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400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6) >
미국 의회.
미래당이 입회하기 전에 민주당 척 슈머 원내대표는 초선의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고 있었다.
“여러분 지금까지 잘했습니다. 아주 잘했어요.”
하하하하.
미래당의 보편적기본소득제 법안의 통과를 지금까지 잘 막아내고 있었다.
어떤 때는 난동을 피우고 어떤 때는 필리버스터로 하루 종일 단상에서 떠들고.
그것도 초선의원들을 데리고서 말이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지금까지 하던 대로 계속 밀고 나가세요.”
네.
우렁찬 초선의원의 목소리에 척 슈머는 아주 만족스럽게 미소를 지었다.
“미래당입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척 슈머의 눈이 매서워졌다.
미래당이 모습을 드러냈다.
두 진영의 눈빛에 어찌나 살기를 실었는지 살인을 저질렀어도 벌써 여럿 저질렀을 눈빛이었다.
도날드가 먼저 척 슈머에게 다가왔다.
“오늘도 열심히 삽시다. 상원 월급날인데.”
“흥, 오늘은 좀 자신감이 있어 보입니다.”
“뭐, 자신감까지야, 통과될 법안은 다 통과되는 겁니다.”
도날드는 어제 재준과 통화를 했다.
‘지금 진이 미국에 와 있어서 내가 갈 수가 없으니 잘 통과시키세요.’
흐흐흐.
무슨 말인지 감이 팍 왔어.
진의 힘을 빌려 볼까.
모두 자리에 앉자 먼저 민주당 초선의원이 필리버스터를 시작했다.
“헌법에 국민은 신성한 노동의 권리가 있다고 나와 있습니다. 이는 미국 역사에서 전 대통령들의 깊은 애국심의 발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노동의 권리는 우리 모두를…….”
한창 의사 진행을 하고 있는데,
미래당 의원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아이고, 델라웨이 다음 의원 선거. 큰일 났네. 큰일 났어.”
“아유, 말도 마. 델라웨이 ‘사이진’ 회원이 40만 명이 넘어.”
“델라웨이 인구가 95만 인가 하잖아.”
“거의 절반이 진의 팬이었네. 다음 선거에서 누가 당선될지 뻔하네. 뻔해.”
“그런데 우리 당에 아직 델라웨이 후보를 정하지 않았잖아?”
“그렇지. 그럼 내가 아는 사람 하나 소개해 볼까?”
“이봐, 저기 있는, 저 의원이 델라웨이 초선의원이던가? 1년 후에 어디로 갈지 모르는.”
뭐?
델라웨이 민주당 소속 초선의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거, 의사 진행하는 데 방해하지 맙시다.”
“네, 계속하시죠.”
필리버스터가 재개되고 단상에 선 초선의원이 의사 발언을 시작했다.
조금 지나자.
미래당에서 또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니, 이거 버지니아도 위험하네.”
“왜?”
“인구 8백 6십만 명 중에 ‘사이진’이 6백만이야.”
“거긴 정통적으로 민주당 텃밭이잖아.”
“이제 아니지. 끝났어. 뭐 대세를 거스르는 건 어쩔 수 없나 봐.”
이번에도 민주당 소속 버지니아 초선의원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흠, 흠.
“거, 의사 진행하는데 왜 자꾸 방해하는 겁니까?”
“아, 네, 네. 누가 누굴 방해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뭐라고요?”
“아니에요. 계속하세요. 우리도 아직 전국에 있는 초선의원 선거구에서 ‘사이진’ 인원 집계하느라 바빠요.”
“뭐요?”
버럭 소리는 질렀지만 긴장한 티가 역력했다.
지금 법안 처리를 반대하는 의원들은 초선의원들이다.
오늘도 원내대표의 칭찬에 용기백배하여 전쟁터에 나왔는데 예기치 못한 말들이 들려오자 점차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했다.
아직 미래당에서 차기 의원이 확정되지 않았다던데…….
이때, 도날드가 필리버스터를 하는 초선의원에게 공손하면서도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다.
“뉴햄프셔 의원님, 빨리 진행하시죠. 뉴햄프셔 의원님.”
도날드 옆에서 미래당 의원 하나가 거들었다.
“저분이셨어요? 뉴햄프셔 의원이?”
“뉴햄프셔면 인구 130만인데 ‘사이진’ 회원이 80만인 곳 아닙니까?”
“뉴욕과 가까운 뉴햄프셔라 ‘사이진’ 회원이 다른 곳보다는 많지. 역시 뉴햄프셔야.”
부글부글부글.
필리버스터를 하던 의원의 얼굴이 어찌나 붉게 물들었는지 머리에서 김이 오르는 것처럼 보였다.
내가 미쳤지.
“이상입니다.”
갑자기 필리버스터를 중단하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척 슈머는 너무 어이가 없었다.
뭐 하는 거지?
왜 중단한 거야?
아직 한 시간은 더 해야 하는데.
의장이 갑자기 중단된 필리버스터에, 다음 의회 진행을 이어갔다.
“그럼, 보편적기본소득제 표결을 시작하겠습니다.”
안 돼.
모두 일어서.
척 슈머가 벌떡 일어나 의장에게 가려는데 주위에 자신을 따르는 의원이 아무도 없었다.
뭐야 너희들.
도날드가 척 슈머를 보며 혀를 찼다.
쯧쯧쯧.
“지금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모르고 있네. 진이 미국에 왔습니다. 이게 뭘 의미하는지 모른다면 지금 앉아있는 자리가 마지막이 될 겁니다.”
초선의원의 용기는 차기 선거에서 보게 될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자 차갑게 식어갔다.
미래당으로 빨리 갈아타야 한다.
이제 미국에 보편적기본소득제가 통과되었다.
어찌 보면 보편적기본소득제야 말로 공산국가에서 있어야 할 제도 아닌가?
중국 인민들의 불만에 작은 불씨가 피어나기 시작할 것이다.
***
중난하이.
“지금 인민들 상태는 어때?”
“중국 역사상 주석님의 지지율이 최고입니다.”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짝퉁 말고 진짜 지지율이 최고를 경신하고 있었다.
시앙핑은 미국의 경제 제재에 맞불 작전으로 중국의 생산을 일부러 저하시켜서 전 세계의 원재료 공급량을 줄여버렸다.
어디 한번 중국 없으면 어떤 꼴이 되는지 보라고.
예상대로 전 세계의 거의 모든 제조업 생산에 타격이 가해졌다.
중국도 힘들지만, 특히 선진국들은 난리가 났다.
기술만 있으면 뭐하나, 자제와 원료가 없는데.
이런 경제 위기 속에서는 인민들이 정부를 향해 경제를 살리라고 들고 일어날 만한데, 시앙핑은 투마로우 캡슐과 노동시간 단축이라는 신의 한 수를 두었다.
하루 노동시간을 4시간으로 줄이고 투마로우 캡슐을 보급했다.
결과는 대박이었다.
돈을 적게 벌어도 캡슐에 들어가서 가상현실을 즐기는 인민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뿐인가.
로봇이 생산 현장을 장악하고 있으니, 생산량을 늘리는 건 언제든 말 한마디면 바로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당연하지. 들어간 돈이 얼만데.”
사실 투마로우가 캡슐을 미국은 2만 달러에 공급했지만, 중국은 2천 달러에 공급했다.
뭐, 그래도 이게 알루미늄 캔이니까 거의 10배에 가깝게 남는 장사였지만.
아예 물류비를 아끼려고 단둥시의 PIM 반도체 공장 주변에 캡슐 공장까지 지어서 중국에 공급했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미국이 시끌시끌할 때 중국은 조용히 숨죽이고 있었다.
‘너의 고통은 나의 행복’을 즐기면서.
딩쉐이가 서류 하나를 내밀었다.
“그리고 여기, ‘블랏아웃’ 보고서입니다.”
“그래, 어디 빨리 줘 봐.”
또 하나의 신의 한 수, ‘블랏아웃’ 캡슐.
시앙핑은 딩쉐이에게 ‘블랏아웃’의 보고서를 받아 몇 장 넘기면서 아주 흡족해했다.
딩쉐이가 부연 설명을 했다.
“1년에 인민 1인당 1회의 기회를 주었더니 너도나도 ‘블랏아웃’으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렇지, 인간이 어디 잊고 싶은 악몽 같은 기억이 한두 개겠어.”
“거기다 생각지도 못한 호재가 있습니다.”
“그게 뭔데?”
“미국이나 유럽은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기 위해 금리를 올리는데 우린 전혀 그럴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오호, 이런 효과가 덤으로 딸려 오네.”
금리 인상으로 세계가 끙끙 앓고 있었다.
얼마 전 영국 신임 총리가 세금 인하 및 600억 파운드(96조 원)의 에너지 보조금 정책을 발표했다가 45일 만에 사퇴하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세금을 인하하는데 보조금을 어떻게 준다는 걸까?
그것도 96조 원이나 되는 돈을.
전 세계 경제가 파국을 맞고 있으니 영국의 총리까지 정신이 오락가락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중국이라고 해서 시중에 풀린 돈을 회수하는 데 뾰족한 수가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런데 ‘블랏아웃’이 돈을 빨아들이는 진공청소기 역할을 했다.
이런 일을 기업이 했다면 또 돈을 강탈하는 수단을 고민했겠지만 ‘블랏아웃’은 엄연한 공산당의 회사 아닌가.
물론 겉은 외국계 회사지만.
“다음 분기에는 좀 더 안정적인 경제 지표가 나올 것 같습니다.”
“좋아, 좋아. 이 어려운 시기에 아주 효과적인 사업이야. 이거 빌에게 어떻게 고마움을 표해야 할지 모르겠네.”
“주변 보안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그렇지, 주변에 수상한 놈만 보이면 그놈 기억부터 지워버려.”
“알겠습니다.”
하하하하.
그리고 이거.
딩쉐이는 또 다른 보고서를 내밀었다.
“‘시리’? 애플의 개인 비서 ‘시리’? 이게 보고서까지 만들 일이야?”
“승인을 요청했습니다. 새로운 버전인데 의료 서비스가 대폭 강화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게 내가 알아야 하는 정도냐고?”
“의료 서비스 부분에서 정부의 승인이 필요한 부분이 있습니다.”
음.
“그럼, 보류해.”
“근데 그게, 아서의 요청이 있었습니다. ‘시리’가 ‘블랏아웃’으로 인해 이상 징후를 보이는 인민의 정보를 중국 공안에 미리 알려줄 수 있다고 합니다.”
아서가 직접? 이건 또 무슨 짓거리야?
“그래?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고? 내가 볼 때는 아이폰을 팔아먹으려는 수작 같은데.”
“아무래도 빌도 그렇지만 아서 또한 중국에서 크게 일을 벌이려는 조짐이 보이긴 합니다. ‘블랏아웃’은 시작이고 다음으로 ‘시리’를 내미는 게 그런 느낌이 듭니다.”
“대충 어떤 일?”
“미국에서는 투마로우로 인해 ‘시리’의 입지가 거의 없습니다.”
“아, 그 ‘카리브’인가 뭔가 하는 거 때문이지?”
“네, 아이폰이든 안드로이드든 개인 비서는 전부 ‘카리브’를 사용합니다.”
“‘시리’ 하나 키우겠다고 일을 벌이는 건 아닌 것 같은데. ‘시리’가 애플의 주 사업도 아니고.”
“4대 IT 기업이 서로 친분이 있는 건 아시죠?”
“알지.”
뭐야 이거.
4대 IT라면?
“설마 구글과 아마존까지 중국에 끌고 오려는 건 아니지? 그건 아무리 우리한테 이익이 나도 안 돼.”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왜?”
“아무래도 임재준이 걸려서요.”
“임재준?”
거기서 임재준이 왜 나와?
시앙핑의 등줄기에 한 줄기 냉랭한 기운이 머리에서 엉치뼈까지 훑고 지나갔다.
“투마로우 시티에 있는 기업 몇 개가 미국에 지사를 냈습니다. 임모탈, 팜페어, 트루로, 애니소톤, 진코퍼레이션, 재진버츄얼까지요. 그리고 핵융합 발전소도 건설 중이고요. 미래당은 아예 대놓고 투마로우를 지지하고 있습니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뭐야?”
“전부 IT에 강한 기업들입니다. 4대 IT 기업과 사업이 꽤 많이 겹칩니다. 이들의 존폐가 위험합니다.”
“그러니까 그게 우리랑 무슨 상관이 있냐고. 그놈들 줄어드는 매출을 중국이 보존이라도 해주잔 말이야?”
“중국에 진출시키고 인수할 수 있는 최고의 기회입니다.”
“그래, 인수해서 뭐……. 뭐? 뭘 인수해?”
왜 임재준으로 시작해서 미국 IT 기업 인수로 끝나는 거야?
“다른 곳은 인수해도 별 소득이 없는데 아마존은 꽤 쓸 만합니다. 알리바바와 합병하면 전 세계의 이커머스 시장을 거의 다 장악하는 겁니다. 망해가는 일대일로는 버려도 됩니다.”
“거기서 일대일로가 왜 나와?”
“아, 죄송합니다.”
시앙핑의 인생 최대의 실수 일대일로는 정치권에서 거의 금지어에 가까웠다.
막대한 돈 낭비의 전형이며 이제 받을 길도 요원한 사업이 되어 버렸다.
“어쨌든 아마존을 끌어들인다?”
< 제400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6)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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