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3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9) >
AAG 빌딩 66층.
“아니 무슨 일이 이렇게 많이 터지는 거예요?”
재준이 윌켄과 마주 앉아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들을 정리했다.
“인공지능으로 인해 세상의 페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거 아닌가요?”
보편적기본소득제가 전격 시행되었다.
노동은 곧 임금이라는 공식이 파괴되었다.
모든 기업들은 세금을 내는 것보다 로봇을 구매하는 게 단기적으로나 장기적으로 이득이기 때문에 투마로우 산하 기업에 로봇 공급을 요청했다.
‘기억의 길’과 마크가 손을 잡고 지구 공동체 ‘커뮤티니 서밋’을 다시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정치인들은 마크의 과거를 들추며 분노했지만 젊은 층 사이에서 국가라는 울타리가 인간에게 꼭 필요한 것인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4대 IT 기업이 중국 진출을 확정 지었다.
동시에 마윈이 앤트 그룹의 회장으로 다시 입성했다.
중국이 굳게 닫았던 미국에 대한 장막을 걷어 내었다.
이것들은 겉으로 드러난 일이고 세상 사람들이 모르는 일도 있었다.
데미안이 중국 인민의 데이터를 수집하기 위해 양자 컴퓨터를 이용해서 인공지능을 개발했다.
개발했다기보다는 원래 있는 인공지능을 사용하는 거지만.
재준은 ‘기억의 길’과 손을 잡은 마크를 떠올렸다.
“마크가 나서니까 정치권에서 일제히 비난을 쏟아붓기 시작하는데. 우리가 좀 말려야 하지 않을까요? 지구 공동체는 나름 좋은 취지인데.”
“민주당이 호되게 당한 사건이 있어서 쉽지 않을 거예요. 그래도 마크에게는 ‘기억의 길’이 있잖아요.”
“큭큭, ‘기억의 길’ 신도들이 정치인들을 테러하지 않을까요?”
“그럴 리가요.”
“근데 ‘기억의 길’은 데미안과 연관이 있는 거 아닙니까?”
“그게 이상합니다. 데미안이면 IT 기업이고 IT 기업이면 민주당과도 친분이 두터운데 왜 민주당이 ‘기억의 길’이 하는 일에 칼을 들이대는 거죠?”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요.
내가 먼저 물어본 건데.
“데미안이랑 ‘기억의 길’이랑 틀어진 건가?”
“글쎄요.”
둘 가지고는 답이 없네.
“‘블랙’.”
【네.】
“‘기억의 길’과 데미안이 싸웠어?”
【아니요.】
“그럼, 최근에 연락을 했어?”
【아니요.】
“싸웠네. 싸웠어. 뭔지 모르지만 둘이 틀어졌네.”
“정말 그럴까요? 민주당이 데미안의 존재를 모를 수도 있잖아요.”
“그러면 IT 기업 애들이 중재를 섰겠죠.”
“한번 만나볼까요?”
“누구를? 데미안을? 윌켄이?”
“네. 보스는 만나면 한 대 때릴 거잖아요.”
“하긴 두 대 때릴 것 같긴 해요.”
“제가 한번 만나보겠습니다.”
“거기 다이로랑 제이콥도 있는데. 그놈들 독이 바짝 올라 있지 않을까.”
“미주리강 중간에 배 띄워놓고 둘이 대화하면 됩니다.”
배? 이거 신박한 아이디어네.
여차하면 둘 다 죽는다?
“괜찮네요. 수고 좀 해주세요.”
오랜만에 아지트에 가서 술이나 한잔할까?
이때.
띠리리리링.
재준의 미간이 구겨졌다.
딩쉐이?
“이게 누굽니까? 정말 오랜만입니다.”
-임재준, 우리 주석님이…….
“만나기 싫다고 전해주세요.”
-급합니다.
“마윈한테 드론 공급하기로 했어요. 알아서 지지고 볶으세요.”
-그 정도론 안 됩니다. 아시면서.
“거기 중국에 IT 기업들 끌어들여 놓고 나보고 싸움 붙이라는 거 아니에요?”
-투마로우가 도와야 싸움을 붙이든 말든 하죠.
“거기에 왜 우리가 발을 담그냐고?”
-구글까지 진출시켜서 싸우라면서?
“싸움 붙이는 것까지 얘기해 줬으면 알아서 해야지.”
-싸움 붙이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전문가가 와야지?
“내가 왜 전문가야?”
-전문가지, 지금까지 안 싸우고 평화롭게 해결한 거 있으면 얘기해 봐.
“…….”
-어디 얘기해 보라고.
“근데 왜 말투가 그 모양이야?”
-네가 먼저 했잖아.
무량수불이시여.
이 번뇌에서 벗어나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이시여.
원수를 사랑하게 하소서.
“줄 거부터 이야기해 보세요.”
-받고 싶은 거 있습니까?
오호라, 그럼 크게 가야지.
“티베트 자치구 임대.”
-그 쓸모없는 땅은 왜요?
“쓸모없으니까 달라고 하는 거지, 허난성 달라고 하면 줄 거예요?”
-그건 아니죠.
“거봐, 티베트 자치구 살아생전 임대. 주석과 이야기하고 가능하면 연락 주세요.”
-살아생전 임대는 뭡니까?
“내가 죽으면 반납한다고요.”
-음, 일단 알겠습니다.
통화가 끝나자 윌켄이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중국을 도와줄 겁니까?”
“에이, 중국을 왜 도와줘요?”
“방금 도와준다고 하는 것 같던데요.”
“이커머스 사업 정리를 좀 하려고요.”
“어떻게요?”
“아마존을 우리가 인수하면 되죠. 그러니까 지금부터 아마존에게 손해를 본 이커머스 회사들 전부 사들이세요.”
이번엔 아마존이야?
“전부요?”
“전부 아마존 때문에 피죽도 못 먹고 있을 텐데. 이 기회에 날개 한번 달고 날아가게 하게요. 당장 시작해 주세요. 베네수엘라에 있는 워서스틴과 페렐라도 이번에 잠깐 들어와서 도우라고 하고요.”
“네.”
윌켄은 갑자기 이커머스 회사 인수에 고개를 갸우뚱했다.
도무지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아마존 반대 세력을 규합해도 아마존 발끝도 못 따라갈 텐데.
“그리고 티베트는 왜 달라는 거예요? 우리한텐 쓸모없는 땅인데.”
“이제 에너지보다는 식량이 세상을 좌우하게 될 거예요.”
“그게 티베트랑 무슨 상관있어요?”
“그 옆에 잠무 카슈미르가 있잖아요.”
“엘리자베스요?”
“네.”
“설마 인도를 생각하는 건 아니죠?”
“당연히 아니죠. 엘리자베스가 있는 곳까지만 필요해요. 뭐, 엘리자베스가 티베트 자치구에 농장을 지었으면 해서요.”
엘리자베스를 꽤 생각해주네.
혹시?
“근데 보스는 결혼 안 해요?”
“결혼이요? 이미 목적을 달성했는데 굳이 결혼을 왜 해요?”
“무슨 목적을 달성했는데요?”
“종족 번식.”
“네?”
“결혼의 궁극적인 목적이 종족 번식이잖아요. 이미 진이 있는데 굳이 결혼해서 또 종족 번식을 할 필요가 있나요?”
“그렇군요.”
아, 보스는 역시 묘하다.
빨리 중국으로 보내는 게 낫겠다.
지금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새로운 세상이 온다.
각자 연관성 없을 것 같은 일들이 결국 한 곳에 모이고 거대한 폭발을 일으켜 전 세계를 뒤덮을 것이다.
***
미주리강.
고요한 수면 위에 떠 있는 한 척의 배.
배 위에서는 두 명의 인물이 한가로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앤서니, 오랜만입니다.”
“그동안 평안하셨습니까.”
윌켄이 ‘기억의 길’ 본당이 있는 곳을 바라봤다.
“본당은 앤서니 본인이 지은 겁니까?”
“저한테 적지 않은 돈이 있었습니다.”
“그러면 데미안한테 지원받은 건 아니군요.”
“그게 궁금하신 거라면 아닙니다.”
“보스가 걱정이 아주 많습니다.”
“지난번 일은 신의 뜻이었습니다.”
“데미안과 상관은 없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되겠습니까?”
“없습니다.”
윌켄은 앤서니의 두 눈을 바라보았다.
정크 본드의 왕으로 살고 재준과 함께하면서 겪은 경험이 앤서니의 진심을 살폈다.
“그럼 앞으로도 데미안과 함께 하는 건 아니겠군요.”
“이제 저희는 신의 명만 따릅니다.”
“다이로와 제이콥도 함께입니까?”
“그들은 ‘기억의 길’ 신도가 아닙니다.”
진심인가?
전에 본 것과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진짜 신이라도 만난 것 같다.
“마크와 함께하기로 했다는 기사를 봤습니다.”
“신께서 원하시는 일입니다.”
“지구 공동체의 의미는 좋더군요.”
“반드시 실현해야 할 과제입니다.”
지구 공동체라…….
“보스는 인공지능에 의한 생물학적 불평등이 도래할 것이라 했습니다.”
“암울한 미래입니다. 지구 공동체는 불평등으로 고통을 받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언젠간 저도 가야겠군요.”
윌켄은 앤서니에게 손을 내밀었다.
앤서니도 말없이 윌켄의 손을 잡았다.
윌켄은 앤서니와 데미안이 갈라섰다는 걸 확인했다.
***
중난하이.
“왜 보자고 하신 거예요?”
재준은 시앙핑을 보자마자 짜증을 부렸다.
“티베트 자치구 임대한다니까요.”
“사실 진작 독립시키고 싶었는데 선진국들이 간섭하니까 고집 피운 거잖아요. 그놈의 자존심 때문에.”
“에헤이, 그걸 꼭 그렇게 대놓고 말하면 내가 뭐가 됩니까?”
이제 둘은 겪을 만큼 겪은 사이가 된 것 같다.
속내를 숨기지 않는다.
“그래, 뭘 도와주면 되겠어요?”
“투마로우 독점.”
“그게 뭐예요? 우리가 상품을 찍어 내는 재조업도 아닌데 독점은 무슨 말이에요?”
“다 알면서 자꾸 딴말하기는.”
3연임을 하더니 능구렁이가 다 됐네.
“알았어요. 근데 IT 기업하고 우리하고 죽기 살기로 싸우는 거 모르셨어요?”
“그래요? 전혀 몰랐는데. 겹치는 분야가 많아서 서로 경쟁은 하려니 했지 죽기 살기로 싸울 줄은 몰랐습니다. 그럼, 저를 도와주는 게 투마로우에도 이득이겠네요.”
쩝.
“뭐, 가만히 있는 게 더 이득이긴 한데. 티베트 자치구를 임대해 준다니 도와 드리긴 하죠. 먼저 주석님과 마윈이 세운 계획부터 들어 볼게요.”
“우린 아주 치밀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시앙핑이 심각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을 이었다.
“아마존이 데이터 센터를 세우면 전문 인력을 고용할 거 아닙니까? 그들의 임금을 불시에 인상하는 겁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O2O 이커머스 시장에 상상도 못 한 투마로우 드론을 투입해서 아마존에 커다란 손실을 입히는 겁니다.”
“음, 괜찮은 생각인데…….”
“그렇습니까?”
“근데 손해 조금 보고 조기 철수해 버리면 어쩌려고요?”
“네?”
“거, SS전자처럼요. 대기업에 똑똑한 사람 많아요. 이익이 실현되지 않을 때는 가차 없이 방을 빼버려요. 그때는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건 아직…….”
뭐야? 그럼 아무것도 아니잖아.
이 대책 없는 인간들아.
“설마 피를 뚝뚝 흘리면서 죽기 살기로 싸울 거라 생각한 겁니까? 기업이 파산할 때까지? 에이, 마윈 그 사람도 허당이구만. 뭐 대단한 계획을 세웠나 했더니. 쯧쯧쯧. 아니, 돼지도 키워서 먹는 거지, 다짜고짜 도끼 들고 달려들면 돼지가 나 죽여주쇼 합니까?”
“키워요? 그럼 처음엔 당근을 좀 줘야 한단 말이네요.”
“그렇죠. 그 도박판에서 타짜들이 잘하는 게 뭔지 아십니까?”
“돈 따는 거?”
“으이그, 정말. 돈 잃어주는 거예요. 상대가 눈치 못 채게 자연스럽게 잃어주는 거. 그리고 마지막 판에 ‘탄’으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모든 재산을 한판에 가져오는 겁니다.”
‘탄’은 조작된 패를 말한다.
“한판에?”
“그래요, 지금까지 딴 돈 포함 상대의 전 재산을 싹 다 먹는 거예요.”
“그럼, 아마존 미국 자산까지 모두?”
“그렇죠. 중국 자산이야 당연한 거고 미국에 있는 것까지 몽땅 털어먹어야 진짜 이기는 거 아닌가요? 그래야 알리바바가 인수를 하든 합병을 하든 하죠.”
“역시, 다르군요.”
흠, 흠.
기대는 김에 좀 더 기대볼까?
“근데 방법은 있습니까? 미국 자산까지 싹 가져오는 방법.”
“당연히 있죠. 잘 들으세요.”
시앙핑이 재준에게 살짝 다가갔다.
“일단 알리바바와 아마존이 싸우는 걸 지켜보세요. 그리고 전문 인력 임금 인상을 할 거라고 슬쩍 흘리는 겁니다.”
“그다음은?”
“그리고 버럭 화를 내면서 임금 인상을 안 하는 거죠.”
“그럼 알리바바가 타격을 입을 텐데요?”
“당근, 당근.”
“아, 당근.”
그래 일단 손해는 감수하지 뭐.
“그래야 아마존이 주석님을 믿고 더 과감하게 투자를 하는 겁니다.”
“아하, 더 투자하게 만들어라.”
“그리고 더 투자하는 그때부터가 중요한 거예요.”
“그게 뭡니까?”
“알리바바가 중국 시장에서 아마존과 사투를 벌이는 동안 우리는 아마존 몰래 미국 각 주에 물류 창고를 세우는 겁니다. 그 후 준비가 되면 미국 O2O 시장에 쾅, 핵폭탄을 투하하는 거죠.”
“엥? 그게 뭐예요? 그럼 중국 시장은 싸움터로 만들고 미국 시장을 얻는 거잖아요. 미국 시장을 장악한다는 보장이 있습니까?”
쯧쯧쯧.
“당연히 보장이 있죠. 미국과 중국에 드론이 날아다닐 텐데. 둘 다 알리바바가 장악하게 되어있어요. 사람들이 드론 배달 구경하려고도 주문을 할 겁니다. 이커머스에서 가장 중요한 게 뭐다? 회원 수.”
“네? 드론 도난도 문제라던데.”
“누가 100m 상공에 있는 드론을 가져갑니까?”
“100m요?”
“네, 우리 드론은 100m 상공에서 정확히 문 앞에 떨어뜨릴 거예요. 정확히, 안전하게, 착.”
“아파트는 어떻게 하고?”
“경비실.”
“다세대 주택은?”
“주택 앞 공용 창고.”
껌뻑, 껌뻑, 껌뻑.
시앙핑 뒤에 있는 딩쉐이의 눈이 요동을 쳤다.
저게 가능하네. 가능해.
< 제403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9)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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