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40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2)
“네, 콜롬비아도 못 하는 일을 미국에 들이밀면 그들이 하겠습니까? 당연히 안 하지. 하지만 콜롬비아가 시작하면 얘기는 달라지지 않을까요?”
“그럴까요?”
“어느 나라든 마약 중독자는 골치 아프잖아요. 휴양지에 모아 놓고 잘 관리하면 될 것 같은데요. 휴양지니까 마약을 하고 놀기 딱 좋게 꾸밀 수도 있고. 마약 범죄도 없애고 돈도 벌고. 좋잖아요.”
“관리가 힘들지 않을까요?”
“투마로우가 그 부분은 책임져 줄게요. 보안과 의료는 우리가 잘하는 부분이니까요.”
짝.
구스타보 대통령이 손뼉을 크게 한 번 치며 환하게 웃었다.
허황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 있지만 실제로 구스타보 대통령은 마약을 합법화하려고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미국은 콜롬비아 마약을 소탕하겠다고 계속 군대를 투입하였다.
미국과 콜롬비아가 마약 소탕에 관한 협정을 맺었으니 지금 와서 깨뜨릴 수도 없고.
미국은 진심인데.
근데 콜롬비아 마약 카르텔을 없앤다고 해서 마약이 없어지는 건 아니다.
멕시코와 주변국들도 있고, 동남아시아의 골든 트라이앵글도 있고, 중앙아시아의 골든 크레센트도 있다.
이럴 바에는 합법적으로 마약을 허용한 지역을 만들어 중독자를 몰아넣는 게 낫지 않을까?
모든 나라에 마약을 합법적으로 하는 구역을 만들면 마약과 관련된 부정적인 일들이 많이 줄어들 것 같은데.
너무 비인간적이지 않냐고 따질 수도 있지만 마약 중독자와 같이 사는 게 더 비인간적이다.
마약 중독자가 마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범죄를 저지르는지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아도 알 것이고 마약을 파는 놈들이 어떤 놈들인지 말하는 것도 입만 아프다.
그리고 빠져나갈 구멍도 만들어 줘야 한다.
“바로 옆에 마약 중독 치료를 위한 공간도 마련해 놓으세요. 마약을 끊는 건 절대 스스로 할 수 없는 일이니까요.”
“마약으로 번 돈으로 마약 중독자를 치료하는 일이 되겠군요.”
“그렇죠.”
음.
구스타보 대통령이 또 무언가 고민이 있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은 잘 돌아가지만, 나중에 비리가 생기고 또 다른 카르텔이 형성되면 어쩌죠?”
“아, 그건 염려하지 마세요. 인간이 하는 일이 아니니까.”
아, 로봇.
“얘기는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로봇이 있다고. 정말 로봇이 그 많은 일을 다 처리할 수 있을까요?”
“그럼요. 70억 지구 인구도 다 관리할 수 있어요.”
“정말입니까?”
“네.”
오늘부터 너도 관리 대상이야.
허튼짓하나 안 하나 ‘블랙’이 관심 있게 지켜볼 거라고.
가만 근데 ‘블랙’이 70억 인구를 다 관리할 수 있나?
한번 물어봐야겠다.
***
며칠 후 콜롬비아 구스타보 대통령은 공식적으로 마약의 합법 지구, ‘드럭리걸 존’을 발표했다.
[……앞으로 이 지역은 마약이 합법화된 지역으로……. 이 모든 과정에서 투마로우가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역시 전 세계 반응은 찬성과 반대로 갈라섰다.
-아니, 저게 무슨 짓이야?
-콜롬비아 갱단이 정부군도 어쩌지 못하는 수준으로 커 버리니까 그렇지.
-그렇다고 마약을 합법화하면 어쩌자는 거야?
-‘드럭리걸 존’ 안에서만 할 수 있다잖아. 차라리 그게 더 나은 거 아냐?
-그럼 마약을 하고 싶으면 저곳에 가서 하라는 거야?
-그렇지, 괜히 헛돈 쓰지 말고 저렴하게.
-나 참, 안 하면 되지. 무슨 저렴한 마약이냐?
-그런 너는 왜 담배랑 술을 안 끊어.
-그거랑 그게 어떻게 같아?
-정말 모르는 거야? 몸에는 담배와 코카인이 같은 정도로 해롭고 엑스터시와 LSD가 가장 해가 적어. 술이 코카인이나 담배보다 3배 해롭고 엑스터시보다는 8배 해롭다고.
-중독되잖아.
-이건 또 무슨 소리야. 담배도 중독성이 강해. 코카인, 헤로인, 펜타닐을 제외하면 중독성이 가장 높다고.
-마약을 하면 해롱해롱하지만 담배는 아니잖아.
-웃기고 있네. 영화 너무 봤다. 누가 마약만 하면 환상이 보이고 정신이 왔다 갔다 하냐? 엔도르핀과 도파민인 과다하게 분비되면 환상이 보인다고? 넌 후라이드치킨 먹을 때 도파민이 분비되는 데 해롱거리든?
-그럼, 아냐?
-이런 멍청이, 잠시 도파민이 과다 분비되어서 기분이 좋아질 뿐이야. 중독되면 중추신경계가 서서히 망가지지만.
-거봐, 몸에 안 좋잖아.
-야, 담배는 최소한 오억 개의 질병을 유발해.
-LSD는 환상이 보인다고 하던데.
-그러니까 지정된 장소에서 하라는 거잖아. 왜 어둠 속에 숨어서 그 짓을 하다가 사고를 치냐고.
-그런데 누구나 돈만 있으면 마약을 할 수 있는 거잖아. 그러다 너도나도 마약 중독자가 되면 어떡하냐?
-마약보다 강한 게 도박이야. 너 경마, 경륜 해봤어?
-아니.
-그럼 카지노 가봤어?
-아니.
-거봐, 그것도 하는 사람만 하는 거야. 마약 자체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대다수라고. 하는 놈이 미친놈이지.
-그런가…….
자꾸 마약 마약 하니까 다들 남의 일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우리는 마약으로 정의된 향정신성 물질을 모르면서 먹고 있는 게 많다.
코카인은 예전에 코카콜라에 사용되었다.
니코틴은 담배에 들어 있고 카페인은 커피와 청량음료, 이온 음료, 피로 회복제에 들어 있다.
잔틴은 초콜릿에 들어 있고 담배도 술도 마약으로 분류된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마약에 찌들어 살고 있다.
***
진코퍼레이션.
“콜롬비아에 ‘드럭리걸 존’은 ‘블랙’에게 맡길까 ‘오시리스’에게 맡길까?”
재준은 진에게 질문했다.
“새로 만들어야죠.”
“또 만들어?”
아들아, 그거 하나 만드는 데 돈이 얼마나 들어가는 줄 아니?
“아프리카와 아이티도 더 잘게 쪼개서 관리해야 해요. 그러려면 인공지능은 수억 개를 만들어도 모자라요.”
수억 개?
아들아, 아빠 가난해진다니까.
“아니, ‘블랙’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를 관리할 수 있는 거 아냐?”
“서버만 늘리면 할 수 있죠.”
“근데 왜 자꾸 만들어?”
“그러다 ‘블랙’이 먹통이 되면요?”
“뭐?”
그런 일이 발생하면 망하는 거지.
일단 투마로우 시티가 다 뚫리고 월가의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시스템이 멈출 텐데.
“아빠, 공산주의가 왜 자본주의에 패배한 줄 아세요?”
“그거야 자본주의는 서로 경쟁하는 이념과 윤리적 신조, 정치제도에서 공산주의를 압도해서지.”
“히히, 가끔 보면 아빠의 대답은 교과서에 나오는 말 같아요. 그게 뭐예요? 이념, 신조, 제도 같은 말은 대화보다는 문자가 더 어울릴 것 같은데.”
그래, 내가 현재증권 입사하려고 백과사전보다 두꺼운 책 몇 권을 외웠다.
“내가 원래 이런 단어를 선호해. 아무튼, 네가 생각하는 공산주의 패배의 원인은 뭔데?”
“데이터를 처리하는 방식이 달라요.”
“데이터 처리 방식?”
“네, 자본주의는 데이터를 나누어서 처리하는 반면 공산주의는 중앙에 모아서 처리하죠. 데이터를 나눈다는 것은 책임도 나눈다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말하는 거요.”
“아, 시장에 의해서 가격이 정해지는 거.”
“네, 수많은 기업과 기관이 있고 그들이 각자 자신의 데이터를 처리해서 공유하잖아요. 그리고 공유된 데이터를 분석하여 또 다른 데이터를 만들어 내요. 그리고 또 데이터를 생산하고. 순환하는 거예요. 오류가 한두 개 발생해도 괜찮아요.”
오호, 수많은 데이터가 공존하는 방식이라…….
“그중 하나가 잘못된 데이터를 생산해도 다른 데이터로 인해 즉각적인 조치를 할 수 있단 말이지?”
“네, 반대로 단일한 프로세서가 모든 결정을 내리면 실수가 발생했을 때 돌이킬 수 없는 재앙이 있을 뿐이에요. 자본주의가 공산주의보다 나은 것은 더 윤리적이고, 개인의 자유를 신성시하고, 신이 이교도인 공산주의자에게 분노해서가 아니에요. 그냥 더 효과적으로 데이터를 처리했기 때문이에요.”
오늘날 러시아가 처한 현실이다.
중앙 집권식 시스템으로 인해 최신식 무기와 첨단 장비들로 군인을 무장할 수는 있어도 시장은 1차 산업 이외에는 발전이 더딘 것이다.
러시아는 스마트폰도 만들지 못하고 반도체 설계도, 생산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우리도 데이터를 분산해서 다루어야 한다, 이거지?”
“네, 지금까진 시간이 없어서 ‘블랙’이 모두 처리했지만, ‘오시리스’를 시작으로 더 작게 더 많이 쪼개서 관리해야 해요. 72억 인구 한 명에 하나의 알고리즘이 관리하는 게 제 목표예요.”
인공지능이 72억 개?
하긴 그때가 되면 ‘블랙’만큼 무식하게 클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 많은 거 아냐?”
“우린 이미 ‘카리브’로 아이티에서 하고 있는데요?”
아, 카리브.
“그러네. ‘카리브’도 하나의 작은 인공지능이긴 하다.”
“아직 ‘카리브’가 완전하진 않아서 ‘오시리스’의 도움을 받고 있긴 하지만 이제 거의 완성 단계에 왔어요. ‘카리브’도 독자적인 알고리즘을 가질 거예요.”
“그럼 ‘드럭리걸 존’에 들어오는 사람들도 개별로 관리에 들어가는 건가?”
“네, 그렇게 할 거예요.”
“근데 궁금한 게 있는데. 알고리즘이 자신이 관리하는 사람을 위해 다른 알고리즘과 부딪히는 경우가 생길 수 있잖아.”
“과연 그런 일이 생길까요?”
“아니야?”
“애초에 그런 일이 발생하는 걸 차단할 수 있어요. 알고리즘이 서로 연동하여 갈등이 생길 만한 원인을 차단하면 돼요.”
“그게 가능하다고?”
“먼저 규칙을 만들어야죠. 뻔하지만 살인이나 폭행, 절도는 안 되고, 특정 지역을 벗어나는 일탈도 불가능하게 만들면 돼요.”
“그래?”
“진정 효과를 주는 종류의 약을 하는 장소와 환각 효과가 있는 종류의 약을 하는 장소는 엄연히 구분되어야 하잖아요. 특히 환각제는 일인실을 이용하고요. 이 모든 일은 인공지능과 로봇이 연동되어서 철저히 관리하는 거예요.”
“그거 괜찮네. 장소를 따로 사용한다.”
“걱정 마세요. ‘블랙’은 일어날 변수를 미리 계산해서 최선의 선택을 할 거예요. 개인 알고리즘이 데이터를 실시간으로 주고받으면 최악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아요.”
재준은 진의 말을 이해했다.
최소한 인간이 하는 것보다는 안정성 면에서 나으니까.
이미 자율 주행에서 그 결과를 확인하고 있다.
아직 단 한 건의 사고도 발생하지 않았다.
인간처럼 운전하다가 딴생각도 안 하고, 졸지도 않으며, 화창한 날씨라고 하늘을 쳐다보는 감정에 치우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근데 아빠.”
진이 재준 모르게 미간을 좁혔다 폈다.
“왜?”
“미국에 한번 가야 하지 않아요? 그래도 미국에 새로운 대통령이 당선됐는데.”
“가야 하긴 하는데. 도날드도 좀 만나고.”
“‘드럭리걸 존’이 시작하기 전에 가서 한바탕 싸워야 할 것 같은데요.”
“야, 뭐 나는 맨날 싸움만 하는 사람이냐?”
“미국 언론에서 매일 난투를 벌이고 있어요.”
“콜롬비아 때문에?”
“아이티도 말이 많아요. 오히려 아프리카 이야기가 쏙 들어갈 정도예요.”
으이그, 인간들 좀 쉬게 내버려 두지를 않네.
“그래, 알았다. 에이,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가야겠다. 나, 간다.”
“네.”
급하게 재준을 내쫓은 진은 인상을 찌그러뜨렸다.
으, 머리……. 갑자기 왜 발작을 하는 거야?
조금만 더 버티면 된다. 조금만.
진의 뇌 속에서 수천조의 시냅스가 춤을 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