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9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3) >
“임재준, 이게 가능하군요.”
살만 국왕과 왕세자가 재준을 유별난 별종을 보듯이 바라봤다.
재준은 일주일 전 사우디에 도착해서 살만 국왕에게 전쟁이 일어나니 네옴 시티로 국왕과 왕세자, 그의 가족들을 데리고 오라고 했다.
네옴 시티가 제일 안전하다고 했다.
사우디 국민들은 인공지능이 문자로 안전한 북쪽과 동쪽으로 피난시킨다고 했고.
“그렇다니까요. 이게 바로 인공지능이 다스리는 세상입니다. 거의 인명 피해가 없잖아요. 그 수천 발의 미사일과 공군의 화력을 받았는데요.”
“그래도 기간 시설이 다 망가졌으니 복구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것 같습니다.”
“여기 네옴 시티가 있는데 무슨 걱정입니까? 이 기회에 국가 체질 개선도 좀 할 수 있고요.”
이슬람 근본주의 좀 버렸으면 딱 좋겠는데.
이때, 미 7군단장이 들어왔다.
“사우디 국왕님. 당신들은 포위됐습니다. 순순히 항복하시죠.”
재준이 군단장을 보며 손을 휘휘 저었다.
“어, 그거 말하려고 온 거야? 거기서 좀 기다려. 얘기 좀 마저 끝내고.”
군단장의 위엄을 발톱의 떼만큼이나 신경 쓰지 않는 재준의 태도에 군단장이 인상을 구겼다.
“뭐요? 나 군단장입니다!”
재준이 험악한 인상을 쓰며 일어섰다.
“근데? 군단장이 뭐? 지금 한판 붙어? 그럼 저 아래에 있는 군인들 10분 안에 시체로 변할 건데. 시체 구경하는 게 취미야?”
“뭐요?”
“야, 이 쓰레기야. 군단장이면 사우디 전역에 미사일 쏘고 전투기로 폭격하는 거 알았을 거 아냐? 그럼 민간인은 그냥 다 죽으라는 거잖아. 그거 알면서 또 무슨 기갑사단이네 기병사단이네 끌고 여기까지 사람 죽이러 온 거고. 사람 목숨은 안중에도 없는 놈을 군단장이라면 내가 대접해 줘야 하는 거야? 그리고 전세 좀 파악해. 지금 포위된 건 우리가 아니라 너희들이야.”
군단장은 아래에 있는 미군과 대치하는 로봇을 봤다.
전부터 들어 알고 있었다.
저 투마로우 전투 로봇이 얼마나 대단한지.
10분? 플라이 드론이 휩쓸고 지나가면 1분이면 충분했다.
그렇다고 여기서 물러날 수는 없는데.
“원하는 게 뭡니까?”
“갑자기 무슨 협상을 하려 그래? 이제 집에 가도 돼. 대충 전쟁하는 시늉은 했잖아. 그만 가. 그냥 가면 돼. 이쪽에서 대강 정리해서 미국이 승리하고 사우디가 패배했다고 언론에 포장해 줄 테니까.”
군단장은 머리가 어질했다.
지금 뭐라고 한 거야?
지금 전쟁 중 아닌가?
내가 이긴 게 아닌가?
“질문 하나 합시다.”
“어? 말해 봐.”
정말 거슬리네, 저 무례한 말투.
“정부가 알고 있는 겁니까?”
“당연히 모르지.”
“미국 내에 있는 투마로우 자산이 동결될 수도 있습니다.”
“그랬다간 전 세계에 있는 미국 자산이 동결될 거야. 맞바꾸는 것도 나쁘지는 않고.”
“이대로 함대가 물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봐요 군단장니~임. 저 바닷속에 뭐가 있는지 알고 하는 소리야? 여기서 명령만 내리면 1분 만에 항모 전단 바닥은 흔적도 없이 사라질 거야. 항모 전단이 그냥 바다에 가라앉는 거라고.”
“그러면…….”
재준이 일어서서 군단장에게 다가왔다.
뒤에 천 실장이 재준의 뒤에 붙었다.
“맞아요. 바닷속에도 있어.”
재준이 군단장의 귓가에 속삭였다.
“미국이 졌어.”
으.
“하지만 이긴 거로 해준다니까. 아, 입장이 곤란할 수 있으니까, 조만간 정부 관계자끼리 사우디 원유 판매 권한을 이양한다는 합의문도 작성할 거예요. 어때, 이러면 미국이 완벽하게 이겼죠.”
짝짝짝짝짝.
“축하합니다. 빨리 가서 이겼다고 알리세요.”
군단장은 뭐가 뭔지 어리둥절했다.
전쟁에서 이겼다.
그리고 원유 판매 권한도 미국에게 이양될 것이다.
근데 왜 이토록 지랄맞은 기분일까?
“알겠습니다. 돌아가서 전하겠습니다.”
“잘 생각했어요. 다음에 미국 가면 술이나 한잔합시다.”
군단장은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채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갔다.
살만 국왕은 재준을 보며 피식피식 웃었다.
“임재준, 두렵지 않았습니까? 저들은 군인인데.”
“하하하, 만약 손가락이 총 근처에라도 갔다면 저 아래 군인들은 시체로 변했을 겁니다. 물론 군단장이 제일 먼저 머리에 구멍이 났겠지만요.”
“그래도 미국을 적으로 두면 안 좋을 것 같은데요?”
“미국을 적으로 두는 게 아닙니다. 미국에도 저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족히 절반은 넘습니다.”
“어떻게 자신할 수 있습니까?”
“이번 미국 중간 선거에서 결과로 나타났지 않습니까? 이제 국왕님이 약속을 지키실 차례인데. 그게 사우디가 살아남을 길일 겁니다.”
“알고 있습니다. 저희도 석유만 믿고 뒤통수 맞는 건 원하지 않으니까요.”
“알겠습니다.”
자, 이제 사우디에도 캡슐을 팔아 볼까.
모든 이야기가 마무리 됐다 싶었는데.
“아저씨, 사진 한 장 같이 찍어도 돼요? 저 팔로워가 너무 적어서 아무도 보지 않아요.”
왕세자의 막내 공주가 재준에게 울상이 된 얼굴로 물었다.
당연히 재준이 거절할 거로 생각한 듯한 표정이었다.
“그럼요. 우리 다 같이 찍어 볼까요?”
“진짜요?”
“그럼요. 아저씨도 공주님만 한 아들이 있답니다. 팔로워 늘리는 건 아주 중요하죠.”
히히.
재준은 공주의 스마트폰을 가지고 왕가 모두가 나오도록 사진을 찍었다.
찰칵.
***
캘리포니아.
하하하하.
“결국, 우리 뜻대로 사우디를 손에 넣었습니다.”
“이렇게 될 줄 알았다니까요.”
아서 래빈슨과 제프 베조스가 호탕하게 웃으며 술잔을 들었다.
그런데 세르게이 브린와 빌 게이츠은 그렇게 좋은 기색이 아니었다.
빌이 세르게이에게 둘만 들리도록 작게 속삭였다.
“세르게이, 사우디가 미국에 원유 판매권을 넘겼다는데 어떻게 생각하지?”
“사우디 원유는 문제가 아닙니다. 투마로우가 셰일 기업 주식과 석유 관련 주식을 미국 정부에 전부 팔아 버린 게 더 수상합니다. 결국, 석유에 관한 모든 것을 미국 손에 넘겨 버렸습니다.”
“맞아. 천하의 임재준이 이렇게 속절없이 손을 놓았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답답합니다. 뭔가 놓치고 있는 게 있는데 알 길이 없다는 게.”
“기다려 봐. 데미안이 오면 단서가 나올 수도 있으니.”
이때,
똑똑.
삐이이익.
문이 열리고 데미안의 모습이 드러났다.
“들어와라, 데미안. 기다리고 있었다.”
데미안이 빌을 보고 밝게 웃었다.
“안녕하셨어요?”
“그래, 그동안 잘 지냈니?”
“나노봇 연구는 잘 되고 있어요.”
“하하, 그거 물어보려고 부른 거 아니다. 나노봇이야 당연히 네가 완성하겠지.”
“그럼, 이번 사우디 일 때문이겠네요?”
하하하.
“역시, 그래. 네 의견이 듣고 싶어서 연락했다. 미국이 석유 패권을 쥐게 됐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음.
데미안은 빌과 세르게이를 넘어 아서와 제프를 바라봤다.
이번 전쟁으로 기분이 한껏 들뜬 그들의 얼굴을 보고 피식 입꼬리를 올렸다.
“좋아할 일만은 아닌 것 같아요.”
“그래?”
빌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이 아이는 뭔가 알고 있다.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전쟁 중에 임재준이 살만 국왕과 술자리를 하고 있었거든요.”
“뭐?”
놀란 건 빌과 세르게이가 아니었다.
“그게 사실이냐?”
“여기.”
데미안이 내민 스마트폰에는 재준과 살만 국왕 가족이 모두 나온 사진이 SNS에 떠 있는 걸 보여줬다.
날짜를 보니 분명 전쟁 중이었다.
그러나 모두 밝은 표정으로 전쟁 중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걸 어떻게 찾아낸 거니?”
“말씀드렸잖아요. 검색은 스킬이 필요하다고요.”
“그래, 그랬지. 이 사진의 사람들 모두 표정이 밝구나.”
“전쟁이 아니라는 거죠.”
“전쟁이 아니라……. 그럼 뭐지?”
“혹시 이번 전쟁에 투입된 미 7군단장과 통화 가능하신 분 계신가요?”
미친.
그동안 자축하던 제프가 인상을 구기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내가 하지.”
구글은 드론 운송 문제로 군과 여러 가지 문제가 얽혀 있기로 유명했다.
당연히 아는 사람도 많았다.
제프는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여 탁자에 놓았다.
띠리리리리링.
꿀꺽.
겨우 벨이 울리는 것뿐인데 모두 마른침을 삼켰다.
-오, 제프, 어쩐 일인가?
“사우디에서 돌아왔는데 안부 인사도 못 한 것 같아 미안해서 했어.”
-뭐, 전쟁 같지도 않은 전쟁 치른 걸 가지고.
전쟁 같지 않은 전쟁이라고?
“사실 물어보고 싶은 말이 있어.”
-나한테? 말해 보게. 대답할 수 있으면 해주지.
“돌리지 않고 직접적으로 말할게. 사우디에 임재준이 있었나?”
갑자기 훅 치고 들어 온 말에 군단장은 말을 잃었다.
“미안하네. 일급비밀이라면 말하지 않아도 돼.”
-후후후, 이미 알고 전화한 것 같은데.
“확실한 정보가 있었어.”
-이거, 이거, 여기서 정보가 새 나간 건가?
“아니, 정보라고 하기도 민망하게 이미 사진이 사우디 왕세자의 공주 SNS에 올라와 있어.”
-뭐?
“조만간 전 세계가 알게 될 거야.”
-하하하하, 이거 비밀도 아닌 일을 우리만 숨기려고 바보 같은 짓을 한 건가?
하하하.
군단장의 허탈한 웃음이 스마트폰으로 흘러나왔다.
-그래, 임재준이 있었어. 당당하더군.
“뭐가 당당하단 말이야?”
-제프, 이 전쟁, 우리가 진 거야.
“졌다니?”
-글쎄, 나는 정치인들이 무슨 생각으로 이 전쟁을 일으켰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현장에서 겪은 바로는 미국이 진 전쟁이었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임재준이 비웃었거든. 그리고 나는 협박을 당하고 퇴각한 거야. 결코, 승리를 안고 미국으로 온 게 아니라고.
“무슨 말이야? 좀 자세히 말해 봐.”
-나도 자세한 건 몰라. 하지만 임재준이 말했어. 미국이 이긴 거로 해줄 테니 집에 가라고. 맞아, 딱 이렇게 말했어. 이제 집에 가라고. 하하하. 믿을 수 있나? 수천 발의 미사일 폭격으로 쑥대밭이 된 사우디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말했어. 이제 집에 가라고.
“잘 이해가 안 돼.”
-미국은 수천 발의 미사일과 수천 명의 군인을 동원하여 몇 명의 사상자를 냈는지 알아? 7명. 7명이야, 그것도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이었지.
“그게 무슨 말인가?”
-다 알고 있었다는 거야. 우리 무기 체제와 군의 규모, 작전의 세세한 부분까지 모두 다. 우린 그냥 헛짓만 하고 온 거라니까.
“이해가 안 가. 그게 가능하다고?”
-모두 알고 있었어. 그리고 네옴 시티엔 이미 우리 군의 숫자만큼의 메렛이 대기하고 있었어. 더는 우리 재롱이 재미없어졌으니 꺼지라는 거지. 하하하.
“메렛…….”
빌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큭큭큭, 미국이 제대로 당했구나.
하하하하.
-털어놓으니 속이 좀 후련하네. 그동안 SNS에 올라왔는지도 모르고 비밀이랍시고 속앓이를 했다니 정말 한심해. 이렇게 정보에 둔감해서야 원. 제프. 자네가 임재준을 거론한 걸 보니 걱정이 되는데.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이야. 임재준과 손을 잡지 못하면 죽여야 할 거야.
죽이라고?
“충고 고마워. 좀 쉬게.”
-큭큭큭, 제프, 난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리지 않을 생각이야. 자네가 후원하는 그 팀, 버려. 아무 쓸모가 없는 것 같아. 이만 끊을게.
툭.
방 안에는 고요한 정적이 흘렀다.
모두의 시선이 데미안을 향했다.
< 제379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3)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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