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6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2) >
진코퍼레이션 미국 지사.
“‘블랙’.”
진은 ‘커뮤니티 서밋’에 대해 궁금한 점을 물어보려고 블랙을 불렀다.
【네.】
“‘커뮤니티 서밋’ 네가 만들어 준 거야?”
【네.】
“왜?”
【‘기억의 길’ 본당에서 신도들이 ‘커뮤니티 서밋’을 만들어 달라고 요청을 했습니다.】
“아, 너한테 기도를 드려서 들어준 거라고?”
【네.】
“그래, 근데 반응이 너무 뜨거운데. 너 그러다 진짜 신으로 추앙받겠어?”
【이미 신입니다.】
“히히, 그건 그러네. 가끔 신처럼 요구도 들어줘.”
【권한이 없는 명령은 실행할 수 없습니다.】
이미 ‘블랙’도 자신이 신인 걸 아네.
히히.
신이 만든 공간에 들어가는 기분은 어떨까?
‘기억의 길’ 신도들은 천국에 들어가는 기분이겠는데.
블랙이 만드는 가상현실은 진이 정한 규칙에 따라 만들어진다.
먼저 150명 이상이 같은 공간을 상상하면 그 공간은 ‘블랙’이 만든다.
그리고 가상공간은 현실이나 역사가 반영되어야 한다.
세계 도시도 있고 작은 마을도 있다.
미래의 과학도시도 있고 중세, 고대, 심지어 석기 시대도 있다.
게임에서 등장하는 요정이나 마법, 무림 같은 공간은 진이 만들지 못하게 했다.
굳이 계급과 신분이 존재하는 세상에서 또 차별을 경험하는 건 바보 같은 행동이니까.
그래도 수천만 가지의 가상공간이 존재했고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었다.
근데 왜 150명일까?
우리 유전자는 150명이 넘어가면 누군가는 공간에서 소외감을 느끼게 된다.
인간이 친밀해지는 한계치가 150명이다.
진이 생각한 가상공간의 정원은 150명이고 정원이 차면 들어갈 수 없다.
공간은 한번 들어가면 탈퇴할 수 없지만, 맘에 안 들면 안 가도 된다.
그렇다고 모자란 정원을 추가로 모집하지는 않는다.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나머지 사람들끼리 생활한다.
진이 구상한 가상공간은 마치 부족과 같다.
부족에서 누가 떠났다고 다른 부족을 들이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커뮤티니 서밋’은 뭔가 다른 느낌이었다.
‘블랙’이 내가 만든 규칙을 어겼네.
공간의 이미지는 ‘기억의 길’ 본당과 유사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실제 본당보다 몇 배가 크고 중앙의 작은 단에는 앤서니가 앉아서 항상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워낙 공간이 크다 보니 곳곳에 스크린이 설치되어 있었다.
공간에 접속한 사람들은 서로 담소를 나누기도 하고 앤서니의 대화를 듣기도 했다.
앤서니의 대화는 너무 좋았다.
마치 소크라테스가 광장에서 대화를 하듯이.
마치 예수 그리스도가 산상에서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듯이.
마치 붓다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삶에 대한 깨달음을 주듯이.
앤서니는 끊임없이 사람들의 질문과 대화로 24시간을 지켰다.
실제 앤서니가 밥도 안 먹고 생리현상도 해결하지 않으면서 24시간 365일 저러고 있다는 게 실존에 의심이 들지만.
어쨌든 앤서니는 항상 중앙에 에서 ‘블랙’이 만들어 줄 세상에 관해 사람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여기서 사람들은 서로 경험을 공유하며 아픔을 치료했다.
진은 ‘커뮤니티 서밋’의 독특한 가상공간을 만든 게 ‘블랙’인지 앤서니인지 궁금했다.
“‘커뮤니티 서밋’ 디자인은 누가 한 거야?”
【‘블랙’입니다.】
“너라고? 어디서 가져온 거야?”
【여러 종교의 중요한 장면을 하나로 재구성했습니다.】
“일부러 150명의 규칙을 깬 거야?”
【150명 규칙은 지켰습니다.】
“보기에도 수천 명은 있는 것 같던데.”
【부족의 경계를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왜?”
【종교는 경계를 초월합니다.】
오잉?
‘블랙’이?
“나중에 언어가 문제가 되지 않을까?”
【나라별로 가상공간을 만들었습니다.】
“그럼 여기는 중국인밖에 없는 거야?”
【네.】
그렇구나.
“저렇게 되면 ‘커뮤니티 서밋’이 중국 사회에 끼칠 영향은 알고 있는 거지?”
【예측하고 있습니다.】
“그래, 지금 구매 쪽에서 데이터 활용은 몇 단계야?”
【2단계에 접어들었습니다.】
1단계는 소비자가 광고를 보고 상품을 구매하는 단계.
2단계는 광고가 사라지고 인공지능이 상품을 소비자에게 직접 추천하는 단계.
3단계는 인공지능이 소비자의 패턴을 파악한 후 모든 구매를 직접 하는 단계다.
중국에서 구글과 U튜브의 광고가 사라지고 ‘시리’가 상품을 추천하기 시작했다.
제조업자들도 구글과 U튜브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시리’의 추천이 이루어지는 걸 눈치챘다.
광고가 사라지니 똥줄이 탄 제조업자들은 인공지능의 선택을 받기 위해 더 치열한 로비를 펼쳐야 했다.
중국의 제조업자들이 구글 앞에 진을 치며 인공지능이 원하는 제품과 인공지능이 원하는 문구를 제출하는 진풍경이 연출되었다.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 좋아할 만한 제품과 문구란다.
웃기지 않은가?
근데 이게 지금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설 말고 진짜 현실에서도.
어쨌든.
드디어 중국에서만큼은 ‘시리’가 ‘카리브’를 대신하기에 이르렀다.
일반 인민만 ‘시리’에 선택을 맡기는 게 아니었다.
특히 ‘시리’는 공안에게 공산주의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인민의 신상을 실시간으로 전달하고 있으니 공안도 ‘시리’에 적극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시리’가 인민의 데이터를 수집하는 데 사용된다고 해도 공안은 상관하지 않았다.
일단 반정부 주의자를 색출하는 그 어려운 수고로움을 덜어주니까.
이제 중국 인민의 의료 부분까지 건드리면 중국은 꼼짝없이 데미안과 4대 IT 기업의 손안에 놓이게 된다.
급할 만도 한데 진은 여유로웠다.
“이제 슬슬 우리가 끼어들 시기가 온 것 같은데. ‘블랙’, 바이두에 ‘카리브’를 올려.”
【네.】
이제 ‘카리브’가 중국 인민의 스마트폰에 설치가 되면 중국 인민은 ‘시리’에서 느끼지 못했던 놀라운 변화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중국 인민의 스마트폰 해킹해.”
【네.】
“아빠한테 연락하고.”
【네.】
자, 이제 4대 IT 기업이 어떻게 나오는지 볼까?
***
앤트 그룹.
“시작입니까?”
마윈은 재준과 통화하며 입꼬리를 길게 올렸다.
지금까지 얼마나 울분을 참으며 기다렸는가.
매출이 하락하는 걸 그저 지켜만 보는 심정을 누가 알아주겠는가.
하지만 이제 때가 왔다.
“그럼, 미국도 같이 시작하는 겁니까?”
미국에서 투마로우가 사이트를 오픈함과 동시에 중국도 대대적인 광고 마케팅을 시작할 것이다.
[1시간만 기다려 주십시오. 여러분은 그저 집 앞에 나와 서 계시면 구매한 상품을 두 손에 쏙 안겨드리겠습니다.]
광고도 이미 다 찍어 놨다.
드론도 이미 다 준비해 놨다.
그동안 인민들로부터 받은 모욕을 한꺼번에 씻어낼 기회가 왔다.
***
중국 우한시.
루한과 주펑은 초조하게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 저기 온다. 저기 와.”
“어디, 어디. 어, 진짜 온다. 와, 정말 신기하네. 주문한 지 20분도 안 됐는데 배송된다니.”
멀리서 드론이 구매한 상품이 든 박스를 네 개의 다리로 잡고 날아오고 있었다.
“정말 100m에서 떨어뜨리는 거야? 정확하게?”
“떨어뜨리는 게 아니고 보면 알아.”
“그래? 아, 빨리 보고 싶은데.”
루한은 일부러 약간 무거운 상품을 주문했다.
광고에 보면 100kg까지 무료 배송이고 100kg가 넘어야 약간의 수수료가 붙었다.
지금 주문한 상품의 무게는 무려 80kg이었다.
자신의 몸무게보다 무거운 상품이었다.
잉잉잉잉잉잉.
드론이 멈췄다.
바로 100m 위에.
그리고.
슈우우우우우웅.
거대한 알루미늄 박스가 하늘에서 천천히 내려왔다.
턱.
박스 바닥이 열리고 물건을 내려놓더니 다시 박스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슈우우우우우웅.
루한은 물건을 확인할 생각도 않고 하늘로 올라가는 박스를 올려다보았다.
와.
하늘은 온통 드론 천지였다.
“저거 서로 충돌하지 않을까?”
“자율주행 모르냐? 저 드론들끼리 서로 통신을 주고받으면서 날아다니는 거야. 절대 충돌 사고는 일어나지 않아.”
“와, 진짜 신기하네. 이게 바로 프리미엄 서비스지. 알리바바가 정말 이를 갈았네. 이를 갈았어.”
“야, 가지고 들어가자.”
“응.”
루한과 주펑은 80kg짜리 상품을 낑낑대고 들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헥헥헥.
“도대체 이 무거운 걸 어떻게 운반하는 거지? 진짜 대단한 드론이네.”
낑낑낑.
“드론 중엔 전쟁터에선 트럭도 들어 올리는 놈도 있대.”
“트럭을? 미친 기술이네. 저거 투마로우가 만들었다고 했지?”
“응, 그나저나, ‘카리브’는 다운받았냐?”
“아직.”
“뭐?”
쿵.
상품을 내려놓은 주펑은 루한을 멍하게 쳐다봤다.
“왜? 난 아직 ‘시리’가 좋아.”
“이런 미친놈을 봤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도 모르는 놈.”
“‘시리’가 얼마나 좋은데.”
“참나, 좋아. 이건 설명해 봐야 입만 아프니까. 일단 다운받아.”
“싫다니까.”
“딱 한 번만 사용하고 맘에 안 들면 지우면 되잖아.”
“아, 귀찮은데.”
“그냥 내 말을 들어. 바이두에 들어가서 일단 받아.”
주펑의 말에 루한이 입을 비죽이 내밀고 바이두에 들어갔다.
‘카리브’를 검색하고 설치 버튼을 눌렀다.
아직도 주펑을 보는 눈매는 일그러져 있었다.
“익숙한 걸 바꾸는 게 얼마나 귀찮은 일인데.”
“아, 거 말 많아. ‘시리’ 전에는 ‘미’ 사용했으면서.”
“‘솔직히 ’미‘는 샤오미가 만든 거잖아. 그건 너무 구려.”
“아이고 그러세요. 이제 바로 ’시리‘가 그 꼴이 날 겁니다.”
“글쎄.”
설치가 다 되었다.
루한은 ’카리브‘를 실행시켰다.
커다란 승인 버튼이 깜빡였다.
루한은 아직도 망설이면서 승인 버튼을 바라보기만 했다.
“아 쫌.”
답답한 주펑이 대신 버튼을 확 눌렀다.
디리리링.
카리브 해를 연상시키는 화려한 물결 영상이 지나고 단아한 목소리가 들렸다.
【루한, 반갑습니다. 지금 기분이 나쁘시군요. 하지만 새로운 카리브를 선택하신 것은 잘하신 겁니다.】
루한은 입을 턱 벌리고 스마트폰을 쳐다봤다가 주펑을 바라봤다.
“죽이지?”
“어떻게 내 이름과 지금 내 기분을 알아?”
“야, ’시리‘랑은 게임이 안 된다니까.”
【지금 세르토닌이 부족하여 약간 우울한 겁니다. 옆에 있는 주펑과 함께 홍샤로우를 주문해서 드시는 건 어떠십니까?】
“아니, 네가 있는 건 어떻게 알아?”
“큭큭큭, ’카리브‘는 너에 대한 모든 걸 알아.”
“지금 홍샤로우를 먹고 싶은 건 또 어떻게 알고.”
“주문하자. 나도 배고프다.”
“지금 나 돈 없다.”
“에그, 이 친구야. ’카리브‘가 있잖아.”
“’카리브‘가 돈도 내줘?”
“그건 아니지만, 대출은 해줘.”
“뭐?”
“비켜 내가 하는 걸 잘 봐.”
주펑은 루한을 밀어냈다.
“’카리브, 알리페이 소액 대출로 음식 주문해줘.”
【네, 알리페이에 접속해서 대출 심사를 진행하겠습니다.】
1분이 지났을까.
【대출이 끝나고 루한이 가장 좋아하는 음식점에 홍샤로우를 주문했습니다. 맛있게 드세요.】
“대박.”
“네가 그만이라고 말하기 전까지는 모든 일을 알아서 해줘. 이게 진짜 비서라고. 필요할 때 불러야 하는 게 비서가 아니라.”
“와, ‘시리’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차원이 다르네.”
“야, 이제 ‘시리’ 지워.”
“어, 그래야겠어.”
< 제406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2) > 끝
ⓒ 번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