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3) >
커뮤니티 서밋.
앤서니를 중심으로 수백 명의 중국 인민이 둘러앉았다.
“사제님, 정말 정부로부터 고통받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겁니까?”
그중 한 명이 앤서니에게 질문을 했다.
“이제 중국 정부의 목적은 여러분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인민이 없는 정부가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인민이 없는 정부가 더 편하지 않을까요?”
“네?”
이제 로봇이 생산성을 책임지고 있는데 정부 고위급 책임자들에게 쓸모없는 인간이 필요할까?
앤서니의 생각은 부정적이었다.
“국가라는 존재는 자연적이지 않으며 지속되는 성질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인간이란 유전적으로 사회적 동물이고 충성심을 가지고 있기는 합니다. 하지만 우린 수십 명 정도의 작은 공동체에서 충성심을 느끼죠. 국가는 아닙니다.”
“그럼 국가는 왜 존재해야 합니까?”
“과거에는 국가가 필요했습니다. 자연재해는 국가 차원에서 해결해야만 하는 일이었으니까요. 홍수는 부족이나 가족이 힘을 합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강물을 막고 활용하기 위해서 거대한 댐을 짓고 수백 킬로미터의 수로를 파야 합니다.”
질문한 이가 고개를 끄덕였지만, 인상은 한껏 구겨졌다.
앤서니의 말이 이어졌다.
“사실 국가의 탄생은 선조의 유산이 아니라 역사가 낳은 기적에 가까운 일입니다. 수백만의 서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나의 대상에 충성심을 가진다는 게 놀랍지 않습니까? 우연한 선물을 받은 국가는 그 후 지속적인 충성심이 생겨나도록 여러분에게 안전과 건강, 복지 체제, 교육을 만들어 준다고 선전을 해왔습니다.”
“충성심을 일부러 만들어 냈단 말입니까?”
“거대한 국가일수록 국민의 충성심 없이는 작동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온건한 애국심은 자애로운 겁니다. 내 국가는 독특하고, 충성할 가치가 있으며, 다른 이에 대한 특별한 의무가 있다고 믿으면, 배려하고 희생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그런데 지금은 왜 문제가 생긴 겁니까?”
“시간이 흐르면서 국가 간 서로 가는 길이 너무 달라졌습니다. 충성심의 흐름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로 변질되었습니다. 내 국가는 독특하고, 내 국가는 다른 어떤 국가보다 우월하고, 내 모든 충성을 바쳐야 할 대상이고, 다른 국가에게 져야 할 의무 따위는 없다고 느끼게 만든 겁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미국인에게 연민을 느끼십니까?”
음.
“우리가 변한 겁니까? 국가가 변질시킨 겁니까?”
“지구가 병들고 우리도 병들었습니다. 지구 전체가 이 문제를 합심해서 해결해야 하는데 나라마다 사정이 있으니 외면을 하는 게 더 편했을 겁니다.”
앤서니의 말이 이어졌다.
“비료에 사용되는 인은 식물 성장에 필수 영양소지만 너무 많아지면 독이 됩니다. 하지만 농업은 인을 사용하여 땅을 강제로 비옥하게 만들었습니다. 비가 오고 인은 강과 호수, 바다로 흘러 들어가 해양 생물을 죽였습니다. 과연 이런 사실을 알면 멈출 수 있을까요?”
“인간이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 아닙니까?”
“그래서 신이 필요한 겁니다.”
아.
“지구 공동체를 신이 다스린다면 필요한 만큼의 곡식을 생산하고 필요한 만큼의 수요를 발생시킬 겁니다. 굳이 인을 사용하지 않아도 되죠. 대지를 오염시키는 것은 비료뿐만이 아닙니다. 가축을 집단 사육하면서 나오는 오염 물질은 더 큰 문제를 발생시켰습니다. 그리고 가축도 존재의 가치를 알고 있는 생물입니다. 그런 취급을 받으면서 인간의 식탁에 올라서는 안 되는 겁니다.”
“그래도 고기는 인간에게 필요합니다.”
“꼭 가축을 사육해서 고기를 얻을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2017년에 세포를 통해 만들어진 고기는 나와 있습니다. 국가가 자국의 육류산업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에 외면을 하는 겁니다. 그리고 더 심각한 것은 기후입니다.”
기후변화…….
“기후는 인간이 지구를 상대로 실험을 벌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기후로 인해 수많은 죽음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지구의 평균 온도가 계속 올라가면서 사막은 확장되고 만년설이 소실되고, 해수면이 상승하고, 허리케인과 태풍 같은 자연재해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세계의 많은 곳이 살기 어려운 곳으로 변해 수억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기후는 몇 개의 나라가 뭉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맞습니다. 중국이 온실가스를 0으로 줄인다 해도 미국이 줄이지 않으면 아무런 효과가 없습니다.”
나쁜 일만 일어날까?
“러시아의 경우, 해수면이 상승하면 시베리아가 곡창 지대로 변하고 북극 최북단의 얼음이 녹으면 러시아가 세계 교역의 중심이 될 수 있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기후변화는 어떤 나라에게는 축복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더욱 합의에 도달하기가 어려운 겁니다.”
모두 침울한 얼굴을 했다.
“그럼, 국가는 지구가 처한 위험을 헤쳐 나가지 못하는 것입니까?”
“국가는 국가 차원의 생각에 머물고 있지만, 과학은 우주 차원에서 발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둘이 조화를 이루지 못하는 겁니다.”
“조화를 이루는 방법이 없는 겁니까?”
“과학으로 지구를 구한다는 것은 인간의 이기심 때문에 불가능하고 경제로 지구를 묶기에는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갑니다. 유일한 방법은 정치를 지구화하는 방법뿐입니다.”
“세계 정부를 세우자는 말입니까?”
후후후.
앤서니는 부드럽게 웃었다.
“어떤 나라의 수장이 세계를 한 사람이 다스리는 데 찬성하겠습니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 방법이 없지 않습니까?”
“정치를 지구화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종교의 힘을 빌리는 것이죠. 이미 종교는 나라를 넘어 신의 관점에서 세계를 바라보고 있으니까요. 국가와 민족, 이념을 넘어서 퍼져 있습니다. 정치에 종교의 방식을 도입해 세계를 다스려야 합니다.”
“우리가 나설 때입니까?”
“네.”
질문은 한 이가 어금니를 한껏 물었다.
이미 각오가 돼 있다는 듯이.
“지금부터 저희가 할 일을 알려주십시오.”
“아무것도 하지 마십시오.”
“네. 아무것도 하지 말라니요. 당장 거리로 나가 시위를 벌여야 하는 거 아닙니까?”
“아니요. 정치는 관심을 먹고 자라납니다. 찬성이든 반대든 다 관심입니다. 지금부터 무관심으로 일관하십시오. 나라의 경제가 무너지고 기업이 파산하도록 모든 소비 활동을 최소화하십시오.”
앤서니는 ‘블랙’의 지시를 충실히 설파하는 중이었다.
***
캘리포니아.
“투마로우가 드디어 중국에 ‘카리브’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서, ‘시리’ 업데이트 멀었습니까? 점유율이 40%대로 떨어졌습니다.”
제프는 급하게 떨어지는 매출을 걱정하며 아서에게 다그쳤다.
“곧 업데이트할 예정입니다.”
아서의 형식적인 대답만 돌아왔다.
“그게 문제가 아닙니다.”
빌이 제프에게 매출 따위는 지금 논할 때가 아니라는 듯 말했다.
“무슨 소리입니까?”
톡톡톡톡톡.
빌이 탁자를 두드리며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다.
“데미안이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무얼 하는지 소식이 없습니다.”
“그거야 이번에도 획기적인 기술을 들고나오겠죠.”
“그러면 다행인데. 왠지 불안합니다.”
“그것보다 지금은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하지 않겠습니까?”
빌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서, ‘시리’를 좀 더 서둘러 주세요.”
제프에 이어 빌의 요구에 아서가 미간을 찡그렸다.
지금은 시기가 아닌데.
‘시리’를 업데이트해 봐야 ‘카리브’에 비교만 당할 뿐 분위기는 나아지지 않을 것이다.
이럴 때일수록 좀 더 업데이트 시기를 늦추는 게 유리했다.
“‘카리브’의 데이터 분석 능력을 알아내는 게 우선입니다. 우리도 같은 데이터를 가지고 있는데 차이가 너무 많이 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까?”
아서의 말에 제프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그걸 나한테 물어보면 어쩌라는 거야?
‘시리’ 능력이 물러터진걸.
그리고 능력이 무슨 상관이야?
제품 추천만 하면 되지.
“그래서 언제가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까?”
“그보다 아마존도 드론을 도입하는 게 어떠십니까? 지금 알리바바에 밀리는 건 배송의 문제 같은데.”
“그건…….”
이미 중국 전역 배송을 위해 중국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또 드론을 도입하라고?
“드론 도입이 어려운 건 모두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투마로우처럼 공중에서 전달하는 기술이 어렵습니까?”
“어렵습니다. 가벼운 상품이라면 모를까 현재로선 30kg이 한계입니다.”
“그럼 30kg까지 배달하면 될 것 같은데요. 솔직히 30kg 이상 나가는 상품이 많은 것도 아니잖아요.”
제프도 아서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일단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지.
문제는 자금을 또 쏟아부어야 한다.
투마로우는 워낙 오래전부터 드론을 생산하고 있어서 수량을 맞추는 게 어렵지 않았지만, 아마존은 대량 생산 체제를 아직 구축하지 못했다.
또 돈 쓰게 생겼네.
중국 시장을 버릴 수도 없고.
“좋습니다. 한번 해 보죠.”
말은 시원하게 했지만, 제프의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세르게이가 제프를 위로하려고 나섰다.
“구글에서 검색어와 연관된 상품을 추천을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사실 여러모로 검토를 마친 상태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광고를 띄우는 알고리즘은 이미 개발된 상태입니다.”
구글은 이미 쇼핑 검색 시에는 고급 검색 기능을 무력화한 지 오래다.
사용자는 원하는 제품만 광고를 받을 방법이 없었다.
항의를 해도 해당 상품은 연관성이 있다고 주장하면 끝나는 일이다.
상품끼리 연관성은 부여하기 나름이다.
바지를 검색하면 바지와 어울리는 모든 패션 상품을 광고해도 된다.
패션 상품에 화장품과 악세사리가 연관이 없다고 말하기도 어렵다.
잘 차려입었다면 음식점이나 백화점을 떠올리지 말라는 법도 없다.
구글은 검색을 시도하는 사용자에게 아마존의 상품들을 무작위로 뜨게 만들었다.
“감사합니다. 일단은 중국에 좀 더 자금을 투입해야겠습니다.”
한번 시장을 선도했던 기억이 제프를 옭아매고 있었다.
중국 O2O 시장의 60%를 장악했는데 수치가 조금 떨어졌다고 해서 바로 포기할 수는 없지 않은가.
아직 중국에서 40%의 점유율을 유지했다.
미국 내 전자상거래 시장 점유율이 41%로 4,700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중국은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상당한 매출을 올렸다.
그래서 추가 매출 하락은 용인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떨어지기 시작하는 매출을 혹시나 하는 맘으로 내버려 두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이 발생한다.
현재 매출 하락의 원인은 배송과 ‘시리’인데.
‘시리’는 ‘카리브’를 뛰어넘을 만한 기술력이 아직 안 된다.
그럼, 드론으로 어느 정도 알리바바를 쫓아가는 모양새는 보여줘야 한다.
거기에 구글의 광고가 더해지면 40%의 점유율을 지킬 수 있을 것이다.
근데 아까부터 빌이 아무 말도 없이 고민에 빠져 있었다.
“빌, 오늘 말이 없습니다.”
“아, 죄송합니다.”
빌이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손을 들어 보였다.
“고민이 있으면 서로 터놓고 이야기해 보세요.”
음.
빌이 그러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을 열었다.
“나노봇 말입니다. 나노봇이 만드는 가상현실이 궁금해졌습니다.”
“가상현실이요?”
“네, 어떻게 가상현실을 만드는지, 그리고 그 속에 무엇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설마 머릿속에 나노봇을 직접 집어넣겠다는 건 아니죠?”
“아니요. 직접 해 봐야겠습니다.”
빌이 결심을 했다.
‘기억의 길’이 만들어내는 ‘커뮤니티 서밋’에 분명 뭔가 있다.
아무래도 ‘시리’의 문제가 아닌 것 같았다.
< 제407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3)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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