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3화 왜 자꾸 일하는데? 쉬라니까(10)
“서로 죽고 죽인 것 같습니다. 마지막 몇은 바닷물을 먹고 탈수 현상을 일으킨 것 같습니다.”
“혹시 지난번에도 비슷한 사건이 있었던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그 배에 그 장관들입니다.”
“그럼, 또?”
“네, 누군가 똑같은 짓을 저지른 겁니다.”
“니카라과는 뭐라고 합니까?”
“자신들은 전혀 상관없다고 합니다. 다이로가 보낸 의사가 장관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과정에서 차가 탈취당했고 장관들이 사라졌다고 이야기할 뿐입니다.”
“아니, 방금 뭐라 그랬습니까? 다이로요?”
“네.”
“다이로가 연관되었다면…….”
잠깐만요.
국방부 장관이 말을 가로채고 끼어들었다.
“너무 노골적입니다. 다이로가 연관되었다는 게 너무 뻔하게 보인단 말입니다.”
음.
국토안보부 장관도 국방부 장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군요.”
“좀 더 조사할 필요가 있습니다.”
저.
비서실장이 소리를 더 낮추었다.
“지난번 사고에서 CIA가 조사한 보고서가 있습니다.”
CIA 보고라는 말에 국방부 장관과 국토안보부 장관의 이마에 주름이 생겼다.
CIA는 보고하려면 이쪽에도 해야지 비서실에만 보고하는 건 뭐야?
비서실도 그렇지 혼자 정보를 독차지하겠다는 거잖아.
비서실장은 두 장관의 표정에서 불편함을 보았다.
“죄송합니다. 사안이 신중해서 비서실에서만 보관하고 있었습니다.”
“뭡니까? 그 중대한 사안이란 것이.”
국방부 장관이 심드렁하게 받아쳤다.
비서실장은 좀 더 감정을 절제하며 입을 열었다.
“전에 컨테이너 선박에서 니카라과 디에고 국방부 장관이 죽었습니다.”
“알고 있습니다. 니카라과로 이송되는 도중에 심장마비로 죽었다는 거.”
“언론에 그렇게 알려졌지만 사실 선박에서 이미 콜롬비아 장관들이 디에고 장관을 죽였습니다.”
뭐라고?
장관이 장관을 살해했다고?
이거 미친놈들 아냐?
두 장관의 표정이 굳어졌다.
이 내막이 알려지면 콜롬비아와 니카라과가 전쟁을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일이었다.
“사실입니까?”
“컨테이너에 투입되었던 병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 합니다. 신뢰할 만한 인물이긴 한데 그다음 말이 뭔가 미심쩍었습니다.”
“그게 뭡니까?”
“콜롬비아 장관들이 살기 위해서 니카라과 국방부 장관을 죽여서 먹었다고 했습니다.”
뭐요?
잠깐, 잠깐.
대통령이 손을 들었다.
아무 말도 하지 말하는 신호였다.
일반인이 바다에 표류가 되어서 동료를 죽여서 먹었다는 아주 오래된 이야기가 있었다.
그건 일반인의 경우라 재판을 받는 거로 끝났다.
근데 이건 아니다.
한 나라의 장관을 죽인 것도 모자라…….
그런데 이번에 같은 사건이 또 발생했다.
아마 같은 일이 반복되었을 것이다.
컨테이너 선박에서 콜롬비아 장관들이 서로 죽고 먹고…….
이건 니카라과의 복수다.
너희들도 당해봐라.
대통령의 생각을 아는지 국토안보부 장관이 나섰다.
“다이로는 핑계일 뿐입니다.”
“잠깐만, 잠깐, 기다려 보세요.”
대통령은 섣불리 말을 뱉을 수가 없었다.
미국이 할 일이 생긴 거 같은데.
“국방부 장관, 어떻게 생각하세요.”
“음. 첫 번째 사건은 장관들끼리 벌인 사건으로 치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 사건은 분명 니카라과 정부가 개입한 것 같습니다. 수감 중이었던 그들이 별안간 컨테이너 선박에서 발견되었다는 건 도무지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국토안보부 장관이 국방부 장관 의견에 한 표를 던졌다.
대통령이 이번엔 국토안보부 장관을 바라보았다.
“장관, 우리가 할 일은 무엇입니까?”
“니카라과에 책임을 물어야 합니다. 세계의 시선이 저희를 보고 있습니다.”
세계의 시선.
지금까지 투마로우로 실추된 정부의 권위를 세울 기회다.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니카라과는 콜롬비아와 미국 사이에서 마약을 유통한 나라입니다. 일단 명분은 이것으로 충분하고 진짜 이야기는 본인들에게 들어봐야 하지 않겠습니까?”
정부 관계자에게 직접 들어본다.
필요시에는 니카라과 대통령에게도.
미국 정부의 힘이 아직은 살아 있다.
“항모 전단 CSG(Carrier Strike Group)를 출격시키세요.”
“네.”
국방부 장관의 목소리가 오늘 중 제일 단단했다.
***
콜롬비아.
“미국이 니카라과 앞바다에 항공 전단을 출격시켰다고?”
마누엘의 보고에 다이로는 아주 의외라고 생각했다.
일이 왜 이렇게 흘러가는 거지?
잡으려면 나를 잡아야 하는 거 아닌가?
장관들을 죽게 내버려 둔 건 난데.
“이유가 뭐야?”
“마약을 미국으로 운반한 책임으로 갱단 소탕을 원한다고 합니다.”
“니카라과로 들어가겠다는 거네.”
“저희 콜롬비아와 같은 꼴로 만들려는 게 아닐까요?”
콜롬비아는 까딱 협정을 잘못 맺어서 DEA가 갱단을 잡겠다는 구실로 제집 드나듯 했던 경험이 있었다.
“그렇긴 한데…….”
퍼즐 조각 맞춰지는 꼴이 이상하다.
이미 마약이 미국으로 흘러 들어가지 않게 된 지 제법 됐는데.
전부 자국에서 소모되는 터에 마약 사업이 크게 위축되었다.
오히려 콜롬비아만 ‘드럭리걸 존’ 때문에 호황, 호황, 이런 호황이 없었다.
콜롬비아로 쳐들어오는 게 맞지 않나?
돈이 되는 곳은 여긴데.
나를 핑계 삼아도 충분하고.
내가 생각이 짧은가?
그런데 너무 과하잖아.
“이상하네, 갱단 잡겠다면 국토안보국이 뜬 거고 항모 전단이 떴으면 국방부가 뜬 건데. 아니, 갱단 하나 잡겠다고 미군 전력을 다 끌고 온 거야?”
“다는 아니고 일부만 온 거로 아는데요.”
“어이구, 멍청한 새끼, 내가 정말 미군 전력을 다 끌고 왔다고 말한 거야? 그렇다는 거지. 중요한 무언가 있다는 말이야. 모르겠어?”
“그게 뭘까요?”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네가 방금 나한테 이 상황을 보고해 놓고.
“됐어. 하긴 넌 그게 매력이다. 우라베같이 머리는 안 쓰니까.”
“흐흐, 네.”
“좋단다. 내가 복이 많은 거지. 내가.”
“마나과 갱단을 미국이 진짜 칠까요?”
“가만, 미국?”
“네.”
“아니. 그 말이 아니라.”
미국?
지금 임재준이 미국에 있잖아.
다이로는 자신의 손에 들려있는 하얀색 스위치를 봤다.
콜롬비아 장관들을 처리하겠다고 하자 ‘네 맘대로 살아’라며 주고 간 하얀색 스위치.
이것 때문에 잠시 잊었는데.
우리 목표가 그게 아니잖아.
분명 전 세계 인간의 머릿속에 칩을 주입하고 자극을 주는 일회용 스위치를 파는 게 목표였지.
“마누엘, 지금 투마로우 캡슐이라고 미국에서 난리지.”
“아, 그거요. 막 환상이 보이고 그런다는데. 마약은 저리 가라래요.”
“그래, 그거.”
임재준, 나만 쏙 빼고 미국에서 사업을 하는 거야?
그럼 안 되지, 거긴 내 지분도 분명 있는데.
음.
그런데 미국은 어떻게 들어가지?
“마누엘, 나 미국에 들어갈 방법 있어?”
“네? 미국이요?”
“그래, 미국.”
“농담하세요? 가자마자 체포돼요. 아직 지명 수배 중이라고요.”
“아직도 지명 수배 중이란 말이지.”
기왕 잡힐 거면, 선물을 안고 가야겠는데.
임재준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을.
“마누엘, 나, 니카라과 간다.”
“준비할게요.”
“아니야, 괜찮아. 나 혼자 갈 거야.”
“혼자요? 왜 그러세요. 거기서 무슨 짓을 벌이려고요?”
“괜찮다니까. 그쪽에 연락해서 총기를 받을 수 있도록 조치만 해.”
시무룩한 마누엘.
“위험한데. 거기 지금 전쟁이 터지느냐 마느냐 해서 장난 아닌데.”
“야, 나 다이로야. 죽긴 누가 죽어.”
“알겠습니다. 니카라과 애들한테 총을 받을 수 있도록 해 놓을게요.”
“너 몰래 따라오지 마.”
“안 가요. 죽을 일 있어요? 거길 가게.”
“아유, 저 의심스러운 새끼.”
시가.
다이로는 마누엘이 내민 시가를 받아서 불을 붙였다.
후.
임재준, 우리 다시 만나야겠는데.
***
니카라과.
“항모 전단? 그래서 우리 보고 어쩌라는 건데?”
니카라과 오르테가 대통령은 국방부 장관 말에 콧방귀를 뀌었다.
“갱단 소탕을 승인하라고 합니다.”
“웃기고들 앉아 있네. 그냥 거기 바다에 계속 떠 있으라고 해. 병신들이 지금까지 우리한테 어떻게 대했는데 이래라 저래라야?”
오르테가 대통령은 지난해 치러진 대선에서 75%의 압도적 지지를 얻어 4연임에 성공했다
물론 자신과 맞서는 후보들 가운데 7명을 감옥에 보내고 군소 후보 몇 명을 상대로 이번 선거를 치러서 당당히(?) 당선되었다.
4연임이니 이제 독재국가의 길을 가게 될 거라고 주변에서 비난 일색이었다.
하지만 오르테가 대통령은 그러거나 말거나 눈도 깜빡하지 않았다.
이 길만이 니카라과가 살길인데.
민주주의? 지랄하고 있네.
왜 남미는 자꾸 미국의 민주주의에 반기를 드는 것일까?
미소 냉전이 끝나고 남미의 여러 나라가 군사독재 또는 일당 지배로 인한 오랜 정치적 혼란기에서 벗어났다.
1994년에는 오직 쿠바만이 홀로 남아 미국식 민주주의를 거부했다.
적어도 2010년까지는 중남미에서 민주주의는 비교적 건실해 보였다.
그러나 이후 점차 자유로워진 언론 덕에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부의 각종 부패 사건들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대중의 환멸이 점점 커졌다.
민주주의 좋아하네.
독재보다 더 해 먹는 놈들이라니까.
사실 그랬다. 독재 정권은 위에서 내려주는 것만 받아먹었는데 민주주의가 되니까 자신들이 직접 해 먹었다.
말단부터 고위급까지 안 해 먹은 놈들이 없었다.
이때 세계적으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면서 10년간 중남미 각국 경제가 후퇴하자 빈민들을 중심으로 갱단이 출몰하기 시작했다.
빈민이 많아지면 갱단이 된다니까.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갱단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며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졌다.
남미의 국민들은 민주주의의 핵심인 권력 분립이나 사법부 독립 따위는 관심도 없었다.
그들은 매일 식탁에 먹을 것을 충분히 올려놓을 수 있는지, 안전하게 집으로 돌아갈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경제 위기 속에서 누군가 미래를 약속하는 이가 나온다면 유권자들은 그를 지지할 수밖에 없었다.
인기에 영합하는 지도자가 선출돼 독재로 돌아서는 일은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 예가 부정부패에 진절머리가 난 엘살바도르의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다.
기억하는가? 마라 살바트루차-13을 하도 때려잡아 이놈들이 아이티로 왔다가 재준에게 개 박살 난 사건을.
이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도 미국의 민주주의를 조롱하는 대표적인 반미주의자다.
암튼 남미는 어디든 갱단이 설치는 통에 평화롭게 살아가는 길이 멀어 보였다.
“미국이 포기하지는 않을 겁니다.”
“아니, 그러면 우리가 포기해야 하는 거야?”
“경제 제재를 가할지도 모릅니다.”
“그래 봐야, 중미자유무역협정 회원국 지위 박탈 아냐? 그걸로 우리가 무슨 타격을 받는데?”
“12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럼, 투마로우가 한 것처럼 우리도 농장을 지어.”
이런 식의 미국을 무시하는 행동은 다 쿠바에게서 비롯되었다.
쿠바는 60년간 미국의 통상 압박을 받았지만, 여전히 꿈쩍도 안 하고 있다.
니카라과도 이제 미국이 하는 일을 뻔히 알고 있었다.
전쟁을 일으키면 전 세계가 미국을 비난할 것이고 경제 제재로 협박을 하려니 원래 가난한 국가라 씨알도 안 먹혔다.
“하고 싶은 대로 맘대로 하라고 해!”
미국이 어깨에 힘 빡 주고 출격했는데 개 망신당하게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