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3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15)
클란 델 골포.
새벽 6시.
쾅, 쾅, 쾅.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았다.
“뭐, 뭐야?”
별안간 들린 폭발음에 에레라는 자다 말고 벌떡 일어나 밖으로 튀어나갔다.
으아아아아아악.
주위 대부분 건물이 무너지고 사방에 불이 붙은 채 열기 속에서 어쩔 줄 모르고 허우적거리는 단원들이 보였다.
거기다 우라베는 자신이 있는 곳으로 급하게 뛰어오고 있는데.
이게 무슨 일이지?
쉬쉬쉬쉬쉬.
하얀 쥐가 바닥을 기어서 자신의 옆으로 지나가더니 뒤쪽에 있는 중앙 건물 안으로 사라졌다.
우라베가 에레라에 다가오며 고함을 질렀다.
“위험합니다!”
에레라를 덮쳐서 바닥에 쓰러뜨렸다.
쾅.
후두두둑.
중앙 건물이 박살이 나고 파편이 주변에 떨어졌다.
“뭐야?”
“폭탄을 실은 쥡니다.”
“뭐? 쥐?”
에레라는 주위를 살폈다.
하얀 쥐 떼가 땅을 기어 다니며 건물과 차량을 폭파하고 있었다.
쥐?
저거 상당히 위험하다.
“정문까지 뛰어.”
에레라가 건물을 등지고 달리기 시작하자 우라베가 뒤를 따랐다.
주위에 아직 생존한 단원들도 함께 뛰었다.
쾅, 쾅, 쾅.
폭발음을 들으며 건물이 없는 정문까지 사정없이 달렸다.
메케한 냄새가 코를 진동했다.
제기랄.
주변의 코카 농장에서도 불길이 사정없이 솟아올랐다.
코카나무가 타는 냄새가 콧속을 후벼 팠다.
정문에 다다르자 살아남은 갱단원 수십 명이 에레라를 둘러싸고 사방에 경계 태세를 갖추었다.
우라베가 에레라를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다이로가 우릴 친 것 같습니다.”
“다이로가? 친 거야, 아니야? 친 것 같습니다는 뭐야?”
“아직 사람이 보이지 않습니다. 저 쥐밖에 안 보입니다.”
“빌어먹을! 근데 왜 다이로가 저질렀다고 보는 거야?”
“이건 다른 카르텔을 공격할 때 쓰는 다이로의 수법과 똑같습니다. 먼저 폭격을 가하고 나중에 정리하는.”
“쥐로?”
“그게…….”
우라베가 입을 열려는 순간.
탕, 탕, 탕, 탕, 탕.
으악!
정면에서 총알이 날아와 단원 몇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에레라가 정명을 응시했다.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실루엣.
다이로?
정문을 향해 끝도 보이지 않는 갱단이 몰려오고 있었다.
그 앞에서 흰색 외투를 휘날리며 걸어오는 다이로도 보이고.
“총 내려. 뒈지기 싫으면.”
마누엘의 고함에 에레라가 총을 내리라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툭, 툭, 툭.
에레라는 가까이 다가오는 다이로를 봤다.
“다이로, 이게 뭐 하는 짓이지?”
다이로가 자신의 왼쪽 어깨를 손가락으로 톡톡 두드렸다.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떡해? 먼저 나한테 총질을 한 게 누군데?”
“뭐? 난 그런 명령을 내린 적이 없어.”
“그럼, 너한테 잘 보이려고 한 놈이 한 짓이겠지. 호르헤를 보낸 놈이 누구야?”
“호르헤?”
순간 에레라의 시선이 우라베를 향했다.
우라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모르는 일입니다.”
에레라가 다이로에게 시선을 돌리는 순간.
“아닙니다.”
무리 중 한 명이 튀어나오며 우라베를 가리켰다.
“우라베가 다이로를 죽이라고 호르헤를 보냈습니다.”
우라베의 심복 하나가 배신을 했다.
쯧쯧쯧.
다이로가 다가오며 혀를 찼다.
“이거 봐, 이거 봐. 에레라, 넌 너무 물러졌다니까? 친구의 목줄을 노리는 놈을 옆에 두고, 이게 뭐 하는 짓이야? 나, 전치 4주나 나왔다고. 죽을 뻔했어.”
에레라가 우라베의 머리에 총구를 가져다 대었다.
“이 말이 사실이야?”
“보스, 보스를 위한 겁니다. 보세요. 결국, 다이로가 저희를 노렸잖아요.”
“보스라고 하지 말랬잖아.”
탕.
에레라는 우라베 뒤에 서 있던 밀고자의 가슴에 총알구멍을 만들었다.
털썩.
우라베가 범인이라고 고자질한 놈이 울컥 핏덩이를 쏟으며 나가떨어졌다.
에레라가 다시 다이로를 봤다.
“다이로, 미안하다. 내 잘못이야.”
다이로가 피식피식 웃으며 다가왔다.
“큭큭큭, 아직도 물러. 야, 우라베, 너 에레라에게 잘해야겠다. 죽어도 너를 지키려고 하네.”
우라베가 다이로를 매섭게 노려봤다.
“결국, 이렇게 할 거면서, 배신자 새끼. 임재준이 이렇게 하라고 시켰나?”
“하여튼 머리 좋은 놈들은 이래서 안 된다니까.”
다이로는 총을 꺼내 철컥 장전하고 우라베의 머리에 가져다 대었다.
“다이로 너는……”
탕.
우라베의 말이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그의 몸이 허물어졌다.
“말 많은 놈들은 딱 질색이라니까. 안 그래 에레라.”
우라베의 피를 뒤집어쓴 에레라가 다이로를 노려봤다.
“한 가지만 묻자. 정말 임재준이랑 손을 잡고 나를 친 거야?”
“거참, 말들이 많아.”
탕.
에레라의 미간에 총알구멍이 뚫리며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주위에서 어, 어, 거리는 신음이 간신히 흘러나왔다.
다이로는 행동에 일절 망설임이 없었다.
“그건 알아서 뭐 하게? 죽을 놈이.”
에레라가 죽었다.
주변에 있던 갱단들이 후두둑 무릎을 꿇고 손을 머리 위로 올렸다.
“마누엘, 코카 농장도 싹 태워 버려.”
“네.”
“아, 시가 하나 줘 봐.”
“네, 여기.”
굵은 시가를 받아들고 불을 붙이고 깊게 빨아들였다.
후.
진한 시가 향이 다이로의 입안 가득 채워졌다.
2007년 정부에 의해 조직이 와해되고 따로 독립하여 클란 델 골포를 만들 때가 생각이 났다.
그때, 참 좋았는데.
에레라, 나름 좋은 시절을 보냈으니 후회는 없을 거야.
다이로는 뒤를 돌아 자신의 리무진으로 향했다.
주머니에 손을 넣고 파란색 스위치 만지작거렸다.
난 뭐든 할 수 있다.
***
진코퍼레이션.
하아품.
금방 싫증을 느끼는 예브게니야는 진과 주디를 보며 하품을 한 후 요거트를 팍팍 퍼먹었다.
큭큭.
그 모습을 본 주디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었다.
“예니, 유산균이랑 요거트 좀 그만 먹어. 비피더백터리움 때문에 델타포스비가 억제돼서 집중을 못 하잖아.”
델타포스비가 뇌에서 생성되면 일에 빨리 싫증을 느낀다.
그리고 건강한 뇌는 싫증을 빨리 느끼는 게 정상이다.
싫증을 느끼지 못하면 중독으로 발전하니까.
뭐든 중독이 된다는 것은 뇌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물론 마약과 일 중독은 엄연히 다르지만.
“집중이 아니라 중독이겠지. 너희 같은 연구 중독자가 되는 것보다는 나아. 난 차라리 짧게 연구하고 아무 생각 없이 있는 게 좋아.”
“그러지 말고 마약 중독자 치료를 위해 중독에서 벗어나는 걸 정리해 봐. 마약 중독 캠페인이라도 펼치게.”
“그냥 마약이 하고 싶을 때 찬물로 샤워하라 그래. 그럼 다이놀핀이 분비가 돼서 마약을 하기 싫어 져.”
다이놀핀은 엔돌핀의 반대 성질을 가진 마약성 펩타이드다.
다이놀핀이 분비가 되면 인간은 고통을 느끼게 된다.
몸이 엔돌핀을 원할 때 마약을 하지 말고 찬물을 확 끼얹으면 다이놀핀이 분비되고 고통으로 마약이 꼴도 보기 싫게 된다는 게 예브게니야의 지론이다.
마약에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담배나 술 정도의 충동에는 효과가 좋다.
“찬물 가지고 마약 중독이 해결되겠어?”
“그럼 얼음물을 끼얹어. 확실히 효과가 있을 거야.”
큭큭큭.
주디가 예브게니야를 보고 웃었다.
중독자에게 알려 줄 만은 하겠다.
예브게니야가 마약 얘기가 나온 김에 진에게 물었다.
“진, ‘블랙’의 통제는 어디까지 가능한 거야? ‘블랙’으로 마약을 통제하면 안 돼?”
“인간을 통제하는 건 그렇게 간단한 게 아냐.”
“그럼 언제 돼?”
“글쎄, ‘블랙’이 정보를 계속 받아들이고 분석해서 최선의 선택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다 보면 언젠가 되겠지. 대략 10년 정도 걸릴 것 같은데.”
“그럼, 10년 후에는 사람들의 마음을 막 움직일 수 있어?”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지금도 호르몬으로 가능하잖아. 연속성이 없어서 그렇지.”
“차라리 사람들을 똑똑하게 만드는 게 더 빠르겠다.”
“그럴지도 모르지.”
도대체 ‘블랙’ 정도 되는 인공지능이 왜 이렇게 느려 터진 거야?
“‘블랙’의 연산 능력이 어느 정도야?”
주디가 진에게 물었다.
“10²⁰cps.”
cps, calculation per second, 초당 연산 단위이다.
‘블랙’은 1초에 0이 20개 달린 수 만큼 연산을 할 수 있다.
느린 게 아니구나.
“빠르네. 인간 수준의 지능을 모방하려면 10¹⁶cps 연산 능력과 10¹³cps의 기억 장치면 충분하다고 알고 있는데.”
“하지만 뇌를 업로드하려면 10¹⁹cps의 연산 능력과 10¹⁸cps의 기억 장치가 필요해.”
“뇌를 업로드한다고? 모방하는 게 아니라 업로드하는 거야?”
“응.”
“모방하는 것보다 업로드하는 게 더 어렵다고?”
“응, 단순히 인간 뇌의 수행 능력을 따라잡는 게 아니라 10¹¹개의 뉴런과 10¹⁴개의 뉴런 주변 물질들의 연결 내용을 모조리 알아야 하거든.”
엄청난 속도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렇게 엄청난 건 아니다.
2025년이면 10¹⁶cps 연산 능력을 가진 컴퓨터를 천 달러에 살 수 있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빠른 컴퓨터는 10¹⁷cps 연산 능력을 가진 중국의 슈퍼컴퓨터인 텐허-2A다.
2035년이면 10¹⁹cps의 연산 능력과 10¹⁸cps의 기억 장치 능력을 가진 컴퓨터가 가정에 보급될 것이고.
“그래? 그냥 인간의 뇌를 몽땅 스캔하면 안 돼?”
예브게니야가 놀란 듯 두 눈이 커다래졌다.
풋.
주디가 살짝 웃었다.
“그렇게 몽땅 스캔하는 게 아냐. 그러면 일은 아주 쉽지. 진짜 힘든 건 필요한 것과 필요 없는 것을 가려내는 거야.”
“그래? 그럼 인간의 뇌를 스캔해서 저장했다고 쳐. 그럼 잘 된 건지 안 된 건지 어떻게 알아내?”
“튜링 테스트에서 합격 통지를 받아야지.”
1950년 앨런 튜링이 제안한 시험으로 기계와 인간이 대화할 수 있는지를 판별하고자 하는 시험이다.
질문하고 대답하는 거로 끝나는 간단한 시험이다.
대답은 키보드로만 이루어지고 이 테스트에서 질문자가 인공지능을 인간으로 인정하면 통과.
하지만 현재까지 튜링 테스트를 통과한 인공지능은 없다.
“그럼 뇌를 3차원 스캐너로 스캔하는 게 아니네?”
“나노 봇.”
“그걸 머리에 집어넣는다고?”
“그렇지. 그 아이들이 머릿속을 돌아다니며 뇌의 작동 원리를 세세하게 알려줄 거야.”
“그럼 나노 봇은 만들었어?”
“아니, 이제 만들어야지.”
와, 정말 대책이 없는 애들이구나.
“그럼, 나랑 진이 만든 알고리즘은 뭐야? 나야 분자 생물학에 대해 조언만 했지만.”
“그건 연산 능력에 인간의 지능과 비슷한 속도를 내게 하는 알고리즘이지.”
아, 속도.
“그리고 나노 봇을 활용하면 감각 처리나 기억 같은 일상적 기능부터 기술 축적, 패턴 인식, 논리 분석까지 가능해지지.”
“그런데…….”
“뭐?”
“컴퓨터는 계속 발전하잖아.”
“그렇지.”
“그럼 언젠간 나보다 나를 모방한 인공지능이 더 똑똑해지는 거 아냐?”
“당연하지. 아인슈타인은 시각 영상과 수학적 사고를 담당하는 두정엽이 발달했지만, 예술가는 되지 못했어. 뇌의 용적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특정 기술에 대한 능력을 제한적으로 발달시킬 수밖에 없어. 하지만 만약 아인슈타인을 모방한 뇌가 있다면 한계가 없지. 아마 훌륭한 과학자이면서 음악가가 될 수도 있을 거야.”
“그럼 그건 내가 아니잖아.”
“그래서 가상 공간에서 사는 거잖아. 넌 현실에 있고.”
“안드로이드를 만들 수 있잖아. 그럼 현실에 내가 두 명이 되는 건데.”
“누가 그래? 그게 너라고.”
“그럼 아닌가?”
주디와 예브게니야의 대화를 듣던 진이 피식 웃었다.
“만약에 유전자 복제를 이용해서 지금 나랑 똑같은 인간을 만들었다고 치면 그건 만들어진 순간부터 내가 아닌 거야.”
“왜?”
“고유한 인간을 정의하는 것은 기억이거든. 추억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내가 나다운 건 나만이 가지고 있는 추억이 있는 거지. 그런데 복제로 만들어진 나는 그 순간부터 다른 추억을 가지게 될 거잖아. 그럼 나랑 분리가 되는 거야. 단지 외모만 같을 뿐이지. 그 외모도 시간이 지나면서 다르게 될 거고.”
“그런 괴물을 왜 만들어?”
“죽는 순간에 만들면 내가 되는 거니까.”
아, 그렇게 되는 건가?
아닌가, 또 다른 나인가?
음, 어려운데.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진은 왜 저렇게 이 일에 매달리는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