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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91화 (391/477)

< 제391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11) >

미국 국회의사당 밖.

-보편적기본소득제, 당장 통과시켜라.

-통과시켜라.

-이번에도 국민을 무시하면 의회는 해산해라.

-해산하라.

-더는 못 봐주겠다. 대통령을 탄핵하라.

-탄핵하라.

-의회는 국민을 위해 존재하라.

-존재하라.

어떻게 오늘 의회 안건이 보편적기본소득제인 걸 알게 됐는지, 수만 명의 인파가 의회 앞마당에 집결했다.

시절이 시절인지라 경찰은 중무장하고 시위대를 막아서고 있었다.

자칫 표결에서 부결이 된다면 폭동이 일어날 것 같은 분위기였다.

척 슈머는 의회로 들어서면서 성난 군중을 바라보았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오늘 잘못하면 죽을 수도 있겠는데.

큭큭.

스릴 만점이야.

정치란 이런 아슬아슬한 줄타기에서 살아남을 때 진정한 희열을 느끼는 거지.

자, 누가 죽는지 한번 보자고.

척 슈머는 비장한 표정으로 의회 안으로 들어섰다.

***

미국 국회의사당 안.

“데이빗 의원 이거 성추행 아닙니까? 왜 남의 엉덩이를 만진 겁니까? 그것도 남자 엉덩이를.”

“무슨 소리 하는 겁니까? 촬영 각도가 이상한 겁니다. 내가 왜 남의 엉덩이를 만집니까?”

“그럼 이 남자의 진술은 무엇입니까? 혹시 게이 아닙니까?”

“말을 삼가서 하세요.”

척 슈머의 지시로 초선의원들의 무차별 공격이 시작되었다.

원래 미국 의회는 이런 분위기가 아니었다.

설사 잘못한 의원이 있더라도 의회 안에서는 발설을 금하는 게 나름의 법칙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찰리 의원, 여기 세금 탈루 협의가 있는데 지금 해명을 들어야겠습니다.”

“지금 표결을 앞둔 마당에 그 얘기가 왜 나옵니까?”

“그래서 세금 탈루한 겁니까, 안 한 겁니까?”

“이 사람들이 미쳤나. 이거 엄연한 의회 진행 방해입니다. 방해하더라도 합법적으로 하세요. 합법적으로.”

“탈세했습니까? 안 했습니까? 그것만 대답하세요.”

문제는 미국 의회는 항상 생중계한다는 거였다.

의회에서 암묵적으로 지켜지는 룰이 깨졌다.

“브라운 의원, 학력이 하버드로 나와 있는데 제가 조사한 바로는 하버드 근처도 안 갔더군요. 이거 어찌 된 겁니까? 논문까지 조작된 겁니까?”

“그건 워낙 오래된 일이라 하버드의 누락이 있었을 겁니다.”

“무슨 대학이 동네 도서관입니까? 누락이 왜 있는 거야?”

“초선이 어디다 대고 반말이야?”

“범죄자가 무슨 의원이야? 당장 사퇴하란 말이야.”

“뭐? 범죄자? 이놈이 말이면 다 해도 되는 줄 알아?”

“학력 위조가 얼마나 대단한 범죄인지 모르고 하는 거야?”

민주당 초선의원들이 어디서 이런 고급 스킬을 배웠는지 미국 의회를 삽시간에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당장 끌어내.”

“네가 나가 이 새끼야. 어디서 의원질이야?”

***

뉴욕시.

사람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대형 스크린에서 흘러나오는 영상을 보고 있었다.

-저 미친 새끼들이 지금 뭐라는 거야?

-미래당이 보편적기본소득제 법안을 통과시키려는데 민주당이 초를 치고 있는 거지.

-민주당 저 새끼들은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린 거야?

-그러니까 저 모양이지.

-이거 우리만 손해인 거 아냐?

-근데 민주당이 말하고 있는 거 팩트 아냐?

-리얼이면 미래당도 문제지. 게이에, 탈세에, 저건 또 뭐야. 학력 위조? 이거 누굴 믿어야 할지 모르겠는데.

-야, 기본적인 인성이 삐뚤어진 인간이 만든 법안이 정상일 리가 있을까?

-넌 또 갑자기 왜 그래? 미래당이라면 호박으로 피클을 만들어도 먹을 놈이.

-아니, 저 말이 진짜라면 생각 좀 해 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진짜일 리가 있냐?

-진짜면 어떡할 건데.

-뭐?

이제 보편적기본소득제 법안이 약간 뒤로 밀리는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대중은 막장 스토리에 열광하지 않는가.

당장에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것보다는 자신보다 한참 계층이 높은 윗분이 개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라는데 관심이 안 갈 수가 없었다.

우우우우우우.

심상찮은 분위기가 미국 전역을 휘감았다.

사람들이 자신도 모르게 발길을 광장으로 향했다.

***

백악관.

“미친놈들.”

과격 시위 현장을 TV로 보고 있던 대통령의 입에서 욕설이 삐져나왔다.

미래당이 상정한 법안을 민주당과 공화당이 저지하고 나서자 시민들이 국회의사당으로 향했다.

이번 시위는 시작부터 달랐다.

모두 손에 무언가가 들려 있었다.

그만큼 국민의 분노가 극에 달했다는 증거였다.

대통령은 화면을 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게 무슨 자유 의지를 가진 국가란 말인가.

미국은 자유주의를 첫 번째 가치로 삼는다.

모든 권위는 개인의 자유 의지에서 나오며 자유 의지는 개인의 감정과 욕망, 선택으로 정의된다.

유권자의 자유 의지는 강하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데 왜?”

정치인은 선거에 민감하다.

정치인에게 자유주의 국가에서 선거는 생명과 같다.

그래서 자유 의지를 가진 유권자는 언제나 옳았다.

유권자는 자기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자신에게 진실하고, 자신의 마음을 따라서 정치인을 선택한다고 보았다.

그러나 지금 미국 전역에서 벌어지는 시위와 테러, 사건, 사고는 지금까지 대통령 자신이 알고 있는 유권자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어떻게 갑자기 이렇게 돌변할 수가 있을까.

대통령은 머리를 감싸 쥐고는 자리에 앉았다.

선대의 대통령들은 기업의 자유 활동뿐만 아니라 개인의 자유도 열렬히 수호했다.

정치적 권위는 유권자의 감정과 선택, 자유 의지에서 온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했다.

하지만 지금 미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시위는 이성적 판단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국민을 가르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랬다가는 바로 역풍으로 지금의 자리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게 뻔하다.

왜 의회에서 일어난 일이 시위로 번지게 되었나?

국민이 느낀 것이다.

이성이 아닌 감정에 지배되어 버렸다.

감정이 폭발해 버린 것이다.

생각이라는 이성적인 사고가 아니라 역겹다는 느낌의 감정이 인간을 지배해 버렸다.

민주주의는 인간의 느낌이 신비롭고 심오한 자유 의지를 반영하고, 이 자유 의지가 권위의 궁극적인 원천이며,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보다 더 똑똑하더라도 모든 인간은 평등하게 자유롭다고 가정한다.

그런데 이게 모두 정치인이 정한 정의일 뿐이지 유권자가 정한 정의가 아니라는 게 문제였다.

유권자의 자유 의지는 신비롭지도 않고 심오하지도 않았다.

아, 내가 진정 미국의 대통령인가.

이렇게 무기력할 수가 있을까.

똑똑.

대통령은 노크 소리에 번뜩 정신을 차렸다.

“투마로우 임재준 오너 도착했습니다.”

임재준?

아, 오늘 임재준을 만나기로 했지.

“들어오세요.”

재준은 문을 열고 들어오다 대통령의 얼굴을 보고 흠칫 놀랐다.

좀비야? 얼굴도 반쪽이고 몸은 왜 어기적거리는데?

“마음은 좀 평안하십니까?”

“그래 보입니까?”

“아니요. 전혀 그렇게 보이지 않습니다. 솔직히 방금 대통령님을 보고 좀비인 줄 알았습니다.”

에휴.

“잘 보셨습니다. 밖의 상황을 잘 아시니 제가 설명하지 않아도 잘 알 겁니다.”

“그러게 국가 운영은 인공지능에게 맡기는 게 편하다니까요.”

대통령은 재준을 잠시 멍하게 쳐다보다 ‘후’ 하고 한숨을 쉬었다.

“솔직히 당장 그러고 싶습니다.”

“아니 근데 왜 안 하시는 겁니까?”

“그게 말처럼 쉬운 게 아닙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에게 권위를 넘기면 국민들이 이성적이 아니라 감정적으로 들고 일어날까 봐 걱정하시는 거죠? 지금처럼요?”

후.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통령님, 전에도 말했지만, 우리의 감정은 독특한 영적 특성이 아니라서 자유 의지를 반영하지 않아요.”

“그게 무슨…….”

“감정은 생존과 번식을 위한 무의식에서 생겨나는 생화학적 반응일 뿐이라고요. 감정은 영감이 아니라 계산이에요. 계산.”

“감정이 계산이라고요?”

“이제야 알아들으시네. 인간은 뱀을 보면 죽을 확률이 높다고 계산을 하는 것이고 아름다운 여성을 보면 번식과 쾌락의 확률이 높다고 계산하는 거예요. 분노나 죄책감, 용서 같은 도덕적 감정은 집단 협력을 가능하도록 진화한 신경 메커니즘이란 말이에요.”

“감정이 합리적이지 않다는 겁니까?”

“당연하죠.”

“합리적이지 않다는 걸 알아도 지금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인공지능에게 맡기세요.”

“임재준……. 그건…….”

“왜요? 믿고 있는 현실이 깨질까 봐 두려운가요? 감히 인공지능 따위가 인간도 하지 못한 일을 해결해 버리는 게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서요?”

“그건…….”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아직 모르시는군요. 그럼 보여 드릴게요.”

“네?”

재준은 TV를 켜고 전국의 시위 현장 중 뉴욕의 시위 현장을 띄웠다.

“지금 실시간으로 나오는 뉴스입니다.”

“맞긴 한데, 지금 뭐 하시려는 겁니까?”

“기다려 보세요.”

재준은 스마트폰을 꺼내 한마디 했다.

“‘블랙’, 해산시켜.”

그리고 화면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대통령은 동공이 터질 듯이 커졌다.

화면 속에선 시위대의 시위가 점점 시들해지더니 하나둘 자리에 멈춰 서서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한 명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위대를 떠나 경찰들을 사이로 빠져나갔다.

경찰들도 처음엔 움찔하더니 위협이 없자 멍하니 바라만 보았다.

한 명이 떠나자 주변 사람들도 덩달아 자리를 이탈했다.

결국 덩그러니 중앙에 한 명의 시위 대원만 남고 모두가 경찰들을 스치며 사방으로 흩어져 시위 현장에서 멀어져 갔다.

“임재준, 지, 지금, 지금 당신의 명령 한마디에 저, 저, 저기 국민들이 시위를 중단한 겁니까?”

쯧쯧쯧.

“내가 지금까지 말씀드렸잖아요. 감정은 계산일 뿐이라고요. 저기 무의식 밑에서 수백만 년을 이어온 생존을 위한 계산 값일 뿐이에요. 그 값을 살짝 변화만 주면 인간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움직이는 겁니다. 마치 로봇처럼요.”

“다, 당신, 무슨 짓을 한 건지 아십니까?”

“내가 무슨 짓을 했는데요?”

“사, 사람들을 조종했잖아요. 방금 내가 본 건 분명히…….”

“신기하죠.”

“임재준, 이러면 큰일 납니다.”

에휴.

“대통령님, 이미 인간의 뇌와 감정이란 놈의 정체는 다 드러났어요. 그리고 빅데이터 알고리즘에 의해 인공지능이 최고의 선택을 알려준 것뿐이에요. 방금 내가 뭘 한 것 같아요? 설마 ‘시위를 그만두고 집에 가라’ 그랬을 것 같아요?”

“아닙니까?”

이 사람이 그건 사람이 아니라 로봇이지.

“당연히 아니죠. 그거 있잖아요. 기업들이 광고할 때 사용하는 방법. 꼭 사고 싶게 만들잖아요. 사실 필요도 없는데. 나도 그거와 비슷한 방법을 사용한 거예요. 방금 사라진 시위 대원 중 단 한 명만이 가운데 남아 있었잖아요. 그 사람은 지금 시위가 진심인 거예요. 그러고 보니 그 사람 애국자네. 어쨌든 나머지는 그저 감정에 휩쓸려 시위에 참여한 거예요. 감정 말고 현실을 바라보게 하면 지금처럼 시위하던 사람들이 다 떠나게 되는 겁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 제391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1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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