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5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7)
자르딘 식물원.
헉, 헉, 헉, 헉.
다이로는 재준을 향해 무릎을 꿇고 반쯤 돌아간 눈동자로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재준이 다이로 앞으로 걸어와 얼굴을 들이밀었다.
“그동안 마약으로 맛보던 쾌락과 아주 다르죠?”
재준의 말에 동공이 풀린 다이로의 얼굴은 절절한 간절함이 보였다.
“그거 나 주면 안 되나?”
“아, 이거?”
재준은 스위치를 들어 보이며 씨익 웃었다.
“되지.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그럼 나 줘.”
“에이, 이거 만드는 데 엄청 힘들었는데 그냥 줄 수는 없죠. 이게 뭔지 알아요?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아 보여도 최첨단 과학의 집합체거든요.”
“얼만데?”
“거, 자꾸 돈으로 살 생각만 하네. 이건 돈으로 살 수 있는 게 아닌데.”
“그럼, 내가 뭘 해야 하지?”
“그렇지. 그렇게 나와야 우리가 대화라는 걸 할 수 있어요. 머리를 잘 쓰세요.”
재준은 다이로의 머리를 톡톡 두드리고는 일어섰다.
다이로의 흐리멍덩한 시선이 재준을 향해 움직였다.
“우린 같은 편이죠?”
다이로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당신이 좀 더 성공하길 바라는데. 요즘 클란 델 골포가 몹시 어렵더라고요. 그러면 안 되는데.”
재준이 다이로를 향해 빙글 웃었다.
“내가 하는 사업은 알죠?”
다이로는 다시 고개를 빠르게 끄덕였다.
“음, 알고 있네요. 그래서 북쪽 농장은 우리가 좀 가져다 쓸게요. 어때요, 북쪽 농장을 양보하면 남쪽 농장은 당신들이 가지도록 해줄 수 있는데.”
“남쪽…….”
“미국도 막아 줄게요.”
“미국까지?”
힘에 겨운 목소리지만 비릿한 냄새가 났다.
“우리보고 엔비가도와 전쟁을 하라는 건가? 그럼 둘 다 손해가 막심해.”
“에헤이, 뭐 그런 생각을 다 하고 그래요? 내가 도와줄 수 있다니까요. 손해도 안 보고 깔끔하게.”
“어떻게?”
“쥐.”
“쥐?”
다이로는 쥐라는 말에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그거 아니에요.”
재준이 옆으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새하얀 마우스 범 하나가 쪼르르 다가와 다이로 앞에 멈췄다.
다이로는 자신 앞에 있는 마우스 범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이거 폭탄이구나.
“대충 알겠는데.”
“진짜 알아요? 이게 뭔지? 그거 하나가 탱크 하나를 하늘로 날려 보낼 수 있어요. 못쓰게 만드는 게 아니라 진짜 하늘로 날려 버린다니까.”
“탱크를 하늘로?”
다시 다이로의 시선이 마우스 범을 향했다.
그리고 중얼거렸다.
“얼마나 있는데?”
“글쎄요. 우리 수중엔 백만 마리 정도.”
“뭐?”
“풀어 놓으면 보고타 정도는 1분도 안 돼서 거대한 분지로 만들 수 있죠.”
큭큭큭큭큭큭큭.
다이로가 양손으로 땅을 짚고 어깨를 들썩이며 웃었다.
너무 어이없는 말이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가 순식간에 사라지는 영상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애초에 우리 같은 카르텔은 상대가 안 되는 거였어. 그렇지?”
“현실을 보는 눈이 탁월하네요.”
“근데 정말 남쪽은 우리가 관리하게 만들어 주는 건가?”
“우리? 왜 우리지? 당신이 아니라 우리라니요?”
다이로는 정신이 돌아온 듯 재준을 매섭게 노려봤다.
큭큭큭.
“클란 델 골포를 어떻게 할 생각인 거네.”
“아닌데.”
“그럼, 내가 다시 리더에 올라서기를 바라는 거라면…….”
“바로 그겁니다. 그러려면 힘을 보여줘야 하지 않겠어요?”
“엔비가도를 치는 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냐. 에레라를 설득해야 한다고.”
재준은 못마땅한 듯 고개를 저었다.
“나 지금까지 누구랑 이야기 한 거니? 방금 내가 도와준다고 했잖아. 그 엔비가도란 놈들 본거지를 쑥대밭으로 만들어 줄 테니, 넌 몸만 들어가서 정리만 하고 나오란 말야. 그냥 가서 슥. 알아들었어요?”
다이로는 재준을 바라봤다.
“왜 이렇게까지 도와주는 건데.”
“거참, 내 말을 아직도 못 알아먹네. 도와주는 게 아니라, 나는 북쪽, 당신은 남쪽. 알겠어요?”
북쪽, 남쪽.
다이로는 중얼거렸다.
“자, 받아요.”
재준이 파란색 스위치 하나를 손가락 두 개로 잡고 다이로에게 내밀었다.
어? 이건?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손이 먼저 움직였다.
재준의 손에서 파란색 스위치를 낚아챘다.
“그건 일회용인데 1분 동안 느낄 수 있는 거예요.”
“겨우 1분?”
쯧쯧쯧.
재준은 혀를 차며 다이로에게 고개를 저었다.
“지금까지 당신이 느낀 건 30초가 안 돼요.”
“뭐?”
30초?
기억을 더듬어 봐도 쾌락의 순간이 짧은 건지, 긴 건지 알 수 없었다.
단지 순간만이 남아있었다.
온몸의 휘감아 도는 환상적인 감각.
그리고 절정의 순간에 딱 멈추었다.
그게 30초라고.
그럼 1분이면 절정을 느낄 수 있단 거잖아.
절정을 느낄 수 있다.
절정을 느낄 수 있어.
“그럼 일 끝나면 내가 연락 드릴게요.”
사라지는 재준을 보며 다이로는 자신의 손에 들려 있는 스위치를 보면서 양쪽 입꼬리를 올렸다.
재준이 사라지자 커다란 나무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정말 1분이면 충분할까?
충분해. 분명 바로 앞에서 끝났어.
그게 30초라면 1분이면 충분해.
충분하다고.
다이로는 떨리는 동공으로 떨리는 손을 바라보았다.
파란색 스위치.
이게 나를 그곳으로 데려갈 것이다.
후, 후, 후, 후, 후.
결심이 선 듯 손가락에 힘을 줬다.
꾹.
으아아아아아.
1분 후.
헉, 헉, 헉, 헉, 헉.
여기가 끝이 아니었어.
여기가.
털썩.
임재준!
다이로의 입가에 잔인한 미소가 번졌다.
다시 만나려면…….
좋아, 내가 칼춤 한번 춰 주지.
스마트폰을 꺼내 그동안 한 번도 누른 적이 없는 번호를 눌렀다.
띠리리리리링.
-네.
“애들 좀 모아. 엔비가도를 친다.”
-네.
***
클란 델 골포.
“뭐라고?”
에레라는 얼마나 놀랐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미 정리가 끝난 듯합니다.”
“아니, 이 미친놈이…….”
다이로가 중무장한 수하들을 데리고 엔비가도를 쳤다.
“우리 애들 피해는?”
“그게…….”
“왜?”
“저희 애들이 아닙니다.”
“그게 뭔 소리야?”
“잘은 모르겠지만, 다이로가 따로 키우고 있던 애들인 거 같습니다.”
“따로 키우던 애들?”
“네.”
콜롬비아 카르텔의 수장 정도 되면 아무도 모르게 따로 조직을 가지고 있는 건 당연한 일이다.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가장 믿었던 친구나 수하가 배신을 밥 먹듯이 하는 곳이 이곳이니까.
문제는 그 조직을 자신의 신변에 위협이 될 때 외에는 외부로 들어내지 말아야 하는데, 그 조직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이다.
도대체 무슨 일로.
에레라의 눈매가 가늘게 접혔다.
“우라베, 다이로가 왜 그런 것 같아?”
“잘 모르겠습니다.”
전에 다이로를 의심했다가 한번 크게 혼이 난 우라베가 입을 다물었다.
“괜찮아. 네 생각을 말해 봐.”
우라베가 에레라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들을 맘이 생겼다는 걸 이해한다는 듯.
“임재준의 손을 빌린 것 같습니다.”
“임재준?”
왜? 무엇 때문에.
“그렇다고 치고 엔비가도 놈들의 피해는 어느 정도야?”
“전부 몰살당했습니다.”
“뭐?”
엔비가도가?
몰살?
“대량의 폭발음이 들리고 엔비가도 본사 일대가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엄청난 화력이 집중되었다고 합니다.”
“미사일이야?”
“그렇지 않을까요.”
다이로 너 그 정도였나?
엔비가도를 한 번에 쓸어 버릴 정도면 지금 우리의 화력을 총동원해도 될까 말까 한데?
이때,
벌컥.
“아, 피곤해.”
문이 거칠게 열리고 다이로가 모습을 드러냈다.
에레라의 시선이 다이로에게 쏘아졌다.
“왜 그런 거야?”
다이로는 에레라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별일도 아닌 걸 가지고 호들갑은……. 북부 농장 몇이 정부와 손을 잡았다며.”
“거긴 건드리면 안 돼. 로봇이 있어.”
“알아, 그래서 남부 농장이 필요했잖아.”
“그래서 남부 농장을 얻으려고 엔비가도에 손을 댄 거야?”
“왜? 그러면 안 되는 법이라도 있는 거야? 어차피 언젠가는 처리해야 할 놈들인데.”
“그걸 몰라서 묻는 거야? 엔비가도가 있어야 정부군을 어느 정도 묶어 둘 수 있는 거 몰라? 이제 우리가 전부 정부군을 상대해야 한단 말이야.”
“정부군? 풋, 난 또 뭐라고.”
다이로가 뒷목이 뻐근한 듯 고개를 좌우로 꺾으며 위스키가 있는 쪽으로 움직였다.
쫄쫄쫄쫄쫄.
위스키를 컵에 반 정도 따르고 목구멍에 대고 한 번에 들이부었다.
크.
“이봐, 에레라, 그렇게 너무 몰아치지 말라고.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거니까.”
“그러니까, 그 생각을 미리 말해주면 좋잖아.”
“그럼 네놈이 말렸을 거 아냐? 귀찮게시리.”
“뭐?”
다이로는 다시 위스키를 따랐다.
쫄쫄쫄쫄쫄.
“언제부터 내가 너한테 보고하고 일을 해야 하는 처지가 된 거지?”
“그건…….”
다이로, 이 자식.
지금 시비를 걸고 있다.
“내 방식으로 지금의 클렌 델 골포가 된 거 아냐? 내가 감방에 좀 갔다 왔다고 예전의 내가 아니라고 보는 거야?”
“지금은 세상이 많이 변했어. 미국의 간섭도 심해지고…….”
“미국은 콜롬비아에서 손을 뗐어. 모르겠어? 내가 감옥에서 어떻게 나왔겠어.”
“그렇다고 임재준과 손을 잡아?”
에레라는 자신도 모르게 임재준을 언급했다.
다이로의 미간이 구겨졌다.
“에레라, 너 나를 미행한 거야?”
“아니야, 그냥 넘겨짚은 거야.”
“그렇지? 설마 내가 임재준과 손을 잡았을라고.”
말을 마친 다이로의 눈빛이 매섭게 변했다.
에레라가 그 눈빛을 슬그머니 피했다.
“일단 알겠어. 엔비가도 뒤처리는 내가 알아서 할게.”
“그래, 난 가서 잠이나 자야겠어.”
휘적휘적 걸어서 나가는 다이로를 에레라의 시선이 쫓았다.
임재준과 손을 잡았구나.
우라베가 에레라 옆으로 다가왔다.
“저랑 같은 생각을 하시는 거죠?”
“그러게. 도대체 임재준이 다이로에게 무얼 줬을까?”
“석방이겠죠.”
“석방?”
임재준이 미국을 움직이고 다이로를 석방시켰다?
그럼 미국은 얻는 게 무언데?
설마 콜롬비아 마약의 미국 밀매를 막는 거?
그런 걸 다이로가 허락할 리가 없지.
그건 아니야.
“임재준은 석방을 미끼로 콜롬비아를 원한 게 아닐까요?”
“무슨 소리야?”
“베네수엘라, 아이티, 다음 콜롬비아. 다음은…….”
“미친놈. 그건 아니야.”
“아니요, 맞습니다. 미국과 이야기를 마쳤다면 다음은 멕시코입니다. 그러기 위해 콜롬비아를 손에 넣을 겁니다.”
“헛소리하지 마.”
“그냥 넘기지 마세요. 임재준은 기업 따위는 손가락만 까닥하면 가져올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이제 나라를 사고 판다고요.”
“야, 그게 말이 돼? 그럼 콜롬비아 정부를 갈아 치워야 하는데 지금 그런 분위기가 아니잖아.”
“그걸 다이로가 만들면요?”
“뭐?”
“클란 델 골포가 없어진 콜롬비아는 어떨 거 같습니까?”
“뭐?”
에레라는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우라베는 침착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
“우리가 먼저 다이로를 제거해야 합니다.”
“이 새끼가 미쳤나.”
평소보다 목소리가 컸다.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 소리로 울렸다.
방금 나간 친구의 모습이 눈에 어렸다.
다이로.
설마, 아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