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3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5)
중부 교도소.
“아, 피곤해. 미치겠네. 빌어먹을 쥐새끼들 진짜 다 죽이고 싶다.”
후.
다이로는 몸 곳곳에 쥐에게 물리고 할퀴어진 상처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 쥐가 사람을 공격할 수가 있을까?
그것도 하루 이틀도 아니고 벌써 열흘이나 지났는데.
내 몸에서 쥐들이 좋아하는 냄새라도 나는 건가?
그건 말이 안 되지.
지금 이 감옥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났는데 그전까진 아무렇지도 않다가 갑자기 내 몸에서 냄새가 난다고?
말도 안 돼.
고양이라도 키울까?
“근데 에레라는 뭘 하느라고 나를 아직도 꺼내질 못하는 거야? 이 새끼 정말 나가기만 해. 아주 작살을 내줄 테니.”
바스락.
순간 다이로는 본능적으로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며 몸을 뒤로 물렸다.
분명 소리가 들렸는데.
다다다다닥.
천장이다.
몸을 낮게 움츠리고 주변에서 들고 때릴 만한 무언가를 찾았다.
꿀꺽.
쥐새끼들 진짜 미치겠네.
콜롬비아 최대 마약 카르텔의 리더인 다이로에게는 안 어울리는 행동이지만 어쩔 수 없었다.
차라리 인간이라면 인상을 쓰든가 고함이라도 지르면 깨갱 하고 겁을 먹을 텐데.
이놈의 쥐새끼는 전혀 겁이 없었다.
이때.
쿵, 쿵, 쿵.
아, X발 깜짝이야.
독방의 문을 누군가 거칠게 두드렸다.
“뭐야?”
“저, 다이로 씨. 석방입니다.”
“알았어. 두고……. 뭐? 석방?”
다이로는 득달같이 달려가서 문을 열었다.
문 앞에는 간수 몇이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서 있었다.
“무슨 소리야?”
“네, 대통령 명령으로 다이로 씨를 석방하라는 공문이 도착했습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실 수 있습니다.”
“어, 그래?”
“물품 보관실로 가시죠.”
“어, 가자고, 가. 어서.”
다이로는 마지막으로 돌아보며 독방 안을 유심히 살폈다.
저, 쥐새끼.
구석에 설치된 에어컨 위.
쥐 한 마리가 다이로가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저게 진짜 쥐 맞아?
어떻게 저렇게 뻔뻔할 수가 있지?
쥐 주제에.
휙.
다시 등을 돌린 다이로가 부르르 몸을 떨며 간수들과 함께 물품 보관실로 향했다.
끼이이이이익.
석방 절차를 마치고 밖으로 나온 다이로는 주변을 둘러보고 피식 웃었다.
어째 감옥 안이 더 나은 것 같은데.
사실이 그랬다.
밖은 지저분하고 다듬어지지 않은 식물들이 여기저기 질서 없이 자라고 있었고 편의 시설이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어이, 다이로. 다시 나온 기분이 어때?”
에레라가 두 팔을 벌리고 다가오며 인사를 건넸다.
녀석.
“에레라, 그동안 힘들었지?”
다이로도 두 팔을 벌리고 에레라를 맞이했다.
둘이 간격이 가까워지자 에레라의 표정이 굳었다.
저거 뭔 상처가 저렇게 많아?
감옥 안에선 건드리는 놈이 없을 텐데.
그럼 설마 저게 다 쥐한테 물린 상처?
쥐라면 전염병일 가능성도 있는 거 아냐?
“친구.”
다이로가 두 팔로 에레라를 안으려는데.
“잠, 잠깐 기다려 봐.”
킁킁.
에레라가 다이로 몸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이거 친구, 우선 목욕부터 해야겠어. 감방 찌든 내가 진동을 하네, 진동을 해.”
“무슨 소리야? 시설은 안이 더 좋아. 난 매일 큰 욕조에서 하루의 절반을 보냈다고.”
아주 세월 좋았네.
“그, 그게 문제야. 그게. 우선 위스키로 몸을 좀 씻어야겠어.”
“하하하, 난 또 무슨 소린가 했네.”
“자, 저기, 아니, 저 뒤에 있는 차에 타. 난 앞에 차에 탈 테니.”
“왜 이래, 같이 타고 가면서 얘기도 좀 하고 싶은데.”
에레라가 다이로에 다가갔다가 뒤로 물러났다가 다시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리고 속삭이길.
“이봐, 다이로. 자네 리더라고. 보스란 말야. 나왔으면 그에 맞는 대접을 받아야 조직이 인정하는 거야. 1년이란 공백은 작지 않아.”
다이로는 에레라를 바라봤다.
이 친구. 진짜.
와락.
다이로가 다짜고짜 에레라를 껴안았다.
“친구밖에 없었어. 진짜 친구밖에 없어.”
팡팡.
등까지 거세게 두드리며.
에레라는 두 손을 허우적거리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거 놔, 이 바이러스야. 병균 옮겨.
드디어 포옹을 푼 다이로가 입을 굳게 다물고 주먹을 쥐어 보이며 뒤에서 대기 중인 세단으로 갔다.
후.
그제야 에레라도 앞차 문을 급하게 열었다.
“야, 소독제 어딨어. 소독제.”
“여기 있습니다.”
운전자가 자신의 옆에 있는 손 소독제를 건넸다.
“이건 손 소독제잖아. 전신 소독제 없어?”
“그런 건 없습니다.”
에이.
“알았어. 출발해.”
에레라는 손 소독제를 손에 듬뿍 뿌리고 아까 포옹한 자리를 찾아 여기저기 문질렀다.
“뭐 하시는 겁니까?”
옆에서 지켜보던 에레라의 참모, 우라베가 참다못해 물었다.
“아, 저 새끼가 나를 막 껴안잖아.”
“네?”
“너도 봤지? 저 새끼 몰골이 완전히 병자라고. 어디서 전염병이라도 걸린 것 같아.”
“코로나 아닙니까?”
“코로나에 걸리면 얼굴 여기저기 물어뜯긴 자국이 생기냐? 저건 쥐에게 물어 뜯겨서 생긴 거야. 제기랄. 당장 병원부터 들러야겠는데.”
“안 됩니다. 다이로 성격 알면서.”
“그렇지. 술이나 왕창 먹이고 병원부터 가야겠어.”
“그러시죠.”
우라베는 에레라의 말을 들으며 손 소독제를 자신의 손에도 뿌리고 옆자리를 닦았다.
“그런데 말이죠.”
“뭐? 무슨 문제라도 있어?”
“계속 걸리는 게 있는데요.”
“뭔데, 뜸 들이지 말고 얘기해 봐.”
음.
우라베는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임재준과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갔을까요?”
“어? 그건 무슨 말이야?”
“그렇잖아요. 우린 그 쥐에게 관심이 팔려서 정작 중요한 임재준과 다이로의 대화에 대해선 생각도 못 했습니다.”
“어, 그러네.”
그래, 네 번이나 만났는데 아무 얘기를 안 했을 리 없잖아.
“정부 안에서 들리는 소리가 있는데.”
“정부 안에서?”
“네? 이번 다이로 석방은 임재준이 대통령에게 건의한 거랍니다.”
“뭐?”
이건 또 무슨 개소리야.
“설마 아무 조건 없이 석방을 해줬을 리 없잖아요. 분명 무슨 이야기가 오고 간 게 틀림없습니다.”
“임재준과 모종의 거래가 있단 말이네.”
“네.”
에렐라가 참모를 보며 눈을 부라렸다.
“우라베, 말조심해.”
“아, 네. 죄송합니다.”
“의심을 해도 내가 하는 거야.”
“전 그냥 사실을 알려드린 겁니다.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그래, 딱 거기까지가 네가 할 일이야.”
“네.”
에레라는 우라베에게 경고를 했지만, 내심 자신도 그 점이 궁금했다.
그냥 넘길 문제는 아닌데.
임재준과 무슨 거래를 했길래 절대 불가능한 석방이 이렇게 간단히 됐을까?
다이로의 석방은 미국과도 관련이 없을 수가 없는데.
미국과 어떤 이야기가 오고 간 거지?
그럼 미국으로 송환되는 문제도 없던 일로 된 거잖아.
탈옥을 시도할 필요가 없어졌으니 좋기는 한데.
뭘까? 무슨 거래가 오고 간 걸까?
설마 미국 마약 밀매를 줄이는 건 아니겠지?
약간 줄여도 유럽 쪽으로 판로가 있으니 상관은 없지만 그럼 페노제(네덜란드)와 갈리시아 클랜(스페인)과 껄끄러운 관계가 될 텐데.
거기다 이탈리아와 이스라엘 마피아도 가만있지 않을 거고.
아, 몰라, 머리 아파.
그냥 감방에 처 있다가 대통령 바뀌면 나오면 되지, 뭐가 급하다고 나와서는.
***
다음 날 오후.
다이로 저택.
으, 머리야.
어제 너무 마셨나.
다이로는 겨우 몸을 추스르고 침대에서 눈을 뜨고 천장을 바라보았다.
1년 동안 익숙했던 천장이 아니었다.
흐흐흐.
그리고 웃음이 나왔다.
푸하하하하하하.
갑자기 터져 나오는 박장대소가 방 안을 가득 메웠다.
“내가 이겼어. 아무런 조건도 없이 이렇게 석방됐잖아? 구스타보, 넌 안 된다니까. 아무리 애를 써도 나를 어쩌지 못한다는 걸 안 기분이 어때? 하하하하하하. 하긴 정치인들이니까. 무언가 보여줘야 다음 선거에서 표라도 얻지.”
병신들.
바스락.
뭐야?
급하게 몸을 일으켜 주변을 살폈다.
빌어먹을 이 소리가 왜 여기서 들려?
다다다다다닥.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소리가 이동하자 급하게 고개를 돌렸다.
아,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어제 먹은 술이 덜 깬 상태에서 급하게 머리를 돌리자 극심한 두통이 왔다.
찌찍.
정면?
머리 한 개 정도 높이에서 쥐 소리가 났다.
서랍장 위다.
찌찍.
환청도 환각도 아니다.
분명 쥐라는 놈이 어떻게 자신을 정면으로 노려보며 고개를 갸웃거릴 수 있냔 말이다.
툭.
다다다다닥.
쥐가 무언가를 내뱉고 재빠르게 사라졌다.
다이로는 한동안 서랍장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주변을 다시 한번 살피고 일어났다.
여전히 두통이 가시질 않았다.
빌어먹을.
서랍장에 도착하니 작은 쪽지 하나가 놓여있었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아니, 뭐 서커스 같은 곳에서도 동물을 사육하니까 못할 것도 없지.
근데 누가 이런 짓을?
감히 나한테.
엔비가도 카르텔 놈들인가?
엔비가도 카르텔은 클란 델 골포에게 최대 조직이란 명성을 빼앗긴 콜롬비아 남부 마약 갱단이다.
아니지. 그렇게 간이 큰 놈들은 아니지.
다이로는 서랍장 위에 놓인 쪽지를 집어 들어 펼쳤다.
[자르딘 식물원. 오후 6시.]
여기서 만나자는 거구나.
다이로는 벽에 걸린 시계를 바라봤다.
1시.
5시간 남았다.
한참 남았네.
다이로는 쪽지를 구겨서 쓰레기통으로 던졌지만, 가장자리에 맞고 바닥으로 굴러떨어졌다.
에이, 귀찮게시리.
나중에 줍지 뭐.
핸드폰을 들어 에레라에게 통화를 시도했다.
띠리리링.
-지금 일어났어?
“어, 어제 너무 많이 마신 것 같아.”
-몸, 몸이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괜찮은 거지? 뭐, 또 감옥에서처럼 가슴이 아프고 그런 건 없는 거지?
“괜찮아. 그때는 원인 모를 폐경색이었을 뿐이야. 걱정하지 않아도 돼.”
-그럼 다행이고.
“그런데 에레라.”
-왜? 또 무슨 일 있어?
“그게 아니고 요즘 엔비가도 놈들은 어때? 우릴 노리거나 하진 않아?”
-엔비가도? 그놈들은 잠잠하지. 정부의 ‘드럭리걸 존’ 때문에 유럽으로 활로를 개척하느라 바쁜 거로 아는데.
“그래?”
그럼 엔비가도는 아니다.
“정부는 아직도 우리와 대치 중인가?”
-정부도 ‘드럭리걸 존’ 준비하느라 바빠. 우리랑 말 섞을 처지는 아니야.
“그럼, 임재준은?”
-임재준?
잠시 둘은 말을 멈췄다.
미묘한 괴리감이 엄습해왔다.
왜 바로 대답을 안 하는 거지?
-잘 모르겠는데.
“동선을 파악하고 있는 거 아니야?”
-불가능해. 사람을 붙이면 귀신같이 잘라버리거든. 마치 누군가 말을 해주는 것처럼.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우리 안에 임재준 끄나풀이 있다는 거야?”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워낙 첨단 과학으로 무장한 놈이라 우리가 모르는 기술이 있을 수도 있고. 인공위성이나 인공지능 같은 거.
“첨단 과학?”
-그래, 우리가 함부로 전쟁을 못 하는 것도 그 때문이잖아. 마라 살바트루차-13 이야기는 들었지?
“감옥에서 자세히 들었어.”
-그놈들 머리에 칩까지 박혀서 도망도 못 간다고 하던데.
“그것도 들었어. 머리에 칩을…….”
다이로가 문뜩 자신의 측면 머리를 손가락으로 스윽 문질렀다.
미친놈들.
남의 머리에다 왜 그런 걸 박아 넣어?
-언제 나올 거야?
“오늘은 집에 있고 내일이나…….”
바스락.
순간 돌아본 다이로의 시야에 쪽지를 입에 물고 다이로를 쳐다보는 쥐가 보였다.
다다다다다닥.
그리고 쪽지를 물고 사라졌다.
저 쥐새끼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