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59화 (359/477)

제359화 왜 자꾸 일하는데? 쉬라니까(6)

“가상현실?”

진이 주겠다는 선물.

“네.”

“게임?”

“아니요. 새로운 내가 되는 기회죠.”

“그 뭐냐, 소설에서 보니까 무슨 캡슐 같은 데 들어가서 가상현실게임을 하던데. 우리도 캡슐을 만드는 거야?”

풋.

진이 캡슐이란 말에 피식 웃었다.

“왜 웃어? 캡슐 아냐?”

“어디서 그런 엉터리 소설을 보신 거예요? 뭐, 몸을 보호하는 목적으로 캡슐을 사용할 수는 있겠네요.”

“그럼 가상현실은 뭐로 하는 건데?”

“나노 봇이요.”

“우리가 주입하려는 나노 봇?”

“네.”

재준이 심각한 듯 팔짱을 끼었다.

“어디 얘기나 들어보자.”

“나노 봇이란 게 망가진 몸을 회복시키는 게 주 기능이지만, 감각을 담당하는 뉴런들의 실제 감각을 차단하고 인위적인 감각을 심어줄 수도 있어요.”

“매트릭스네.”

“저희가 좀 더 진화된 형태예요. 매트릭스는 인간의 감각을 돌아오게 할 수 없잖아요. 저희 나노 봇은 평상시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아요. 가상현실을 경험하겠다는 스위치를 누를 때만 가동하니까요.”

“아, 스위치.”

재준은 문득 다이로를 떠올렸다.

가능하네.

좀 더 복잡하지만.

“스위치를 누르면 실제 감각 기관에서 들어오는 입력 신호들을 모두 차단하고 가상 환경을 구성할 새로운 신호들로 대체해 줘요.”

“그럼 진짜처럼 생생하게 느껴진다는 말이네. 근데 실제 움직이는 것과 차이가 나지 않을까?”

“안 나요. 예를 들어 제가 이렇게 팔을 들어 올리는 동작은 초당 수백 메가비트 용량의 신호들로 물리적 사건들에 대한 정보를 담고 있어요. 이 신호는 척수의 제1층판 뉴런들을 타고 올라가 후측배내측핵을 거치고 대뇌피질이 두 개의 뇌섬엽에 가 닿을 때 뇌가 인지하는 거예요.”

무슨 소린지.

“감각은 신호란 소리죠. 그러니 뇌는 실제 신호와 나노 봇이 만들어 내는 합성 신호를 구분하지 못해요.”

“합성 신호를 만드는 건 해냈어?”

“뇌를 역분석해서 이미 끝냈어요.”

“실제 신호는 어디로 갔니?”

“나노 봇이 중간에 가로채서 사라져요.”

“공간도 만들 수 있겠네.”

“물리 법칙이 허용하는 공간은 만들 수 있어요.”

“가상현실에서 만나는 사람은 다 가짜지?”

“진짜일 수도 있고 가짜일 수도 있죠.”

“가상현실에서 사람도 만날 수 있고?”

“가능하죠.”

“그럼 내 모습을 바꿀 수도 있나?”

“그것도 가능해요.”

재준은 의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근데 말이야. 나노 봇이 실제 모습도 바꿀 수 있지 않나?”

“있기는 한데 아직 현재의 나노 봇 용량으로는 불가능해요. 나중에는 나노 봇이 육체를 성형하거나 이동시키는 것도 가능해지겠죠.”

“이걸 과연 사람들이 받아들일까?”

“당장은 어려울 거예요. 천천히 진행해야겠죠. 뇌와 몸이 기계로 대체된다고 믿는 사람들은 더 이상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테니까요.”

“하지만 죽어가는 사람은 다르겠지. 로봇이든 기계든 지금의 내가 조금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이 중요할 테니까.”

기계란 인간보다 가치가 덜하다고 말한다.

자동차는 인간보다 복잡하지 않고, 창조적이지 않으며, 지적이지도 않고, 민감하지도 않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고 믿기 때문에 기계가 될 수 없다고 알고 있다.

그럼,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몸의 이것저것을 교체해 버리면 본질이 훼손되면서 인간이 비인간적인 물질로 변하는 걸까?

하지만 인간은 한계를 뛰어넘는 욕망 또한 가지고 있어서 한계에 머무는 걸 용납하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니까 우주로 로켓을 쏘고 보이지 않는 분자도 보려고 노력하는 거니까.

인간이 되겠다고 한계를 인정할 필요는 없다.

“자, 그럼, 나노 봇을 어떻게 사람들에게 주입하느냐가 문제겠네. 네가 만든 건 치료용이 아닌 좀 더 강력한 거잖아.”

“저도 고민을 했는데. 방금 아빠가 좋은 아이디어를 주셨어요.”

“내가?”

“캡슐이요.”

“아, 게임용 캡슐?”

“게임용으로 출시해서 접속하는 순간 나노 봇을 주입하는 거예요.”

그냥 무작정?

“야, 그거 불법이야.”

“여긴 투마로우 시티예요.”

“투마로우 시티?”

그러네. 그러라고 만든 거지.

그럼, 이걸 어떻게 밖으로 나가서 팔지?

***

니카라과.

“30987 면회.”

카를로스는 자신의 번호가 불리자 고개를 번쩍 들었다.

나에게 면회 올 인간이 더 있던가?

얼마 전 가족들이 면회를 왔다 갔다.

그게 다였다.

가족 이외에는 자신 같은 범죄자와 엮이는 걸 원하지 않을 테니까.

지금 한창 마약 카르텔과 얼마나 연관이 되어있는지 수사가 진행 중인데 자칫 면회라도 왔다가는 덩달아 같이 조사대상이 될 것이다.

교도관과 같이 걸어가면서 살짝 물었다.

“남자입니까? 여자입니까?”

교도관이 카를로스를 한심하다는 듯 쳐다봤다.

“가 보면 알아. 질문은 금지라는 거 모르나?”

“아, 네.”

터벅터벅터벅터벅.

드르륵.

면회실 문이 열리고 안에 시가를 물고 있는 남자가 보였다.

뭐야? 다이로?

저놈이 여길 어떻게?

다이로가 카를로스를 보며 빙긋이 웃었다.

“오, 카를로스. 어때 지낼 만한가?”

교도관이 카를로스를 다이로 맞은 편에 앉히고 밖으로 나가자 카를로스는 목소리를 낮추고 입을 열었다.

“무슨 수작이지?”

“왜 이래, 오랜만에 보는 친구한테.”

“친구 좋아하네.”

“그래도 내 이름은 불지 않고 있는 게 신기해서 한번 와 봤어.”

“미친놈, 내 입에서 네 이름이 나오는 순간 우린 전부 평생 감옥에서 썩을 거야.”

“그게 낫지 않나? 어차피 나오지 못할 건데.”

“디에고를 죽인 건 페르난도야. 난 나갈 수 있어.”

“지금 죽인 게 문제가 아니잖아. 아직도 네 핏속엔 디에고의 양분이 돌아다닐 텐데.”

욱!

카를로스가 무언가 역겨운 기억이 떠올라 헛구역질을 했다.

슥.

빌어먹을.

“여기 온 이유나 말해.”

“여전히 성격은 급해. 면회 시간도 길게 잡아 놨는데 즐기라고.”

“여기 온 이유가 뭐야?”

“사실 조사는 다 끝났잖아. 니카라과는 어떻게 발표를 할지 몰라서 시간을 끌고 있는 것뿐이야. 콜롬비아와 관계도 있고.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도 무척 고민이더라고.”

“그건 나도 알아.”

“뭐, 나도 디에고를 처리하려고 벌인 일이지, 너를 어쩌려는 건 아니었어. 그럴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는데.”

“그때는…….”

빌어먹을.

카를로스는 다시 떠오르는 악몽에 입을 닫았다.

“이봐, 내가 니카라과 정부와 잘 이야기할 테니까 정신병원에 들어가는 건 어때?”

“뭐? 정신병원? 미친 척하라고?”

“미친 척이 아니라 진짜 미쳤잖아.”

“다이로, 너, 진짜.”

큭큭큭.

다이로가 웃으며 속삭였다.

“정신병원에 들어가 있으면 내가 금방 빼 줄게.”

뭐?

“진짜로?”

“그렇다니까.”

“그 말을 어떻게 믿어. 나도 이제 쓸모가 없다는 거, 다 알아.”

“아니, 아직은 아니야. 쓸모가 없으면 벌써 죽였지. 안 그래? 네가 왜 아직 살아 있는지 생각해 보라고.”

카를로스는 다이로를 매섭게 노려봤다.

내가 아직 쓸모가 있다고?

“모르겠는데.”

“멍청하기는. 니카라과가 왜 발표를 못 하겠어. 자기들도 엮여 있거든. 실제 마약을 미국으로 이동시키는 데 가장 큰 공을 세운 게 어디야, 니카라과라고. 이 사실을 발표하는 순간 미국의 집중적인 공격이 시작된단 말이지. 이러니 이도 저도 못 하고 시간만 끄는 거야.”

“그래서 미친 척하라고?”

“얼마나 좋아. 바다에 한 달을 표류했더니 정신적인 충격으로 정신착란 상태다. 정신이 되돌아오면 그때 다시 수사하겠다. 이러면서 흐지부지 사건을 덮는 거지.”

흠.

카를로스의 눈빛이 생기를 되찾았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다이로를 믿을 수 있냐의 문제다.

“무슨 꿍꿍이가 있는 건 아니겠지?”

“인제 와서? 내가 왜?”

그러니까 네가 왜 나를 돕냐고.

그렇다고 거절하지도 못한다.

시간이 지나면 세계의 이목도 줄어들 것이고 니카라과는 감옥에서 다툼이 있었다는 핑계를 대고 죽일 수도 있다.

“좋아, 어떻게 하면 되지.”

“조만간 내가 의사를 보낼 거야. 그때 의사가 하라는 대로 하면 돼.”

“다른 친구들은?”

“잘 설득해 놔. 또 이상한 놈 하나 튀어나오게 하지 말고.”

“알겠어.”

방법이 없다.

일단은 감옥을 나가고 보자.

카를로스는 비릿하게 웃는 다이로를 믿어 보기로 했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교도관이 다시 들어왔다.

“면회 시간 끝.”

카를로스는 일어나면서 다이로를 다시 한번 쳐다봤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는 다이로.

“빨리 가.”

교도관이 카를로스를 데리고 나갔다.

그리고 다른 쪽 문이 열리고 니카라과 장교가 들어왔다.

“보아하니 이야기는 잘 된 것 같습니다.”

다이로는 장교의 말에 피식 웃었다.

“절박하니까. 정신병원이나 잘 섭외해 주세요.”

“그 점은 걱정하지 마십시오.”

***

며칠 후.

정신과 의사 한 명이 감옥을 방문했다.

카를로스는 페르난도와 알베르토, 그 외에 십여 명에게 눈짓을 보냈다.

얘기 한 대로 잘해.

모두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모두 자리에 앉으세요.”

의사의 말에 일제히 자리에 앉았다.

의사는 심박수를 측정하고 혈압을 체크하는 등 진짜 의사가 하는 행동을 했다.

다이로, 혹시나 살인 청부업자를 보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의사를 보냈네.

다른 동료들에게도 혹시나 모를 사태에 대비해 긴장을 놓지 말라고 당부까지 했다.

의사의 기본 측정이 끝나고 페르난도에게 질문했다.

“어디 아프신 데 있습니까?”

너무나 평범한 질문.

카를로스는 페르난도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연습한 대로, 신중하게.

“네, 요즘 머리가 조금 어지럽습니다.”

“아, 네. 환각과 환청이 들린다……. 또요?”

엥?

“가슴이 답답합니다.”

“아, 네. 손발이 의지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그야말로 의사 마음대로 기록을 써 내려갔다.

그리고 슬쩍 교도관이 있는 곳을 주시하더니 다음 알베르토에게 질문을 했다.

“어디 아프신 데 있습니까?”

“머리가 어지럽습니다.”

“아, 네. 착시가 일어나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다.”

“여기, 여기에 힘이 들어가지 않습니다.”

알베르토는 손을 쥐어 보이며 급하게 말했다.

“아, 네. 소변 조절이 힘들고 근육이 자주 수축한다.”

그렇게 한 명 한 명 기록을 써 내려가던 의사는 기록을 들고 교도관에게 전달했다.

교도관은 기록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의사는 슥 교도관이 가는 방향을 살피고는 재빠르게 돌아와 주머니에서 약통을 꺼냈다.

“얼른 한 알씩 삼키세요. 벤조디아제핀계 알약입니다. 긴장을 풀어 줄 겁니다. 지금부터 아주 중요하니 긴장하시면 안 됩니다. 저쪽에서도 의사가 와서 질문하면 무조건 머리가 어지럽다고 하세요. 모두 이야기된 거니까. 액션만 취해 주면 됩니다.”

모두 이 상황에 당황했지만, 침착을 유지했다.

네.

“빨리요, 빨리. 삼켜요.”

모두 알약을 삼키고 꿀꺽 목으로 넘겼다.

카를로스도 알약을 삼키고 뛰는 가슴을 진정시키려는데.

눈이 감긴다.

시야가 흐려지기 시작했다.

이거 왜 이러지?

픽, 픽, 픽.

눈앞에 동료들이 쓰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이 옆으로 기울어지는 게 느껴졌다.

어, 어, 어.

쿵.

***

번쩍.

눈을 떴다.

뭐야? 아, 눈부셔.

뜨거운 햇살이 하늘에서 자신을 향해 내리쬐고 있었다.

손을 들어 햇살을 가리는데 두통이 심하게 몰려왔다.

아, 머리야.

얼마나 지난 거지?

카를로스는 몸을 일으켜 세우는데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휙.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긴?

이런, 다이로 개새끼.

카를로스로선 결코 잊을 수가 없는 곳.

카리브해에 떠 있는 그 컨테이너 선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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