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0화 왜 자꾸 일하는데? 쉬라니까(7)
뱅가모바이오사이언스.
“어때?”
뱅가모 CEO 겐돌피니는 걱정스럽게 물었다.
며칠 전 변형 프라이온을 진의 뇌 속에 삽입하고 오늘 치료제를 주입했다.
전혀 변화가 없었다.
“조금 나아진 것 같아요. 뇌압도 예전만큼 심하지 않아요.”
진이 싱글거리며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다행이네. 하지만 아직 완전한 건 아니야. 그래서 우리도 너를 24시간 체크할 거야.”
“바쁘실 텐데. 죄송해요.”
겐돌피니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 소리는 꿈에서도 하지 마. 우리에게 너보다 중요한 것은 없어. 지금 세상이 바뀌는 것은 네가 있기 때문이야.”
“히히, 뭐 그렇게까지.”
“정말이라니까.”
진은 민망해서 머리를 긁적거렸다.
겐돌피니가 피식 웃었다.
“진, 나는 우아하게 늙어간다는 말을 아주 싫어해. 늙는다는 거, 물론 자연적인 거지. 하지만 민첩한 정신, 예민한 감각, 날렵한 육체, 성적 욕망, 이런 걸 잃어버리는 걸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게 힘들어. 질병과 죽음은 항상 슬픈 일이라서 반드시 극복해야 할 숙제야.”
진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네가 이 모든 것을 빠르게 앞당겨 주고 있어.”
“히히.”
“네가 아프고 힘들어하는 건 나 자신이 아프고 힘든 것과 다를 바 없어.”
“걱정 마세요. ‘블랙’이 제 상태를 24시간 체크하고 있어요.”
“그래도 걱정이다. 인간이란 게 관리가 되는 동물이 아니라서.”
히히.
진은 겐돌피니를 보며 밝게 웃었지만 속은 아니었다.
요즘 뱅가모의 발전 속도가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나한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거야.
방법을 찾아 드려야 해.
“그런데요. 새로 태어나는 생명도 중요하지만 지금 죽어가는 환자들도 많은데, 왜 그들은 치료를 안 하세요?”
“이 녀석, 안 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거야. 지금 우리 손이 열 개라도 모자라.”
“사람을 더 뽑으면 되잖아요.”
“아이고, 그렇게 해결되는 문제였으면 벌써 해결했지. 쓸 만한 과학자 하나 찾아내는 게 쉽지 않아요. 키우는 건 더 어렵고. 이참에 로봇을 쓸까 생각 중이다.”
진이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차라리 로봇이 낫겠네요.”
“그래? 너 혹시 만들어 놓은 로봇이라도 있냐?”
“나노봇이 있어요.”
“나노봇? 정말?”
“네. 아직은 운반만 가능해요.”
“운반? 그럼 체세포 치료가 가능하단 말이잖아.”
히히.
이놈아, 웃을 일이 아니야.
체세포 치료는 생명 공학에서 성역이나 다름없었다.
기존 핵에 새로운 DNA를 주입해서 새로운 유전자를 만들어 내는 작업이다.
유전자 수선으로 수정란을 만드는 일보다 이미 존재하는 인간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는 건 어쩌면 인류에겐 훨씬 귀가 솔깃한 이야기다.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억제하고, 노화를 늦추는 걸 넘어서 다시 젊어지는 새 유전자를 주입할 수 있다.
문제는,
“나노봇이 새로운 유전자를 안전하게 주입할 수 있을까?”
“가능해요.”
“정말?”
지금까지 유전자 주입은 보통 바이러스를 이용해서 세포에 치료용 유전자를 전달했다.
바이러스를 조정하여 특정 장기만 감염시키거나 특정 부위만 감염시키는 수준은 성공했다.
바이러스?
그놈은 자신의 유전 물질을 인간 세포에 주입해서 병을 일으키는 놈 아닌가?
맞다. 코로나로 인해 익숙하고 지겨운 놈이다.
그런데 바이러스한테 주입하려는 유전자 운반을 맡긴다고?
다른 곳이라면 몰라도 뇌세포에 바이러스를 주입하는 건 자칫 잘못하면 환자를 죽음으로 몰고 갈 수 있었다.
바이러스 안에 담으려니까 전달하려는 DNA의 길이도 한계에 봉착했고, 면역 반응도 문제였고, 새 DNA가 대상 세포의 어느 부분에 가서 결합하느냐도 통제가 불가능했다.
혹시 주사기로 주입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도 그리 신뢰할 만한 방법은 아니다.
손 떨림은 어떡할 거야.
거의 분자 수준인데.
그래서 요즘 한창 진행 중인 연구가 바로 혈액에서 줄기세포를 채취해서 DNA를 주입한 다음 다시 환자에게 주사하는 방법이다.
하지만 여전히 100% 성공을 확신하지 못하고 아직도 동물 실험에 머무르고 있다.
인간은 계속 죽어 나가는데.
하지만 유전자를 실어 나를 수 있는 나노봇이라면 모든 체세포 치료가 가능하다.
“이제 모든 질병을 정복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겠는데.”
“나노봇에 팔을 만들 수 있다면 일부 신체도 재생할 수 있어요.”
“뭐?”
갠돌피니는 진의 말에 기함했다.
나노봇에 팔을 단다고?
진이 나노봇의 진화에 종지부를 찍었다.
1950년에 리처드 파인만이 이런 말을 했다.
화학자가 알려주는 장소에 물리학자가 원소를 하나씩 놓다 보면 어떤 물질도 만들 수 있다고.
그리고 존 폰 노이만은 이런 말을 했다.
자유롭게 조작할 수 있는 팔을 가진 원자 로봇이 있다면 공기 중에 떠다니며 부품을 잡아서 자가복제도 가능하다고 했다.
현재 팔을 가진 나노봇은 없다.
의료용 나노봇은 몸 안을 떠다니면서 병을 유발하는 물질을 찾고 병을 낫게 하는 물질을 찾는 즉, 스캔 용도다.
현재 약물을 실어 나르는 수준이 한창 연구 중이었다.
그런데 진이 운반을 넘어서 팔을 가진 나노봇을 만들겠다고 말하고 있다.
생각해 보라.
나노봇이 공기 중에 떠다니면서 산소 하나와 수소 둘을 결합해서 물을 만드는 장면을.
가뭄이 일어나는 지역에 나노봇 수조 개를 뿌리면 순식간에 홍수가 일어날 수도 있다.
물론 충분한 산소와 수소가 있어야겠지만.
모든 물질은 원자로 이루어졌다.
심지어 살아 있는 생명체도 마찬가지다.
나노봇이 원자를 만들 수 있다면 만들지 못하는 물질이 없게 되는 것이다.
그게 살아 있냐 아니냐는 나중 문제이고 일단은 만들 수 있다.
재미있는 상상을 해 보자.
나노봇이 들어 있는 책상만 한 크기의 기기가 있다면 컴퓨터, 옷, 주방기구와 심지어 음식까지 만들어 낼 수 있다.
나노봇이 들어 있는 아파트만 한 기기라면 집이나 자동차 가구도 만들어 낼 수 있다.
“언제쯤 가능한데?”
나노봇은 뭘로 만들까?
혹시 아주 작은 진짜 로봇을 상상하는 건 아니겠지.
나노봇은 탄소 몇 개가 뭉친 형태로 인공지능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며 임무를 수행한다.
“뼈대는 다이아몬드형 물질이 필요하고 강도를 더하기 위해 불순물을 첨가해서 재료 성질을 개선도 해야 해요. 탄소 나노튜브가 가장 적당할 것 같아요.”
“음. 탄소라…….”
겐돌피니의 표정에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웠다.
오래전부터 제기되어 온 탄소 나노 튜브의 문제 때문이었다.
“진, 나노봇의 자가복제 위험성은 알고 있지?”
“알고 있어요. 지금은 ‘블랙’이 통제하고 있지만, 더 확실한 해결책을 세울 거예요.”
세포가 분열하듯 나노봇도 자신을 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수십조 개의 나노봇이 필요한데 자가복제를 못 한다면 인간이 나노봇을 일일이 만들어야 한다.
불가능한 일이다.
처음 몸 안에 투입되면 일정 시간 몸속에서 자가복제로 나노봇의 개수를 늘리고 원하는 개수가 되면 자가복제 프로그램을 완전히 파기해야 한다.
나노봇의 자가복제.
이를 악용한다면 어떻게 될까?
인류가 멸망하는 데 딱 100초가 걸린다.
지구에 존재하는 탄소의 개수는 10⁴⁵개다.
10⁶개를 가진 나노봇 하나가 130번 자가복제를 한다면 지구의 모든 탄소를 소모하게 된다.
탄소로 이루어진 모든 물질은 공중으로 사라질지도 모른다.
누군가 인류에게 원한을 가지고 있는 자가 악용한다면.
음.
진이 두통이 오는지 한쪽 눈을 찡그렸다.
투마로우 시티에 들어오지 않은 아이들…….
***
투마로우 시티.
니콜라 모터스.
“아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를 하는 겁니까?”
엘론은 CAO의 보고에 서류를 집어 던지며 화를 냈다.
중국 공장에서 일어난 파업 탓에 성질이 머리끝까지 뻗쳤다.
“지금 바로 임금 인상 발표를 해야 합니다.”
“아니, 임금을 인상 안 해주는 것도 아니고 매년 정해진 시기에 해주는데. 가장 중요한 이 시기에 꼭 파업을 해야 하냔 말입니다.”
“노동자들이야 항상 회사가 어려운 시기일수록 자신들의 주장이 관철되는 걸 잘 아니까요.”
똑똑.
문이 열리고 재준이 들어왔다.
이 분위기 뭐야?
“나중에 다시 이야기합시다.”
“네.”
엘론은 CAO에게 나가라고 눈치를 주고 자리에 앉았다.
재준이 앉자마자 엘론이 투덜거렸다.
“정말 성질나서 못 해 먹겠습니다.”
“왜요?”
“중국 공장 파업으로 인도 물량에 또 차질이 생겼습니다.”
벌써 3분기째 생산량 감소로 고객에게 돌아가는 물량이 줄어들었다.
인도 물량이 줄어들면 기업 매출이 줄어드니 주가가 하락하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재준은 울분을 참지 못하는 엘론을 보며 웃음을 참지 못했다.
꼭 떼쓰는 아이 같단 말이야.
“큭큭큭, 그러니까, 로봇을 사용하라니까요.”
“하고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로봇을 생산 공정에 투입하는 회사 중 하나가 니콜라모터스다.
하지만 재준의 생각은 더 과격했다.
“싹 다 로봇으로 바꾸세요. 사무직에 연구직까지. 몽땅.”
“연구직까지요? 로봇 연구는 누가 해요?”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것이 더 완벽하지 않을까요?”
로봇이 로봇을?
그러네.
생산성을 수치로 환산하면 로봇이 로봇을 만드는 게 더 낫지.
괜히 엉뚱한 창의성을 발휘하는 인간보다.
그런데 인간이 일하던 자리에 로봇이 들어가면, 그럼 인간은?
“사람들을 다 해고하면 반대가 심할 텐데요.”
“해고라뇨? 로봇 수만큼 직원을 더 채용해야죠.”
“네?”
로봇의 수만큼 직원을 더 고용한다고?
“일도 안 하는 직원을 왜 더 고용합니까?”
“그게 미래 사회에서 벌어질 일이니까요? 일은 로봇이 하고 돈은 인간이 쓰는 사회.”
“그런 건 정부에서 해야지 나 같은 기업인이 하는 건 좀 무리가 있지 않을까요?”
재준은 머리를 톡톡 두드리며 입을 열었다.
“저 걱정만 많은 정치인들에게 먼저 솔선수범을 보여줘야지요. 과학이 발전하면 인간이 얼마나 편해지는지 직접 눈으로 보라고.”
“뭐,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그런다고 정치인들이 바뀔까요?”
“국민이 하고 싶다는데? 코로나 시기에 정부가 돈을 퍼주면서 국민도 무노동 유임금이 완전히 새로운 개념은 아니게 됐잖아요. 충분히 맛도 봤고. 오히려 대찬성일걸요? 그런 국민의 요구를 정부가 무시할 수 있겠어요?”
“그래도 무시하면요?”
뭘 계속 무시해.
그래도 무시한다면?
무조건 바뀌게 만든다.
“미국 내 있는 팜봇 공장에서 로봇을 쏟아 낼 겁니다. 원하는 기업은 로봇의 수 만큼 인간을 고용하는 조건으로 저렴하게 판매할 겁니다. 어때요?”
“온통 기업마다 로봇으로 도배를 하겠다는 겁니까?”
“맞아요. 그뿐이 아니에요. 서비스업에도 로봇을 풀 겁니다. 일부러 대놓고 전 국민이 어디서든 로봇들을 볼 수 있게.”
“하늘엔 드론 택시가 날아다니고요?”
“오호, 그것도 있었네. 드론 택시도 만듭시다.”
“진짜 정부가 가만있을까요?”
“국민이 강력히 원한다니까요. 지금 미국의 ‘사이진’이란 단체 아시죠. 이제 거기도 입김이 만만치 않아요.”
“근데 왜 꼭 미국부터 하겠다는 거죠?”
“세계를 움직이는 게 미국이니까요.”
미국을 먼저 변화시켜야 세계가 변한다.
엘론은 길거리에 로봇이 이동하고 하늘을 날아다니는 택시를 상상했다.
인간은 아무 일도 안 하는데 월급이 나오고 그 돈은 다시 제품을 사거나 여가를 즐기는 데 사용될 것이다.
일을 안 하는 직원이 있고 월급도 줘야 한다.
월급을 주긴 주는데…….
긁적, 긁적.
엘론은 무언가 이상한지 자신의 관자놀이를 긁었다.
“매년 연봉 협상도 해줘야 하나요?”
“당연하죠. 매출이 늘고 이익이 늘면 연봉도 올려줘야죠.”
“매출이 줄고 이익이 줄면요?”
“그럼 연봉도 깎여야죠. 하지만 연봉이 깎였다고 파업하는 인간은 없을 거예요. 정 못 미더우면 입사 때 계약 사항으로 묶어두면 되고요. 그런데 그런 일은 일어날 확률이 높지 않아요. 물가는 매년 상승하니까요. 상품의 가격이 상승하는데 매출이 줄어들 리는 없잖아요.”
“일을 안 하고 벌어간 돈이라…….”
“그 돈이 다시 기업으로 들어오고 기업을 키우는 데 사용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직원들은 일을 안 해도 돼요. 돈을 받아서 시장에 뿌리는 역할만 해도 충분히 일하는 거죠.”
“노는 게 일하는 거다?”
그런데 엘론은 또 이상한 상상이 떠올랐다.
“그게……. 회사마다 연봉이 다르잖아요. 보너스도 다르고.”
그렇지, 누구나 월급을 많이 주는 기업에 들어가고 싶지.
가뜩이나 일도 안 하는데.
“좋은 회사에 들어가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있을 겁니다.”
아니, 이게 무슨 희한한 세상이란 말인가.
일도 안 하는 기업에 들어가기 위해 스팩을 쌓아야 한다고?
쯧쯧.
재준은 엘론을 보며 혀를 찼다.
“혹시 치열한 경쟁을 기존 시험으로 생각하는 건 아니죠?”
“그럼 아닙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