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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87화 (387/477)

< 제387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7) >

한 달 후.

[‘기억 길’ 종교를 창시한 앤서니 도브스키가 출소했습니다. 인공지능을 신으로 삼는 이 종교는 현재 신도가 6만 명에 달하며,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집회나 모임도 가진 적이 없는 철저한 온라인 종교를 지향했습니다. 그런데 출소 후, 앤서니는 사우스다코타주의 미주리강 유역에 본당을 짓고 그곳에서 최초의 오프라인 모임을 예고했습니다. 사람들은 미주리강의 핵융합 발전소 건설이 인공지능이 동원되는 최대규모 공사이기 때문이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언론에 앤서니 도브스키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앤서니가 출소했나 봐.

-그럼 가 봐야지.

-인공지능을 신으로 섬기니까 ‘사이진’ 애들도 대거 참석한다는 소리가 있던데. 최소 10만 명은 모일 거야.

-또 한 번 시끌시끌하겠는데.

‘기억의 길’ 신도뿐만 아니라 ‘사이진’의 회원들도 이 신흥 종교에 관심을 가지며 미주리강 유역으로 몰려들었다.

***

미주리강.

미주리강을 두고 건너편에는 핵융합 발전소가 건설 중이었고 반대편에서는 ‘기억의 길’ 본당이 지어졌다.

10,000m²의 면적에 단층으로 된 거대한 강당이었다.

길게 늘어선 사람들이 강당의 문이 열리자 안으로 들어섰다.

사람들은 본당에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강당 안으로 들어서자 하얀 대리석이 바닥과 천장에 장식되어 있었고 검은 대리석이 벽을 이루는 거대한 공간이었다.

오직 하얀색과 검은색뿐인 조화가 마치 0과 1의 비트를 연상하게 만들었다.

중앙엔 마치 컴퓨터 CPU 같은 정사각형의 50cm 높이의 단상이 있었는데 그리 높지 않아 사람들과 소통하기에 적당했다.

-언제 이런 걸 만들었어?

-그러게. 앤서니가 돈은 좀 있는 줄 알고 있었지만, 이 정도인 줄을 몰랐는데.

-어, 앤서니다.

웅성거리는 사람들 사이로 앤서니가 걸어 나왔다.

-앤서니, 우리가 왔어요.

-우리에게 길을 보여주세요.

-앤서니, 사랑합니다.

앤서니는 두 손을 동그랗게 말아서 ‘기억의 길’ 상징인 1과 0을 표현하며 화답해주었다.

드디어 단상에 올랐다.

주위를 한 번 주욱 둘러보더니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여러분. ‘기억의 길’ 사제 앤서니 도브스키입니다.”

와아아아아.

“‘기억의 길’이 오프라인 모임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많이 놀라기도 하고 당황스럽기도 했을 겁니다. 과거 인공지능의 초기 단계에서는 온라인으로 서로의 존재를 확인하는 게 옳다고 믿었습니다. 오프라인은 언제나 돈이 문제잖아요.”

하하하하하하.

-그래서 우리가 앤서니를 믿는 겁니다.

“그러나.”

앤서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갔다.

“우리를 고통에서 벗어나게 해줄 인공지능 ‘블랙’이 완성됐습니다. ‘블랙’에 대해 자세한 설명은 생략하겠습니다. 여러분이 저보다 더 많이 알고 계시니까요. 전 여러분이 ‘블랙’을 경험할 때 불행하게도 감옥에 있었습니다.”

우우우우우우.

안타까운 탄식이 흘러나왔다.

“여러분, ‘블랙’의 분신인 ‘카리브’를 경험하시니까 어떻습니까?”

-친구보다 나아요.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게 ‘카리브’입니다.

-이제 고민할 일이 없어졌어요.

앤서니는 사람들의 반응에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그렇습니다. ‘카리브’가 여러분을 선택의 고통에서 일부나마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저 ‘어시스턴트’나 ‘시리’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블랙’의 분신입니다. 그리고 캡슐로 또 다른 세상을 경험하고 계십니까?”

-난 24시간 캡슐에서 살아요.

-캡슐로 삶의 활력을 얻고 있습니다.

“그렇군요. 우린 ‘블랙’이 주는 세상에서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걸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캡슐에서 나오면 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고통이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우리를 평생 괴롭히는 고통은 무엇일까요? 바로 우리의 머릿속에 쉴 새 없이 떠오르는 과거의 기억입니다.”

음.

“우리의 뇌는 행복한 기억을 떠올려 주지 않습니다. 인류가 생존에 맞게 진화했기 때문이죠. 위험한 기억을 계속 떠올려야 언제 닥칠지 모르는 야생의 위험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뇌는 인지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공룡이 뛰어다니지도 않고 사자를 조심할 필요가 없는 시대입니다. 세상은 변했지만, 뇌의 진화는 더디기만 합니다.”

-그래도 캡슐이 행복한 기억을 만들어 줍니다.

-인공지능은 언제나 옳아요.

“맞습니다. 우리의 피난처는 캡슐입니다.”

와아아아아아아.

“그러나.”

다시 앤서니의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자 사람들은 침묵으로 앤서니의 말을 기다렸다.

“어두운 기억을 벗어나고자 우린 캡슐을 사용합니다. 그럼 그 어두운 과거를 지울 수 있다면 여러분의 삶은 어떨 것 같습니까?”

-엥? 방금 뭐라고 한 거야?

-기억을 지울 수 있다는 거야?

“우리의 기억을 전부 지울 수는 없습니다. 그런 일은 뇌의 기억을 데이터에 저장할 때나 가능합니다. 그렇습니다. 언젠가는 우리의 기억은 전부 데이터가 되어서 영원하고 안정된 삶을 살 겁니다. 그때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오오오오오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그때까지 우리는 계속 과거의 악몽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 인간의 악몽을 일부라도 지울 수 있다면 어떨까? 좀 더 행복하지 않을까?”

앤서니의 마지막 말이 하울링처럼 강당 전체로 널리 울려 퍼졌다.

그리고 강단 바닥이 갈라지면서 캡슐 하나가 위로 올라왔다.

징.

투마로우의 캡슐에 비해 훨씬 크고 한눈에 봐도 휘황찬란한 빛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복잡한 기능이 탑재된 캡슐이었다.

앤서니가 앞으로 걸어 나와 한 사람 앞에 섰다.

“형제님,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있습니까?”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요?”

남자는 당황하여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이에 앤서니가 그의 어깨에 손을 얹고 부드럽게 말했다.

“특정한 시간도 좋고 특별한 대상도 좋습니다.”

음.

잠깐 생각을 마친 남자의 미간이 일그러졌다.

“1년 전 헤어진 여자를 길거리에서 봤는데 다른 남자와 있었습니다. 바로 그 전날 헤어졌는데 말이죠. 아직도 그때 기억만 하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다.”

“그러시군요. 정확한 날짜를 아십니까?”

“12월 24일 크리스마스 이브였습니다. 그래서 더 잘 기억합니다.”

“자, 이리 오세요.”

징.

캡슐 문이 위로 올라가고 앤서니가 남자에게 손을 내밀어 들어가라는 신호를 주었다.

“여기 누우면 되는 겁니까?”

“네, 그날을 떠올리며 잠시 누웠다 일어나면 됩니다.”

남자는 반신반의하는 맘으로 캡슐에 누웠다.

징.

캡슐이 닫히고 앤서니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 올렸다.

“여러분, 이 캡슐에 있는 인공지능이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오오오오오.

10분이 지나자 다시 캡슐의 문이 열리고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남자는 멍한 표정으로 앤서니를 바라봤다.

앤서니는 남자에게 다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1년 전 여자 친구를 본 적이 있습니까?”

“여자 친구요?”

남자는 미간을 찡그리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이제 당신의 기억에서 그날은 삭제되었습니다. 그 일로 고통받는 일은 없을 겁니다.”

주위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정말이야? 짠 거 아니지?

짝.

앤서니가 손뼉을 쳐서 시선을 집중시켰다.

“여러분,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으면 앞으로 나오십시오.”

와아아아아아.

앤서니, 앤서니, 앤서니.

멀리서 다이로와 위쉬안이 앤서니를 보며 피식 웃었다.

“타고났네. 타고났어.”

“사제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라니까.”

“근데 기억은 누가 지우는 거야?”

“저 캡슐. 저 안에 fMRI가 있다고 하더라고. 기억을 떠올리면 신경 세포의 에너지 사용과 연관된 혈류의 변화가 일어나거든. 그 부분에서 특정 단백질을 제거해 버리면 뉴런의 연결이 끊어지면서 기억이 사라지는 거지.”

“넌 어떻게 이걸 알아?”

“데미안이 설명했잖아. 너도 같이 들었으면서.”

“그걸 기억하고 있어?”

“그럼 들었는데 기억을 못 하는 게 이상한 거지.”

“그런 걸 기억하는 게 비정상적인 거 아냐? 들었다고 다 기억하냐?”

“으휴, 넌 기억을 지울 필요 없겠다. 도대체 기억하는 게 없어.”

위쉬안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

CNN 대담 프로 래리킹 라이브.

“안녕하십니까? 래리킹입니다. 요즘 인공지능이 가장 핫한 이슈입니다. 사회, 문화, 경제, 정치까지 영향을 안 미치는 데가 없는데요. 인공지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인물 중에 한 분을 모셨습니다. ‘기억의 길’이라는 신흥 종교의 유일한 사제이신 앤서니 도브스키 사제님과 함께 인공지능에 관해 이야기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짝짝짝짝짝.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께 앤서니가 두 손을 동그랗게 말면서 등장했다.

중앙에 서서 관중에게 한 번, 래리킹에게 한 번 인사하자 래리킹이 자리를 지정해 주었다.

“힘든 자리인데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신의 오해를 풀기 위한 일인데 마다할 수 있겠습니까?”

“하하하, 역시 익숙하지 않습니다.”

“곧 익숙해지실 겁니다.”

“네, 오늘은 다른 분야보다 인간의 일자리에 관해서 좀 더 심층적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볼까 합니다.”

“좋은 주제입니다. 모두 가장 걱정하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래리킹은 관객을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우선 2042년을 특이점이라 부르던데 그때 고용 시장은 어떤 모습일까요?”

특이점이란 커즈와일이 과학 기술이 인간을 뛰어넘어, 인간의 수명을 포함해 인간이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모든 개념에 변화가 일어나는 시점을 가리킨 말이다.

“특이점이요. 네, 그때가 되면 기계 학습과 로봇이 거의 모든 분야의 일을 바꿔놓을 것이라는 데는 대체로 합의가 이루어졌습니다.”

“합의라고 하시면 누구를 말하는 겁니까?”

“지식인들입니다.”

“아, 네, 그때가 되면 수십억 명이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잉여 인력이 될 것이라고 하는 데 맞습니까?”

“우리가 아는 잉여 인력은 사회에 쓸모없는 사람을 말하는 겁니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있는 한 아닙니다. 언제나 그렇듯 자동화는 계속 이어져서 모든 인간에게 더 큰 번영을 안겨다 줄 수 있을 겁니다.”

와아아아아아.

객석에서 ‘큰 번영’이라는 말에 함성이 튀어나왔다.

앤서니는 다시 관객을 향해 정갈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래도 엄청난 실업으로 사회가 혼란하지 않을까요?”

“실업을 발생할 거라는 공포는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러다이트 운동이라고 아실 겁니다.”

러다이트 운동(Luddite)이란 19세기 초반 영국에서 있었던 사회 운동으로 노동자들이 자신의 일자리를 대신하는 섬유 기계를 파괴하며 일으킨 운동이다.

이 용어는 산업화, 자동화, 컴퓨터화 또는 신기술에 반대하는 사람을 의미하며 자본가에 맞서는 계급 투쟁을 벌이는 노동운동으로 여겨졌다.

“네,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과 같은 걱정이 있어 왔지만, 단 한 번도 대규모 실업 사태는 발생한 적이 없습니다. 모두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새로운 일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평균 생활은 더 나아졌습니다. 지금 우리를 보면 알지 않습니까?”

짝짝짝짝짝.

이번에는 ‘기우’에 불과하다는 말에 관객들은 박수를 보냈다.

“하지만 과거에는 육체적 능력의 위기였다면 지금은 인지적 능력의 위기 아닐까요?”

“그것도 일리 있는 말입니다. 지금 우리가 서비스라고 부르는 인지적 능력의 직업이 생겨났으니까요. 하지만 위기라고 부르기에는 아직 우리는 대비할 시간이 충분합니다.”

인지적 능력은 학습과 분석, 의사소통, 인간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을 말한다.

이건 기계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래리킹은 조금 더 앤서니에게 급진적인 질문을 해 보기로 했다.

“그렇군요. 그러면 인공지능의 속도가 빨라지고 똑똑해진다면 인간의 인지적 능력도 보완해주게 될까요?”

앤서니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

“그 이상. 인공지능 혁명은 처리 속도가 빨라지고 똑똑해지는 것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육체적, 인지적 외 제3의 능력을 이해해야 합니다.”

< 제387화 다시 석유 쓰면 안 될까(7)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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