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8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2) >
백악관.
“어서 오세요.”
대통령은 재준과 단둘이 할 이야기가 있다고 연락을 했다.
재준은 이때다 싶어 당장 달려왔다.
“아유, 얼굴이 말이 아니십니다.”
“할 일도 없는데 고민만 늘어서 그렇죠. 자, 앉으세요.”
단순히 자리를 권할 뿐인데도 대통령에게 자신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생기를 확 불어넣어 줘야 하는데.
“임재준, 이렇게 보자고 한 이유는 사우디와 전쟁을 피할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음.
“그럼 전쟁을 하세요.”
후후.
“역시 고민하지 않는군요.”
“피할 수 없으면 즐겨야죠. 뭐, 전쟁을 즐기는 건 좀 그렇지만. 어쨌든 현대전이 다 그렇잖아요. 주요시설 파괴하고 고위급이 만나서 합의문 쓰는 거.”
“장기전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은 게릴라 전에 능합니다.”
“대통령님, 그놈들은 사우디에 오지 않아요. 차라리 미국으로 오지.”
“네? 그럼 미국에서 다시 테러를 일으킨단 말입니까?”
“당연하죠. 그놈들이 미국의 첨단 무기로 무장한 군대를 소총이나 포 몇 개 들고 싸운다고요? 차라리 폭탄을 실은 트럭으로 백악관 정문이라도 들이받는 게 훨씬 생산적이라 믿을 겁니다.”
“생산적이요?”
“얻는 게 많다는 말이에요.”
후.
“어쨌든 이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나겠군요.”
“당연하죠. 이제 세계의 석유를 좌지우지하겠죠.”
“사실 임재준 당신을 보자고 한 이유도 석유입니다. 셰일 기업을 전부 소유하고 있으니 지금 전쟁을 일으키는 자들과 협상 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요.”
“아, 상원 의장과 그 정치 가문 사람들이요?”
“알고 있었습니까?”
“모르는 게 이상한 거죠. 정치 가문 중 하나가 걸프전 때 떼돈을 벌었잖아요. 정치 가문들이 그걸 경험했는데 이런 기회를 놓칠 리 있겠어요? 다시 옛날의 영광을 위해 뭉쳤을 겁니다.”
“그럼, 협상을 할 수 있겠습니까?”
재준이 묘한 표정을 지었다.
“협상하는 것보다 저에게 더 좋은 방법이 있는데.”
“더 좋은 방법이 있다고요?”
“네. 앞으로 오래도록 석유 때문에 다신 싸움을 하지 않는 방법입니다.”
“그게 뭡니까?”
“미국 정부가 셰일 기업을 사는 겁니다.”
“네?”
대통령은 잠시 재준을 바라봤다.
세일 기업을 판다고?
사우디가 미국에게 석유 판권을 빼앗기면 셰일 기업의 주가는 고공행진을 할 텐데.
아깝게 정말 판다고?
“아, 그리고 덤으로 투마로우가 가지고 있는 석유 관련 주식도 전부 가져가세요.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정말입니까?”
“그럼요. 자기 가문의 부흥을 위해 남의 불행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들은 이 기회에 아주 혼이 나야 합니다.”
“진심입니까?”
“아 왜 자꾸 물어보세요. 맘 변하게.”
“아, 아. 죄송합니다. 너무 당황해서.”
임재준, 진짜인가?
석유 관련 주식까지 다 넘어온다면 상원 의원 세력과 싸울 만한 힘이 된다.
사우디 원유야 100% 통제할 수 없지만, 셰일 기업은 소유주가 되기에 100% 통제할 수 있다.
드디어 정부가 유가 조정의 주도권을 쥐는 것이다
“그럼, 재무부 장관을 당장 불러들이겠습니다.”
“재무부 장관은 저쪽 카르텔이 아니죠?”
“네, 믿을 만한 사람입니다. 정치 가문 출신도 아니고요.”
“좋습니다. 일단 전쟁 전에 일사천리로 처리하시죠.”
“알겠습니다.”
삐.
“매코넬 장관 빨리 들어오라고 하세요.”
대통령은 급하게 재무부 장관을 호출했다.
잠시 후.
매코넬 장관이 헐레벌떡 뛰어 들어왔다.
이후 대통령이 재준의 결심을 설명하자,
“네? 정말입니까? 저희 쪽에 셰일 기업을 다 팔겠다고요?”
“그렇습니다. 세계 평화를 바라는 맘으로.”
‘그럴 리가 없는데’라는 표정은 짓지 말고.
“솔직히 러시아 원유가 북한에서 유럽으로 가는 데 미국의 도움이 필요하기도 하고요.”
“그렇군요. 그렇다면 서로 윈윈이 되겠네요. 저희가 적극 돕겠습니다.”
“그럼,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말 나온 김에 합의서부터 작성하시죠.”
“쇠뿔이요?”
“사우디 전쟁 전에 처리하자 뭐 그런 뜻입니다.”
“아, 네. 재무부에 매매 합의서 초안이 있습니다. 몇 가지 조항만 수정해서 오겠습니다. 일단 초안부터 교환하시죠.”
“알겠습니다.”
후다닥.
매코넬 장관이 지위에 걸맞지 않게 뛰어서 나갔다.
대통령은 아주 흐뭇하게 바라봤다.
“정말 고맙습니다. 이렇게까지 해줄 줄은 몰랐습니다.”
“지금 정부가 너무 코너에 몰리면 저도 불편하니까요. 상원 의장이 투마로우를 좀 미워해야 말이죠.”
“정치란 때론 협상을 해야 하는데 저들은 일을 너무 몰아붙이기만 합니다. 잘못된 관행입니다.”
“그렇죠. 잘못한 사람은 야단을 맞아야 합니다.”
“야단이요?”
“그럼요, 볼기짝을 그냥.”
하하하하.
자, 지금은 웃지만 이게 웃을 일만은 아니에요.
둘이 치고받고 열심히 싸워야 할 테니까.
***
사우디에 선전포고할지 모른다는 소식에 시민들이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대형 전광판에 미합중국 의회의 영상이 방영되고 있었다.
[우리 미국은 역사상 최대의 실업률과 최고의 물가 상승률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쳤습니다. 이게 다 정부가 현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금리만 올린 결과입니다. 전 세계가 미국의 금리로 인해 동반 몰락하고 있습니다.]
미래당 하원 의원의 필리버스터가 시작되었다.
무조건 시간을 끌어 의회가 사우디 대테러 법안의 표결을 방해하고 나섰다.
방송을 듣던 시민 중 한 명이 소리를 질렀다.
-맞다. 금리 좀 그만 올려.
[스태그플레이션이 무엇입니까? 일반적인 경기 수준에서는 호황 상태에서 수요 증가와 기대 심리로 물가가 오르고, 불황 상태에서는 수요 감소와 불안 심리로 물가가 내려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러나 경제불황과 동시에 물가가 오르는 상식과 어긋나는 지금, 지금이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 겁니다. 저기 예전의 베네수엘라와 아이티 같은 나라들에서 발생하던 일이 지금 미국에서 버젓이 발생하고 있단 말입니다. 이는…….]
장황한 스태그플레이션 이야기가 나오자 사람들이 수근거렸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물가가 지금보다 더 오른다는 거야?
-그래, 더 오른다는 거지. 이제 좋은 시절 다 간 거야.
-뭐가 그리 비관적이야? 한 1년 지나면 회복될 텐데.
-이거, 이거, 완전히 경제 바보네. 물가가 오르면 수요가 줄고, 수요가 줄면 기업이익이 줄어서 고용 계획이 점점 뒤로 밀리고 실업률도 올라갈 텐데. 1년 안에 해결된다고? 1년 안에 해결되려면 지금 자네 지갑에 펑펑 쓸 돈이 있어야 하는 거야. 그래야 눈에 보이는 효과가 1년 후에 나타난다고. 지금 돈 있어?
-없지. 그러니까 정부가 돈을 풀어야 하는 거 아냐?
-그렇지, 그런데 금리를 올려서 돈을 자꾸 회수해 가잖아. 그러니까 악순환이 계속되다가 결국 이 꼴이 난 거라고.
-금리 인상이 문제네. 문제야.
[이 모든 문제를 경제의 논리로 풀지 못하고 가장 최악의 수단인 전쟁으로 해결하려는 상원 의원들의 저의가 정말 의심스럽습니다. 전쟁이야말로…….]
사우디 문제에 과격하게 반응하는 무리가 한쪽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저 새끼 누구야? 지금 사우디 옹호라는 새끼는 전부 테러 분자야. 당장 의회로 가서 저 새끼를 끌어내려.
-맞아, 유가 올려서 자기만 살겠다는 놈들이 사우디잖아.
-그 돈으로 CIA 본부 박살 냈어. 저 테러 분자 새끼. 죽여라.
-전쟁만이 살길이다. 당장 사우디로 쳐들어가자.
-미래당을 의회에서 몰아내.
맞은 편에서 이를 지켜보던 ‘사이진’ 사람들이 어이가 없다는 듯 빈정거렸다.
-저 머리를 장식으로 달고 다니는 놈들이 뭐라는 거야?
-저러니까 정치 놀음에 놀아나는 거지. 지금 사우디를 이용해 정권을 유지하려는 게 안 보이나?
-지금 전쟁을 일으키면 미래 사회로 가는 길이 퇴보하는 것도 모르나 봐.
-스태그플레이션을 극복하려면 정부가 로봇과 캡슐을 도입하면 되잖아. 공무원을 다 로봇으로 바꿔버리면 인플레이션이든 스태그플레이션이든 다 잡을 수 있다고. 할 수 있는 걸 하지 않고 전쟁이나 일으키는 게 과연 올바른 일일까?
-그걸 모르고 있는 놈들이 저 무식한 놈들이지.
빈정대는 걸 알았는지 험악한 욕설이 쏟아졌다.
-저 새끼들 뭐라는 거야? 뭐? 무식한 놈?
-미래당이 활개를 치는 게 다 저 미래 환자들 때문이다.
‘사이진’에서도 거센 반발이 튀어나왔다.
-야, 너희들은 캡슐이 뭔지는 아냐?
-알 리가 있나, 깡통이라고는 구걸할 때나 쓰는 놈들인데.
뭐라고?
저 새끼들 죽여.
야, 아주 쓸어버리자.
장비 챙겨.
와, 와, 와.
결국, 두 무리가 뒤엉겨 난투극을 벌였다.
삐이이이익.
애애애애앵.
NYPD가 끼어들어 뜯어말리는가 싶더니 이제 세 무리가 누가 누구를 구타하는지 모르는 상황으로 돌변했다.
쿵, 퍽, 악, 푹, 빡.
한참을 사방에서 비명과 고함이 난무하던 때,
의회 화면에 우려하던 선서가 내려졌다.
[사우디 대테러 법안이 통과되었음을 알립니다.]
와아아아아아.
함성과
우우우우우우.
비난이 뒤섞였다.
***
미국은 사우디에 자국 내에 있는 텔레반과 IS, 알카에다의 색출과 자금 지원을 중단할 것을 경고했다.
사우디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오리발을 내밀었다.
드디어 홍해로 진격한 항모 전단에서 토마호크 미사일로 이라크에 폭격을 가하면서 전쟁이 시작되었다.
동시에 아파치 헬리콥터들은 외곽지역의 레이더 기지를 파괴하며 돌아다녔다.
미국의 F-16C가 이라크의 심장에 폭격을 가하고, 다시 곧바로 토마호크 미사일의 대공세, B-52의 폭격, 그 외 다양한 공군기의 공격이 사우디의 주요시설을 강타했다.
일주일간 강력한 미 공군의 공습으로 공장들, 사우디 내에 있는 테러 집단으로 의심되는 목표물을 계획적으로 착실하게 파괴해 나갔다.
방공지휘시설과 발전소들를 무력화시켰고 레이더와 지대공 미사일들은 각개 격파당하고 수천 문의 대공포들이 파괴됐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사우디는 한 발의 미사일도 쏘지 않았다.
주요시설을 타격한 미군은 제1 기갑사단, 제1 기병사단 등 총 5개 기갑기계화사단을 거느린 미 7군단을 상륙시켰다.
기동력이 강한 제18 공수군단이 수차례의 강습 작전으로 치고 들어가 좌·우측 방면을 엄호했다.
북으로 북으로 진군하던 미군은 드디어 네옴 시티 건설 현장에 도착하고 멈췄다.
“군단장님, 네옴 시티입니다. 여긴 투마로우가 경고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물러나자고?”
“그게 아니라 투항을 권고하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군단장은 정면을 바라보았다.
메렛.
플라이드론.
라이트 세이버.
그리고 이름 모를 로봇들.
당장 치고 들어가기에는 희생이 만만치 않겠는데.
이때,
200m가 넘는 빌딩 위에서 남자 하나가 일어서더니 메가폰을 들고 외쳤다.
“어이, 거기 군단장 좀 올라와. 술이나 한잔합시다.”
군단장이 건방진 재준의 태도에 미간을 찡그렸다.
“임재준입니다.”
“그놈이야?”
“네.”
“좋아, 내가 혼자 올라간다.”
“위험합니다.”
“이봐, 저기 저놈이 내 강단을 시험하는 거 안 보여? 저리 비켜.”
군단장은 건설용 엘리베이터에 올라탔다.
< 제378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2)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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