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1화 왜 자꾸 일하는데? 쉬라니까(8)
“당연히 아니죠.”
그럼 뭐로 인재(?)를 파악한단 말이지?
일도 안 하는데 인재라는 말을 쓰기도 뭐하지만.
“그럼 어떤 기준으로 직원을 뽑을까요?”
“정말 열심히 노는 사람.”
“네?”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미래 사회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
“그럼 면접을 봐야겠네요?”
“아니에요.”
“면접도 아니라고요? 설마 시험?”
“아니, 아니라니까. 그런 과거의 유물이 아니에요. 그래서, 직원을 뽑기 위해 캡슐을 하나 만들었어요. 가상현실 캡슐.”
재준은 캡슐을 어떻게 미국에 팔아먹을까? 몇 날 며칠을 고민하다 결국 기가 막힌 방법을 찾아냈다.
바로 지금까지 엘론에게 설명한 내용이었다.
그리고 캡슐을 면접 도구로 사용하는 것.
자연스럽게 미국 국민의 뇌 속에 나노봇을 심는 것이다.
그리고 캡슐 안에 들어가야 나노봇이 활성화돼서 가상현실을 작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한 번이라도 캡슐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그 현실보다 더 현실 같은 세상에 매료될 것이다.
이건 역대급 히트 상품이다.
몸으로 느끼는 가상현실을 누가 경험이나 해봤을까.
“가상현실 캡슐이요?”
“그렇다니까요. 미래 사회를 가상현실로 체험하게 해서 미래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직원으로 뽑는 거예요.”
“아니, 굳이 그렇게 힘들게 직원을 뽑을 필요가 있을까요?”
쉿!
재준이 엘론에게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
“진이 만들어서 내가 한번 해봤는데. 기가 막혀요. 진짜 같다니까요.”
“네? 진이요? 그럼, 당연히 진짜 같겠죠.”
“네, ‘티처’처럼 눈에 보이는 게 아닌 실제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가상현실 캡슐이요.”
“오감으로 느낄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다니까요.”
“그럼 다른 기업도 이 사업에 뛰어들 텐데요?”
“그럼 더 좋고요. 할 수만 있다면.”
그럼, 할 수만 있다면.
투마로우 캡슐을 모방하려고 개나 소나 웬만한 기업들은 캡슐을 분해하고 분석을 시도하겠지만 나노봇이 없는 캡슐의 작동 원리는 그저 한숨만 내쉬는 게 전부일 뿐이다.
뭐야, 이 깡통은, 이 정도 반응이겠지.
“그래요? 그럼 우리도, 아니, 아니, 이게 아니지, 그 가상현실로 왜 직원을 뽑냐고요.”
재준이 다시 두리번거리고 입을 열었다.
“캡슐을 팔아먹으려고요.”
“네? 그러니까 직원 채용에 쓰인 캡슐을 판다고요?”
“캡슐을 만들었는데 팔아야 하잖아요. 이야, 내가 생각했는데 기발하지 않아요? 2만 달러 정도에 팔 생각인데 일시불은 힘들겠죠? 그럼, 채용 기업이 보증을 서고 12개월 할부로 파는 건 어때요? 월급으로 나갈 돈을 우리 쪽에 입금하면 문제없잖아요.”
엘론은 잠시 재준을 바라보았다.
뭐야? 아니, 캡슐을 팔아먹으려고 사회 전체 인프라를 뒤집어엎겠다는 거야?
아무리 투마로우라도 그렇지.
아니, 그것도 아닌가?
가능할 것도 같다.
우선 니콜라모더스가 시작한다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로봇이 일하고 사람에게 연봉을 주는 것도 나쁜 것 같지는 않았다.
사람들에게 준 돈이 새로운 사업인 캡슐을 사는 데 쓰이는 것도 오히려 권장해야 하는 일이었다.
로봇, 연봉, 캡슐.
로봇이 인간의 일을 대체해 나가는 건 이미 이야깃거리도 안되는 흔하디흔한 이야기다.
로봇은 더 정교하고, 더 정확하게 일을 처리하고, 24시간 쉬지 않으며 불평불만을 토로하지도 않는다.
불평하는 인간에게 돈을 주는 게 평화를 위해 더 타당하다.
그래서 정부에서 기본 생활비를 지급해야 한다는 의견도 조금씩 공론화되고 있었다.
한국의 경우.
요즘 부의 소득세제를 통해 국민 기본 생활비를 보장해 준다고 정부가 떠들고 있지 않은가?
성인 한 명은 월 50만 원 18세 미만은 30만 원.
4인 가족의 경우 부부가 100만 원 자녀 둘은 60만 원.
한 달에 160만 원을 정부가 지급해 준단다.
160만 원으로 4인 가족이 기본 생활을 영위할지 모르겠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전 국민이 혜택을 받으려면 대략 172조 원이 필요하다고 하던데.
부의 소득세…….
기업들이 퍽이나 알아서 세금을 내겠다.
이런, 한국 이야기할 때가 아니지.
미국은 당장도 로봇에 의해 실직을 한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은데 정부는 해결하는 방안이 별로 없었다.
아니, 있기는 있다.
실업수당도 있고 기초생활보장 수급자에게 주는 돈도 있고.
하지만 정부가 주는 돈은 아주 적어서 그 돈만으로 살아가기엔 무리가 있고, 이마저도 안 나오는 사람이 태반이다.
앞으로 시간이 더 흐르면 직장을 잃은 사람들은 빈민가를 이룰 것이고 보나 마나 그 안은 범죄의 소굴이 될 게 뻔했다.
그리고 그 안에서 리더라는 인간이 등장해서 무장이라도 하면 갱단이 되어서 커다란 사회 문제로 번질 수도 있다.
갱단이 아무것도 안 하려고 등장하는 건 아니니까.
이렇게 반 로봇 세력이 자리를 잡지 말라는 법도 없다.
하지만,
니콜라모터스가 먼저 일을 벌이면 여론이 형성되고 다른 기업들도 계산기를 두드려보기 시작한다.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고 인간이 출근을 안 한다고 가정해보자.
그럼 직원한테 들어가는 비용이 아주 미미해진다.
처음엔 일을 안 하는 직원이 얄밉겠지만 계산기 결과를 보면 ‘이거다’를 외치게 될 것이다.
기업은 임금 외에도 한 명의 직원 복지와 용품으로 들어가는 돈이 연간 2천만 원 정도 되니까.
이 돈이 전부 회사 이익으로 잡힌다.
이러면 안 할 수가 없지.
로봇과 직원을 채용하는 건 마무리가 됐고.
이제 캡슐만 팔면 되는 건가?
엘론은 재준의 말에 또 의문점이 생겼다.
그 안에서 주구장창 미래 사회 하나만 경험한다면 지겨울 텐데.
엘론은 재준의 질문에 다른 질문으로 받아쳤다.
“캡슐만 있으면 가상현실을 체험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렇죠?”
“설마 게임 같은 것도 생각하고 있나요?”
“물론 게임도 출시할 거예요. 하지만 게임은 현실성이 떨어지잖아요. 인간은 언제나 현실에 불만이 많아요. 불만을 해소할 가상현실에 사람들이 더 몰입할 겁니다. 인공지능이 수많은 소프트웨어를 쏟아낼 거고요.”
“불만을 해소할 가상현실이요? 설마 섹스 같은 거요?”
“그게 아마 가장 많이 팔리지 않을까요?”
진짜로?
“하하, 이거 캡슐에서 나오지 않을 사람이 더 많겠는데요.”
“그러려고 만든 거예요.”
가상현실에 전 세계 사람들이 푹 쩔어서 캡슐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당면한 인류의 수많은 문제를 해결하기 전에는 인간의 목소리를 줄여야 한다.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내는 목소리가 얼마나 위험한지 인간은 모른다.
***
미국 브루클린 오션 에베뉴.
7살인 네이비 데미안은 인터넷에 검색을 시도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았다.
데미안은 진과 비슷한 시기에 유전자 수선 수정란에서 태어난 아이 중 한 명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간 투마로우 시티에 가지 못했다.
부모가 뱅가모의 권유를 무시하고 데미안에게 알려주지도 않았다.
데미안의 아버지는 브루클린 대학 생물학 교수이고 어머니는 뇌 과학자로 잘 알려진 인물이었다.
데미안은 어릴 때부터 바쁜 부모 때문에 늘 혼자였다.
하는 일이라고는 비어 있는 부모님의 서재에서 책을 읽으며 즐거운 상상을 하는 게 전부였다.
밖으로 나가거나 프리스쿨은 아예 가지 않았다.
1년 전쯤 프리스쿨에 갔지만 또래의 아이들은 전부 멍청하고 무식해서 대화 자체가 되지 않아 결국 집에서 홈 스쿨링을 진행했다.
그런데 그나마 대화가 가능했던 홈스쿨 교사들도 어느 순간 어리석은 말들을 내뱉어서 어느 순간부터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결국 지금으로선 대충 수업받는 척하면서 시간을 때우는 수준으로 변했다.
하루 종일 부모의 서재에서 과학 관련 서적을 읽고 인터넷에서 필요한 자료를 다운받았는데 어느 날 ‘사이진’이란 단체를 접했다.
투마로우 시티의 소식을 늘 검색하면서 외로움을 달랬다.
투마로우의 ‘진’.
진의 이야기는 이미 전설이 되었고 모든 ‘사이진’의 칭송을 한 몸에 받고 있었다.
점점 데미안은 불편한 자신을 발견했다.
나도 할 수 있는데.
나도 진만큼 똑똑한데.
어떻게 해야 세상에 나를 알릴 수 있을까.
데미안은 구글에 검색할 문장을 쳤다.
[쉽게 구할 수 있는 물질들로 원자폭탄 만드는 법]
이건 플루토늄을 구할 수 없으니 만들어 봤자 쓸모가 없을 것이고 만드는 즉시 FBI를 만나는 경험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대학 실험실에서 독감 바이러스 변형하여 퍼뜨리기]
아빠한테 부탁해서 대학 실험실을 잠깐 사용할까?
잠깐 가지고는 안 되겠지?
그리고 독감 정도는 이미 코로나가 지나간 상황에서 사람들이 놀라기나 할까?
[대장균 바이러스를 변형하는 열 가지 쉬운 방법]
이것도 별로고.
독감이나 대장균이나 그게 그거잖아.
[인터넷에서 구할 수 있는 물건들로 화학 무기 만들기]
이건 한 번 유행해서 좀 그렇고.
한때 해커들 사이에서 폭탄을 만들어 던지고 놀았던 그것이다.
[백신을 무력화시키는 천연두 바이러스 만들기]
천연두?
괜찮은데.
[값싼 비행기, GPS, 노트북으로 무인 자율 조종 저공 비행기 만들기]
이것으로 천연두 바이러스를 뿌리면 될 것 같은데.
클릭, 클릭.
데미안은 자료를 다운받아 자신의 폴더에 저장했다.
폴더에 보이는 파일명을 보는 이가 있다면 기겁을 했을 파일명들이었다.
[열 가지 흔한 병원체들의 게놈 정보]
[최고의 마천루들의 평면 설계도]
[미국 원자로 설계도]
[현대 사회의 백 가지 취약점]
[일억 미국인들의 개인 건강 정보]
[유명 포르노 사이트들의 고객 목록]
이게 바로 인간이 아무 생각 없이 내는 목소리의 결과물이다.
데미안 같은 어린아이도 클릭 몇 번이면 접근이 가능한 인터넷에 떠다니는 위험한 소리들.
예전에는 도서관에서 반나절이 걸리던 검색 작업이 인터넷에서는 몇 분도 안 돼서 찾아졌다.
꼭 악의적인 마음을 먹은 사람만이 아니라, 자신을 드러내고 싶은 이가 적절한 기술과 기기를 갖추고 훨씬 잘 번지고, 잘 잠복하고, 파괴적인 천연두 바이러스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데미안은 천연두가 맘에 들었다.
미국 도시 세 군데에 천연두 바이러스를 살포한다면 백만에 가까운 사람이 목숨을 잃을 수 있다는 결과가 존스 홉킨스 대학에서 발표한 게 떠오르기도 했다.
2001년 천연두의 일종인 마우스폭스 바이러스가 우연히 변형을 일으켰는데 기존 백신을 무력화시켜서 세계를 발칵 뒤집은 사건도 있었고.
이걸로 할까?
데미안은 피식 웃었다.
이것도 그렇게 신선하지 않은데.
너무 고전적인 수법이야.
더 획기적인 사건이 필요해.
‘사이진’ 애들한테 내가 더 똑똑하다는 걸 알리려면.
그때 데미안의 눈에 들어오는 기사가 있었다.
[니콜라모터스가 놀라운 도전을 펼치고 있습니다. 미국 본사에 생산과 업무 모두를 인공지능과 로봇으로 대처를 선언했습니다. 더 놀라운 것은 기존의 직원을 해고하지 않고 오히려 로봇과 직원의 수를 동일하게 맞추기 위해 직원을 더 뽑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직원을 뽑는 수단으로는 투마로우의 가상현실 캡슐을 사용합니다. 과연 가상현실 캡슐이 무엇인지, 투마로우가 또 어떤 변화를 시도하는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가상현실 캡슐?
진이 또 무언가를 만들었다.
데미안의 손가락이 빠르게 움직였다.
벌써 여기저기 투마로우 캡슐에 대한 추측이 난무했다.
그리고 니콜라모터스의 엘론의 인터뷰 기사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3D 화면이 아닌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가상현실이라고 할 수 있죠.’
뭐지? 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말인가?
데미안의 미간이 구겨졌다.
Fuck! 이러면 내가 뭘 하든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잖아.
저 캡슐을 아이인 나는 구할 수가 없다.
먼저 캡슐을 구해서 원리를 알아내야 하겠는데.
방법이 없을까?
데미안은 더욱 빠르게 손가락을 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