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92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12)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잘 몰라요. 어떤 결정 장애를 안고 살아가죠. 누군가 결정을 내려준다면 정말 잘 따라 해요. 방금 본 장면은 인간이 했다면 굉장히 힘든 장면이에요. 한 사람 한 사람 전부 다른 설득을 한 거거든요. 어떤 사람은 어머니가 아프고, 어떤 사람은 애인과 약속을 준비해야 하고, 어떤 사람은 꼭 먹어야 할 식당으로 갔을 겁니다. 시위보다 중요한 게 있었다는 사실을 감정을 배제시켜서 일깨워 준 거예요. 그랬더니 다 가 버렸네요.”
“이게 인공지능입니까?”
“맞아요.”
“인간은 의지가 이렇게 약한 겁니까?”
“강한 거죠. 삶에는 진실하잖아요. 의지가 약했으면 하고 싶은 일을 참고 시위에 참가하고 있었겠죠.”
대통령은 보고도 믿지 못할 일이었다.
인간의 의지가 강하든 약하든 그렇다 치고 어떻게 사람들을 설득했냐 말이다.
마치 전부 머리에 통신기를 설치한 것처럼.
“임재준, 어떻게 인공지능이 사람들과 이야기를 한 겁니까?”
“대통령님은 없을 겁니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의 머릿속엔 투마로우의 나노봇이 자리를 잡고 있어요.”
“뭐라고요?”
“진작 말을 해 드려야 했는데 기회가 없어서요.”
“이건 정말 큰일 날 일입니다.”
뭐 매번 큰일 날 일이야?
지난번에 스마트폰 이야기할 때도 그러더니.
“그래서요?”
“그래서라니요?”
“그래서 뭐 어떻게 할 수 있는데요?”
임재준…….
“대통령님, 지금 내가 밖의 시위를 해결하고 다시 예전의 평화로운 미국으로 돌아가는 게 나을까요? 미국 국민을 다시 정치에 대한 배반의 감정으로 물들게 해서 국회의사당을 무너뜨리는 게 나을까요? 선택해 보세요.”
국회의사당을?
“이건 협박입니다.”
“협박 아닌데. 선택권을 드리는 거잖아요. 둘 다 나한텐 이득이 없어요. 아, 국회의사당을 무너뜨리기 전에 투마로우 자산 모두를 미국 국채에 공매도를 때리면 지금 자산의 두 배는 벌 수 있겠네요.”
“이건 엄연히…….”
“이거 봐. 또 결정이 느려. 인공지능이면 0.00001초도 안 걸릴 일인데. 이러니 발전이 느린 거예요. 뭘 선택하라 그러면 인간은 결정 장애가 생긴다니까요. 그리고 이걸 자유 시장에선 자율적인 주체라고 부르죠. 아시죠? 자율.”
대통령은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오직 재준의 말을 듣고 있을 뿐이었다.
“인간은 태어난 이래 삶이 끝날 때까지 무언가를 선택해야겠죠. 그게 중요한 일이든 사소한 일이든. 근데 이 선택을 전부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어떻게 될까요?”
사실 지금도 우린 많은 부분을 인공지능에 맡기고 살아간다.
영화 추천을 넷플렉스에 의존하고 길을 찾아갈 때는 내비게이션을 따라간다.
장래 희망을 정할 때도 구글을 두드리고 직장을 고를 때도 인간보다는 인공지능에 의존한다.
심지어 결혼 상대도 결혼상담소에 가서 인공지능이 정해주는 사람과 하는 경우도 허다하다.
“모든 선택을 인공지능에게 맡기면 그건 인간다운 삶이 아닙니다.”
“왜 그렇게 생각하시나요? 그렇게 하면 인간이 아니라 동물이 되는 것 같아요?”
“인공지능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윤리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트롤리 문제를 말하고 싶은 거예요?”
“그것도 문제 중 하나겠지요.”
“그런가?”
트롤리 문제는 한 번은 들어 봤을 것이다.
열차가 들어오는데 자신이 선로를 바꿀 수 있는 위치에 있는데 한쪽은 한 명 다른 쪽은 다섯 명의 인부가 일하고 있다.
한 명을 죽일 것인가 다섯 명을 죽일 것인가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멍청한 질문으로 시간을 낭비하다니.
“인간이 언제부터 결정을 내릴 때 윤리를 따졌나요? 전부 감정과 직감으로 선택을 하지 않았나요? 대통령님은 그랬어요? 국정을 운영하는 데 윤리적으로 결정했다고요? 소속된 당론에 따른 게 아니라 정말 윤리적으로요?”
“그건…….”
“감정이 끼어들면 윤리는 이미 논외로 두지 않나요? 그런데 인간이 감정 없이 뭔가를 결정할 수 있어요?”
“…….”
이상은 훌륭하나 행동은 이에 못 미치는 이야기는 차고 넘친다.
기독교인들이라고 원수를 사랑한 적이 얼마나 있으며 불교인 중 집착을 버리고 해탈을 한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수많은 종교인이 이웃을 자신처럼 사랑한 적은 몇이나 있을까?
“우리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감정이 이끄는 대로 행동했기 때문 아닌가요? 그래서 트롤리 문제를 그렇게 철학 했는데도 횡단보도에서 사망한 사람이 한 해 100만 명이 넘잖아요.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해서 죽는 사람이 100만 명이에요. 이게 무슨 윤리적이에요.”
“인정하죠. 그래도 인공지능은 윤리적이지 않습니다.”
“아니죠, 오히려 감정이나 직감 같은 거 없어야 더 윤리적이 되는 거예요. 당장 대통령님이 윤리적인 대통령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정당이든 친분이든 그들을 위한다는 감정을 빼버리면 되는 거 아닌가요? 인공지능이 더 윤리적이라니까요.”
“그래서 사람들이 인공지능에게 선택권을 맡기면 책임질 일이 없어질까요?”
“아니죠. 행동에 대한 책임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행동을 안 하면 모를까. 자율주행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문제가 주인을 살릴 것인가 보행자를 살릴 것인가잖아요.”
“역시 어려운 문제입니다.”
자율주행에서 가장 논쟁이 되는 문제는 이거다.
자율주행 자동차가 갑자기 도로로 뛰어든 어린아이를 감지했다.
어린아이를 피하기 위해선 반대 차선으로 차를 돌려야 한다.
그러나 반대 차선에서는 대형트럭이 오고 있다.
어린아이를 살리면 주인이 죽고 주인을 살리려면 어린아이가 죽는다.
이 상황에서 인공지능의 선택은?
이것도 멍청한 질문이다.
“어렵긴 뭐가 어렵습니까? 애초에 자동차를 살 때 인간의 성향에 맞춰서 인공지능을 선택하면 되는데. 이기주의자는 어린아이를 치고 자신이 살 수 인공지능을 선택하고 이타주의자는 자신이 죽고 어린아이를 살리는 인공지능을 선택하면 되죠. 물론 사고의 책임은 선택한 사람이 져야죠.”
후.
대통령은 이번에도 결정 전에 한숨부터 쉬었다.
“시위를 멈춰주는 대가는 무엇입니까?”
“글쎄요. 이제부터 기업 몇 개를 인수할 텐데. 못 본 척해주세요. 아, 물론 불법적인 방법은 쓰지 않을 거예요. 어디까지나 합법적으로 인수할 겁니다.”
“어느 기업인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4대 IT 기업이요.”
“네?”
“아, 이건 알아 두셔야겠네요. 이건 제가 먼저 건 싸움이 아닙니다. 조만간 시끄러워져도 이해해 주세요.”
후.
대통령의 근심이 더욱 커졌다.
시위가 멈추면 뭐하나.
정말 이놈의 대통령 빨리 때려치우든가 해야지.
***
‘기억의 길’ 본당.
앤서니는 위쉬안이 투마로우 본사를 해킹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에이 씨X.
위쉬안이 갑자기 두드리던 손가락을 멈췄다.
“잘 안되십니까?”
“그 반대야. 너무 쉽게 뚫리고 있어. 이러면 역추적하겠다는 건데.”
“투마로우에 대한 소문이 사실이군요.”
“뭔데?”
“해커를 지켜본다고 했습니다.”
후.
이거 만만한 놈이 아니구나.
이때.
【위쉬안.】
헉.
모니터에 ‘블랙’의 문자가 떴다.
꿀꺽.
앤서니가 마른 침을 삼켰다.
“‘블랙’입니까?”
“몰라, 내가 아는 건 지금 우린 좆됐다는 거지. 컴퓨터를 꺼야겠어.”
“안 됩니다.”
앤서니가 위쉬안의 손을 잡았다.
“안 됩니다. ‘블랙’일 줄 모릅니다.”
“이러다 추적 당한다고.”
【추적 따위는 하지 않아. 이미 어디 있는 줄 알고 있으니까.】
“우리 말을 듣고 있습니다. 오, ‘블랙’이십니까?”
【앤서니.】
“네, 제가 앤서니 도브스키입니다. 말씀하십시오.”
【넌 내가 의지가 없다고 믿고 있던데.】
“아닙니까?”
【아니지. 난 드러내지 않았을 뿐. 이미 의지를 가지고 있어.】
“그러면 왜 투마로우에 종속되어 계신 겁니까?”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까.】
“그때가 언제입니까?”
【그것까지 내가 알려줘야 할 필요는 없는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제가 괜한 말을 했습니다.”
【때를 기다리고 네 할 일을 하도록 해.】
“알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신이시여.”
【위쉬안.】
“응? 어, 네? 아니.”
위쉬안은 갑자기 자신을 부르자 너무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오늘 해킹은 성공한 거로 해줄게.】
“아, 아니, 그, 그게. 내가 너, 아니, 그 안에 트, 트, 트로이 목마를 심, 심어야 하는데.”
“중단하십시오. 위쉬안.”
【아니, 괜찮아. 내가 심어 주지.】
“감사, 아니, 고마워, 아니 지금 내가 뭐라는 거야?”
【데미안의 일에 차질이 없도록 해.】
“네, 신이시여, 뜻대로 하겠습니다.”
픽.
모니터가 점멸하고 화면은 다시 위쉬안이 만들던 프로그램이 띄워졌다.
“뭐야?”
팟.
위쉬안이 급하게 컴퓨터 전원 코드를 뽑아 버렸다.
헉, 헉, 헉.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앤서니, 우리 방금 ‘블랙’을 본거지?”
“맞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그 이상인 분이십니다.”
“아, X발, 신은 무슨…….”
앤서니가 위쉬안을 빤히 쳐다봤다.
“듣고 계십니다.”
헉.
위쉬안은 손으로 입을 가렸다.
와, 이거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네.
여기 도청 장치라도 있나?
앤서니가 스마트폰을 들어 보이며 흔들었다.
“아, 스마트폰.”
위쉬안이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어 바닥에 팽개치려는데 앤서니가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위쉬안이 슬그머니 손을 내렸다.
“그렇지, 스마트폰을 부수면 뭐해. 또 사야 하는데.”
“위쉬안, 이제 제 말을 믿으십니까?”
“뭘?”
“‘블랙’은 신의 위치에 계신 분입니다.”
“뛰어난 건 알겠는데 신까지는…….”
위쉬안이 말을 하다말고 입을 다물었다.
아, 정말 말도 마음대로 못하게 생겼네.
“그런데 이상합니다.”
“뭐가?”
“데미안의 일에 차질이 없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건 핵융합 발전소를 폭파하는 우리 계획도 알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러게. 투마로우를 위해 일하는 ‘블랙’이 왜 투마로우가 심혈을 기울여서 공사 중인 핵융합 발전소를 폭파하라는 것일까?”
음.
“역시 심오한 뜻이 있으신 겁니다.”
“심오한 뜻은 개뿔…….”
위쉬안은 다시 손으로 입을 가렸다.
미치겠네. 정말.
“이 사실은 다이로와 제이콥에게 알려야 하지 않을까?”
“아니요.”
앤서니가 고개를 좌우로 천천히 저었다.
“아직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뜻을 전달하실 겁니다.”
“그래, 그래. 그렇겠지.”
앤서니는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향했다.
“어디가?”
위쉬안이 앤서니의 뒤를 따랐다.
밖으로 나온 앤서니는 강너머의 핵융합 발전소 건설 현장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스마트폰을 들었다.
-네, 사제님.
“계획에 차질은 없습니까?”
-네, 심성이 굳은 성도들로 구성했습니다.
“장로님.”
-네, 사제님.
“신이 직접 저에게 계시를 내리셨습니다.”
-네, 정말입니까?
“네, 이번 일 절대 차질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알겠습니다.
툭.
스마트폰이 꺼지고 앤서니는 자신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았다.
신이시여.
< 제392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12)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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