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5) >
중난하이.
“빌, 어서 오세요.”
시앙핑은 빌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구글의 세르게이나 아마존의 제프와는 달리 빌은 중국과 아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코로나 대응으로 중국에 1억 달러를 기부해서 시앙핑의 자필 감사 편지를 받기도 했다.
“3연임 정말 축하드립니다.”
“하하하, 부끄럽게 무슨 그런 말을 우리 사이에. 자, 앉으시죠.”
시앙핑의 목소리 톤이 유독 부드러웠다.
처음엔 국제 정세 같은 말로 인사치레를 치렀다.
먼저 본론을 꺼낸 건 빌이었다.
“주석님, 사실 이렇게 찾아온 것은 최근 유망한 회사에 투자를 했는데 이 회사 제품으로 중국에서 사업을 한번 해볼까 해서입니다.”
“빌이 사업을 해요?”
두 사람의 말에 세 걸음 뒤에 떨어져 있던 딩쉐이가 귀를 쫑긋 세웠다.
현업에서 떠난 지 한참이 지난 빌이?
이건 분명 뭔가 있다.
빌은 딩쉐이의 태도를 살피고 ‘저놈은 알아도 되는 놈이네’라는 표정으로 시앙핑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특정한 기억을 삭제하는 기술입니다.”
“네?”
방금 뭐라고 지껄인 거야?
뭘 삭제해?
시앙핑의 얼굴이 순간 얼어붙었다가 풀렸다.
딩쉐이는 자신도 모르게 손으로 입을 가렸다.
대박!
“기억을 삭제한다고요?”
“네, 사람마다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지 않습니까? 그 부분을 지워 주는 겁니다.”
기억이면 뇌잖아.
“그거 잘못되면 어쩌려고요?”
“아닙니다. 들어 보셨죠? ‘기억의 길’이란 신흥 종교단체요.”
“아, 알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는 사람들 말이군요. 이미 전 세계에 신도가 꽤 된다고 들었습니다.”
“좀 더 가까이.”
빌이 손짓을 하며 시앙핑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그 종교단체가 이용하고 있는데 이 기술로 신도를 엄청 끌어모았습니다. 단 한 건의 문제도 없다고 합니다. 이미 임상 시험이 끝난 거죠.”
“정말입니까?”
“‘기억의 길’에서만 쓰기엔 기술이 아까워서요.”
“잠, 잠깐, 잠깐, 잠깐 만요.”
시앙핑은 재준이 헤이룽장성에 나타날 때보다 더 큰 충격을 받았다.
기억을 지운다고?
기억하기 싫은 부분을 지워?
아니, 바꾸어 말하면 기억을 지워야 할 놈들의 기억을 지울 수도 있는 거네.
그럼 임재준의 기억도…….
아니야, 너무 나갔다.
임재준은 취소. 잘못 걸리면 뼈도 못 추린다.
요즘 장난이 아니던데.
시앙핑은 자세를 바로 하고 빌에게 물었다.
“그래, 어떻게 사업을 하시려는 겁니까?”
“일단 우한시에 본사를 두고 전국 각지에 서비스 대리점을 두는 방식으로 진행할까 합니다.”
“기계를 파는 게 아니라 전국에 대리점을 두고 원하는 사람들의 기억을 지워주는 서비스를 한다는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캡슐이 워낙 고가의 장비가 들어갑니다. 그리고 기계를 개인이 사면 기억을 너무 많이 지울 우려도 있습니다. 아무리 임상 시험을 마쳤어도 기억을 지우는 건 뇌에 무리가 가는 거니까요. ”
흠.
시앙핑의 미간이 좁혀졌다.
영 내키지 않는데. 대리점이 많아질수록 인민의 기억이 지워지는 거잖아.
방금 말한 것처럼 뇌에 무리가 가면 어떡해?
“대리점은 몇 개나 설립할 생각입니까?”
시앙핑이 심드렁하게 말을 내뱉었다.
지점이 많으면 많을수록 뭔가 손해가 나는 것 같았다.
빌은 여유 있게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주석님 마음이죠.”
“네? 그게 무슨 말입니까?”
“저희는 본사 외에 대리점을 관리할 생각이 없습니다. 주석님이 대리점을 관리하는 게 옳다고 생각합니다.”
“무슨 말입니까? 주석인 내가 장사를 하라고요?”
“장사야 다른 사람을 시켜도 되는 거고, 전국에 기억을 지우는 대리점을 가지고 있으면 통치에 유리할 것 같기도 하고……. 아유, 덥네요.”
뭐? 통치?
이놈이?
복덩어리구나.
주석이 차마 자신의 입으로 말을 할 수 없자 딩쉐이가 나섰다.
“빌, 그런 말을 함부로 하면 어떡합니까? 이 사안은 제 손에서 처리하겠습니다.”
시앙핑이 딩쉐이를 빤히 쳐다봤다.
“어? 그래, 딩쉐이, 네가 알아서 처리해. 되도록 잘해. 여기 빌이 부탁하는 건데. 우리가 보통 사이도 아니고.”
역시 이제 척하면 척이네.
내 이름은 거론되지 않게 하고.
“걱정 마십시오.”
딩쉐이의 표정은 밝았다.
제가 주석 놈을 모신 게 얼마인데.
임재준 일만 아니면 깔끔하게 처리할 수 있습니다.
딩쉐이가 뒤로 물러나자 시앙핑이 빌을 쳐다봤다.
“이거 고마워서 어쩝니까? 뭐라도 하나 드려야 할 것 같은데.”
“아니, 괜찮습니다. 저희 본사 보안만 조금 신경 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이고, 보안은 중국이죠. 본사 근처에 개미 한 마리 얼씬 못하게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그럼 정말 감사합니다.”
하하하하.
그로부터 얼마 후.
우한시에 ‘블랏아웃’이라는 회사가 문을 열었다.
그리고 일주일도 안 돼서 중국 전역 4만 4천 곳의 향(郷)급 행정구의 정부 건물에 ‘블랏아웃’이란 간판이 올라갔다.
우한시를 중심으로 블랏아웃 캡슐이 보급되기 시작했고 소문은 말보다 빠르게 퍼져나갔다.
캡슐의 보급이 원활하지 않아 평상시에 찾아가길 꺼리는 정부 건물에 긴 줄이 늘어서는 진풍경을 연출했다.
당연히 언론보다 U튜브와 SNS가 이 뉴스를 전 세계로 실어 날랐다.
***
핵융합 발전소 건설 현장.
진코퍼레이션 미국 지점.
후, 후, 후.
진이 거친 숨을 몰아쉬며 모니터를 바라봤다.
이제 겨우 1억 개의 인공 신경이 완성되었다.
0.1%.
너무 더딘데.
“‘블랙’.”
【네.】
“이번에 새로 개발한 나노봇을 투입해서 마인드 업로딩 속도를 높여줘.”
【네.】
지이이이잉.
‘블랙’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 팔이 진의 뇌 속에 새로운 나노봇을 투입하기 시작했다.
진은 초고해상도 형광현미경 화면을 보며 나노봇을 관찰했다.
나노봇이 뇌 신경의 활동을 실시간으로 분석하면서 활동이 정지된 뇌 신경을 인공 신경을 대체하고 있었다.
왜 내 뉴런은 계속 증식을 하는 걸까?
뉴런의 증식이 멈추지 않는 이유가 단지 돌연변이로는 설명이 되지 않았다.
이건 마치 죽지 않으려고 발버둥 치는 원시 생명체 같은 느낌이었다.
진짜 새로운 진화를 이루려는 것인가?
진화란 환경에 적응한 돌연변이가 살아남고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개체를 소멸하는 과정이다.
어쨌든 난 돌연변이다.
그것도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돌연변이.
인위적이라는 건 환경과 전혀 상관없다는 것인데.
왜 살아남으려고 증식을 멈추지 않는 것일까.
뱅가모에서는 아직도 변형 프라이온을 배양하고 있다.
처음에는 변형 프라이온이 뇌세포에 영향을 주었는데 점점 진의 몸에서 변형 프라이온에 대한 저항이 생겨났다.
지금은 프라이온처럼 생긴 놈만 들어와도 항체들이 달려들어 죽인다.
이러다 울버린이 되는 거 아닐까?
히히.
그렇게 되면 정말 웃기겠네.
진이 한참 즐거운 상상을 하며 웃고 하는데,
“진.”
재준이 들어오며 반갑게 두 팔을 벌렸다.
“아빠.”
“아유, 밖에 저거 어떻게 하냐? 사람이 엄청 많이 몰려 있네.”
“전 밖에 안 나가니까 괜찮아요.”
“너 말고 나. 여기 왔다 갔다 하려니까 사람들이 어찌나 괴롭히던지. 사진 좀 같이 찍자, 사인해 달라. 아주 힘들어 죽겠어요.”
“아, 네.”
진이 재준을 빤히 쳐다봤다.
흠, 흠.
녀석, 머쓱하게 쳐다보기는.
“그래, 연구실은 잘 꾸며지고 있는 거지?”
“네, ‘블랙’이 투마로우 시티와 같은 환경을 만들어 놓았어요.”
“아이들은 불편해하지 않고?”
“우리야 밖에 나가는 걸 원래 싫어하잖아요. 필요한 건 건물 안에 다 있어요.”
“다행이네.”
“아빠.”
진이 사뭇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응? 왜? 무슨 일 있어?”
“심각한 건 아니고요. 데미안이 우리 나노봇을 이용해서 중국 인민의 데이터를 수집하려고 할 거예요.”
“뭐? 우리 나노봇을 이용해서? 그게 왜 심각한 게 아니야. 당장 막아야지.”
“아니요. 그냥 지켜보세요.”
“왜?”
“데미안이 수집하는 데이터를 저희도 같이 백업할 거예요.”
“백업?”
중국 14억 인구의 데이터면 장난이 아닌데.
데미안이 아주 큰일을 벌이고 있네.
그 덕에 공짜로 14억 인구의 데이터를 얻는 거지만.
데미안이 직접 중국에 진출하는 건 아닐 테고.
“당연히 빌이 나섰겠네.”
“중국에 기억을 지우는 ‘블랏아웃’이라는 회사를 차렸어요.”
기억을 지우는 회사…….
“요즘 하도 떠들어서 알고 있어. 시앙핑 주석이 좋아할 것 같아. 맘에 안 드는 놈들 전부 데려다가 기억을 싹싹 지워서 말 잘 듣는 인간으로 만드는 데 써먹지 않을까?”
“그렇겠죠?”
“큰일 나겠네. 지금도 공산당이 잘못했네, 더 많은 자유가 필요하네 하고 떠들어 대는 놈들이 천지던데. 아니, 원래 14억 인구면 시끄럽지 않은 게 이상한 거지.”
히히.
아빠는 늘 걱정이 많아.
“근데 기억이라는 게 서로 연결된 고리가 있는데 그 고리가 끊기면 언젠간 뇌는 고리를 다시 연결하려고 과부하가 걸려요.”
“그래?”
뇌도 과부하가 걸리나?
“네, 내가 어느 날 아빠 기억 속에서 사라져도, 나와 연결이 되어 있는 사람, 사물, 사건은 뇌 속에 남아 있잖아요.”
“그렇겠지. 마치 지워진 인물이 있는 사진 같은 느낌이겠네.”
궁금해서 미치겠지.
잘못하면 정신병에 걸리겠어.
“성격이 둔한 사람은 괜찮은데. 예민한 사람은 반드시 문제가 발생할 거예요.”
“그럴 수도 있겠다.”
“그리고 기억이 지워진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신경질적인 사회로 변할 거고요.”
“불만이 쌓이겠네.”
“네.”
“그럼 불만을 표출할 무언가를 찾을 테고. 아니면 위안을 받을 무언가를 찾거나. 하지만 중국에는 불만을 표출할 것도 위안을 받을 것도 없다는 게 문제네.”
“네.”
“중국에서 우리 캡슐로 가상현실에 접속하는 사람이 늘어나겠는데?”
“하지만 가상현실에서도 지워진 기억으로 고통을 받을 수 있어요. 가상현실은 사람의 기억을 바탕으로 만들어지잖아요.”
이거 심각하겠는데.
고통받지 말라고 만든 가상현실인데.
오히려 고통을 주게 되잖아.
“그럼, 내 땅에서 블랏아웃 캡슐을 빨리 빼라고 해야겠다.”
내 땅? 분명 임대인데 어느새 중국의 북동쪽은 자기 땅이라 생각하는 재준이었다.
“아직 우한시를 중심으로 캡슐이 보급되고 있는데 아빠 땅까지 가려면 시간이 좀 걸릴 거예요.”
“그럼, ‘블랏아웃’ 간판이라도 내리라고 하든가. 눈에 보이면 하고 싶은 게 사람 마음이잖아.”
가만, 데미안은 중국을 엉망으로 만들어서 뭘 얻으려는 거야?
데이터를 이용해서 IT 기업 상품이라도 팔아먹을 생각인가?
설마 시앙핑이 가만히 당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
시앙핑이 당한다?
진…….
재준은 진을 바라봤다.
“너, 데이터 백업이 중국 주석을 위한 거였어?”
“아니요.”
“맞는데. 주석이 당했다는 사실을 알면 진짜 총을 꺼내 들 테니까. 그 전에 싸울 무기를 주려는 거잖아.”
“거기까진 맞아요. 하지만 최후의 승자는 중국이 아니잖아요.”
“그야 당연히 나지.”
그림이 이렇게 그려지는 거네.
구글,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그래. 넷 중에 가장 중국에 발을 크게 담그는 놈은 죽는다.
아, 마이크로소프트는 지금도 크게 담그고 있으니까 빼고.
구글, 애플, 아마존 가운데 하나는 죽는다.
내가 겪어봐서 아는데, 중국 그렇게 만만하지 않아.
< 제399화 자, 그럼 이제 회사 가져와야지(5)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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