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5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9) >
뱅가모바이오사이언스.
“아저씨.”
“어, 진 왔니?”
겐돌피니가 진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어?
진은 새로 설치된 중성자현미경을 보더니 이곳저곳을 살펴봤다.
“이건 Soft X-ray 현미경이네요?”
중성자현미경은 세포 생물의 단백질 구조분석, 수문학연구, 나노입자 거동 등의 연구를 위해서 사용되며, Soft X-ray 현미경은 비파괴 분석을 위한 공간분해능력을 nm급으로 향상시켜 바이오와 나노 물질의 내부구조 관찰에 사용한다.
“이걸 알아?”
“아, 저도 가지고 있어요.”
“이거 나온 지 얼마 안 된 건데?”
“제가 주문하는 건 아니고요. ‘블랙’이 최신 전자현미경이 나오면 알아서 주문하고 설치를 해요. 그래서 몇 달 전에 설치했어요.”
“그렇구나. 이거 알아보는데 설치한 곳이 아직 세 곳이라 했거든. 그중 하나가 너였어. 하하, 이거 세상이 좁긴 좁아.”
“셋이요?”
“응.”
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바이오와 나노 물질의 내부구조 관찰에 사용하는 Soft X-ray 현미경을 설치한 곳이 또 있다고?
그럼, 나노봇의 새로운 구조를 만드는 사람이 있단 소린데.
“아저씨, 저 잠깐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응, 그래.”
진은 밖으로 나오자마자 스마트폰을 꺼냈다.
“‘블랙’”
【네.】
“Soft X-ray 현미경을 구매한 곳이 어디야?”
【구매자는 루쏘. 브루클린 대학 생물학 교수입니다.】
“브루클린 생물학 교수면 데미안 아버지 아니야?”
【맞습니다.】
“데미안이 나노봇을 만들고 있는 거야?”
【네. 로터의 모형을 본 떠 이동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래? 이렇게 빠르게 만들 수가 없는데. 혹시 자가 복제를 이용했어?”
【네.】
“음, 위험한 시도를 하네. 데이터 지울 수 있어?”
【지울 수 있습니다.】
“혹시 연구 자료를 수기로 기록하나?”
【네.】
그렇다면 데이터를 지우는 건 별로 현명한 방법이 아니네.
오히려 의심만 사게 되지.
“‘블랙’, 지금부터 데미안이 사는 장비를 나한테 알려줘.”
【네.】
“최근에 데미안이 만난 사람이 누구야?”
【세르게이 브린, 아서 래빈슨,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를 만났습니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투자를 받았습니다.】
“나노봇을 만드는데 투자를 받은 거야?”
【아닙니다.】
“그럼 어떤 연구에 투자를 받은 거야?”
【투마로우를 파산시키는 목적으로 투자를 받았습니다.】
“어, 그래?”
진은 별로 놀라지 않았다.
지금까지 벌인 일들의 공통점은 투마로우였으니까.
그런데 일이 동시에 겹쳐서 일어나네.
그래도 나노봇과 핵융합 발전을 동시에 진행해야겠다.
아니면 아빠가 곤란해질 수도 있어.
아, 머리야.
진은 통화를 마치고 띵한 머리를 통통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
백악관.
[정부는 이번 CIA 테러 사건은 사우디아라비아의 자금으로 운영되는 알카에다 조직 중 하나의 소행이라고 발표했습니다. 또한 사우디 대테러 법안을 통과함과 동시에 알카에다에 선전포고한다고 선언했습니다. 이에 사우디는 전혀 들어 보지도 못하는 미국 정치인의 망상이라고 맞받아쳤습니다.]
틱.
화면이 꺼지고 부통령과 국방부 장관, 상원 의장이 대통령을 바라봤다.
대통령은 상원 의장을 노려봤다.
저 늙은이가 이 모든 일을 주도하고 있다.
미래당에 하원을 내주고 2년 후에 있을 상원에서마저 패한다면 상원도 내줘야 할 판이다.
급했군.
무리수를 둬서라도 상황을 역전할 기회를 노린 거야.
미국에서 정치적 입지가 단단한 사람은 대통령을 하지 않는다.
대통령은 4년 후에 정치권에서 물러나야 하니까.
대통령의 임기는 4년, 상원은 6년이다.
상원 6년을 마치면 게리맨더링에 의해 다시 당선되는 건 식은 죽 먹기보다 쉽다.
상원 의원은 죽을 때까지 해먹을 수 있고 지지가 확실하다면 아들을 지역구에 출마시켜 당선시킬 수도 있다.
이렇게 형성된 것이 정치 가문이라는 세력이다.
그러나 봤다.
이번 선거에서 자신들의 입지가 무너져 내린 것을.
다시 힘을 되찾을 때 가장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는 카드는 단연 전쟁이다.
중간 선거에서 대패한 대통령은 이제 힘이 없다.
전쟁을 반대할 명분도 마땅치 않다.
뻔히 거짓인 줄 알면서도 당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부통령이 먼저 입을 열었다.
“콜롬비아의 전철을 밟지 않으려면 알카에다에 선전포고해야 합니다.”
“알카에다가 아니라 사우디 아닙니까?”
“사우디는 알카에다를 치기 위해 지나가는 땅일 뿐입니다.”
공식적으로는 알카에다라고 하지만 전쟁이 시작되면 사우디를 쳐들어갈 게 뻔했다.
대통령이 시뻘건 얼굴로 부통령을 노려봤다.
“미래당이 반대할 겁니다.”
“국민의 뜻을 거역할 수는 없습니다.”
도날드가 꺼림칙하게 생각했던 부분이 현실로 나타났다.
국민의 뜻.
국민들은 테러를 자행한 나라에 적절한 제재를 원한다.
그게 경제든 무력이든 무엇이든지.
이제 미래당은 대테러 법안을 반대할 명분을 찾아야 한다.
무작정 반대하면 테러를 옹호하는 당이 된다.
하지만 무슨 수로 테러를 정당화할 수 있을까.
“국민의 뜻이 뭔데요?”
“응징입니다. 테러에 대한 응징.”
“전쟁을 하자는 겁니까?”
“국민의 뜻입니다.”
“어떤 국민이 전쟁을 원합니까?”
“남의 땅에서 하는 전쟁은 그저 여흥 거리일 뿐입니다.”
“아니,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습니까?”
“미국이 살아야 하니까요. 이대로 물러나면 이제 미국은 뒷방 늙은이 신세가 됩니다. 지금까지 미국은 가지고 있는 힘에 비해 너무 안일하게 대처했습니다. 이번엔 자그마치 CIA에 테러를 자행한 나라입니다.”
어이가 없다.
무작정 사우디로 낙점하고 밀어붙이고 있다.
“사우디란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헐.
부통령은 어이가 없는 표정으로 국방부 장관과 상원 의장을 향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어깨를 으쓱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지금 대통령님만 모르고 있는 거잖아요.”
부통령이 국방부 장관을 보며 입을 벙긋거렸다.
“대통령님.”
국방부 장관이 다소 귀찮다는 투로 입을 열었다.
“CIA에 의하면 사우디가 알카에다에게 자금을 지원한 계좌를 찾았다고 했습니다. 그 자금이 테러에 사용된 비행기 비용과 일치합니다. 존 브레넌이 최근 파키스탄을 몇 번에 걸쳐 다녀간 흔적도 있습니다. 모든 정황이 알카에다를 말하고 있습니다.”
허.
차라리 정보를 조작해서 가져오기라도 하지.
전부 말뿐인 정황증거가 전부였다.
있지도 않은 계좌에 테러에 사용된 비용을 어떻게 알 수 있으며 존 브레넌이 언제 파키스탄에 갔단 말인가.
그냥 그렇다면 그래야 하는 말뿐이다.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의 말을 들으며 허탈하게 숨을 내뱉었다.
“장관님, 그게 증거가 된다고 생각합니까? 결정적인 녹음 파일이나 사진 같은 건 없습니까?”
“있습니다.”
“보여주세요.”
“현재 자체적으로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 그렇습니까? 도대체 언제부터 국방부가 첩보 활동을 시작한 겁니까?”
대통령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국방부 장관을 노려보았다.
자체적으로 만들고 있겠지.
능력도 없고 무식한 사람들 같으니라고.
“뭘 그렇게 생각이 많으십니까?”
드디어 상원 의장이 나섰다.
“사우디만 정리하면 앞으로 원유로 골치 아픈 일도 없을 겁니다. 감산, 증산 미국이 세계 물가 안정을 위해 조정할 수 있고요. 그게 세계 평화를 위해 미국이 할 수 있는 최선입니다. 지금처럼 인플레이션이 뭘 해도 가라앉지 않는 상황에서는 미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거 아닙니까?”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어차피 내가 반대한다고 해도 법안이 통과되면 실행에 옮겨야 하는 건데 뭘 자꾸 날 설득하려는 겁니까? 그냥 하고 싶은 대로 하세요. 어차피 중간 선거에서 대패해서 내려갈 날만 세고 있는 사람들이면서.”
“대통령님.”
상원 의장의 목소리가 다소 커졌다.
벌떡.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법안 통과되면 사인은 해 드리지. 그것도 못 하면 또 다른 수단을 동원하겠지만.”
또 다른 수단이란 탄핵일 게 뻔하고.
***
아지트.
“술 좀 따라 봐.”
도날드가 오늘은 취하고 싶은지 위스키를 쉬지 않고 들이켰다.
서형길은 잔을 채워주었다.
“된통 걸려들었어.”
“그러게 대테러 법안이라니. 그것도 사우디. 하하하, 이게 말이 되는 소린가? 언론에서 연일 때려 대니 국민들이 점점 사실로 인정하고 있어.”
“의원들은 어떤가?”
“전부 망연자실한 상태지. 찬성할 수도 반대할 수도 없잖아. 거짓인 걸 뻔히 알면서 자리를 보존하려면 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의견이 다수야.”
“진실을 밝힐까?”
도날드가 들었던 술잔을 멈췄다.
피식.
다시 고개를 흔들며 웃고는 술잔을 입술로 가져갔다.
“이미 늦었어. 제이콥이 나타나 자수라도 하지 않는 한 아무도 믿지 않아. 오히려 정치적 쇼라고 손가락질할 거야.”
“자수하게 만들면 되잖아.”
“뭐? 자수하게 만든다고?”
“그래, 존을 누가 죽였을까? 그걸 물고 늘어지면 되지.”
“무슨 소리야?”
“존을 죽인 게 제이콥이야 다이로야?”
“모르지.”
“그러니까 그 내막을 파보잔 말이야. 내 생각엔 다이로일 가능성이 커. 지금 제이콥은 하늘에서 내려올 동아줄을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음.”
“그렇잖아, 제이콥과 존이 다이로를 탈출시켰는데 갑자기 제이콥이 존을 죽인다? 완전 이상하지. 전에 도련님도 그랬잖아. 셋이 티격태격하다 존이 죽은 것 같다고. 제이콥과 존이 티격태격할 일이 뭐가 있어.”
“오, 그래, 그렇지. 존은 다이로가 죽인 거네.”
“그렇다니까. 우리가 그 동아줄이 되어주잔 말이야.”
“근데 제이콥을 어떻게 찾아?”
“도련님이 있잖아. 아마 이미 파악하고 계실 거야.”
“그래?”
“가만있어 봐.”
띠리리리링.
-네, 이사장님.
“아이고 도련님. 저희 좀 살려 주십시오.”
-다짜고짜요?
“뉴스 보면 아시잖아요. 저희 완전 코너에 몰렸습니다. 대테러 법안이 통과될 위기에 놓였다고요.”
-그건 좀 심각하긴 해요. 저도 고민 중입니다.
“그래서 말인데요. 혹시 제이콥을 잡을 수 있을까요?”
-제이콥은 왜요?
“자수시키게요.”
-네? 제이콥을 자수시켜요?
“네. 테러의 진실이 밝혀지면 법안 통과를 저지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굉장한 아이디어인데요? 역시 이사장님은 여전히 아이디어 뱅크시네요.
도련님은 아직도 날 인정하고 계시는구나.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제가 도울 수 있는 부분은 도와 드리겠습니다.
“제이콥이 어디 있는지 몰라서요.”
-아, 제이콥은 뉴욕항에 있습니다.
“뉴욕항이요? 아니 지척에 있었네요.”
-근데 제이콥 옆에 다이로도 있는데. 그놈들 총도 가지고 있어요.
“걱정 마십시오. 저희도 나름 대비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그럼 자세한 주소를 문자로 보내드릴게요.
“주소도 알고 계십니까?”
-그럼요. 그놈이 삼시 세끼로 뭘 먹는지도 알고 있어요.
“역시 도련님이십니다. 그럼 문자 부탁드립니다.”
-네, 위험하니까 진짜 조심하세요. 절대 직접 나서지 말고요.
“네, 네.”
툭.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서형길의 폰으로 문자가 날아왔다.
띠링.
“역시 임재준은 겪으면 겪을수록 놀랍다니까.”
“그렇지, 역시 도련님이라니까.”
“근데 그 나름의 대비가 뭐야? 언제 용병이라도 알아본 거야?”
“아니, 하지만 우린 알잖아.”
“누군데?”
서형길의 시선이 미키를 향했다.
따가운 시선을 느낀 미키가 서형길과 도날드를 돌아보았다.
며칠 전부터 왜 자꾸 보는 거야?
< 제375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9)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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