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7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1) >
큭큭큭큭.
다이로가 제이콥의 말에 징그럽게 웃어 젖히며 놀렸다.
“왜 쫄았냐?”
제이콥이 다이로를 노려봤다.
“그럼, 넌 아무렇지도 않아? 지금 이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몰라?”
“왜 몰라. 나도 눈이 있고 귀가 있는데.”
“머리는 없잖아.”
“이 새끼가 진짜. 야, 잘 들어. 넌 무슨 콜롬비아 카르텔 대부라니까. 시가나 빨고 양주나 마시면서 여자나 주무르는 갱단인 줄 아나 본데. 거긴 매일 총질을 해대고 칼로 멱을 따야 사는 곳이야. 너 같이 책상에 앉아 있다가 가끔 총이나 몇 발 쏘는 놈들하고는 질이 다르다고. 머리가 아니라 본능으로 살아가는 곳이 그곳이라고. 알아?”
“그래서 넌 아무렇지도 않다고?”
“당연하지. 이보다 평화로울 수가 없어. 근데 아까 그 무인 뭐 어쩌고 그러면서 완전 인상을 구기던데.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
후.
제이콥이 다시 위스키를 잔에 따라서 단번에 들이키고 인상을 썼다.
“CIA 건물을 폭격한 건 무인 비행기였어. 그리고 저 모니터, 그리고 아까 그 무인 트레일러. 이 정도 크기의 기계를 무인으로 다룬다는 건 상당한 첨단 과학 기술에 능숙하다는 거야.”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생각해 봐. 트레일러 수십 대가 우릴 죽이려고 한다면 살아날 수 있겠어?”
“글쎄, 트레일러는 움직임이 둔한데.”
“그 대신 뭐든 뚫어버리지.”
“우린 작고 날쌔지. 쉽지 않을걸.”
“GPS로 우리 위치를 정확히 알고 달려든다면.”
“오호, 그건 좀 문제가 될 만하네.”
되긴 뭘 돼!
다이로와 제이콥의 고개가 동시에 돌아갔다.
“한심하게 겁이나 먹고.”
위쉬안이 창고로 들어서고 있었다.
“위쉬안, 어쩐 일이야?”
“갑갑해서 왔지. 물어볼 것도 있고.”
“앉아. 술이나 먼저 받아.”
위쉬안이 자리에 앉자 제이콥이 술을 한잔 따라주었다.
술잔을 돌돌 돌리며 위쉬안이 말했다.
“무인 트레일러가 중요한 게 아니야. 그런 거야 EMP를 만들어 쏘면 무인 기기는 먹통이 되는 거라고.”
“오, 여기 우리 인재가 있었네. 누군 두려워 벌벌 떨고 있더니. 그래 그 EMP지 뭔지는 만들 줄 알고?”
“그건 U튜브만 쳐봐. 수십 개는 나올 테니까. 만드는 건 어려운 게 아냐.”
“그래? 이거 제이콥의 걱정이 싹 사라지겠는데?”
“그러니까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
위쉬안이 돌돌 말던 위스키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크.
“제이콥, 네가 가장 잘 아는 정치, 그게 지금 문제라고.”
“전쟁? 사우디랑 전쟁하겠다는 거 말인가?”
“그래, 그거, 내 감이 안 좋아. 진짜 터질 것 같단 말이지.”
“전쟁은 그렇게 쉽게 터지는 게 아냐.”
“그럼 이건 어때?”
위쉬안이 스마트폰으로 영상 하나를 띄웠다.
CNN 뉴스의 한 장면으로 제이콥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미국이 사우디를 테러 배후로 지목한 가운데 9.11테러가 다시 자행될 수 있다는 위기에 시민들이 생필품을 사재기하기 시작했습니다. 마트마다 아수라장을 방불케 하며 사망자도 발생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조만간 미국에 스태그플레이션이 도래할 수 있다고 경고했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이란…….]
“오늘 뉴스인가?”
“그래, 현재 벌어지고 있는 사태야. 한 명의 코멘트에 갑자기 사람들이 미쳐 날뛰기 시작했어.”
“그게 누군데?”
“상원 의장.”
“뭐? 뭐라고 했는데?”
“사우디에 탈레반과 IS, 알카에다가 집결하기 시작했다.”
“이런 미친놈. 헛소리잖아. 그놈들이 왜 사우디에 모여?”
“전쟁이 난다니까 사우디를 보호하려는 거겠지.”
“멍청하긴 그걸 믿어? 탈레반이나 IS, 알카에다는 목적이 달라. 그놈들이 무슨 애국자인 줄 알아? 상원 의장 그 미친놈. 국민을 속이고 있는 거야. 반드시 전쟁을 일으키려고.”
“전쟁을 일부러?”
“그래. 의회를 장악하려는 속셈이잖아.”
“근데 스태그플레이션이 뭐야? 왜 이렇게 난리야?”
“넌 말해도 몰라. 그게 어떤 건지. 단지 물가가 상승하네, 경기가 침체하네 정도가 아니야. 그냥 순식간에 나라가 폭삭 주저앉는 거라고. 지금 상태라면 미국 국민의 80% 이상이 빈민으로 떨어질 수 있어. 예전 베네수엘라와 같이 되는 거야.”
“뭐? 베네수엘라? 이런 정신병자들. 그럼 전쟁으로 미국의 스태그플레이션의 위기를 모면하겠다는 거야?”
“그게 아니지. 스태그플레이션은 오지 않아. 그렇게 미국이 허술하겠어? 이건 전쟁을 정당화하려는 거라고. 사우디의 감산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닥쳤다. 미국의 전쟁은 전 세계의 불황에서 구원해줄 영웅이다.”
큭큭큭.
그동안 가만히 듣고 있던 다이로가 몸을 들썩이며 웃었다.
“재밌다. 재밌어. 그러니까 미국이 사우디를 먹겠다고 거짓 선동을 하는 거란 말이잖아. 맞지?”
“그래.”
“이야. 이게 말로만 듣던 미국의 힘이네.”
“근데 미국에 문제가 있어.”
“또 문제가 있어? 이번엔 뭔데?”
“내가 임재준을 잘 알거든. 내가 누구야, 임재준 때문에 저 밑바닥까지 추락했던 인물이라 이거지. 그래서 항상 임재준을 주시했는데.”
“서론이 기네. 하고 싶은 말이 뭐야?”
“이거.”
위쉬안은 스마트폰에 사진 하나를 띄워 탁자에 놓았다.
네옴 시티 건설 현장.
제이콥이 사진을 주의 깊게 살폈다.
“여긴 네옴 시티 건설 현장이잖아.”
“자세히 봐. 건설 현장에 죽 늘어서 있는 이 줄.”
“이게 뭔데?”
“확대할 테니 자세히 봐.”
위쉬안이 사진 어딘가를 가리켰다.
네옴 시티를 건설 현장을 따라 작은 띠가 형성되어 있었는데 그걸 확대하자.
메렛?
“이미 사우디에서 만들고 있었어?”
“그래.”
“이게 도대체 몇 개야?”
미국은 맹수의 아가리로 들어가고 있는 걸 모르고 있었다.
***
“뭐가 보여?”
미키 어깨 위로 머리를 빼꼼 내민 서형길이 물었다.
“아니요. 방금 트레일러가 출발하고 문이 닫혔는데 그 후로 꼼짝도 안 하고 있어요.”
“그럼 여기서 꼼짝 않고 기다려야 한다는 거야?”
도날드가 걱정 어린 눈빛으로 투덜거렸다.
“저기 안에 몇이나 있지?”
“제이콥과 다이로 둘이잖아요.”
“우린 셋이잖아. 치고 들어가는 건 어때?”
“네? 미쳤어요?”
“나 이래 봬도 한국 해병대 출신이야. 도날드, 군대는 가봤어?”
“당연하지. 베트남전에 참전하기 위해 신체검사를 받았어.”
미키가 도날드를 노려봤다.
“면제잖아요.”
“신체검사를 받기 위해 군대에 갔다는 소리야.”
“아, 네.”
그게 무슨 군대야?
“도날드, 넌 됐고, 미키, 너도 미 해병대 출신이라고 도련님이 말한 걸 들은 것 같은데. 싸움은 좀 하겠네.”
“저 취사병인데요.”
“아, 그래서 요리사구나.”
결국, 셋으로는 둘을 제압할 수 없는 상황을 깨달았다.
“지원군은 언제 도착하지? 바로 치고 들어가야 하는데.”
“지원군이 와도 우린 그냥 여기 있죠.”
“빨리 끝내고 갈길 잃은 시민에게 돌아가야 하는데.”
“너 오늘 일부러 여기 온 거잖아.”
“무슨 소리, 블러드 베어를 무시하는 거야? 당장 시민들을 안정시킬 사람은 나뿐이라고.”
한때 블러드 페니 시위의 선봉에 선 도날드의 별명은 페니보단 덩치가 있어서 블러드 베어라 불렸다.
“어, 어. 누가 또 들어가는데요?”
“저거 동양인 같은데. 그럼 위쉬안이겠네. 아, 해병대 한 명만 더 있으면 셋 정도는 가볍게 제압할 수 있는데.”
“근데 꼭 우리가 이런 일을 해야 하나요?”
“그럼 누가 나서. 넌 도련님의 은혜를 잊은 건가?”
“아니, 그렇긴 하지만 요리사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좀 그렇잖아요. 실패할 확률만 높이는 거고.”
“급해서 그런 거야, 급해서. 지원군이 곧 온다잖아.”
그런 것 같지 않은데.
혹시 위험하면 날 방패막이로 쓰려는 거 아냐?
“저 안에서 뭘 하고 있는 걸까요?”
“그러게 미국을 전복시킬 음모를 꾸미는 게 아닐까?”
음모란 말에 셋은 잠시 말보다는 상상을 했다.
“에이, 음모는 아니지.”
셋 바로 뒤에서 누군가의 말소리가 들렸다.
누구야?
서형길이 돌아서며 특유의 해병대 무적도 회전 낙법과 동시에 앞차기를 시전하려는데.
도련님!
“오우, 진정하세요. 진짜 해병대였나 보네요.”
“아니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얼굴 좀 보려고 했는데 아지트에 아무도 없길래 왔죠.”
서형길이 미키를 바라봤다.
“문 안 잠그고 왔어?”
“도날드가 막 끌고 오는 바람에 팻말만 돌리고 왔죠.”
재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근데 이렇게 해서 제이콥이 자수하게 설득할 수 있겠어요?”
“충분합니다.”
서형길만 대답하고 둘의 시선은 먼 산으로 향했다.
“그러지 말고 계획을 좀 바꿔야 할 것 같은데요.”
“어떻게요?”
“자, 이리 오세요.”
재준이 손짓을 하자 셋이 머리를 맞댔다.
“잘 들으세요.”
“네.”
“저 셋 뒤에 큰놈이 하나 있어요.”
말을 하고 재준이 뒤로 물러났다.
“그렇죠? 이런 일엔 항상 배후가 있기 마련이라니까.”
“맞아요. 그 배후를 잡아야 진짜 테러범을 잡는 겁니다.”
아.
“역시 도련님은 다르시군요.”
“임재준, 그런데 그 뒤에 누가 있는데?”
“그건 여러분이 한번 알아보세요.”
“당신은 알고 있습니까?”
“당연히 알고 있죠. 그냥 알려주고 싶지만, 워낙 충격적이라 스스로 알아내는 게 충격 흡수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렇단 말이죠…….”
“충분히 대비하세요. 자칫 잘못 건드리면 역습을 당할 겁니다.”
“알겠습니다. 그래도……. 작은 힌트라도…….”
“아, 힌트!”
재준이 생각하는 척하자 모두 마른 침을 삼켰다.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은 사람?”
재준의 말에 모두 눈을 껌뻑거렸다.
“그거 도련님 아닙니까?”
헉, 그러네.
“아하하하, 미국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 중에.”
“임재준, 시민권이 없어요?”
“여권밖에 없는데요?”
“왜 없어요?”
“신청을 안 했는데요.”
아, 이해됐다.
“그럼 저는 백악관에 들렀다 사우디로 날아가야 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그럼 잠복근무 잘하세요. 아, 그리고 여러분 눈엔 안 보이겠지만 블랙워터가 지켜 줄 겁니다. 그럼. 이만.”
터벅터벅 걸어서 멀어지는 재준을 보며 서형길이 말했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사우디?”
“거긴 이제 곧 전쟁이 터지는 곳 아닌가요?”
“그러게 또 무슨 일을 벌이시려고 사우디를 가시나?”
서형길이 애잔한 눈으로 재준을 바라보는데 도날드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근데 서형길.”
“응, 왜?”
“임재준이 우리 위치를 어떻게 알았을까? 이 넓은 뉴욕항에서.”
긁적긁적.
서형길이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게.”
“우리 감시당하는 거 아냐?”
“보호라고 해둬.”
“그래, 그럼 우린 저놈들의 배후를 어떻게 밝혀야 할까?”
“돈이 가장 많은 놈이라고 했잖아.”
“그게 한둘이어야 말이지.”
“가장이니까 미국 부자 순위 1위 아냐?”
“임재준이 그렇게 쉬운 걸 말 안 하겠어? 겉으로 드러난 거 말고 숨겨진 것도 파악해야 해야지.”
“그걸 어떻게 파악해? 숨겨진 걸 무슨 수로 찾냔 말이야.”
“찾기보단 미행을 하면 알게 되지 않을까?”
“그럼 나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네.”
“전 이만, 장사할 시간이 다가와서 가볼게요.”
“미키, 오늘은 쉬어.”
“그래, 서형길 좀 잘 챙겨줘. 난 빨리 의회에 갔다 올게. 워낙 처리할 일이 산적해 있어서 말이야.”
“오늘 일요일이야. 도날드, 정신 좀 차려.”
“일요일이야? 날짜가 어떻게 가는 줄도 모르게 바쁘게 살았구나. 역시.”
< 제377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1) > 끝
ⓒ 번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