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1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3)
백악관.
“오, 반갑습니다. 드디어 만나게 되는군요.”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은 재준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웃는 얼굴이 무척 자연스러운 사람이었다.
“좀 늦었습니다.”
“아니, 별말씀을. 세계에서 가장 바쁜 사람 아닙니까. 자, 앉으세요.”
재준이 대통령에게 만남을 요청하자 대통령은 모든 일정을 뒤로 미루고 재준을 맞았다.
그만큼 아이티도 그렇고 콜롬비아 문제가 미국에선 아주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재준이 앉자마자 대통령은 궁금한 질문부터 쏟아냈다.
“콜롬비아의 ‘드럭리걸 존’은 언제 시작하는 겁니까?”
“한 달 안에 시작할 거 같아요. 그래도 번듯한 건물은 몇 개 있어야 하지 않겠어요? 하하하.”
“그렇죠. 이번에도 로봇들이 공사를 하는 겁니까?”
“네, 시설에 절대 하자가 생기면 안 되니까요. 어디 개구멍이라고 만들어서 들락날락하면 큰일 아닙니까?”
“개구멍이요?”
하하하하하하.
대통령은 재준의 농담 같은 진담에 크게 웃었다.
그리고.
후.
웃음을 멈추고 작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
“그런데 말입니다. 콜롬비아의 합법적 마약 유통이 가능하겠습니까?”
“가능하면 미국도 좋은 거 아닙니까? 선례가 생겼으니 눈치는 덜 볼 수 있고요.”
“솔직히 제 개인적으로는 성공하길 바랍니다. 마약은 워낙 골칫거리거든요.”
“그럼 성공할 수 있도록 힘을 보태주실 겁니까?”
“미국을 대표해서 드릴 힘은 없습니다. 미국은 저만의 나라가 아니니까요.”
“또 민주주의 타령을 하시네요.”
“미국의 근간이니까요.”
음.
재준은 대통령의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지만, 마음은 달랐다.
느려터진 민주주의라…….
“곧 민주주의는 무너질 거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그럼 미국이 사회주의라도 된다는 말입니까?”
하하.
“대통령님도 민주주의 아니면 사회주의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아니에요. 시대를 두 이념으로는 담지 못한다는 거예요. 바로 정보 때문이죠. 이제 너무 많은 양의 정보를 처리해야 하는 시대가 온 겁니다. 당장 SNS에서 쏟아지는 정보는 아예 처리도 못 하고 있잖아요?”
“그건 시간을 내서 한번 검토해 보겠습니다.”
“또 있어요. 너무 빠르게 변하는 과학과 기술은 어떻게 대처할 거죠?”
“네, 그것도 한번…….”
“민주주의든 사회주의든 지금의 이념으로는 불가능한 시대 아닐까요? 과학 기술 하나 승인하는 데도 관련 단체와 충분한 의견도 나누어야 하고, 하원 통과하고 상원 통과할 때쯤이면 과학은 이미 서너 단계는 달려가고 있을 것 같은데요.”
아직도 유전자 수선으로 미국 내 언론이 갑론을박하고 있을 때 투마로우 시티는 벌써 몇천 명의 수정란을 성공시켰다.
“이해합니다. 미국이 대처에 느리다는 거.”
“알고 있으니 다행이네요. 산업혁명 때는 발전 속도가 빠르지 않아서 정치인들이 항상 한발 앞서 경로를 규제하고 조종할 수 있었지만, 현재 정치인의 박자 타는 실력으로는 과학의 속도에 맞춰 춤을 출 수 있는 수준이 아니거든요.”
음.
대통령이 고개를 주억거렸다.
자신도 이미 인지하고 고민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시스템을 바꾸는 일은 시작 단계에서 개입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복잡하고 돈도 많이 든다.
미국 국가안보국은 밀려드는 정보를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집하는 기관이지만, 이 막대한 정보로 무엇을 할지 몰라 외교정책에서 거듭 고배를 마시고 있었다.
중국만 해도 몇 번 때리면 알아서 머리를 숙일 줄 알았는데 오히려 더 큰소리를 치고 있지 않은가.
지금 자신의 주변에 있는 관료 중에 데이터의 홍수에서 뭘 해야 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전 세계에서 미국만큼 많은 정보를 취급하는 나라도 찾기 힘들지만, 현재는 미국만큼 연전연패하는 나라도 찾기 힘들다.
마치 카드 게임에서 다른 사람보다 몇 배 많은 카드를 들고 있지만, 패를 반대로 들고 있어 상대는 훤히 다 보는데 정작 본인이 패를 못 보고 있는 경우랄까.
요즘은 도통 이길 수가 없었다.
이게 다 데이터 처리의 미숙 때문이고, 민주주의를 고수하기 때문이라고?
‘다 같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의논해 봅시다’가 안 통하는 시대가 온 것이다.
“그래서 저도 아이티의 빠른 성장 속도를 주목하고 있습니다. 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이 얼마나 다른지 알고 싶고요.”
“하하, 지배라는 단어는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데요. 지배는 의지를 지닌 실체가 있어야 하니까요. 우리 인공지능은 의지가 없고 오직 명령만 수행할 뿐이거든요.”
“그래요?”
“네.”
“하지만 속도는 인간을 능가하죠. 현재의 민주적 구조로는 데이터를 충분히 빨리 수집해서 처리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유권자들은 생물학이나 사이버네틱스에 대해 잘 모르지 않습니까. 그래서 아이티의 발전 속도가 왜 지나치게 빠른지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군요. 그래서 미국이 중요한 사건을 제어할 수 없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국민에게 제시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현실을 잘 알고는 있네.
그럼 미래를 알려줘야지.
“뭔가 감을 잡았을 테지만 권력이 이동하고 있어요.”
“어디로 말입니까? 그게 인공지능입니까?”
“아니요. 인공지능은 의지가 없다니까요. 권력은 어디로 이동하고 있는지 아무도 모릅니다.”
“아니 그럼 어떻게 대처를 합니까?”
“차라리 대처하지 않는 쪽이 나을 거예요. 괜히 어설프게 짐작해서 벌어진 일을 우린 알고 있지 않나요? 아우슈비츠나 히로시마, 대약진 운동이 다 무지에서 나온 비극입니다.”
“그럼, 투마로우는 어디로 향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어디로 가는 걸까?
“은행이 가는 건 뻔하지 않습니까? 보다 효율적으로 돈을 잃지 않는 게 은행이 가는 길 아닐까요.”
“의원 중에는 시장에 맡기는 게 가장 좋은 것이라 하는데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시장에 맡겨요?”
하하하.
“대통령님, 그 사람들이랑 친하게 지내지 마세요. 그 사람들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몰라도 된다고 걸 아주 심오한 변명으로 늘어놓고 있네요.”
“아닙니까?”
“당연히 아니죠. 우리의 미래를 시장에 맡기면 시장에 유익한 일 아닐까요? 정치인이 인류나 세계에 유익한 일을 바라봐야지, 시장에게 정치를 내놓겠다는 거잖아요. 누군지 몰라도 비전이 없는 사람인데요. 시장이 지구 온난화를 걱정하고 과학의 위험성을 대처할 수 있다고요?”
“잘못하면 재앙이 닥쳐오겠군요.”
“알지 못해서 그런 거 아니겠습니까? 아직 아무것도 확실하지 않으니까요.”
“그럼 할 일도 없다는 겁니까?”
“그렇진 않아요. 우리가 할 일은 있어요.”
“그게 뭐죠?”
“무엇이든 자유롭게 흐르도록 내버려 두는 겁니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아이디어를 내고 그 아이디어가 결합이 되고 분리가 되기를 반복하다 보면 서서히 미래를 다스릴 시스템의 윤곽이 보일 겁니다.”
“그럼 정부가 하는 일이 없습니까?”
“그야 간섭 질을 안 하는 거죠. 특히 다른 나라 일에.”
“네?”
이 사람이 잘 나가다가……. 피식.
대통령은 어째 재준이 미국을 두고 하는 말 같아서 헛웃음이 나왔다.
“좋습니다. 이번 콜롬비아의 투마로우 실험은 지켜만 보겠습니다.”
“잘 생각하셨어요. 마약 카르텔을 말려 죽여드리죠.”
“가능하면 좋겠습니다.”
“그럼 어려운 부탁 하나 들어줘야 하는데…….”
“뭐죠?”
잠깐.
숙덕숙덕.
네?
***
콜롬비아 클란 델 골포.
“구스타보, 그 자식이 진짜 합법적인 구역을 만들고 있다고?”
푸푸푸푸.
콜롬비아 최대 마약 조직 클란 델 골포를 이끄는 에레라는 보고를 받고 너무 웃겨서 입으로 자꾸 바람이 새어 나왔다.
“네. 이번엔 칼을 갈고 있는 거 같은데요.”
“칼이야 매일 갈기만 하는 놈들이 무슨. 그보다 미국으로 이번 달 물량은 잘 전달되었지?”
“네. 20톤 전달하고 확실히 잔금을 받았습니다.”
20톤?
마약을 20톤을 전달했단다.
그것도 한 달 물량.
그럼 1년에 적어도 200톤을 미국에 밀매한다는 말인데.
전에 1kg에 15억이라고 한 적이 있으니.
200톤이면 200조에 해당하는 돈이다.
이렇게 돈이 넘쳐나니 탱크도 사고 헬기도 맘껏 사는 게 아닌가.
그리고 콜롬비아 정부가 하는 일도 가소롭게 여기는 거고.
“그보다 오토니엘은 진짜 미국으로 송환한대?”
오토니엘, 본명은 다이로 안토니오 우수가.
클란 델 골포의 실질적인 리더이고 지금은 감옥에 수감 중이다.
1년 전에 체포되어 미국으로 송환될 예정이었지만 클란 델 골포는 지속적인 테러로 콜롬비아 정부에 위협을 가하고 있었다.
미국으로 다리오를 보내는 즉시 콜롬비아 정부와 대대적인 전쟁을 시작하겠다고.
“미국의 요구가 거세지고 있습니다.”
“오토니엘이 미국에 가면 죽는 거 알지? 돈은 얼마든지 들어도 좋으니까, 송환 작전 계획을 빼내. 길목을 지키고 있다가 구출하게.”
“알겠습니다.”
“아끼지 말고 뿌려. 괜히 간 보지 말란 말이야.”
“네.”
“오토니엘만 구하면 다 죽여버리고 다시 가져오면 되니까.”
“네.”
콜롬비아 마약상들은 간이 배 밖으로 나온 지 꽤 되었다.
인간을 죽이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족속들이다.
이게 다 파블로 에스코바르라는 걸출한 미친놈 때문이다.
자그마치 5,000명을 죽인 진정한 콜롬비아 마약상들의 롤모델.
콜롬비아 마약상들은 대통령 후보도 죽이고 정치인, 경찰, 일반인까지 걸리적거리는 인간들을 일단 죽이고 보는 놈들이다.
마라 살바트루차-13하고는 차원이 다른 놈들이다.
마라 살바트루차-13가 잔인한 면에서 명성을 얻었다면 클란 델 골포는 무기 빨이 장난이 아니다.
“잠깐, 정부가 이번에 투마로우에 도움을 요청하지 않았나?”
“네, 이번에 콜롬비아 정부를 도와 마약의 합법 지역을 만든다고 합니다.”
임재준.
“그 로봇 데리고 다니는 놈이 대장이지?”
“맞습니다. 절대 마주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니까. 마라 살바트루차-13 천 명을 사로잡는 데 걸리는 시간이 1분도 안 걸렸다고 하던데. 진짜야? 약간 양념이 쳐진 거지?”
“아닌 거 같습니다. 중국, 아프리카에서 벌어진 일들에 의하면 아무리 중무장해도 삽시간에 무너진다고 합니다.”
음.
좀 골치 아픈 놈이네.
로봇을 끌고 다닌다…….
“그 로봇 중동에서 구할 수 없나?”
에레라가 말한 곳은 무기 암시장을 뜻한다.
제1차 세계 대전 때에나 쓰던 오래된 연식의 고물 총기부터 서방 특수부대가 들고 있을 만한 최신형 무기까지 취급하는 곳이다.
못 구하는 무기가 없는 곳.
하지만.
“못 구합니다.”
“그래? 그렇게 어렵다고?”
“투마로우 로봇을 관리하는 인공지능이 로봇을 탈취하는 순간 그 지역을 쑥대밭으로 만든다고 합니다. 아무도 취급할 엄두도 못 내고 있습니다.”
“그럼 싸우면 안 되는 거네.”
“되도록 피하는 게 좋습니다.”
“그럼 합법적인 마약 유통 지역이 생기는 걸 보고 있어야 한다는 거야?”
“콜롬비아 시장을 포기하는 건 어떠십니까? 아직 미국 시장을 커버하기에도 벅찬데요.”
그렇지. 괜히 작은 거에 욕심내다 탈 날 수도 있지.
“그래, 우린 미국에 신경을 더 써. 콜롬비아야 뭐 돈도 없는 거지새끼들만 득실거려서 장사도 잘 안 되는데.”
에이, 빌어먹을 투마로우 놈들.
콜롬비아는 왜 기어들어 와서는.
시장 하나만 날리게 생겼네.
설마 콜롬비아 다음으로 미국을 노리진 않겠지.
그럴 리가. 미국이 어떤 나란데 마약 합법 지구를 만들어?
말도 안 돼.
이때, 수하 하나가 얼굴이 벌게져서 달려왔다.
“보스.”
“보스라 부르지 말라고.”
“아, 네. 그보다 교도소에 임재준이 방문해서 오토니엘과 독대를 신청했다고 합니다.”
“뭐?”
그 자식이 왜 오토니엘을 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