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2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4)
콜롬비아 중부 교도소.
수도 보고타에서 차로 한 시간을 달리면 나오는 곳이다.
이곳에는 주로 마약 사범들이 잡혀 오는데 이 교도소를 세운 놈이 바로 마약상의 롤모델 파블로 에스코바르다.
이 교도소는 파블로 에스코바르가 자수를 한 후 자신이 수감될 목적으로 지었다.
정말 미친놈이다.
미국이 강하게 압박하니까 잠깐 숨기 위해서 자수를 했다.
자수하기 전에 40만 평에 달하는 교도소를 지었고.
여긴 말이 교도소지 웬만한 특급 호텔보다도 시설이 좋았다.
교도소 안에는 정원, 수영장과 당구장, 볼링장, 나이트클럽, 바도 딸려 있다.
면회를 신청한 재준은 터덜터덜 걸어오는 오토니엘, 즉 다이로 안토니오 우수가를 보고 빙글 웃었다.
다이로는 기분 나쁘게 웃는 재준에게 대뜸 말했다.
“당신이 나를 보자고 한 사람이야?”
재준은 미소를 지으며 다이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마치 먹잇감을 가지고 노는 포식자처럼.
다이로는 재준의 표정이 아주 맘에 안 들었다.
“왔으면 말을 해야지. 왜 말이 없어?”
쩝.
“내일 봅시다.”
재준은 그렇게 5분 정도 다이로를 쳐다만 보고 교도소를 나왔다.
다이로는 재준의 등에다 욕을 퍼부었다.
“야이, 미친놈아, 너 뭐야?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다시 보이면 사지를 찢어 악어 먹이로 던져줄 거야. 알았어?”
아무리 욕을 해도 분이 풀리지 않았다.
더러운 미소.
기분이 아주 나빠.
다음 날.
재준은 다이로를 또 찾아왔다.
다이로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왜 자꾸 찾아오는 거야? 너 뭐 하는 새끼야?”
재준은 빙글 웃으면 말했다.
“내일 봅시다.”
다이로는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챘다.
하지만 뭐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뭐 하는 놈이지?”
다음 날.
재준은 다이로를 또 찾아왔다.
다이로가 쌍욕을 하려는 순간.
쉿!
재준이 빙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나 투마로우의 임재준이라고 하는데.”
뭐?
다이로의 동공이 심하게 흔들렸다.
투마로우 임재준?
모를 리가 없다.
이 새끼가 왜 여기 있는 거야?
콜롬비아에 합법적 마약 유통을 한다고 정부와 손을 잡더니, 나에게 부탁할 일이라도 있는 건가?
아니면 협박?
꿀꺽.
다이로는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근데 당신이 왜 여기 있는 겁니까?”
예의라곤 없던 말투에 격식이 추가되었다.
“다이로, 당신 왜 여기 있는 거야?”
“나? 감옥에 수감 중이잖아요.”
“아, 그렇구나. 악수나 합시다.”
이건 뭔가 하는 눈치로 다이로가 재준과 악수를 나누었다.
그리고.
“일주일 후에 봅시다.”
또다시 재준은 가버렸다.
그리고 다이로의 손에는 작은 반지 하나가 쥐어져 있었다.
은반지?
다이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되었다.
뭐야? 이번엔 왜 일주일 후야?
그리고 이걸 왜 나한테 주는 거지?
반지를 들어 이리저리 살펴보았지만, 그냥 평범한 은반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쯧, 선물치고는 너무 궁색한 거 아냐?
설마 이 안에 무슨 비밀이라도 숨겨진 걸까?
자리에서 일어나 감옥으로 돌아가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주변이 너무 썰렁한 느낌.
간수가 왜 아무도 없지?
잠시 생각해 봤다.
큭큭, 임재준.
하긴 교도소에 들락거리는 모습을 누가 보는 걸 원치 않겠지.
투마로우 임재준인데.
터벅터벅.
면회실을 나오자 수하 하나가 달라붙었다.
“무슨 일입니까? 임재준이 뭐라고 하고 갔습니까?”
뭐야? 귀찮은 새끼.
“몰라,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갔어. 벌써 세 번째야.”
“네?”
“왜?”
“그게 말이 됩니까? 세 번이나 찾아왔는데 아무 말도 안 했다는 게.”
“그러니까 나도 이상해. 왜 나를 보러 온 건지.”
“그래요?”
이 새끼 표정이 왜 이래?
다이로는 수하의 표정을 보더니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빡.
악.
“왜 때려요?”
“이 자식이 감빵에 있다고 날 무시하는 거야? 너 왜 눈을 그렇게 뜨고 나를 봐? 엉?”
“아니, 그게, 누가 봐도 이상하니까요.”
“뭐가 이상한데?”
“임재준이 왔는데 아무 말도 안 하고 갔으니까요.”
“이 새끼가 그래도? 진짜 아무 말도 안 했으니까 아무 말도 안 했다고 하지. 그리고 어디서 감히, 내가 너한테 보고해야 하는 거야? 너도 입 닫고 조용히 있어.”
“알았어요.”
수하는 뒤로 주춤 물러섰다.
“비켜.”
다이로가 귀찮다는 듯이 성큼성큼 멀어져갔다.
수하는 뒤통수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고 있네.
뭔가 중요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간수까지 밖으로 빼놓았으면서.
수하는 에레라에게 걸 수 있는 직통 핸드폰을 꺼냈다.
***
콜롬비아 클란 델 골포.
“알았어. 조금만 더 고생해. 그래, 가족에게 돈은 전달했어. 걱정 말고 다이로 보필이나 잘해. 또 무슨 일 있으면 전화하고.”
툭.
에레라는 다이로 수발을 위해 붙여둔 수하와 통화를 마쳤다.
에레라의 표정이 심각하자 옆에서 있던 참모가 물었다.
“무슨 일 있습니까?”
“임재준이 오토니엘을 세 번이나 만났다는군.”
“그건 우리도 알고 있는 사실 아닙니까?”
“오늘은 간수를 밖으로 빼고 둘이 이야기를 했다는 거야.”
“그게 뭐 이상한 겁니까? 남이 들으면 안 되는 이야기라도 했나 보죠.”
“근데 오토니엘이 화를 냈다는데?”
“화를 내요?”
“그랬대.”
“왜요?”
“임재준과 무슨 이야기를 주고받았는지 묻자 버럭 화를 냈다는데? 평소와는 다르게.”
음.
“뭔가 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 보죠.”
“임재준과?”
“그게 좀 꺼림칙하긴 해도, 오토니엘을 의심할 수는 없잖아요?”
“아니, 내가 언제 의심한다고 했어? 그냥 이상하다는 거지.”
“도청을 할까요?”
“왜 그래? 아니라니까.”
“확실한 게 좋지 않을까요?”
“확실하게?”
지랄이네.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고.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나중에 오토니엘이 알면 난리 칠 텐데.
아니지, 확실한 게 좋지.
오토니엘을 위해서라도.
무슨 일이 벌어지면 큰일이잖아.
“그래, 도청 심어.”
“알겠습니다.”
일주일 뒤.
치치치치치.
에레라는 핸드폰을 끼고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도청 장치를 통해 발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오는 것 같은데요?”
“조용히 해 봐.”
저벅, 저벅, 저벅.
***
중부 교도소.
재준은 들어서면서 다이로의 상태를 살폈다.
어유, 일주일 동안 로봇 쥐랑 싸워서 꼴이 말이 아니네.
일주일 전 재준은 마지막으로 다이로와 악수를 할 때 준 반지.
그 안엔 GPS 칩이 다이로의 위치를 알려주었고 머리에 칩을 심은 로봇 쥐는 다이로를 신나게 괴롭혔다.
일주일 동안 밤새도록 로봇 쥐는 다이로에게 접근하여 물고 할퀴고 사투를 벌였다.
그 결과 눈앞에 마치 분장한 듯한 다크서클과 온몸에 상처투성이인 다이로가 나타났다.
“간밤에 좋은 일 있었나 봐요?”
“그렇게 보입니까? 쥐새끼 몇 마리가 죽자 살자 덤비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쥐요?”
“네. 쥐.”
“쥐라면? 전염병 옮은 거 아닙니까?”
“멀쩡하니까 걱정 마요.”
“음,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오늘은 옆에 로봇을 달고 오셨네요.”
다이로는 재준 옆에 있는 로봇이 거슬렸다.
“아, 팜봇이라고 건강 체크 좀 하려고요.”
다이로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갑자기 웬 건강 체크야?
“싫으면 안 해도 되고요.”
순간.
콜록, 콜록.
억!
다이로가 심장을 부여잡고 몸이 앞으로 고꾸라지며 책상에 얼굴을 처박았다.
팜봇이 다가가 머리에 주삿바늘을 꽂았다.
픽.
한층 업그레이드가 된 생체칩이 다이로 머릿속에 심어졌다.
그리고 재준이 간수를 보며 외쳤다.
“다이로가 쓰러졌어.”
멀리서 지켜보던 간수 몇이 달려오며 구조요청 무전을 때렸다.
“다이로 응급 상황, 다이로 응급 상황.”
잠시 후.
의료진이 뛰어 들어오더니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하나, 둘, 셋, 넷.
하나, 둘, 셋, 넷.
재준이 짜증 난 듯이 말했다.
“비켜, 그러다 진짜 죽겠네.”
의료진들이 재준을 바라보자 팜봇이 앞으로 나섰다.
긴 주삿바늘을 가슴을 항해 꽂자 피식하고 바람이 새어 나왔다.
“내일 온다고 전해요.”
그렇게 재준은 또 가버렸다.
***
콜롬비아 클란 델 골포.
에레라는 헤드폰을 귀에 대고 숨소리도 놓치지 않겠다는 표정이었다.
재준과 다이로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밤에 좋은 일 있었나 봐요?
-그렇게 보입니까? 쥐새끼 몇 마리가 죽자 살자 덤비는데 잠을 잘 수가 없었어요.
쥐? 교도소 관리를 어떻게 하길래 쥐가 사람을 공격해?
이 새끼들 전부 갈아 마시든가 해야지.
감히 오토니엘이 있는 곳에 쥐가 나타나게 해?
다시 헤드폰에 귀를 기울였다.
-쥐라면 전염병 옮은 거 아닙니까?
-멀쩡하니까 걱정 마요.
-음, 그런 것 같네요.
-근데 오늘은 옆에 로봇을 달고 오셨네요.
-아, 팜봇이라고 건강 체크 좀 하려고요.
무슨 소리야?
진짜 병이라도 걸린 거 아냐?
쥐라니.
-싫으면 안 해도 되고요.
순간.
콜록, 콜록.
억!
-다이로 응급 상황, 다이로 응급 상황.
뭐야? 다이로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거야?
잠시 후.
-비켜, 그러다 진짜 죽겠네.
임재준이 다이로를 살렸다.
헤드폰을 빼고 참모를 바라봤다.
“알고 있었어?”
“아니요. 전혀 몰랐습니다.”
“이런 빌어먹을, 오토니엘에게 죽을 병이라니. 이게 말이 되는 소리야?”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걸 지금 말이라고 해? 전부 뒈지고 싶어?”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교도소로 연락해 봐.”
“네.”
다이로가 죽을 병을 숨기고 있었다고?
아니면 쥐한테 병이라도 옮은 거야?
그걸 임재준이 알아본 거고?
아니지, 그 팜봇인가 그놈이 알아봤겠지.
어떤 병에 걸렸기에…….
***
콜롬비아 대통령궁.
“뭐라고요? 다이로를 풀어 주라고요?”
구스타보 대통령은 재준의 말에 기겁을 했다.
어떻게 잡은 클란 델 골포의 우두머리인데.
가뜩이나 미국도 자신의 선택이 무엇인지 눈을 부라리고 보고 있는데.
풀어주라고?
“뭘 그렇게 놀라세요?”
“아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지 않습니까? 콜롬비아 최대 마약 조직의 리더가 다이로입니다.”
풋.
“그래 봐야, 일개 마약상에 범죄자일 뿐이에요.”
“이유를 말해줄 수 있습니까? 다이로를 잡으려고 얼마나 많은 경찰이 희생된 줄 아십니까?”
“이유 없이 다이로를 풀어 주겠습니까? 미국하고 이야기도 다 끝났어요. 그러니 내 말 대로 다이로를 풀어 주세요.”
“미국이요?”
어허, 미국이라니 할 말은 없다만.
정말 풀어줘도 되나?
구스타보 대통령은 자신감 있는 재준의 말에도 정말 걱정이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준은 말을 이었다.
“이제 ‘드럭리걸 존’을 오픈해야 하는데 각오는 돼 있으시죠?”
“네, 이미 압수한 마약도 어느 정도 있고. 공문을 통해 각 지역의 마약 중독자에게 권유할 겁니다. 순응하지 않는 자는 강제로 연행할 거고요.”
“가격은 어느 정도 책정하실 겁니까?”
“기존 마약의 백 분의 일입니다. 기존에 원료를 재배하던 농민들에게도 피해가 가지 않는 가격입니다.”
백 분의 일이 농민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는다고?
도대체 얼마나 폭리를 취한 거야?
“확실히 괜찮은 가격이네요. 그래도 용단을 내리셨습니다. 욕심이 날 만도 한데.”
“목적은 돈이 아니라 카르텔의 붕괴니까요.”
“그 붕괴의 시작이 바로 다이로의 석방이에요.”
“그렇습니까?”
“보시면 알게 될 겁니다. 아주 재미있는 광경이 펼쳐질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