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70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4) >
-러시아 무역 수익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게 원유 수출인 건 맞지만 그 돈은 대부분 미래를 위한 투자에 쓰이고 있습니다.
이건 맞다. 러시아는 원유, 휘발유, 가스 수출은 전체 수출의 49.7% 이상을 차지했고 이 돈은 전부 자동차, 수송, 농업, 건설, 식품 등 제조업 기계 제작 산업에 집중투자하고 있었다.
자원 개발 국가에서 제조업 중심 국가로 탈바꿈하려는 경제 계획을 꿈꾸고 있었다.
근데 왜 전쟁은 일으켜?
그놈의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서는.
구소련으로의 복귀.
푸차르의 꿈.
미래를 위해 경제 체제는 바꿔야 하고 그렇지만 잃어버린 소련의 위상도 회복하고 싶고.
이러니 어디 화풀이할 곳을 찾는 거지.
희한하게도 러시아는 매년 전쟁을 치르고 있었다.
2014년부터 크림반도 위기와 돈바스 전쟁에 개입해 우크라이나와 전쟁하고, 카자흐스탄 반정부 시위 진압하고, 돈바스 지역에 대규모 병력을 투입하고, 중앙아시아와 벨라루스, 마지막에 그리스까지.
“그럼 그 성질 좀 죽이세요.”
-흠, 흠. 그래서 캡슐이 필요합니다. 나부터도 좀.
“그런데 로봇이 들어가면 인공지능이 기업 전반을 관리하는 건 아시죠?”
-알고 있습니다.
“기업 내에 있는 비밀스러운 일도 다 인공지능이 파악할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끙.
푸챠르의 신음이 스마트폰을 통해 전해졌다.
-고민은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미국 기업도 하는데 러시아가 못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 인공지능이라면 항상 최선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고 들었습니다. 솔직히 정보가 서로 공유가 된다면 미국보다는 러시아에 이익이 될 테니까요.
와, 이 사람, 정말 많이 변했는데.
아주 얍삽한 쪽으로.
하긴 이제 살고 봐야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좋아요. 로봇과 캡슐을 제공할게요. 지금 그쪽으로 사람을 보낼 테니. 담당자와 미팅을 준비해 주세요.”
-좋습니다.
툭.
통화가 끝나자 김정은이 재준은 멀뚱멀뚱 쳐다보았다.
“임재준 동지, 방금 통화한 사람이 러시아 대통령 맞습니까?”
“네, 왜요?”
“아니, 많이 친한 거 같아서.”
“저희 둘이 참 우여곡절이 많은 사이거든요. 그리고 그 우여곡절 속에 빼놓을 수 없는 사람이 또 한 명 있습니다.”
“누굽니까?”
이때,
띠리리리링.
시앙핑이다.
재준이 스마트폰에 찍힌 이름을 김정은에게 보여줬다.
“이 사람이요.”
“중국 주석이요?”
김정은은 통화를 시작하는 재준을 보며 꿀꺽 마른 침을 삼켰다.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미국, 러시아, 중국 사이에서 잘도 줄을 타는구만.
재준의 통화가 시작되었다.
“네, 주석님.”
-방금 러시아에 로봇과 캡슐을 공급하겠다고 했습니까?
헐, 어디 도청이라도 한 건가?
투마로우 시티는 아닐 거고 설마 러시아 크렘린궁에?
“원유 대금인데요.”
-중국도 공급해 주세요. 저희는 돈 주고 사겠습니다.
“원한다면 공급해 드려야죠. 그런데 왜 갑자기 러시아를 따라 하려는 겁니까?”
-솔직히 투마로우가 제시한 미래는 저희 중국에 더 잘 어울립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겉으로 보기에는 그렇지만 본질은 다릅니다. 중앙 통제가 아니니까요. 그래도 하겠다고요?”
-음, 할 겁니다. 중국이 미국을 넘어서는 걸 내 눈으로 봐야겠습니다.
“아, 네.”
굳이 3연임을 하겠다는 거네.
캡슐로 중국 인민의 환심을 사서라도.
뭐, 3연임을 하든 4연임을 하든 내 알 바는 아니지.
-당장 공급 계약을 체결합시다.
“더는 인민을 통제할 수 없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캡슐 속에 있는 인민을 굳이 통제할 이유가 있습니까?
오, 거기까지 생각을 했다?
경제는 인공지능에 맡겨 놓고 대외 정치만 신경 쓰겠다?
그것도 나쁘진 않지.
자, 이렇게 되면 정치적인 문제를 풀어야 할 명분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는 건데.
“알겠습니다. 내일 당장 중국에도 담당자를 보낼게요.”
-기다리겠습니다.
툭.
솔직히 재준의 자유무역경제는 간단하다.
그리고 모든 국가에 도움이 되고.
인공지능이 국가 경제를 관리하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면서 필요한 만큼의 상품을 만들고 필요한 국가에게 제품을 공급하면 된다.
그러면 자원 낭비도 없고 기업의 이익은 안정적으로 유지될 수 있다.
문제는 더 많이 만들고 더 많이 팔겠다는 욕심이지.
그럼 욕심을 부리는 인간만 사라지면 되겠네.
가만, 근데 그게 나잖아.
아니, 아니, 다시 한번 생각해 봐야겠다.
재준이 어질어질한 머리를 흔들고 있는데.
“임재준 동지, 시앙핑 주석도 로봇을 달라고 합니까?”
“그러네요.”
“거, 왜 다들 북조선을 따라 하려는 건지 원.”
“하하, 좋아 보이나 보죠.”
“쯧쯧쯧. 좋은 건 알아 가지고.”
북한의 경제 생산이 대부분 로봇으로 대체된 건 이미 한참 전이다.
여긴 투마로우 시티에서 만들어지는 로봇의 실험장소니까.
다만 북한에는 캡슐이 없다.
대신 북한 주민들은 농사를 짓는다.
“대충 마무리가 된 것 같은데 옥류관으로 술이나 한잔하러 가실까요?”
“오, 어서 갑시다. 가요.”
하하하하하하.
***
캘리포니아.
[투마로우가 러시아와 중국에 로봇과 캡슐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발표했습니다. 특히 세계의 공장인 중국이 로봇의 공급으로 미국과 무역 분쟁에서 우위에 설 수 있다는 분석이 월가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이에…….]
“뭔가 일이 묘하게 흘러가고 있습니다.”
CNN을 시청하던 애플 회장 아서 래빈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이러면 팹리스가 죽는 시장이 형성될 겁니다.”
마이크로소프트의 기술 고문 빌 게이츠가 아서의 말을 풀어서 설명했다.
제조 없이 설계만으로 세계를 선도하는 기업은 인공지능의 설계 능력을 따라갈 수가 없다.
여기에 더해 설계를 로봇이 실현한다면 지금의 거대 기업들의 입지는 줄어들 게 뻔했다.
“기업도 문제지만 정치도 미래당이 선점하고 있습니다. 이번 중간 선거에서 민주당과 공화당은 대패가 예상됩니다.”
아마존의 창립자이자 CEO인 제프 베조스가 걱정 어린 목소리를 내었다.
지금까지 정치권에서 지적 재산권을 법제화해서 다른 나라에 기술 분쟁을 일으켜 줬다.
하지만 정치적 방어망이 그 역할을 못 해 준다면 특허는 의미가 없어진다.
“미국에 위기가 닥쳐올 겁니다.”
구글의 창립자이자 알파벳의 기술 부문 사장인 세르게이 브린이 맞받아쳤다.
“정치가 미래당으로 넘어가면 기술유출을 막아주는 장벽이 허물어질 거라고요.”
미래당은 정보의 공유를 최우선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보가 어디로든 원활하게 흘러가야 첨단 과학 사회가 실현된다고 믿었다.
“정치인들이 문제입니까?”
“아예 정치가 우릴 보호해 주지 못하는 시대가 올 겁니다. 기업들이 인공지능에게 관리를 맡기면 인공지능끼리 정보를 공유하고 정보는 국경을 넘나들지 않을까요?”
“정치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하겠군요.”
“임재준은 도대체 왜 이런 일을 벌인 걸까요?”
“임재준이 아닙니다. 투마로우 시티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그레이 구 같은 겁니다.”
그레이 구(Grey Goo)는 소설에 나오는 거대한 나노봇 덩어리로 메뚜기 떼같이 한 덩어리로 움직이며 에너지를 찾아다닌다.
그레이 구가 지나가는 곳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투마로우가 윤리와 인권을 무시하고 과학을 발전시키고 있다.
그리고 발전된 첨단 기술을 누구나 사용할 수 있다.
물론 그렇다고 누구나 만들지는 못하지만 어쨌든 제약은 없어졌다.
그동안 첨단 기술로 떼돈을 벌던 시대가 사라지고 있었다.
“그렇게 비관적으로 생각할 것만은 아닙니다.”
“빌, 무척 긍정적으로 생각하는군요.”
“이미 우린 많은 돈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상위층이죠.”
“그래서요?”
“투마로우가 만드는 세상은 여기서 계층 구조가 멈추게 만들 겁니다. 모두가 평등한 사회가 될 테니까요. 우리만 빼고요.”
“하지만 기업은 무너질 겁니다.”
“제프, 투마로우가 아무리 기술이 발전한다 해도 결코 인터넷을 지배하진 못합니다. 아마존의 클라우드 컴퓨팅은 더 번창할 겁니다. 또한, 이미 구글이 가지고 있는 데이터를 투마로우가 지금 시작해서 따라잡으려면 시간이 오래 걸리고요. 그것도 구글이 놀고 있다는 전제하에요.”
“문제는 우리, 애플이군요.”
“아서, 스마트폰 사업 계속할 생각 아니잖아요. 이미 에너지에도 손을 뻗고 있는 것 같던데.”
후후.
아서는 빌의 질문에 대답 대신 미소로 답했다.
“그래도 무언가 대책을 마련해 놓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그래야죠. 가문이 몰락한 걸 잊으면 안 됩니다.”
가문은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가문이다.
케네디 가문, 루스벨트 가문, 록펠러 가문, 해리슨 가문, 애덤스 가문, 부시 가문, 프렐링하이젠 가문, 태프트 가문, 베이야드 가문.
이 정도가 미국의 10대 가문인데 과학의 발전을 등한시하고 정치에 올인한 결과 전부 유명무실해졌다.
이들 가문의 쇠퇴에는 여기 기업들의 영향이 컸다.
기업가의 후원은 정치인 한 명 물러나게 하는 건 일도 아니다.
아무리 명문 가문이라도 기업의 후원을 업은 상대를 선거에서 이기기는 힘들다.
그렇게 미국의 유명 가문들은 거대 기업을 보호해 주는 울타리에 불과했다.
이는 미국 가문만의 문제가 아니다.
유럽의 가문들도 돈 앞에서 허물어졌다.
로스차일드니 일루미나티니 하는 가문과 단체는 힘을 잃었다.
“생각해 둔 대책이라도 있습니까?”
“차라리 임재준과 손을 잡는 건 어떻습니까?”
“그것도 나쁘지는 않습니다. 아까 말한 대로 이제 스타트업 기업이 우리만큼 크게 성장할 가능성은 제로에 가까우니까요.”
“그러다 임재준에 먹히면요?”
빌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반대를 만들어야지요.”
“반대라면 투마로우를 먹겠다는 겁니까?”
“표현이 좀 거셉니다. 합병이나 인수를 말하는 겁니다.”
“투마로우와 합병이요?”
합병이라는 말에 모두 표정이 굳었다.
오직 의견을 낸 빌만이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왜 모두 놀라십니까? 기업에서 인수 합병만큼 빈번한 일도 없는데요.”
“그 대상이 투마로우니까 그렇지요.”
“투마로우는 임재준에 의해서 돌아가는 기업입니다. 임재준만 없으면 달리다가 멈춘 리무진에 불과하다고요.”
“지금 임재준을 제거하자는 겁니까?”
“아까부터 표현이 상당히 거칩니다. 제거라니요. 잠시 투마로우와 멀어지게 하는 겁니다.”
“소송으로는 어림도 없습니다. 그쪽 법무팀은 정부도 손을 대지 못할 정도로 막강합니다.”
“저도 소송을 생각하는 건 아닙니다. 소송은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그 비용이면 차라리…….”
빌의 말끝이 흐려졌다.
그리고 옆에서 피식 웃는 세르게이가 입술을 적셨다.
“우연히 사고가 나면 되겠군요.”
네?
모두의 시선이 세르게이로 향했다.
“잠시 병원에서 요양하는 방법을 말하는 겁니다.”
공간에 알 수 없는 정적이 내려앉았다.
“그런 일을 누가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돈만 주면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처리해 주는 사람은 아주 많습니다.”
음.
모두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의 동조를 표했다.
< 제370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4)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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