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9화 정말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1)
“어쩔 수 없이 보스와 대척 관계가 될 거다? 이 말이죠?”
“대척까지야 아니더라도 단체들의 압박에 못 이겨 나한테 뭔가 부탁은 하겠지. 아이티에서 은행을 철수하라든가? 알폰소를 미국으로 보내라든가? 등등등.”
“하긴 미국 단체들이 압박이 좀 심하죠.”
“특히 보수주의자들은 지금 가시방석일 거야.”
“손안에 있던 아이티가 남의 손에 있으니 불안하겠죠. 그래도 이제 쿠바의 영향에서 벗어난 건데 고마운 거 아닌가요?”
“맞아, 고맙단 인사 정돈 해야지.”
워서스틴도 못마땅한 듯 입을 비죽 내밀었지만, 재준은 손사래를 쳤다.
됐어, 됐어.
“물론 그 인사는 받고 싶지 않아.”
“하하하, 또 엮일까 봐요?”
“당연하지. 정치인들이 말을 섞겠다고 하면 순수한 의도는 없다고 봐야 하잖아.”
“그렇죠.”
“어쨌든 콜롬비아에 가보자. 거기도 순수한지 아니면 불순물이 잔뜩 끼었는지 만나 보면 알겠지.”
“네.”
솔직히 이제 재준이 회귀한 시점이 지나서 미래는 알 수 없었다.
그 대신에 인공지능이 정확한 예측으로 그 자리를 대신해 주고 있었다.
재준은 ‘블랙’을 호출했다.
“블랙, 네 생각은 어때? 마약을 합법화하는 게 인류에 도움이 될까?”
【진정효과를 주는 아편과 모르핀, 환각효과가 있는 LSD, 엑스터시, 대마는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왜?”
【아편과 모르핀을 투여하면 불안감이 없어지고, 행복한 기분을 느끼게 됩니다. 장기간에 걸친 전쟁을 겪었던 중국·베트남·아프가니스탄에서 아편 중독자가 대거 양산되었습니다. 이들은 모두 잉여 인력으로 인류 발전에 기여를 하지 못합니다.】
이게 항우울제와 다른 점이다.
항우울제는 일을 더 열심히 하게 만드는데 아편은 일을 못 하게 만든다.
아편은 대뇌피질과 척수 등 고통이 전달되는 신경 부위에서 통증 전달을 차단, 진통 작용과 함께 쾌감을 발생시킨다.
그래서 병원에서 진통제로 사용되고 있다.
LSD, 엑스터시, 대마는 도파민을 과다 분비시키고 이를 통해 환각과 망상을 유발시키는 마약이다
재준은 ‘블랙’의 말을 들으며 의구심이 들었다.
“코카인은 왜 빠져있어?”
코카인과 암페타민은 신경호르몬인 노르에피네프린을 과다 방출시켜 각성 및 흥분을 일으킨다.
【코카인은 각성 효과가 있는 마약입니다. 각성 효과는 진정 효과나 환각 효과와 다릅니다. 각성 효과는 고난에서 도피하기 수단이 아니라 고난을 해결하는 수단으로 사용됩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 머리는 굴려야 하는데 원하는 대로 머리가 굴러주지 않으니 강제로 각성을 하겠다?”
【네. 코카인을 흡입하면 활력을 느낄 수 있으며, 좋은 기분으로 일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코카인을 계속 흡입하지 않으면 짜증이 나고, 피로감 때문에 집중도 할 수 없잖아. 중독되는 거라고.”
【중독을 권장합니다.】
“뭐? 그거 안 좋은 거야. 건강을 해치는데.”
【하지만 인류에 커다란 발전을 이룩하는 겁니다. 영국의 수상 안소니 이든의 경우 1956년 이집트의 수에즈 운하를 탈환할 때 각성 효과가 있는 암페타민을 투여받았으며, 독일의 총통 히틀러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코카인 및 암페타민을 처방받았습니다.】
“히틀러가 인류에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다고?”
【결과적으로 그렇습니다.】
참 인간미 없는 답변이네.
세계 2차 대전으로 많은 것이 바뀌긴 했다만.
“블랙, 콜롬비아 현재 마약 판매량의 매년 증가율은 얼마나 되지?”
【평균 10%씩 늘어나고 있습니다.】
“작년에 비해선?”
【30% 늘었습니다.】
평균보다 많이 늘었다.
이것 때문에 콜롬비아 대통령이 나를 보자고 한 건가?
“좌파 게릴라와 우파 무장 세력은 무기를 늘렸어?”
【5% 증가했습니다.】
별로네.
“마약 카르텔은 무기를 얼마나 늘렸지?”
【100% 증가했습니다.】
100%? 이것 때문이구나.
근데 왜 갑자기 무기를 늘린 거지?
미국이 좀 과하게 들이대서 그런가?
왜 갑자기 미국이 과격해진 거지?
미국 내 변화가 있는 건가?
“미국 내 마약 가격은?”
【70% 증가했습니다.】
이거구나.
미국이 남미 마약상들을 때려잡으면 때려잡을수록 마약은 공급이 적어지면서 가격만 올라가게 되었다.
가격이 올랐으니 마약상들은 떼돈을 벌고 무기를 사들이고, 또 미국은 더 강력하게 무장해서 때리고, 그럼 공급이 딸려서 마약 가격은 오르고, 또 무기를 사들이고.
악순환이다.
마약에 손을 댄 사람이 마약을 중단할 수는 없다.
담배 하나 끊는 것도 얼마나 힘든 일인데.
사실 마약보다는 담배가 몸에 더 해롭다.
담배는 암은 물론이고 관절, 척추, 폐, 뇌 심혈관 질환을 일으킨다.
거기다, 키도 안 커, 근육도 줄어들어, 미각은 둔화되고, 치아에 치석 왕창 껴, 피부는 썩어들어가, 발기부전, 정신질환, 스트레스, 심지어 유전자 손상까지 일으킨다.
엄청난 사실 하나 하루에 담배 피우는 시간을 다 합쳐서 30분 정도 된다면 1년에 3300 µSv의 방사선이 몸에 쌓이게 된다.
이건 담배란 식물이 폴로늄을 가지고 있기 때문인데 담배 회사가 별 방법을 다 써도 제거하지 못하고 있다.
근데 왜 담배는 되고 마약은 안 되는 것일까?
마약은 기껏해야 엔도르핀과 도파민을 몸에서 생성하게 할 뿐인데.
물론 엔도르핀과 도파민이 과도하게 생성되면 몸에 안 좋다.
그래도 담배에 비할 바는 아니지.
전염병도 아닌데.
그 이유는 먼저 마약은 사건이 터지면 크게 터지는 데서 찾을 수 있다.
특히 환각효과에는 굿 트립과 배드 트립이 있는데 말 그대로 굿 트립은 그냥 세상이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고 배드 트립이 나타날 때는 주변의 모든 것이 자신을 죽이려는 악마요 괴물로 보이게 된다.
그러면 어떻게 되겠어.
주변 사람을 괴물로 착각해서 가차 없이 폭행하고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담배가 중독성이 강하지만, 살인은 저지르지 않는다.
그리고,
뭐, 다 알겠지만, 담배는 싸고 마약은 엄청나게 비싸다.
마약은 1kg에 15억을 호가한다.
비교하자면 금이 1kg에 8천만 원 정도 한다.
돈이 엄청나게 걸려 있다.
미국으로선 국부 유출의 주요 원인이다.
아마 미국에 담배 회사처럼 마약 판매 회사가 있다면 과연 지금처럼 남미를 때려잡는 수고로움을 감내할 수 있을까?
마약도 담배처럼 정부가 관리하는 게 낫지 않을까?
어차피 마약을 재배하지 못하게 하는 건 불가능할 거 같은데.
***
콜롬비아 대통령 궁.
“어서 오세요.”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재준을 맞이했다.
아주 오랜 친구를 보는 듯.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콜롬비아 최초의 좌파 대통령이다.
그동안 보수주의 성향의 우파들이 득세하면서 나라를 홀라당 말아먹은 덕이었다.
“아, 네.”
하지만 재준은 약간의 비아냥이 섞인 형식적인 태도를 유지했다.
아직 내 기억에 베네수엘라에 쳐들어온 콜롬비아 갱단이 있거든.
아무리 갱단이 다른 나라로 꺼져버려서 근심거리가 줄어든다고 해도 그렇지.
남의 나라에 들어와 힘없는 사람들을 괴롭히게 내버려 둬?
재준의 생각이 그러거나 말거나 구스타보 대통령은 자리를 권했다.
“자, 앉으시죠.”
재준은 자리에 앉자 옆으로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앉았다.
길게 얘기할 이유가 없는 재준은 본론을 바로 꺼냈다.
“나를 보자고 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갱단을 처리해 달라는 건 아니라고 들었는데.”
구스타보 대통령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후.
한숨까지 섞어서.
“네, 갱단은 자극할수록 더 강하게 무장을 하고 있습니다. 괜히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입니다.”
“그래요? 건드리지 않는다고요?”
“네.”
그래서 베네수엘라에 콜롬비아 갱단이 설치도록 놔둔 거야?
“갱단 일이 아니라 마약과 관련해서 투마로우의 도움을 받고 싶습니다.”
“우리가 도울 일이 있습니까?”
음.
구스타보 대통령이 입술을 꽉 깨물고 결심이 굳은 듯 말했다.
“콜롬비아 마약을 정부가 관리할 겁니다.”
오. 생각보다 강하게 나오는데.
“정말 괜찮은 생각을 하셨군요.”
“네?”
재준의 의외의 반응에 구스타보 대통령이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그럼요. 마약을 담배처럼 정부가 나서서 관리한다면 가격도 싸지고, 수입이 줄어들면 갱단도 사라질 거고. 국가 제정도 풍성해지고, 아주 좋을 것 같은데요.”
“맞습니다. 제 생각도 그겁니다.”
“그럼 이제 미국만 설득하면 되겠네요?”
후.
다시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는 구스타보 대통령.
“그게 미국 대통령과 비공식 대화를 나누었는데 절대 안 된다고 합니다.”
“벌써 대화를 하셨어요?”
“대통령 당선 축하드릴 겸 통화를 했습니다. 거절당했죠.”
아니, 어느 미친 대통령이 마약을 담배처럼 파는데 협조를 하겠어?
“그래서 말인데 미국을 설득할 방법이 없을까요?”
“설득이요?”
그걸 왜 내가?
가뜩이나 지금은 도날드가 대통령도 아닌데.
재준의 생각과 다르게 구스타보 대통령은 재준을 믿는 표정을 지었다.
“지금 미국과 대등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나라는 없습니다. 자칫 밉보이면 경제 제재로 예전의 베네수엘라나 아이티 꼴이 날 수도 있고요.”
“뭐 그럴 수도 있죠.”
“그런데 베네수엘라와 아이티를 투마로우가 재건했는데도 미국이 가만히 있는 걸 보면 미국의 우군으로 인식하는 게 아닐까요?”
“뭐 그런 면도 있지요. 하지만, 미국이 마약 판매를 합법화하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입니다. 미국 대통령이 독단으로 결정할 문제도 아니고요. 아니, 의회의 승인이 나도 국민들이 들고 일어날 거예요.”
으.
구스타보 대통령이 이를 빠득 갈았다.
“사실 마약 갱단이 이렇게 커지고 강해진 건 다 미국 책임입니다. 처음엔 마약상들은 평범한 농부에 불과했는데 거기다 자꾸 총을 들이대니 갱으로 변한 거 아닙니까?”
아니, 근데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야?
“거기다 마약 단속을 강하게 하면 할수록 공급이 부족해서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마약상들은 더 많은 돈을 벌어 더 많은 무기를 사들이고. 이제 우리 정부군과 맞먹는 상황까지 왔습니다.”
“그건 알고 있는 이야기지만 그렇다고 마약을 합법화하는 명분으로는 많이 부족한데요.”
말도 안 되는 소리지.
그럼 네가 먼저 합법화를 하면 되잖아.
왜 남의 나라에 마약을……. 가만.
“구스타보 대통령님?”
재준이 빙글 웃는 얼굴로 구스타보 대통령을 불렀다.
“네?”
“콜롬비아에 못 쓰는 땅 있습니까? 해안가면 더 좋고.”
“저 베네수엘라 접경지대에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있습니다.”
베네수엘라에서 갱들이 설칠 때에는 콜롬비아와 베네수엘라 접경지대는 치안이 아예 전무했다.
콜롬비아 수도 보고타에서 마약과 전쟁을 치르기도 바쁜데 다른 나라와 실랑이를 벌이는 일은 최대한 줄이는 게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베네수엘라에 로봇이 등장하자 갱들은 수도 보고타로 철수하고 지역 주민들은 베네수엘라로 흘러 들어갔다.
그렇게 접경지대는 아무도 살지 않는 곳이 되었다.
페렐라가 기다렸다는 듯이 태블릿을 꺼내 지도를 펼쳤다.
여기, 여기.
페렐라가 가리키는 곳은 콜롬비아의 북단으로 삐죽이 튀어나온 땅으로, 아이티와 베네수엘라 중간에 형성되어 있었다.
괜찮은데.
3면이 해안가이고.
구스타보 대통령도 페렐라가 가리키는 곳을 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도 지금은 사람이 별로 살고 있지 않습니다.”
“음, 그렇다면 이 땅에 휴양지를 만들고 마약을 합법적으로 유통이 가능한 곳으로 만듭시다.”
“콜롬비아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