정리해야지. 예산 많이 투입하고 R&D 예산 투입하고 또 신규 고용, AI 인력 채용, 이런 영역을 일단 정리해야지.”
아마존이 벌여 놓은 사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감이 오네.
고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게 지표들로만 확인된 일이지 아직은 큰 변화가 없다고 느낄 수 있다.
지금은 경기 둔화지, 경기침체가 아니니까.
체감하는 경기와 실질 경제는 좀 차이가 있다.
경제전문가라면 금리 인상 기조가 나타나기 시작하고, 테이퍼링이 시작되고, 테이퍼링이 끝나면 금리가 인상할 것이다, 라는 시나리오는 다 알고 있는 그림이다.
테이퍼링은 연방준비제도가 양적 완화 정책의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해 나가는 것으로 코로나 때 무자비한 양적 완화 이후 테이퍼링, 금리 인상은 당연한 수순이다.
소비침체로 상황이 더 악화되어서 문제지만.
전문가들은 금리 인상의 시대가 올 것을 알고 있었다.
파티는 끝난 걸 알고 있으면서 이를 조장한 인간들이 바로 전문가 집단이다.
연방준비제도.
환율이 떨어지고 금리 떨어질 때면 어김없이 또 이용한다.
완화의 시대 뒤에 긴축의 시대가 오는 건 당연한 거 아닌가 뭐라나 하면서.
미국이 갑자기 금리 인상을 치고 나가면 바로 뒤에서 치고 나가는 나라가 유로존, 영국, 스웨덴 같은 유러피안 국가들이다.
왜? 물가가 10%대니까.
에너지를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는 그냥 10% 간다.
이러니 어떻게 금리를 안 올릴까.
그런데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게 있다.
연준이 금리를 올릴 때마다 금융기관에서 자꾸 정점을 찍었다고 강조한다.
지금이 정점이다, 지금이 바닥이다, 소비자물가지수인 CPI 그렇게 높지 않다, 뭐 이런 말들을 쏟아 내면서.
그런데 금융기관으로서는 시장을 오해하게 만들어야 자신들이 먹고산다.
금융기관이라고 하면 은행, 증권사 등등.
자신들이 기업 자산을 잔뜩 가지고 있으니 이걸 팔아서 가능한 한 많은 현금 자산을 확보해야 한다.
이걸 누구한테 팔겠는가? 우리 같은 개미지.
금융기관은 금리를 결정하는 기관이 아니다.
금리는 누가 올리는가? 미국 연준이다.
그리고 각국의 국책은행이다.
금융기관이 아무리 정점이네, 바닥이라고 헛소리를 지껄여도 금리는 올라가게 되어 있다.
그럼 언제까지 금리를 올릴까?
연준의 목표는 물가 2%다.
연준은 물가가 2%까지 내려갈 때까지 금리를 인상한다.
지금 물가가 10%니까 아직 한참 더 올려야 한다.
여기저기 곡소리가 진동할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설마 연준이 가계 부채나 부동산 폭락을 모르겠어? 라고 생각한다.
금리가 인상하면 가계 부채가 올라간다고?
그게 연준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연준은 아예 가계 부채에는 관심도 없다.
집값 폭락?
이건 미국 주택 도시개발부가 걱정할 일이지 연준의 일이 아니다.
연준은 2%라는 목표 물가를 이룰 때까지는 긴축적 통화정책 스탠스를 유지해야만 한다.
“아저씨, OPEC이 감산하면 연준도 생각이 달라지지 않을까요?”
“뭐? OPEC?”
“아닌가?”
“아니지.”
“진짜?”
“OPEC이 감산에 합의하면 실제로 감산으로 이어지나?”
“합의했는데?”
“그 감산 합의 왜 하는지 알아?”
쯧쯧쯧.
재준은 혀를 차며 말을 이었다.
“감산 합의하면 너도나도 원유 공급량을 줄이고 생산량을 줄일 거라 예상해서 국제 유가가 올라가겠지. 근데 그중에 꼭 몇 놈이 감산 안 하고 석유를 팔아요. 돈 벌려고. 그래서 합의하는 척하는 거야.”
“약속을 안 지킨단 말이에요?”
“아니, 봐봐. 그 OPEC 회원국이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뭐, 이런 나라들이야. 최강대국 미국 말이 씨알도 안 먹히고 핵 제재도 안 되는 나라들이잖아.”
“그렇게 무식하다고요?”
“내가 주요 국제기구들의 리포트들은 챙겨 보고 있는데, 그거 알지? IMF 보고서, 혹은 월드뱅크 보고서, OECD 보고서. 이거 몇백 페이지짜리 보고서인데 10여 년 동안 이 보고서 보면서 한 번도 오탈자를 본 적이 없어.”
“아저씨 그런 것도 봐요?”
“당연하지. 기본 중의 기본이지. 어쨌든 근데 매번 OPEC에서 감산 합의 도출했다고 서류가 날아오는데 달랑 한 장이야. 그리고 그 한 장 안에 오탈자가 수두룩해.”
“그렇게 허술하다고요?”
“그렇다니까.”
“감산을 안 하면 물가는 더 올라가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좀 심각하다고 하는 거야. 에너지 위기에, 식량 위기에, 기후 위기까지 여러 가지 변수들이 다 등장해서 인플레이션 잡기가 어려울지도 몰라.”
“금리를 또 올리겠네요.”
엘리자베스의 표정이 굳었다.
“어쩔 수 없어. 그래서 연준이 죽자고 물가에 매달리는 거야. 누가 옆에서 죽든 말든 물가부터 잡고 보는 거라고.”
“죽든 말든…….”
“일부러 경기 침체를 유인하는 거야. 용인하는 거라고. 경기침체가 필요하다고 보는 거야. 만약 못 잡으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니까.”
경기가 부진한 상황에서 물가가 계속 큰 폭으로 오르는 스태그플레이션이 다시 대두되기 시작했다.
사우디 전쟁에서 승리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의 공포에서 벗어나는가 싶었지만, 지금의 세계 경제는 꼭 스태그플레이션을 겪어야 끝날 것만 같이 계속 경기 둔화가 반복되었다.
그리고 하나 더.
“사람들이 물가 상승률이 지난달보다 낮아졌다고 안심하는데 절대 아니야.”
“물가가 아니라 상승률이요?”
“맞아.”
자, 100원, 200원, 300원으로 물가는 점점 올라간다고 쳐보자.
100원에서 200원이면 100% 오른 거고, 200원에서 300원은 50% 오른 거다.
이게 상승률이 둔화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격은 계속 올라가고 있다.
국가가 모두 다 가난해진다.
기업도 가난해지고, 가계도 가난해지고, 정부도 가난해진다.
세금이 안 걷히는데 정부라고 버틸 수 있는 건 아니다.
그게 스태그플레이션의 모습이다.
정부가 돈이 없어서 뭘 하지도 못하고 시장이 무너지는 걸 지켜만 보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다.
그리고 하필이면 가장 높은 물가상승률을 미국이 먼저 맞이했고 그 뒤를 줄줄이 따라간다.
그런데 미국은 경기가 매우 강하게 뒷받침되어 있는 나라다.
자그마치 22년 동안.
고용도 완전 고용이고.
그러니까 경기는 이미 잡혀 있고 높이 올라가는 물가상승률만 잡으면 됐다.
하지만 다른 나라는 경기를 못 잡은 상태에서 물가 잡겠다고 금리 인상하면 경기는 어떻게 될까?
미국을 따라 하면 죽을 수도 있다.
그래서 미국이 빅스텝 하면 베이비스텝 하고 자이언트스텝 하면 빅스텝 하는 식으로 따라간다.
그러니 미국과 격차가 점점 벌어지고 만다.
금리는 돈의 가치인데 달러가 다른 나라보다 멀리 달아나 버리면 돈의 가치를 상대적으로 떨어져 버린다.
환율은 돈의 교환비율이다.
어쩔 수 없이 다른 나라들은 뒤늦게 강도 높은 금리 인상을 할 수밖에 없다.
미국 같은 무역 적자국은 소비자물가를 잡으려면 먼저 수입물가를 잡아야 한다.
미국이 강달러를 유지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강달러는 수입물가를 잡는 데 아주 유리하니까.
미국은 1년 이상 금리를 올리게 될 것이다.
그런데 놀라운 나라가 있다.
바로 중국.
중국은 기준금리를 인하하는 배짱을 보여주고 있다.
역시 소비 둔화가 경기침체로 향하는 건 다른 나라와 마찬가지다.
경기가 안 좋으니까 완화적 통화정책을 유지하고 있다.
돈을 좀 쓰라는 소리다.
이게 다 ‘블랏아웃’ 덕분이다.
다 좋다. 뭐 경기침체에 돈 쓰라는데 뭐라 그럴 사람이 있을까.
근데 통화가치는 어떻게 할 건데?
중국의 통화가치가 떨어진다?
그러면 아시아 전체가 흔들리게 된다.
이게 테킬라 효과라고 하는데 위험한 국가 주변국들은 다 똑같이 취급을 당하는 현상을 말한다.
일본과 한국이 같이 취급을 받는다.
일본은 오히려 좋아하려나?
30년째 제발 인플레이션 좀 되게 해 주세요, 라고 기도하는 나라니까.
지금도 일본은 제로금리로 미국과 반대의 길을 걷고 있긴 하다.
그럼 한국은 뭐냐?
뭐긴, 망하는 거지.
어쨌든, 이제 중국과 미국이 정반대로 위험 요소를 가지고 있다.
중국은 바닥에 있고 미국은 천장에 있다.
둘 다 그렇게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 제408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4)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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