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6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8)
미국.
사이진(SciGene).
Science Generation의 약자로 만들어진 단체이다.
시작은 십 대들의 채팅방 이름이었다.
-ㅋㅋㅋ이번에 진이 만든 로봇 봤냐?
-지리는 로봇 등장.
-메트리스각이닼ㅋㅋㅋㅋㅋ
-혹시 진은 사람이 아니라 cpu 아닐까?
-유전자라고 ㅉㄸ야
영원한 비밀은 없는지 진의 존재가 밖으로 새어 나갔다.
투마로우에서 새로운 기술이 나올수록 그들은 요란을 떨었다.
해커 몇이 참여하면서 더 대담하게 정보를 퍼 날랐다.
-와 이번 건 정말 쫀득함
-뭐밈밈밈밈밈.
-아이티에 나무 아파트, 아파트 나무인갘ㅋㅋ(사진).
-ㅋㅋㅋ그루토
└그루트 빙아.
-나무 세부구조 퍼옴(사진)
-오 강철 빨인가?
전직 할리우드 파파라치까지 참여하면서 실제 모습이 실렸다.
-팜봇 30m 거리에서 땡겨 찍은거(사진)
-팔에서 레이저 나오는 거 실화????
└X선이지.
└그게 눈에 보이냐?
-이건 메렛(사진)
-와, 진심 멋지다. 같이 사진 한 장 박고 싶네.
-그러다 메렛됨.
문제는 콜롬비아 ‘드럭리걸 존’에서 터졌다.
-짠! 인증샷(사진)
-뭐야? 진짜 콜롬비아 갔다 왔어?
-크하하 ‘드럭리걸 존’에 들어가서 이거만 박고 나옴.
-미국에서 사용 가능해?
-사용 가능 인증샷(사진). 편의점에서 결제해봄.
-카리브는 이미 스위터에서 다운 가능하니 이것만 있으면 리얼 ‘사이진’이 되는 거지.
‘사이진’이란 트렌드가 십 대들 사이에서 퍼졌다.
바로 스마트폰으로 카리브를 사용하고 손등에 생체칩을 이식하는 것.
생체칩은 10년 전부터 미국에서도 서비스하는 기업이 있었지만, 아이들 사이에서는 팜봇이 직접 칩을 이식해야 찐 ‘사이진’이라고 인정했다.
결국엔 콜롬비아와 아이티로 여행객이 몰리더니 마약은 안 하고 생체칩만 이식받고 가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찐 ‘사이진’이 되고 싶은 인간은 십 대에서 이십 대로, 삼십 대로, 사십 대로 퍼져 갔다.
이들은 서로를 ‘사이진’이라 부르며 오프라인 모임을 가졌다.
서로 생체칩을 확인한 ‘사이진’들은 단체를 만들었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미국 내에서 결제할 때 손등을 내미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자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했다.
-야, 방학 때 메기가 손등에 칩 박고 왔다.
-어디서?
-콜롬비아.
-개 부럽네. 나도 하고 싶은데.
-‘카리브’나 해. 네 부모님이 절대 허락 안 하실 거잖아.
-이 기회에 한국으로 여행 간다고 하고 북한으로 들어가 볼까? 진이랑 사진이라도 찍으면 나 완전 떡상 하는데.
-야, 그런 놈들이 한국에 수만 명도 넘어. 북한으로 절대 못 들어가.
-예전 탈북자 놈들이 바다 루트도 알려주고 한다던데.
-거기도 예전에 막혔어. 하늘이라면 모를까.
-하늘?
-그래 헬기 타고 가다가 낙하산으로 북에 떨어지면 되지.
-사랑의 불시착 찍냐? 그게 가능해?
-안 되나?
-낙하산은 펼 줄 알고?
-아, 진 마렵다.
100여 개의 인권단체에서 대규모 시위가 의회 앞에서 벌어졌다.
‘인권 사각지대인 아이티와 콜롬비아에 군대를 파견하라.’
파견하라.
‘사생활을 침해하는 카리브는 즉각 제한하라.’
제한하라.
‘생체 실험을 자행하는 생체칩은 당장 중단하라.’
중단하라.
같은 시각 ‘사인진’의 대표는 기자회견을 가졌다.
[언제까지 과학의 발전을 외면하고 산업혁명 때의 시대적 착오로 살아갈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벌써 국제수학올림피아드에서는 ‘티처’에게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상위권을 도배하고 있습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인터넷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전부 투마로우 벨트와 아이티 학생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북한까지 참여한다면 선진국이라 부르는 국가들은 순위에서 국기조차 보기 어려울 겁니다.]
팟팟팟팟.
기자들의 플래시가 터졌다.
[그리고 우리가 빈국이라 부르는 나라들은 팜봇을 적극적으로 도입하여 전국의 약국 체인망을 확충함으로써 더욱 저렴하고 안전한 의료 체계를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을 보세요. 아직도 구태의연한 방식에 연연하여 의료보험에 매달리다 보니 국민의 세금만 낭비하고 있습니다.]
웅성웅성.
기자들도 팜봇의 이야기가 나오자 수군댔다.
이미 팜봇 약국 체인은 선진국을 제외한 나머지 국가에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처음에 망설이던 국가들도 지금은 적극 도입에 동참했다.
[여기, 아이티가 어제 발표한 신국가 프로젝트를 보세요. 10년 안에 가장 적게 일하면서 가장 많은 돈을 받는 나라가 될 겁니다. 지금 아이티의 국민 대다수는 농장에서 2교대로 일을 합니다. 하루에 4시간을 일하고 삶을 누리기에 충분한 돈을 받고 있습니다. 4시간이면, 이건 일이 아니라 자연과 함께 삶을 즐기는 것에 가깝습니다.]
인공지능이 국가를 운영해야 가능한 일이다.
‘오시리스’는 힘들고 어려운 일에 로봇을 투입했다.
인간을 위한다기보다는 로봇이 인간보다 효율적이니까.
아이티 국민들은 모든 일을 ‘카리브’에 질문하는 데 익숙했다.
‘카리브’는 항상 최선의 선택으로 만족시켜 주었다.
[미국이 점점 뒤처지는 건 저기 의회 앞에서 아직도 과학의 속도를 이해하지 못하고 따라갈 생각조차 없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익만 주장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저희 ‘사이진’은 앞으로 적극 과학을 몸으로 받아들일 것입니다. 경고합니다. 인권이란 이름으로 ‘사이진’을 들먹이지 마십시오. ‘사이진’에게 인권은 미래 그 자체입니다. 마지막으로 투마로우 임재준의 말을 하고 마치겠습니다. ‘남의 일에 참견하지 말고 각자 책임지며 살아갑시다’. 이상입니다.]
짝짝짝짝짝.
기자회견장에 모인 ‘사이진’들이 우레와 같은 박수를 쏟아 냈다.
***
백악관.
상하원 대표의원이 대통령과 마주 앉아 있었다.
후.
한숨을 내뱉은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제가 이렇게 대표님들을 모신 것은 사태가 조금 심각해서입니다. ‘사이진’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상원의원대표가 불편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사실 고민이 많습니다. ‘사이진’의 대부분이 중상류층 유권자들입니다. 물론 그 사람들의 자식들도 많고요. 어쨌든 인권단체와 ‘사이진’은 전부 중상류층이라는 겁니다.”
하원의원대표도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사회에서 이름 있는 기득권자들이라 법으로 제재를 가하기에는 만만치 않습니다. 어떻게 될지 지켜보고는 있지만, 조만간 ‘사이진’과 시민단체가 크게 한번 부딪칠 것 같습니다.”
어허.
대통령은 뭐라도 도움을 받을까 해서 대표들을 불렀는데 서로 같은 의견만 확인한 꼴이 되었다.
“법 제정도 힘들고 정부가 어디 한 곳을 지지할 수도 없고. 난감하네요.”
“근데 솔직히 인권에 관한 이야기는 맞다고 생각합니다. 로봇한테 교육을 받는 것도 그렇고 로봇한테 진료를 받는 것도 뭔가 인간이 부족해진다는 느낌이 듭니다.”
“그렇다고 잘못됐다고 지적할 수도 없지 않습니까?”
“그러니 답답한 거죠.”
“그래도 ‘티처’나 ‘팜봇’, 그래요, ‘메렛’까지는 인정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코트’는 정말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코트’는 법을 집행하는 로봇으로 아프리카에서 공정하기로 명성이 자자했다.
하지만 미국은? 어렵다.
“아이고, 그건 얘기도 꺼내지 마세요. 좋게 얘기하든 나쁘게 얘기하든 역풍을 제대로 맞기 딱 좋습니다. 판사, 검사, 변호사들이 다 들고일어날 겁니다.”
역시 미국은 ‘코트’에 대해서는 입도 뻥긋하기 힘든 분위기였다.
“‘팜봇’은 가능하고요? 의사들 약사들 다 파업할 겁니다. 의료 체계가 즉시 붕괴하고 말 겁니다.”
“그러게요. 그것도 어렵네요.”
의사, 약사도 만만하지 않다.
“그럼 ‘티처’는…….”
에휴.
모두 일제히 한숨을 쉬었다.
무엇하나 바꿀 수 있는 게 없는 현실에 대한 한탄이요 중상류층을 등에 업고 있는 자신들의 신세에 대한 넋두리였다.
“자율 주행은…….”
“아직 도입하려면 멀었습니다.”
“그렇겠죠.”
“윤리 문제도 있고 택시, 버스, 트럭 기사들의 생계 문제도 있습니다. 기술이 있다고 해서 무조건 되는 건 아니니까요.”
후.
또다시 긴 숨이 내뱉어지고 이후 다들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그나저나 콜롬비아 마약은 어떻게 되고 있습니까?”
“아, 그거요?”
화제가 바뀌자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답 없는 이야기에 힘을 빼기보다는 좀 더 남의 나라 이야기에 재미를 가지려는 듯.
“며칠 전 엔비가도 카르텔이 흔적도 없이 붕괴되었다고 합니다. 그 농장은 다이로가 장악했고요.”
“결국, 다이로가 석방되자마자 큰일을 벌이는군요. 이러면 미국에 잘된 일이 되는 거네요.”
“그렇게 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콜롬비아 농장들이 정부에 속속 귀속되고 있는 듯합니다. 마약 카르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고 있는 거죠.”
“음, 그럼 다이로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농장으로 쳐들어가 다 죽일 텐데요.”
“그렇게 하지 못하니까 농장들이 정부에 귀속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정부의 힘이 강화된 건가요?”
“아니요. 임재준이 그렇게 만든 것 같습니다.”
임재준?
흠, 흠.
임재준이란 말에 의원대표 둘은 또다시 로봇이 떠올라 심기 불편한 헛기침이 나왔다.
“임재준도 다이로를 어쩌진 못하겠죠? 자칫하다간 죽을 수도 있을 텐데.”
“어허, 너무 설치면 죽을 수도 있죠. 다이로가 보통 악독한 인물입니까?”
마치 재준이 죽기를 바라는 말투였다.
재준이 새로운 일을 벌이면 벌일수록 미국 국민 기대와 정부 정책의 거리감이 늘어나고 있으니 정치인들은 제발 재준이 가만히 있어 줬으면 했다.
아니면 차라리 죽든가.
“대통령님, 이 기회에 콜롬비아에 대대적인 군사작전을 펼치는 건 어떠십니까? 엔비가도 카르텔이 붕괴되었으니 다이로만 체포하면 당분간 콜롬비아가 조용할 것 같은데요.”
대통령이 방금 말한 하원의원대표를 멍하니 바라봤다.
무슨 생각으로 대표 자리에 앉아 있는 걸까?
“대표님, 그러다 실패하면 어떻게 될 거 같습니까?”
“실패요? 음, 그래도 잠시 숨을 죽이고 있지 않을까요?”
“숨은 죽이겠지만 마약 가격이 두 배로 폭등할 겁니다. 지금까지 그래왔습니다. 미국이 공격하면 밀매의 어려움을 핑계로 가격을 두 배씩 올렸습니다. 지금도 일 년에 2,000억 달러가 콜롬비아로 유출이 되고 있는데, 아마 기회는 이때다 싶어 또 가격을 올릴 겁니다.”
하원의원대표가 곤란하다는 듯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이런, 쉽게 볼일이 아니구나.
“기다려 보세요. 임재준이 이번에 확실하게 콜롬비아 마약 문제를 해결한다고 했습니다. 믿어 보는 수밖에 없어요.”
끙.
상원의원대표가 긴 침음성을 내뱉으며 입을 열었다.
“만약, 만약에 말입니다. 임재준이 실패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그동안 임재준이 실패해도 미국에 큰 타격은 없었지만, 콜롬비아는 다르지 않습니까?”
“기다려 봅시다. 임재준은 성공할 겁니다.”
대통령은 믿고 싶었다.
재준이 분명 마약 카르텔을 말려 죽이겠다고 했다.
미국이 몇십 년간 수많은 시행착오를 거쳐 몇 명의 마약 카르텔의 보스를 잡는 데 그쳤는데 임재준은 그 짧은 시간에 카르텔 하나를 사라지게 하지 않았는가.
말려 죽이겠단 말.
이게 중요했다.
미국도 대규모 군대를 파견하여 마약 카르텔을 일거에 쓸어버릴 수는 있다.
하지만 그렇게 되면 상대국의 국민에 반감을 사게 되고 그 반감은 대통령 선거의 투표로 이어져 결국에는 미국을 적대시하는 대통령 당선으로 이어질 것이다.
가뜩이나 남미 절반 이상의 국가가 미국에 적대감을 표출하고 국제 사회에서 중요한 안건마다 반대표를 던지고 있는데.
남의 나라에 군대를 파견하는 건 득보다 실이 더 많다.
임재준, 언제까지 기다려야 합니까?
미국 대통령은 답답하기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