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8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10)
아미스타드 저수지.
어스름한 달빛이 저수지 주위를 아른하게 비추고 있었다.
탱탱하게 부풀어 오른 달의 모양을 저수지가 흔들림 없이 담아내고 있어 이 주변이 얼마나 고요한지 말해주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첨벙.
저수지 위에 그려진 달의 형체가 산산이 흐트러지게 만든 움직임이 있었다.
십여 명의 무리들이 저수지에 발을 내디뎠다.
그들의 움직임은 신속했고 잡음이 없었다.
첨벙, 첨벙, 첨벙.
등에 20kg의 배낭을 멘 그들은 물속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그들은 미국 국경을 넘어 건너편에서 솟아올랐다.
오랜 시간 호흡을 참아서 숨이 찰 만도 한데 가슴을 크게 부풀리고 천천히 숨을 내뱉었다.
배낭을 지정된 장소에 내려놓고 다시 국경을 넘어 멕시코로 넘어갔다.
마지막 잠수부가 마지막 배낭의 배달을 마치려는데.
“아유, 수고했네. 수고했어.”
장난기 가득한 목소리가 들렸다.
잠수부가 뭔가 잘못되었다고 느끼고 뒤를 돌아서는 순간.
확.
사방에 스포트라이트가 자신을 향해 날아들었다.
“이게 다 얼마야? 딱 봐도 가방 하나에 20kg는 돼 보이는데. 이거 하나에 2,500만 달러라는 거잖아. 도대체 가방이 몇 개야? 대충 봐도 10개는 넘겠네.”
잠수부가 서서히 빛에 익숙해지며 상대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입에서 새어 나오던 탄식이 사람 이름으로 바뀌었다.
임재준?
“아니, 뭘 그렇게 쳐다봐? 아는 사람이면 아는 척을 해야지.”
재준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잠수부가 곧장 허리춤에서 칼을 뽑아 재준을 향해 휘두르는 순간, 퍽 소리와 함께 허리를 부여잡고 무릎을 꿇었다.
“천 실장님. 살살 하라니까.”
미국에서 윌켄을 보좌하던 천 실장이 이번 작전에 재준을 경호하려고 대동했다.
재준이 손짓을 하자 두 명의 경찰이 잠수부를 양쪽에서 붙잡고 끌고 갔다.
“대단하십니다. 이런 곳도 직접 나오시고.”
DEA(마약단속국) 국장 스티브 머피가 재준에게 다가오며 격앙된 톤으로 말했다.
“아무튼 고맙습니다. 이거 의외로 엄청난 성과를 올렸습니다. 족히 200kg은 넘는 양인데요.”
“앞으로 바빠질 텐데. 이 정도로 놀라면 안 되죠.”
“꾸준히 문자가 갈 테니. 핸드폰 잘 챙기세요.”
“아, 네. 알겠습니다.”
그럼.
재준은 스티브에게 살짝 손을 들어 보이고 천 실장과 함께 자리를 떴다.
스티브는 사라지는 재준을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저 사람이 진짜 세계 제일의 부자 맞아?”
***
클란 델 골포.
에레라는 벽에 걸린 대형 지도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아미스타드 저수지.
완벽한 장소야.
주변은 온통 사막이고 도로조차 없다.
인적이 드물고, 있다고 해도 저수지 생태 조사 핑계를 대면 누구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
“몇 번 써먹어도 되겠는데.”
벌컥.
어떤 놈이 노크도 없이 문을 여는 거야?
안 좋은 예감이 머리를 흔들었다.
“무슨 일이야?”
“보스.”
“보스라고 부르지 말라니까!”
“네, 그런데, 그게, 아미스타드 저수지를 통하던 마약 200kg이 전량 DEA에게 빼앗겼답니다.”
“뭔 개소리야? 그 넓은 지역 중에 우리가 물건을 인도할 장소를 어떻게 알고 DEA가 와?”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에레라의 시선이 지도에 붙박였다.
등골을 타고 소름이 느껴졌다.
뭐지? 이 불길한 기분은?
마약이야 열 번 중 한 번만 성공해도 남는 장사다.
마약이 압수당하는 일이야 흔하디흔한 일이다.
그래서 자잘한 수량은 일부러 신선을 끌려고 잡히기도 한다.
그사이 큰 건이 흘러 들어가도록.
그리고 DEA에 심어 놓은 사람도 있다.
이번 건은 충분한 사전 정보를 바탕으로 계획한 건데.
장소와 시간을 정확히 알고 DEA가 들이닥쳤다?
그것도 우리가 심어 놓은 사람도 모르게?
“후안은 뭐라 그래?”
후안 사토스, 이놈이 DEA에 심어 놓은 우리 쪽 사람이다.
“국장이 직접 작전을 지휘했답니다.”
“스티브 머피가 직접?”
“네.”
그렇다면 확실한 정보였단 소린데.
우리 쪽에서 흘러 들어갔어.
후다다다닥.
또 다급한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이런 상황이라면 또 안 좋은 소식일 가능성이 높다.
이런 빌어먹을. 왜 이러는 거야?
“보스.”
“보스라 부르지 말라고. 무슨 일이야?”
“여객선으로 실어 나르던 100kg이 DEA에 압수 당했습니다.”
“알았어. 다 나가!”
소식을 전한 두 수하가 꼭 자신이 죄를 지은 표정으로 물러갔다.
에레라는 다시 지도를 봤다.
자꾸 아미스타드 저수지가 맘에 걸렸다.
“뭘 그렇게 고민하는 거야?”
다이로가 들어서면 약간 들뜬 톤으로 말했다.
“어, 다이로. 지금 마약이 DEA에 압수당했다고 해서.”
“뭐, 한두 번도 아니고 그런 일로 고민을 해. 돈 좀 풀어서 DEA에 보관 중인 마약 다시 찾아오면 되지.”
“웬지 꺼림칙해서 말이야. 아미스타드 저수지는 너무 말이 안 되거든. 어떻게 정확한 정보를 알아냈을까?”
“우리 안에 첩자가 있겠지.”
다이로가 당연하다는 듯 등 뒤에서 총을 꺼냈다.
“죽이자고. 찾아서.”
“진정해. 아직 누군지도 모르는데.”
“너무 뻔한 거 아냐? 이번 일에 가담한 놈들 죄다 뒤지면 되잖아. 계좌부터 가족 사항까지. 어디 부모나 동생이 미국에 있다면 바로 그놈이잖아.”
“미국에?”
“왜 이래? 너답지 않게. 우리 예전엔 이러지 않았어. 정신 차리라고.”
“아, 미안. 나도 내가 요즘 왜 이러는지 모르겠네.”
“가만있어 봐. 내가 처리할 테니.”
에레라는 애써 다른 척하면서 다이로를 유심히 살폈다.
확실히 마약을 끊었네.
말투부터 행동이 확 달라졌어.
예전의 그 거침없는 미친놈으로.
다이로는 소파에 앉아 시가 하나를 물었다.
똑똑.
“들어와.”
벌컥 문이 열리고 우라베가 들어왔다.
“보스.”
“보스라고 부르지 말랬잖아.”
저 미친놈.
미쳐 소파에 앉아 있는 다이로를 확인하지 못한 우라베가 소파 뒤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시가 연기를 확인하고 인상을 썼다.
“괜찮아. 괜찮아. 할 이야기들 하라고.”
다이로의 목소리가 소파 뒤에서 들렸다.
“죄, 죄송합니다.”
“괜찮다니까. 하던 얘기들 해.”
에레라가 우라베에게 인상을 쓰고 입을 뻐끔거리며 뭐라 뭐라 욕설을 뱉었다.
흠, 흠.
“무슨 일이야?”
“DEA 단속이 강화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수함으로 실어 날라야겠습니다.”
“항로는 정했어?”
“네. 그러니까…….”
에레라와 우라베가 마약 운반으로 잠수함을 이용할 항로 계획을 짰다.
다이로는 시가를 피우며 이야기를 다 들었다.
***
진코퍼레이션.
진과 분자생물학을 연구하는 예브게니야가 모니터를 주시하고 있었다.
“다 된 것 같은데.”
“그래, 완벽해.”
진과 예브게이냐는 생명 현상을 알고리즘으로 구현하는 작업을 완성했다.
인간이 처리하는 데이터보다 훨씬 많은 정보를 처리할 수 있는 알고리즘.
인간이 왜 침팬지보다 우월하다고 보는가?
단지 유전자 몇 개만 다를 뿐인데.
그건 인간은 정보 흐름의 패턴이 침팬지보다 훨씬 더 복잡하기 때문이다.
더 많은 데이터를 흡수하고 더 나은 알고리즘을 이용해 처리할 수 있다.
여기 인간보다 훨씬 더 많은 데이터를 흡수하고 훨씬 효율적으로 처리하는 알고리즘이 있다.
그럼 인간이 침팬지보다 우수하듯 이 알고리즘은 대상을 인간보다 우수하게 만드는 것인가?
“근데 이걸 어떻게 전 세계에 뿌리지?”
“간단하진 않지만 스카이링크를 통해 전 세계의 핸드폰에 무단으로 접속해서 심어야지.”
“그리고 ‘카리브’를 통해서 지시를 내리고?”
“그렇지.”
이게 무슨 이야길까?
간단하게 말하면 사물인터넷의 한 단계 상위 버전이다.
사물인터넷은 모든 사물에 센서를 부착하여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걸 말한다.
문제는 모든 사물에 전부 센서를 부탁해야 한다는 단점이 있다는 것.
게다가 가장 큰 문제는 센서를 작동시키려면 배터리가 필요하고 배터리는 충전해야 한다.
한 번 충전으로 영구적으로 쓸 수 있는 기술이 나오지 않는 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진과 예브게니아는 전 세계 스마트폰에 알고리즘을 심는 방법을 택했다.
스마트폰이 주변의 모든 사물을 분석해서 정보를 서로 주고받는 것이다.
그럼 충전의 문제는 해결된다.
스마트폰 주인에게 알고리즘을 심는다는 허락을 구하는 것은 논외의 문제이다.
주인의 허락은 필요치 않다.
어차피 모를 테니까.
다만.
사물인터넷은 냉장고라면 내용물과 신선도만 책임지면 되고, 세탁기라면 빨래의 종류를 파악하여 세탁 종류를 선택하면 된다.
하지만 진과 에브게니아의 작품은 주변 사물을 전부 처리해야 하는 엄청난 업무량을 떠안는다.
그만큼 CPU에 부담을 주고 스마트폰마다 발열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아마 전 세계의 모든 핸드폰이 동시에 불타버리는 진풍경을 연출할 수 있다.
그래서 알고리즘은 업무를 분담하는 것이다.
주변 사물을 파악해 남아 있는 사물을 분석하는 방법이다.
모든 사물이 인간을 위해 통제되는 날이 온다.
인간은 그저 통제를 즐기기만 하면 건강하고 오래 행복하게 살 수 있다.
하지만 인간이 데이터 통제를 거부할 권한은 없다.
데이터는 무조건 상호 교환되어야 한다.
진이 스카이링크를 이용하려는 이유도 그것이다.
인간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모든 스마트폰에는 무조건 알고리즘을 심어 버리는 것.
“지금 지구에서 가장 필요한 게 뭐야?”
“공용 자동차.”
“공용 자동차?”
“우선 자율 주행 도로가 있는 지역이어야 하고 ‘카리브’가 있어야 해.”
“그래서?”
“자동차는 쉬지 않고 움직이면서 차가 필요한 사람을 목적지까지 태워주고 차가 필요한 다른 사람을 위해 움직이는 거지.”
“아, 그럼 주차장에 놀고 있는 차가 없어지겠네.”
“자동차 대수가 줄어들면서 자동차 때문에 발생하는 오염도 줄어들 거야. 그리고 무엇보다 자동차를 소유하겠다는 욕심도 없어지고. 예상으론 전 세계에 5,000만대의 자동차면 10억 인구가 마음껏 이동할 수 있어.”
“그럼 이제 멋진 스포츠카 같은 건 없는 거야?”
“아니, 진짜 스포츠카를 몰 수 있는 공간도 따로 만들어야겠지. 속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으니까.”
“자랑하려고 스포츠카를 사는 건 그만둬야겠네.”
“그런 취미는 가상현실에서 즐기면 되잖아. 굳이 현실에서 즐길 필요가 있나? 어차피 감각과 경험은 똑같을 텐데.”
“어느 나라부터 통제할거야?”
“콜롬비아. 가자.”
“응.”
진과 예브게니야는 다른 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바닥과 천장만 빼면 사방이 원형으로 생긴 거대한 모니터로 둘러싸인 곳이다.
“블랙.”
진은 블랙을 호출했다.
【네.】
“스카이링크를 이용해서 콜롬비아 국민의 모든 핸드폰에 알고리즘을 심어.”
【네.】
“얼마나 걸리지?”
【96% 끝났습니다. 나머지 4%는 핸드폰 전원이 꺼져 있어서 기다려야 합니다.】
“그럼 시작해 보자.”
【네.】
진의 명령이 끝나자 알고리즘의 정보가 숫자와 문자로 모든 모니터가 채워졌다.
복잡하고 알 수 없는 수식들이 쉬지 않고 돌아다녔다.
“블랙, 콜롬비아를 통제해.”
【네.】
통제란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