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4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6)
자르딘 식물원. 오후 6시.
5분 일찍 도착한 다이로는 주위를 살폈다.
다이로는 얼마 전부터 이상한 버릇이 하나 생겼다.
바닥을 두리번거리며 귀를 쫑긋 세우는 것.
당연하게도 쥐 때문이었다.
바스락.
쥐?
긴장한 눈빛으로 고개를 돌렸는데, 익숙한 얼굴 하나가 자신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일찍 나왔네요.”
흠칫 놀란 다이로가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휙 돌렸다.
임재준?
약속 장소에 나오라고 한 게 너란 말이야?
그럼 쥐는 뭐지?
설마 쥐를 사육하는 게 임재준이야?
다이로가 재준을 노려봤다.
“왜 그런 겁니까?”
“뭘요?”
재준은 빙글 웃으며 어깨를 으쓱였다.
저놈의 웃음.
“쥐 말입니다. 쥐. 그거 당신이 그런 거잖아?”
“아, 쥐.”
재준이 피식 웃었다.
“맞네. 왜 그런 거냐고요?”
“그건 선택의 문제였거든요. 내가 당신에게 준 그 반지. 아직도 가지고 있나? 버렸으면 그 고생을 안 해도 됐을 텐데.”
“반지?”
빌어먹을 그거였어. 반지.
“반지에 쥐를 불러들이는 주파수가 흐르거든요. 그 뭐랄까. 유혹? 뭐 어쨌든 그 주파수에 다가갈수록 쥐가 흥분해요. 그리고 더 가까이 갈수록 그걸 가지고 싶다는 욕망이 생기죠. 어때, 재밌지 않아요?”
쥐가 욕망이 있다고?
“그게 가능하다고?”
“불가능할 게 뭐 있어요? 인간도 가능한데?”
“뭐요?”
“궁금하죠. 나도 궁금한데. 과연 인간의 쾌락 중추를 자극하면 그 욕망이 어디까지 가능하게 할지. 어떤 행동이라도 서슴지 않고 하게 될지.”
“쾌락 중추?”
재준은 주머니에서 작은 리모컨을 꺼내며 다이로는 향해 이거 보라는 듯 흔들었다.
그리고 스위치를 눌렀다.
찌리리릿.
다이로의 동공이 커지고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입이 벌어지고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그리고 눈이 풀리며 온몸에 힘이 빠지고 허리부터 짜릿짜릿한 전기가 일어나며 전신으로 퍼져갔다.
조금만 더.
그러나.
뚝.
재준이 스위치에서 손을 떼었다.
“내일 봅시다. 같은 장소. 같은 시간.”
다이로는 잠깐 멍하니 재준을 바라보다 소리쳤다.
“어디가? 한 번만 더. 한 번만 더 하자고. 돈으로 살게. 얼마면 돼? 얼마면 되냐고!”
공허한 메아리만 흘렀다.
다이로는 그 자리에 풀썩 주저앉았다.
뭐지? 그 기분은?
강하고 부드럽다.
30년 가까이 마약으로 쾌락을 즐겼는데도 오늘 같은 기분은 느낀 적이 없었다.
다시 한번 느끼고 싶은데…….
내일, 내일 오라고 했지.
내일, 내일까지 어떻게 기다리지?
쾌락 중추.
현대 과학도 존재는 알고 있으나 정확히 뇌의 어느 부분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진은 이미 로봇 쥐를 통해 그 실체를 알아냈고 자신의 뇌를 실험 삼아 정확한 부분을 알아냈다.
진이 살기 위한 실험으로 얻어진 결과물.
다이로는 아직도 쾌락의 여운이 가시질 않았다.
그리고 터덜터덜 집으로 향했다.
그래, 우선 반지나 치워야겠다.
***
드럭리걸 존.
엘리세르는 보고타에 사는 일반인이다.
일주일에 한 번은 마약을 찾아야 하는 마약 중독자고.
정부의 발표를 듣고 반신반의하는 심정으로 ‘드럭리걸 존’을 찾았다.
‘드럭리걸 존’ 밖에서 마약을 하다 걸리면 강제로 끌려올 뿐만 아니라 14일 감금되는 조치가 발표되었기 때문에.
그리고 ‘드럭리걸 존’에서는 현금 소지는 불가능하며 콜롬비아 은행의 계좌에 입금하고 오라는 경고도 있었다.
계좌 이체라도 해야 하는 건가?
꽤 불편하네.
입구에 도착했다.
정문은 마치 놀이동산처럼 화려한 장식으로 꾸며졌다.
앞줄에 있는 사람이 문을 통과하자 팜봇이 한 번 슥 스캔하더니 그의 신원을 확인했다.
신기한 놈이네.
신분증 같은 건 필요가 없잖아.
신원이 확인되자 손등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었다.
저건 뭐지?
께름칙한데.
하지만 누구에게도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엿볼 수가 없었다.
마치 당연하다는 듯, 얼른 들어가서 마약이나 즐기면 좋겠다는 표정이었다.
엘리세르 차례가 되었다.
앗 따가.
손 안쪽에 무언가 들어갔다.
기분 나쁜데.
이게 뭐야? 몸에 안 좋은 거 아냐?
하지만 다음 순간 아, 하고 입을 벌렸다.
커다란 홀로그램으로 된 안내원이 ‘드럭리걸 존’의 생활을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지금 스마트폰을 보시면 ‘카리브’가 승인을 기다릴 겁니다. 카리브는 여러분의 상태를 체크하여 질문을 하면 최적의 선택을 도와줄 것입니다.]
엘리세르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안내원의 말대로 승인 버튼이 웅웅거리며 승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걸 승인하란 말이지?
클릭.
‘반갑습니다. 카리브입니다. 언제든 자신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을 질문해 주세요. 여러분의 삶에서 고민을 지워드리겠습니다.’
나에 대한 질문?
일단 나중에 필요하면 한번 해보고 지금은 저걸 봐야지.
엘리세르는 나머지 말을 듣기 위해 안내원에 집중했다.
[‘드럭리걸 존’ 안에서는 현금 사용이 제한됩니다. 절도를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방금 손등에 삽입된 생체 칩이 모든 결제를 가능하게 해 줄 것입니다.]
역시, 여기선 현금이 필요 없구나.
이게 카드를 대신하는 거였어.
절도는 절대 할 수 없겠네.
좀 신기한데.
[생명에 위협이 될 만큼 과도한 약물 사용하는 고객은 팜봇이 출동하여 의식을 잃게 한 뒤 휴식을 취하게 할 것입니다.]
최고네.
약물 과다 복용으로 죽을 일도 없겠어.
[휴식을 원하시거나 휴식을 충고받으셨다면 수면이나 해안가의 낚시, 가벼운 운동을 할 수 있는 시설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럼 이후에 해답이 필요하다면 ‘카리브’를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참고로 ‘카리브’는 ‘드럭리걸 존’ 밖에서도 사용이 가능합니다. 그럼 두 번째 문으로 입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과하게 친절한데.
무슨 마약을 이렇게 해.
마치 놀이동산에 온 것처럼.
엘리세르는 두 번째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와, 하고 탄성을 질렀다.
분명히 이곳은 불모지였는데 수백 개의 건물이 빽빽이 들어서 있었다.
마치 애니메이션에서나 볼 법한 건물처럼 알록달록했다.
엘리세르가 처음 다가간 곳은 일렬로 늘어선 청량음료 자판기.
그 앞에선 엘리세르는 오, 하는 표정을 지었다.
가격이 밖이랑 똑같잖아.
바가지 쓸 일은 없다는 건가?
콜라를 하나 뽑아 손에 들고 중앙으로 길게 뻗어 있는 유일한 도로를 따라 걸었다.
그리고, ‘이런 말도 안 되는’이란 표정을 지었다.
각 건물에는 가능한 약물의 종류와 가격이 출입구에 적혀 있었다.
가격이……. 이게 맞나?
싸도 너무 싸잖아.
어림잡아 백 분의 일 정도?
그리고 조금 더 걸어가자 둥근 원형 광장이 나오고 광장 주변을 빙 둘러서 춤도 추고 여러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클럽과 술을 마실 수 있는 바가 즐비했다.
술이나 한잔할까?
아, 카리브.
엘리세르는 스마트폰을 꺼내 물었다.
“여기 가게 중 나한테 지금 가장 적당한 곳은 어딜까?”
【주인님의 심장과 간, 호르몬을 분석한 결과 시작은 카우보이 바에서 XXX가 가장 적당합니다.】
“카우보이 바?”
어디 보자.
아, 저기.
엘리세르는 미국 서부 개척 스타일 바의 스윙도어를 밀고 들어갔다.
역시 모두 술과 약에 취해 잔뜩 흥분해서 시끌벅적하게 떠드는 소리가 술집 안을 가득 메웠다.
비어 있는 바에 앉자 카우보이 모자와 복장을 한 로봇이 다가와서 말없이 메뉴판을 가리켰다.
술값도 비싸지 않네.
카리브가 추천한 게…… 아, 여기 있다.
XXX.
근데 약물 옆에 저건 뭐야?
부작용을 같이 적어 놨네.
미간을 찡그린 엘리세르는 위스키 한 잔과 정신이상, 우울증, 뇌 및 간 손상의 부작용을 가진 가장 약한 약 하나를 주문했다.
손등을 대자 띠링 결제가 되었다.
로봇이 술병을 휘날리며 묘기에 가깝게 술을 따르고 알약 하나를 건네주었다.
부작용을 생각하니 찜찜하네.
모르겠다, 일단 한번 해 보자.
술과 함께 털어 넣자 서서히 흥분과 평온이 공존하는 야릇한 상태가 느껴졌다.
흐릿하면서 또렷한 정신을 즐겼다.
그렇게 기분 좋은 상태를 지닌 채 밖으로 나왔다.
“카리브, 다음은 어디가 좋을까?”
【주인님의 호르몬이 정상은 아니지만, 곧 약효가 사라질 것으로 예상합니다. 이번엔 가벼운 운동을 겸비한 ‘빌리아드 클럽’을 추천해 드립니다. 빈 테이블은 없지만 지금 예약하시면 10분 후에 경기하실 수 있습니다.】
이거 상당히 편하네.
이번엔 ‘빌리아드 클럽’으로 향했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어두운 조명에 칸막이가 쳐진 좌석에 사람들이 앉아 약을 즐기고 있었다.
클럽 중간엔 포켓볼 테이블이 열 개 정도 있는데 빈 테이블 없이 당구를 즐기는 사람들로 꽉 찼다.
빈 칸막이에 앉자 이번엔 밀리터리 복장을 한 로봇이 다가와 메뉴판을 내밀었다.
웬 군인 코스프레?
여긴 약이 좀 센 편인가?
평소에 마약 중독자들은 어떤 약이 세고 어떤 약이 약한지 모른다.
그냥 주는 대로.
아니면 주로 하는 대로 할 뿐이다.
평소에 즐기는 약과 맥주 한 병을 시켰다.
근데 좀, 뭐랄까. 기분이 묘하달까?
엘리세르가 주문한 약의 부작용이 만만치 않았다.
불안, 불면, 고민, 침울, 발양 등의 정신적 증세.
구토, 발한, 발열, 설사 등의 신체적 증세.
심신 쇠약 후 치료 불가능.
이런 긴 부작용이 적혀 있었다.
그냥 다른 데 가야겠다.
엘리세르가 일어나서 나왔다.
그냥 약한 거나 한 번 더 하고 가야겠다.
심신 쇠약 후 치료 불가능.
이 문장이 자꾸 뇌리에 떠올랐다.
이제 가끔 와야겠어.
언제든 할 수 있으니.
마약이 비싸고, 구하는 데 어려운 시절에는 한 번 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였는데.
이거 막상 멍석을 깔아 놓으니 예전 같은 간절함이 수그러들었다.
놀이동산을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사람이 처음 가서 놀이기구 한 번 타고 실망한 느낌이랄까.
근데 아까 그 센 거 하는 놈들은 나 같지 않겠지.
죽자사자 여기서 죽치고 살 것 같은데.
체력도 좋아.
잠깐 놀다 가야겠다.
잠시 후 바니 바에서 한 번의 약을 더 복용한 엘리세르는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근데 바깥에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들이 보였다.
나누는 대화를 들어보니.
“도파민 수치가 아직 높다네. 어디 가서 좀 자야겠다.”
“난 낚시나 좀 할까 봐. 저쪽에 낚시도구 대여해 주던데.”
“그래, 그럼 나도 낚시나 해야겠다. 가자.”
엘리세르는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후, 한숨을 쉬었다.
“카리브, 난 어때?”
【도파민 수치가 아직 높습니다. 10시간 휴식을 추천 드리겠습니다.】
10시간?
약한 약 하나 했는데?
아니구나! 두 개 했구나.
어휴.
어디 가서 시간이나 때워야겠다.
***
클란 델 골포.
“매출이 얼마라고?”
“98% 줄어들었습니다.”
에레라는 보고를 듣고 기가 찼다.
물론 콜롬비아 시장을 버리는 것은 기정사실이지만, 아직은 손을 떼기에는 벌여 놓은 규모가 만만치 않았다.
근데 이제 손을 떼라는 듯 매출이 확 줄어들었다.
“괜찮아, 서서히 정리하자고.”
“네. 저 근데…….”
“또 왜?”
“납품하던 일부 농장들이 정부 쪽으로 붙었습니다. 정부에 납품하겠다고.”
“미쳤구나? 그놈들. 아주 죽으려고 환장을 했어. 가서 쓸어버려. 본보기로 삼으라고.”
“근데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왜? 정부군이 보호해 준대?”
“그러면 문제가 없는데. 로봇이 농장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뭐?”
나 이거 참.
그놈의 투마로우, 사사건건 딴지를 거네.
이러면 지금은 괜찮아도 나중엔 미국 물량을 맞추기가 힘든데.
“방법 없어?”
“지금은 북쪽 지역 농장들이 정부 쪽에 붙었으니 중부 쪽은 우리가 먼저 단단히 경고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알겠어. 일단 할 수 있는 건 뭐든 해 봐. 우리 소유 농장만으로는 물량을 절대 못 맞춰. 아니면 아예 농장을 사든가. 그렇다고 엔비가도와 시비는 붙지 말고.”
“네.”
우라베가 물러가고 에레라는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점점 몰리는 느낌인데.
투마로우를 너무 물렁하게 봤나?
이대로 정부가 농장을 더 많이 소유하게 되면 힘든데.
그런데 이럴 때에 다이로는 어디서 무얼 하는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