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5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1) >
-이야, 역시 구글이네. 엄청 빨라.
-이번에 업데이트된 ‘시리’가 대박이지. 긴급 상황에 주변 경찰서와 병원에 자동으로 연락을 취해서 주인을 보호해 준다잖아.
주인의 허락을 받지 않고 스스로 연락을 취한다?
이 편리함이 진짜 ‘시리’의 능력인지 아닌지 중국 인민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당연히 ‘이런 능력이 있겠지’라고 지나갔다.
-아마존 사이트 뜬 거 봤냐?
-나 완전 지릴 뻔했다.
-세계 명품들로 도배가 되어 있어. 그것도 괜찮은 가격대로.
-야, 중국 백화점 브랜드도 전부 있어. 이제 굳이 백화점 갈 필요가 없다니까.
-그리고 더 지린 건 배송 속도다. 하루도 안 걸려.
-자체 배송 시스템이 있기는 한데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배송이 되지? 완전 신기해.
-알리바바랑은 차원이 달라.
-야, 알리바바 이야기하지 마. 재수 없어. 불량에 늦장 배송에 짜증나.
-그러니까 프리미엄 서비스를 이용하라고.
-참나, 그런 게 어딨어? 프리미엄 서비스면 가격에 차이를 둬야지 배송에 차별을 두는 게 말이 되냐?
아마존이 중국에 입성하고 알리바바가 다소 밀리는 분위기였다.
중국 정부는 아마존 배송을 위해 3개월간 공안까지 나서서 모든 일을 해결해 주었다.
아마존은 뭐다? 배송이다.
아마존의 트레이드 전략인 배송이 중국에서도 여실히 먹히는 순간이었다.
또한, 아마존은 배송시스템을 준비하면서 클라우딩 서비스를 같이 준비했다.
역시 중국 정부는 부지에서부터 인력까지 일사천리로 진행이 될 수 있도록 적극 협조해 주었다.
중국 기업은 자체 서버를 두고 클라우딩 서비스를 이용하지 않는 편이었다.
하지만 아마존의 클라우딩 서비스가 얼마나 편한지 힘들게 비싼 돈 주고 서버 사고 IDC에 넣고 골치 썩던 중국 기업들이 하나둘 아마존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덩달아 알리바바 클라우딩 서비스 업체인 ‘알리윤’도 매출이 상승했다.
물론 가격만 싸지 기술력 때문에 욕을 바가지로 먹으면서.
아마존 사업이 안정되자 이번엔 ‘시리’가 한차례 업데이트를 했다.
결과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이번에 업데이트된 ‘시리’ 해봤냐?
-당연하지. 나 울 뻔했잖아. 셀카 찍으려고 카메라 켰는데 내가 우울한 걸 알고 위로하더라니까.
-애플워치를 착용하면 생체 정보를 이용하여 더 많은 서비스도 가능하대.
애플워치의 판매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이제 중국에서 구글로 검색하고 애플워치를 착용하며 ‘시리’를 이용하는 건 생활의 일부가 되어 갔다.
***
캘리포니아.
하하하하.
제프의 입에 함박웃음이 그려졌다.
중국에서의 매출이 수직 상승을 그렸다.
“중국 O2O 시장을 60% 장악했습니다. 이게 다 ‘시리’의 추천이 크게 작용한 덕분입니다.”
“그게 어디 ‘시리’ 덕입니까? 데미안의 인공지능이 아마존을 우선 추천한 덕이지요. 하하하.”
아서가 제프의 말에 공을 데미안에게 돌렸다.
“애플도 판매가 크게 신장했더군요.”
“아마존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하지만 앞으로 우리도 힘 좀 낼 겁니다.”
하하하하.
서로 지금까지의 성과를 두고 희망 회로를 돌렸다.
하지만 빌의 표정은 굳어 있었다.
우선 오늘은 데미안이 참석하지 않았다.
중요한 연구 때문이라는데 자신들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또 다른 연구를 진행한다는 게 못내 아쉬웠다.
그리고 지난번에 재준이 한 말.
‘데미안한테 안부도 좀 전해주고요. 어린놈이 도통 밖을 나오질 않아.’
데미안을 아는 정도가 아니라 나이가 어리다는 것까지 알고 있었다.
어떻게 알았을까?
루쏘도 투마로우와 접점은 없는 거로 알고 있는데.
데미안의 아빠, 루쏘와 그의 아내는 뱅가모의 갠돌피니 때문에 투마로우를 시기하고 있었다.
자신보다 실력이 한참 떨어지는 놈이 투마로우 덕에 자신의 명성을 뛰어넘고 있다고.
빌의 머릿속은 온통 재준으로 꽉 차 있었다.
왜 그 시간에 중국에 있던 걸까?
단순히 ‘블랏아웃’ 때문에 자치구를 돌아보려고 온 것일까?
그게 임재준에게 그렇게 중요한 일인가?
혹시 이 모든 게 임재준의 계획이라면?
그동안 월가를 장악하고 유럽과 아프리카 남미까지 장악한 임재준이었다.
이렇게 허술하게 중국 시장을 내준다는 게 마음에 걸렸다.
“왜 그렇게 심각하십니까?”
세르게이가 빌의 굳은 표정을 보고 물었다.
“아, 임재준이 왜 중국에 있었나 생각하는 중이지.”
“저도 지금까지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나 중국이 투마로우와 손을 잡은 건 아닌지…….”
“사실 손을 잡아도 상관은 없어. 데미안의 인공지능이 있는 한 중국 인민은 선택의 여지가 별로 없거든. 근데 뭔가 명치에 걸려서 내려가지 않는 기분이란 말이야.”
“아예 중국 시장에 생각이 없는 건 아닐까요?”
“그럴 가능성이 크긴 해. 투마로우가 제조업도 아니고 중국 기업에 투자할 가능성도 거의 없지. 지금까지 중국 내에 있는 곡물, 에너지, 반도체 같은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마당에 굳이 이커머스 시장까지 노리진 않을 것 같은데…….”
“기분 탓일 겁니다. 임재준의 무게가 워낙 무거우니까요.”
“그렇겠지?”
이때.
띠링.
모두의 스마트폰에 속보가 떴다.
[중국 정부, 티베트와 신장 위구르 자치 구역 투마로우에 임대 결정. 투마로우는 이 지역에서 곡물 아파트를 지을 예정.]
빌의 표정이 살짝 풀렸다.
이거 때문에 중국을 왔다 갔다 한 거야?
세르게이도 같은 생각을 했는지,
“우리가 괜한 걱정을 한 것 같은데요?”
“그런 것 같지? 근데.”
“왜요? 또 뭐 걸리는 게 있습니까?”
“임재준이 중국 정부에게 뭔가를 줘야 하잖아. 그 내용이 빠졌어.”
“줄 거야 너무 많은 거 아닙니까? 캡슐이나 로봇을 더 싸게 줄 수도 있고 핵융합 발전소 건설의 다음 장소로 중국을 선정해 줄 수도 있고요.”
“핵융합?”
그거면 이해가 된다.
중국은 곡물과 에너지 최대 수입국이니까.
에너지 때문에 미국의 눈치를 보며 러시아에서 수입하고 있는데 핵융합 발전소 건설에 목을 맬 수밖에 없겠지.
후후.
나도 이제 나이가 들었나?
***
중국.
중국은 한동안 겉으로 보기엔 너무나 평안했다.
언론에서는 중국 경제 성장이 다시 회복되었단 보도가 줄을 이었고 중국 인민들은 주 20시간 노동으로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시간적 여유를 즐겼다.
어떤 이는 캡슐을 하고 어떤 이는 시리의 추천으로 아마존 쇼핑을 한 후에 친구들과 만나 수다를 떨었다.
그러나 서서히 서방 세계의 뉴스가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먼저 미국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에 관심이 갔다.
-미국은 보편적기본소득제를 한다며?
-그러게, 전혀 일하지 않고도 우리가 받는 임금의 4배를 받아.
-4배나?
-미국은 원래 부자니까. 근데 유럽도 이제 그거 실시한다더라.
-그럼 유럽도 일하지 않고 월급을 받는 거야?
-응, 그리고 곧 중동 산유국들도 한다고 하고.
-우리만 하루 4시간이나 일을 하는 거네.
-중국이 그렇지 뭐.
불만이 생기기 시작했다.
과거의 기억은 현재의 현실을 만족시켜주지 못했다.
하루 12시간 노동하던 시절도 있었는데 하루 4시간 노동이 많게만 보였다.
불만은 한 가지에 그치는 법이 없다.
비교당하면 당할수록 자꾸 뭔가 다른 것이 보인다.
-미국에 임모탈 알아?
-그게 왜 미국이야? 투마로우 시티에 있는 거지.
-그래도 시술은 미국이 훨씬 많잖아.
-근데 왜?
-만 달러에 10년 생명을 연장해 준대.
-나도 듣긴 했다.
-중요한 건 생명 연장보다 시술을 받고 나면 피부가 10년 이상 젊어진다는 거야.
-그래?
-나도 만 달러는 만들 수 있는데.
-나도, 우리 미국 갈까?
-그럴까?
-근데 우리 지금 우한시에 살잖아.
-헉.
-빌어먹을 중국.
중국과 미국의 정치 싸움 때문에 재준이 우려하는 생물학적 불평등이 국민의 불만을 심화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더 심각한 일들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너희들 리천 본 적 있어?
-글쎄. 요 며칠 보이지 않던데.
-아, 이 자식, 여행 가자고 해 놓고는 어딜 간 거야?
-그 자식 공안에 잡혀간 거 아냐?
-왜?
-요즘 U튜브에 정치 관련 소식 올렸잖아. 한 달 수입이 정부에서 주는 것보다 많다고 좋아했거든. 좀 더 자극적인 것을 찾는다고 했던 거 같아.
-야, U튜브 좀 봐봐. 리천이 뭘 올렸는지 보자.
-어? 채널이 없어졌네. 분명 ‘리천의 중국’이었는데.
-진짜 어떻게 된 거 아냐?
이 정도에서 끝나면 좋으련만.
-어! 저기 리천 오네. 야, 리천.
-어, 우슈보, 덩룬, 둘이 뭐 재미난 거 하고 있냐?
-너 괜찮아?
-내가 뭐?
-너 공안에 끌려간 거 아니었어?
-뭔 소리하는 거야? 내가 왜 공안에 끌려가.
-너 U튜브에서 정부 깠잖아.
-내가? 내가 U튜브를 했다고?
-너 지난 석 달 동안 U튜브에 매달렸는데 기억 안 나?
-내가? 무슨 소리야?
-그럼 석 달 동안 뭐 했는데?
-석 달 동안? 석 달 동안 내가 뭘 했지? 왜 기억이 안 나냐?
-미친놈, 자기가 한 일도 기억 못 하는 거야?
-설마, 리천 너 공안에 끌려가서 기억이 강제로 지워진 거 아냐? 그런 소문이 있던데.
-그건 무슨……. 아, 머리야. 왜 이러지?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었다.
리천이 머리를 싸매고 주저앉자 우슈보와 덩룬이 부축해주는데 그 옆으로 여대생 둘이 지나갔다.
-저거, 리천 아냐? 어디 아픈가 보네.
-제 U튜버에 중국도 미국처럼 완전 보편적기본소득제를 실시해야 한다고 떠들다가 공안에 끌려갔잖아.
-공안에?
-응, 끌려갈 때 아주 시끄러웠어. 많은 애들이 봤거든.
-그럼, 고문이라도 당한 거야? 쟤 왜 저래?
-그러게 정부 정책에 반기는 왜 들어서.
-근데 넌 오늘 수업도 없는데 어딜 가는 거야?
-나 아까 대학에서 제적당했다는 통보를 받아서.
-네가 왜?
-몰라.
-성적도 우수하고 출석도 빠진 적이 없는데 왜 네가 제적을 당해? 너 혹시 정부를 비판하는 시위한 적 있어?
-정부가 하는 일을 싫어하긴 하지만 시위 같은 데 참가한 적은 없어.
-그럼 도대체 왜?
-그래서 교수님한테 가 보려고.
-내가 같이 가줄게.
데미안의 데이터가 실시간으로 공안에게 전달되면서 어떤 이들은 알 수 없는 차별로 고통당하고 있었다.
며칠 후.
-너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
-리천이 자살했대. 자기 집에서 목을 매고.
-뭐? 어떻게 그런 일이. 걔 완전히 착한 앤데.
-그러게, 요즘 들어 자살하는 사람이 느는 것 같아.
-너도 그런 생각했어? 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뭔가 이상해. 사는 게 허전하고 의욕도 없고.
-집에 가서 캡슐이나 해야겠어.
-나도.
중국 국민들은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자 점점 외부 활동을 줄였다.
직장에서 4시간 일하고 나면 오직 집 안에 틀어박혀서 U튜브를 시청하거나 구글을 검색하고 아마존에서 쇼핑을 하며 나머지 시간은 캡슐에 들어가 나오지 않았다.
정부로서는 다루기 쉬운 인민이었지만 정작 인민들은 삶에 관심이 없어졌다.
점점 어디에 기대고 싶은데 기댈 곳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댈 곳이 생겨났다.
캡슐에 ‘커뮤니티 서밋’이라는 공간이 생긴 것이다.
원래 캡슐에서 가상현실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존재했다.
하나는 정신을 집중해서 자신의 기억이나 상상력으로 가상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공간은 아주 개인적인 공간이기 때문에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상상의 인물과 이야기를 할 수도 있고 심지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성적인 관계도 가능했다.
당연히 현실과 같은 느낌을 그대로.
또 다른 하나는 투마로우가 만든 가상의 공간에서 다수가 접속해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갈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이 현실을 부정하고 이 가상의 공간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는 걸 즐겼다.
인간은 항상 현실의 자신이 불만이니까.
만약 또 다른 삶을 살고 싶다면 다른 공간에 들어가면 또 다른 나로 살아갈 수 있었다.
어떤 공간이든 모두 투마로우가 제공하는 가상현실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기억의 길’에서 제공하는 ‘커뮤니티 서밋’이라는 공간이 생겼다.
이 공간의 특이한 점은 현실 그대로를 반영한다는 부분이었다.
누가 현실의 경험을 캡슐까지 가져오고 싶을까?
그런데 의외로 너무나 많은 이들이 ‘커뮤니티 서밋’으로 몰려들었다.
< 제405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1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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