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367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 >
중간선거 한 달 전.
[저희 OPEC은 이번 달부터 하루 200만 배럴 감산에 들어가기로 합의했습니다. 감산 이유는 유가 하락과 경기 침체로 석유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는 없으니…….]
살만 국왕이 재준을 도와주려고 큰 결심을 했다.
가뜩이나 인플레이션으로 물가 안정을 위해선 석유 증산을 요청했는데 사우디가 미국의 요구를 무시하고 대통령 중간 선거에서 미래당을 밀어주기 위해 석유 감산을 발표했다.
이게 뭐 대단한 일이냐 하겠지만 향후 벌어지는 사태는 미국을 나락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
민주당 회의실.
척 슈머 상원 원내대표가 3선 이상 의원들을 소집했다.
“이건 사우디가 중간 선거를 노렸다고밖에 볼 수 없습니다. 하필 왜 지금 감산을 발표하는 겁니까?”
한 의원이 입에 거품을 물었다.
역시 국민의 삶이 먼저가 아니라 선거에 이기느냐 지느냐가 도마 위에 올랐다.
척 슈머가 어느 한 의원을 노려봤다.
“그레이 의원, 사우디와 사전에 합의 본 것 아니었습니까?”
이것도 역시, 뒤에서 사우디와 물밑 작업이 있었다.
“구두로 200만 배럴 감산에 합의를 봤습니다. 이번 달에 50만 배럴 감산하고 중간 선거 끝나고 150만 배럴 감산하겠다고 했습니다. 중간 선거 뒤에 발표하는 조건이었는데 우리 의견을 무시한 겁니다.”
이거 봐라, 원래 200만 배럴 감산은 예정되어 있었고 시기가 문제였는데 사우디가 민주당 뒤통수를 제대로 후려갈겼다.
“한꺼번에 200만 배럴을 발표한 저의가 의심스럽습니다.”
잠깐.
척 슈머가 진정하라고 손을 들었다.
“진정하세요. 저도 같은 생각입니다. 그들이 노리는 게 뭔지를 알아야 합니다.”
“너무 뻔한 거 아닙니까? 미래당을 밀겠다는 겁니다. 이는 민주당 입지를 향한 위협이고 대통령에 대한 직접적인 모욕입니다.”
잠깐, 잠깐.
척 슈머는 의원들을 진정시키기 위해 노련하게 화제를 잠시 다른 곳으로 돌렸다.
“공화당 반응은 어떻습니까?”
“좀 약하긴 하지만 선거 개입과 민주주의에 대한 공격으로 판단한다고 공식 논평을 했습니다.”
“그럼 공화당은 사우디와 관련이 없다는 거군요.”
“이건 분명 미래당과 사우디가 손을 잡은 겁니다.”
후.
척 슈머가 비서에게 손짓을 하자 비서가 의원들 앞에 서류를 한 부씩 놓았다.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려 했는데 노펙(NOPEC)법안을 상정하겠습니다.”
뭐야 이건? No와 OPEC을 합친 합성어야?
노펙(NOPEC)법안.
국가적인 반독점 법안이다.
미국에는 반독점법이 있다.
기업이 인수합병(M&A) 등 시장 독점을 강화하는 행위나 가격 담합 등 다른 기업의 시장진입을 방해하거나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각종 불공정 행위를 금지하는 법을 말한다.
다시 말하지만, 기업의 독과점을 막으려는 법이다.
기업.
여기서 가격 담합으로 소비자의 이익을 침해하는 부분을 떼어서 국가에 적용하자는 법안이 노펙법안이다.
국가.
즉, 석유 카르텔 멤버들을 고소해서 수십억 달러의 배상금을 요구하자는 게 이 법안의 주요 골자이다.
그러니까 기업 다루듯이 국가도 다루겠다?
“에너지 가격 통제에 대한 권한을 제한해야 합니다.”
척 슈머가 강하게 주장했다.
하지만 상원의원들의 얼굴에는 서류를 보는 순간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사우디가 콧방귀도 안 낄 것 같은데.
이게 과연 먹히기는 할까?
당연히 안 먹힌다.
미국이 아무리 경제 제재로 사우디를 윽박질러도 사우디는 에너지를 통제하는 국가다.
그리고 미국이 사우디에게 경제 제재를 가할 게 없다.
중국은 반도체로 제재를 가할 수 있지만.
석유 수입국에 사우디 석유를 수입하지 말라고 할 건가?
세계 10대 산유국 중에 OPEC과 러시아, 중국이 손을 잡으면 미국은 캐나다와 미국 편인지 아닌지 모르는 브라질밖에 남질 않는다.
애초에 사우디에게 경제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닌데 반독점법이라고 만들어서 벌금을 물리겠다고?
오히려 사우디에게 무시당하고 전 세계 언론에 좋은 특종거릴 제공할 것이다.
하지만 원내대표가 법안을 상정했는데 싫다고 말할 수는 없는 법.
“좋은 법안입니다. 그리고 사우디와 아랍 에미리트에 있는 미사일 방어체제와 미국을 철수하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합니다.”
한 의원이 일단 칭찬하는 척하고 자신의 의견을 내밀었다.
옳다구나 다른 의원이 물었다.
“차라리 미사일 방어체제를 이란에 옮겨버립시다. 중동에서 미국의 동맹을 이란으로 바꾸는 것도 방법입니다. 80년 동안 뒤를 봐줬더니 사우디가 미국 무서운 줄 모르는 거 같은데. ”
이란을 동맹국으로? 너무 나갔잖아.
또 다른 의원이 의견을 냈다.
“전략 비축유를 방출해야 합니다.”
이 사람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전략 비축유는 올해만 네 번째입니다. 또 방출하면 40년 만에 최저치로 떨어집니다.”
결국 막장 의견이 나왔다.
“이럴 게 아니라 미국이 원유 수출을 한시적으로 금지하는 건 어떻습니까?”
미국 원유 수출을 금지하자고?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라고 말하겠지만 미국 대통령은 그 많은 선택지 중에 마지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
AAG 빌딩 66층.
[미국 정부는 잠정적으로 미국산 원유 수출 금지를 선언하였습니다. OPEC+의 힘이 갈수록 커지고 미국의 세계 경제여건에 대한 영향력이 감소하며 스태그플레이션의 위험으로, 성장 둔화와 물가 상승의 공공연한 불안 탓에 부과되는 조치라 설명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은 1975년부터 미국산 원유의 수출을 금지해 오다가 2015년 12월에야 해제되었다.
원래 원유를 수출했던 나라가 아니었다.
오히려 원유를 수출한 시기가 얼마 안 되었다.
가장 당황한 것은 당연히 유럽.
사우디 감산에 러시아와 거래 중단 거기다 미국 원유 수출 금지까지 더해지면 그야말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만 남았다.
인플레이션 강화와 경제 악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스태그플레이션에 봉착할 위험이 수위에 올랐다.
재준은 뉴스를 보며 빙글 웃었다.
그렇지, 그 선택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알려줄게.
이제 미국을 고립시키고 내 손안에서 놀아나게 되는 건 시간문제일 뿐이다.
“‘블랙’, 푸차르 뭐 하고 있어?”
【각료들과 회의 중입니다.】
“그딴 회의 중단하고 나한테 전화하라고 해.”
【문자 전송했습니다.】
이상하네.
왜 불길하지?
“그딴 회의 중단하라는 말도 보낸 거야?”
【네, 푸차르가 좋아하는 표현입니다. 같이 전송했습니다.】
헐.
진짜 좋아하는 건가?
띠링.
엘리베이터가 열리고 윌켄이 들어섰다.
띠리리리링.
재준의 스마트폰이 동시에 울렸다.
재준이 손을 휘저으며 윌켄에게 우선 앉으라고 손짓을 했다.
“오랜만입니다.”
-하하하, 그딴 회의인 줄 어떻게 알았습니까? 매일 실속 없는 이야기만 오가고 있었는데.
진짜네.
“제가 정보에 밝으니까요. 여기 앉아서도 러시아 사정은 훤히 알고 있습니다.”
-그래, 그딴 회의를 중단할 만큼 저한테 도움이 되는 이야기입니까?
“그럼요.”
-정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뭐, 단도직입적으로 말할게요.”
-네.
“러시아 석유, 이제 슬슬 수출하는 게 어때요? 러시아 경기도 막장인 것 같은데.”
-하하하, 석유를 사고 싶은 겁니까?
“내가 석유를 사서 뭐 하게요. 미국에서 나오는 석유도 많은데. 석유를 사고 싶어 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어디입니까?
“일단 북한부터 합시다.”
-북한은 지금도 수출을 하고 있습니다.
“러시아에서 생산하는 석유 전량을 원합니다.”
-전량이요? 하하하, 투마로우가 사는 거군요. 어디다 팔 생각입니까?
“그야 당연히 아시아죠.”
-의외네요. 유럽일 줄 알았는데.
“유럽은 아직 버틸 만하거든요.”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우리 정보에 의하면 한계에 부딪혔다고 들었습니다.
“그러니까 그 한계를 좀 더 끌어 볼까 합니다.”
-죽이겠단 말로 들리는데요.
“천만에요. 유럽을 죽여서 나한테 무슨 득이 된다고. 하지만 목숨이 간당간당할 때 손을 내밀면 잡아는 줄 겁니다.”
-하하하, 임재준 당신이 하는 일은 항상 궁금해집니다. 알겠습니다. 그렇게 합시다.
툭.
통화를 끊은 재준은 눈을 감았다.
자, 러시아 석유는 북한으로 간다.
이제 유럽으로 가 볼까?
***
유럽연합.
러시아가 생산되는 석유 전량을 북한으로 보낸다고 발표했다.
미국과 동맹인 유럽은 OPEC이 마치 배급처럼 주는 물량으로는 견디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결국, 유럽 각국의 대표와 영국이 한자리에 모였다.
쾅, 쾅.
“원유 감산으로 인해 물가가 폭등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경기도 부진합니다. 이게 뭘 말하는 건지 아십니까?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 발생한단 뜻입니다. 말로만 듣던 그 스태그플레이션 말입니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탁자까지 내려치며 울부짖었다.
스태그플레이션이 코앞에 다가왔다.
물가만 오르는 인플레이션과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1997년 한국의 외환 위기가 바로 스태그플레이션이었다.
그때 우리는 어땠는가?
물가와 실업률이 높아지고 인플레이션이 10%를 넘는 등 확실한 스태그플레이션 상태에 놓여있었다.
특히 IMF가 강요한 고금리 정책으로 인해, 건실한 기업들까지 줄도산하며 실업률이 폭발하는 상황에서 생활 물가는 계속 상승했다.
“맞습니다. 금리 인상으로 통화 긴축을 하는데 물가까지 폭등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국민들에게 고통을 주어야 합니까? 이게 진정한 동맹국이 할 짓입니까?”
스페인 산체스 총리가 거들었다.
“내부 요인으로 통화 긴축을 하는 건 맞지만 지금은 외부 요인으로 경제 위기가 발생했습니다. 단지 통화 긴축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입니다.”
독일 슈타인마이어 총리가 간접적으로 외부 요인이라고 누군가를 둘러댔다.
“뭐, 말 돌릴 필요 있습니까? 이게 다 미국 때문에 벌어진 일입니다. 미국은 당장 금리 인상을 멈추고 원유 수출을 재개해야 합니다.”
네덜란드 뤼터 대통령이 미국이라고 단정하듯 말했다.
“세계 경제가 점점 커지는 위기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미국이 자기만 살자고 금리를 인상하고 수출을 막는다면 다 같이 죽을 겁니다.”
벨기에 알렉산더르 총리가 한 번 더 미국을 지적했다.
“현재의 인플레이션은 금리 문제가 아닌 공급망 문제, 정치적 혼란, 높은 운송 비용 등 외부 요인이 많습니다. 지금 상황은 중앙은행이 사회적으로 용인되는 비용 한도에서 인플레이션을 막을 수 없다는 걸 왜 모른단 말입니까?”
독일 슈타인마이어 총리가 단순한 문제가 아니라고 지적했다.
“무조건 싸움만 해대는 미국이 답답할 뿐입니다. 러시아와 싸우고, 중국과 싸우고, 이제 OPEC까지 등을 돌리게 했습니다. 이러면서 자기들만 살자고 금리를 인상하니……. 우리가 따라가자니 힘들고 안 따라가자니 경제 위기가 닥쳐오고 이게 도대체 뭐 하자는 수작입니까?”
드디어 영국 리즈 총리가 입을 열었다.
유럽연합은 아니지만 긴급한 사항이라 참석하긴 했다.
가만히 입을 다물고 있으려니 속에서 열불이 올라왔다.
“통화 정책만 긴축하면 뭐합니까? 공급망 해결도 안 되고 국가 간 갈등 해결도 안 하고 노동력은 부족은 심각해지고. 차라리 저희 영국은 OPEC과 손을 잡겠습니다.”
일순 정적이 일었다.
누구나 생각은 있지만 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건 바로 미국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다.
지금 그 총대를 영국이 멨다.
영국 혼자서는 가능하다.
유럽연합이 아니니까.
누구든 말을 해야 한다.
“프랑스는 영국과 뜻을 같이하겠습니다.”
하나의 물길이 터졌다.
“스페인도 같이 하겠습니다.”
하나가 더 터졌다.
“포르투갈도 하겠습니다.”
“스위스도 같이 갑시다.”
“오스트리아도 합류합니다.”
벨기에, 이탈리아, 체코, 헝가리.
하나하나 불어나서 둑이 터지고 말았다.
모든 물이 쏟아져 나왔다.
< 제367화 이제 너희들 석유 못 팔아먹어(1) > 끝
ⓒ 번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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