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89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9) >
AAG 빌딩 66층
“아니 이걸 좋게 봐야 하는 거야, 아니면 따끔하게 한마디 해야 하는 거야?”
재준은 ‘기억의 길’의 시세 확장 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기사를 스크린으로 확인하고 있었다.
윌켄이 허무한 표정을 지었다.
“지난번 ‘기억의 길’ 사제가 CNN 출연 이후 미래에 대한 이미지가 구체적이어서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습니다.”
“그러게, 거기다 투마로우까지 언급하고. 어디서 대충 우리 밥상에 숟가락 얹으려는 것 같은데.”
“단호하게 거절해야 하는데 ‘기억의 길’과 ‘사이진’이 뒤섞여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허, 거참. 이거 우리가 나서서 ‘기억의 길’과 선을 그어야 할 것 같지 않아요? 가뜩이나 다이로와 손을 잡은 놈이 우리를 추켜세워 주니까 뭔가 기분이 묘하단 말이죠.”
“‘기억의 길’ 뒤에는 분명 데미안과 4대 IT 기업이 있습니다. 확실한 건 앤서니의 의도가 좋은 건 아닐 겁니다.”
“그럼 이놈들을 어떻게 골탕을 먹인다…….”
“그리고 이거 봐요. 보스.”
윌켄이 신문을 한 부 탁자에 내려놓았다.
재준이 의아한 눈으로 윌켄을 바라봤다.
“아직도 신문을 구독합니까?”
“전 아직은 디지털보다는 종이가 익숙해요.”
“하하하, 윌켄 때문에 진작 일자리를 잃어야 할 사람들이 임금을 받고 있네요.”
“전 세계에 아직 종이 구독자가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완전히 종이 신문이 없어지려면 한 세대는 더 지나야 할 겁니다.”
“하긴 아무리 로봇에게 일 시키고 편하게 놀라고 해도 꼭 반대하는 사람은 있으니까.”
“근데, 보스. 그 앤서니란 사람이 며칠 전에 래리킹 라이브에서 한 말이 자꾸 거슬리던데요.”
“뭐가요?”
윌켄은 신문을 넘겨서 한 문장을 짚었다.
“여기, 투마로우가 종교의 신들도 해내지 못한 천국을 이 땅에 실현하고 있다는 이 말이요.”
재준은 윌켄에게 ‘별걱정을 다 한다’라는 눈빛을 보냈다.
“그거야 앤서니가 종교 지도자니까 그런 말을 했겠지요.”
“기독교 단체에서 들고 일어나면요?”
어라?
말을 앤서니가 했는데 피해는 투마로우가 보게 생겼네.
“윌켄, 반대 성명이라도 낼까요?”
“현실이 다른데 믿겠습니까?”
“안 믿으면 믿게 만들어야죠.”
“방법이 있습니까?”
방법이야 나노봇을 이용하면 있긴 하지.
한 번 사용했다가는 나라가 들썩여서 문제지만.
근데 이제 보여줄 때가 된 것 같긴 한데.
재준이 고민하자 윌켄이 먼저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러지 말고 우리가 새로운 직업을 찾아서 재훈련시키는 건 어떨까요? ‘블랙’이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에이, 사람들에게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주고 재훈련시키면 또 금방 안 한다고 할 거예요.”
윌켄이 갸우뚱했다.
그러려나.
인간이 워낙 변덕스러운 동물이어야 말이지.
재준의 말이 계속되었다.
“아무리 새로운 일자리나 재교육을 제공해도 사람들은 변화에 대처하는 감정의 근력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아요. 이게 스트레스잖아요. 고용시간도 변하고, 개인 직업의 환경도 변하면 사람들이 현실에 잘 대처할 수 있겠어요?”
“스트레스 경감 기술 같은 거 없습니까?”
“마약 있잖아요.”
아, 보스. 그건 아니죠.
“윌켄도 콜롬비아에 가끔 한 번씩 갔다 오세요. 스트레스 확 풀린다는데. 요즘은 가격도 싸고.”
“제 취향이 아닙니다. 보스나 가세요.”
“나도 몽롱한 걸 즐기는 취향은 아니라서.”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후후.
“근데 로봇이 인간을 대체해서 현재 대규모 실업은 없잖아요. 이번 발표를 보니까 실업률도 사상 최저를 기록 중이던데.”
“그건 우리가 로봇을 뿌리는 이유도 있지만, 근본적으로는 정치와 보수적인 전통이 발전을 막고 있는 영향도 있어요. 제가 종이 신문을 보니까 일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처럼요.”
“하긴 그러니까 아직 미국은 자율주행을 시작도 못 하고 있긴 해요.”
“안전하고 저렴한 걸 알면 뭐합니까, 아마 정치권과 사람들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자율주행을 막을 겁니다.”
피식.
재준은 웃었다.
“언제 정신 차릴 건지 원.”
“기득권을 내려놓아야 하는데 힘들 겁니다.”
“과학 기술의 도입을 늦춰서 실직을 막는 것은 근시안적이며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낮은 전략이에요. 이번에 해리슨 상원 의장도 인공지능과 로봇에서 얻을 수 있는 긍정적 효과를 깨달았다고 말했는데. 다 믿지는 않지만.”
“그래도 로봇 도입의 충격을 줄이고 새로운 직업과 재훈련에 필요한 시간을 벌기 위해 정부가 일부러 과학의 속도를 늦출 수밖에 없는 거예요.”
“변화의 속도를 늦추면, 사라지는 일자리를 대신할 새 일자리를 만드는 데 필요한 시간을 확보할 수 있을까요?”
재준에 말에 윌켄이 그동안 생각했던 부분을 이야기했다.
“힘들겠습니까?”
“힘들다기보다는 정부가 개입해서 평생 교육을 지원해주고, 어쩔 수 없이 전직하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금전적 지원을 제공하면 가능이야 하겠죠. 근데 정부 지원이 충분하게 제공된다 해도 또 새로운 일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상황이 반복될 텐데, 반복해서 자신을 바꾸면 정신적 균형을 잃지 않을 수 있겠어요?”
“또 스트레스입니까?”
“모든 게 마음에서 시작되잖아요. 할 수 없이 하는 것과 적극적으로 하는 건 많이 다르니까요. 지금 변화를 솔직히 인정해야 하는데 그게 어려울 겁니다.”
“그래서 보스는 지금 현 상태를 유지하려고 하는 겁니까?”
“좋잖아요. 로봇이 일하고 사람이 돈 받고.”
“소외된 사람들도 있잖아요.”
“그걸 정치인들 몫이죠. 뭐 미래당이 나서지 않을까요?”
“오늘 심의회가 열린다고는 하던데.”
“심의야 뻔하니까. 끝나면 대통령을 만나야겠어요. 약속 좀 잡아 주세요.”
“대통령은 왜요?”
“위로해 드려야 할 것 같아서.”
그래, 나노봇이 뭔지 한 번은 보여 줘야 변하겠지.
지금까지 시간은 줄 만큼 준 것 같은데.
***
상원 하원 합동 심의위원회.
“보편적기본소득제요?”
도날드의 제안에 공화당 원내대표가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보편적기본소득제(Universal Basic Income, UBI)는 국민에게 무조건 일정량의 현금, 혹은 현금에 따르는 재화를 제공하는 복지제도를 말한다.
그리고 공화당 원내대표가 법안을 들고 천천히 읽었다.
“정부가 알고리즘과 로봇을 지배하는 기업들에 세금을 물려서 그 돈을 모든 개인에게 기본 필요를 충당하는 만큼의 급료를 제공하는 데 사용한다?”
“맞습니다. UBI는 빈곤층에는 실직과 경제적 혼란에 대비하는 역할을 하고 부유층은 좀 많은 세금이지만 국민의 계층 간 불만으로부터 보호받을 것입니다.”
“아니 도대체 이런 쓸데없는 생각은 어디에서 나온 겁니까?”
쯧쯧쯧.
도날드는 공화당 원내대표를 향해 혀를 찼다.
“잘 들으세요. 이제 인간은 인간다움으로 변해야 합니다. 로봇이 우리의 노동을 대신해 주고 있으면 우리는 뭔가 다른 일을 찾아야죠.”
“찾은 게 일도 안 하는 사람들에게 세금 낭비하자는 거예요?”
“어허, 거참, 잘 들어 보세요. 우리는 ‘일’이라는 인간의 활동 범위를 좀 넓혀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돌보고, 이웃이 서로를 보살피고, 시민들이 공동체를 만들어 지역사회에 봉사하는 것을 인정해 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무시한 뜻깊은 일에 보상을 해줘야 합니다.”
공화당 원내대표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니까 당연한 일을 한 사람에게 돈을 주자는 소리잖아.
“그러니까…….”
“잠깐만, 제 이야기가 아직 안 끝났습니다.”
도날드가 공화당 원내대표의 말을 자르고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리는 사고를 전환해야 합니다. 아이를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하고 힘든 일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는 겁니다. 로봇이 운전기사와 의사, 변호사를 대체해도 우린 만족할 겁니다.”
“거기 왜 운전기사와 의사, 변호사만 거론하는 겁니까? 자율주행, 팜봇, ‘코트’를 염두에 두고 말하는 거 아닙니까?”
“거, 원내대표하는 분이 자꾸 남의 말을 자르고 그래요?”
자, 자.
해리슨이 나섰다.
“미래당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봅시다.”
끙.
공화당 원내대표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공화당 원내대표에게 인상을 팍 쓰고 도날드는 말을 계속했다.
“이제 아기를 키우는 일은 인정받아야 하고 대가를 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자신을 돌봐준 부모에게 아이가 월급을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닙니까? 그러니 정부가 나서서 부모에게 대가를 지불해 줘야 한다는 겁니다.”
“아니 당연한 일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니 그게 말이 됩니까?”
“이런 일에 돈을 쓰지 않으니까 출산율이 낮아지고 지역사회가 불안해지는 겁니다. 이제 일에서 손을 놓았으니 인간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더 집중하도록 정부가 나서야 합니다.”
허, 말도 안 되는 소리를…….
공화당 원내대표는 고개를 저으며 법안을 읽어 내려갔다.
엥?
이건 뭐야?
“여기요. 이건 뭡니까? 보편 기본 서비스라뇨?”
“UBI를 실행하면서 무상으로 교육과 의료, 교통 같은 서비스를 보조 시스템으로 만들자는 것입니다.”
“지금 미국을 공산주의로 만들자는 것입니까?”
“공산주의가 아니라 몇 개의 수단을 빌리자는 건데 뭐, 문제 있습니까? 지금 정부가 시장에 개입하는 것도 공산주의 정책이잖아요. 이미 대부분 공산주의 도구를 가져다 쓰고 있으면서 갑자기 무슨 이념 타령을 하는 겁니까?”
이거 나라를 말아먹자는 거네.
“좋습니다. 그럼 기본의 규정은 어디까지입니까? 기본 교육은 읽기 쓰기만 하면 되는 겁니까? 아니면 코딩이나 피아노 연주까지 포함하는 겁니까? 기본 의료는 질병을 치료하는 겁니까 아니면 임모탈의 생명 연장까지입니까?”
“그건…….”
도날드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하려는데 공화당 원내대표가 빠르게 말을 자랐다.
“이 기본이란 건 말입니다. 일단 한 번 무료로 제공하게 되면 사람들은 당연하게 생각하게 됩니다. 그럼 더 좋은 기술이 나오면 그것도 기본으로 해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요구가 과해서 안 해주면 시위로 변하게 될 겁니다. 훨씬 나은 의료 서비스와 교육을 누려도 불평을 하는 사람들은 생기며 실현이 안 되면 분노를 표출하게 될 거라고요.”
“알고 있습니다. 인간은 만족을 모르니까요.”
“잘 알고 있군요. 인간은 객관적 조건보다는 자신의 기대에 더 좌우되는 겁니다. 거기다 자신보다 부유층을 돌아봤을 때 여건이 좋아져도 불만을 가질 텐데 그때는 어떻게 할 겁니까?”
도날드는 공화당 원내대표를 안타까운 마음으로 바라봤다.
“참, 남의 일에 걱정도 많습니다. 실제로 미래에 가보고 싶네요. 국민이 자율주행 전기차를 타고 다닐 때 대표님은 초호화 전기차를 타고 다니고, 국민이 임모탈에서 10년 생명 연장할 때 대표님은 100년 연장할 거 같은데.”
흠, 흠.
공화당 원내대표분만 아니라 몇 명의 의원들이 헛기침하며 시선을 돌렸다.
“그래서 ‘블랙’에게 2050년 평균인의 객관적 조건을 예상해 달라고 했습니다. 만족의 기준을 정하는 겁니다. 지금 2050년 혜택을 말하면 그때까지는 불만을 가질 수 없을 테니까요.”
“왜 불만이 없다고 확신하십니까?”
“아니, 2050년을 아는 사람이 있습니까? 뭘 알아야 불만을 품죠? 다들 2050년 혜택이라고 하면 만족할 텐데요.”
그런가?
모두 이해하는 듯했지만 공화당 원내대표는 목청을 높였다.
“문제는 또 있습니다.”
“또 뭡니까?”
“UBI를 실행하려면 꽤 많은 예산이 필요합니다. 어디서 예산을 충당합니까?”
“자, 잘 들으세요. 로봇을 고용하는 기업들은 이미 보편기본소득제와 같은 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그럼, 설마…….”
“네, 예상하신 대로입니다. 로봇을 고용하지 않는 기업들에게 그에 따르는 세금을 부과하는 겁니다. 특히 4대 IT 기업들.”
“미쳤습니까? 그들이 어떤 기업들인데.”
도날드가 공화당 원내대표를 뚫어지게 쳐다봤다.
어떤 기업은 무슨 어떤 기업.
정치인들 후원하면서 나라를 장악한 기업이지.
이 기회에 임재준한테 저 기업들 인수하는 건 어떨까 제안해 볼까?
< 제389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9)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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