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7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12)
조용히 해 봐.
재준이 손가락을 입술에 대었다.
“조용, 이제 음악을 감상할 시간이에요. 예절을 지키세요.”
샤랄랄라. 빰빰. 빰빰. 샤랄랄라. 빰빰. 빰빰.
대형 드론에서 아주 부드러운 멜로디가 흘러나왔다.
모두 아, 하고 감탄을 할 만큼.
하지만.
아아아아아악.
우에에에에엑.
갱단들은 비명을 지르며 구토를 하기 시작했다.
눈코입에서 물이란 물은 전부 쏟아내며 옆으로 픽픽 쓰러졌다.
줄줄줄줄.
아래가 축축이 젖어갔다.
놈들은 초점을 잃은 눈동자로 벌벌 흔들리며 기절 직전이었다.
갱단이 픽픽픽픽 앞으로 옆으로 쓰러졌다.
“그만.”
재준이 손을 들자 음악이 꺼졌다.
국장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
“음악 어때요. 아름답지 않아요? 어린 친구가 작곡한 건데. 내가 들어도 사람의 마음을 흔든다니까. 그쪽도 꽤 감동한 거 같은데. 맞죠.”
“너, 죽인다.”
쩝.
재준이 혀를 차며 고개를 저었다.
“에이, 아직 감상할 준비가 안 됐나 보네. 다시 들려드릴 테니. 잘 들으세요.”
안 돼.
다시 음악이 흐르고 갱단들은 지랄발광했다.
아아아아악.
그만 이 미친놈아.
아아아아아악.
제발 멈춰.
그렇게 다섯 번 반복한 후에.
“잘못했습니다. 살려주세요. 제발 음악만 틀지 말아 주세요. 제발. 제발.”
음.
왜 이놈들이 발작을 일으킨 걸까?
이건 고주파와 생체 칩의 반응 때문이다.
진의 친구 디노 파잘이 작곡한 노래에서 발생하는 고주파를 측두엽에 집어넣은 생체 칩이 증폭한 것이다.
일단 고통은 말로 할 수 없을 것이고 측두엽이 문제가 생기면 잠시 사물 인지가 불안해진다.
흐트러진 눈동자가 간절히 원했다.
제발 그만.
재준이 부장의 머리를 다독거렸다.
“자, 이제 아까 말한 대로. 여기서 노동의 신성함을 경험하는 거예요. 도와줄 사람은 아무도 없고 도와주지도 못해요. 왜? 여기 있는 사람들의 손등에도 생체 칩이 이식되어 있거든요. 여기 사람과 접촉을 했는데 접촉한 사람의 심박 수가 증가하면 저들은 멀쩡한데 당신 뇌만 또 울릴 거예요. 알겠죠.”
“뭐?”
빌어먹을.
갱단 모두는 허탈해하며 고개를 숙였다.
여기서 더 이상 폭력을 행사할 수가 없다.
재준은 그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이 정도는 믿을 만하지.
SF 영화 한 편이라도 봤다면.
이제 맘대로 폭력을 행사하지 못할 거고.
“그동안 몸에다 문신 좀 하고 총 좀 쏘면 사람들이 무서워하고 자신은 뭐가 된 것 같았죠.”
큭큭큭.
“그런데, 우리 인간이에요. 인간은 그냥 살이랑 뼈로 이루어진 거고. 아프단 말이죠. 너도 아프고 다른 사람들도 아파요. 그리고 이 생체 칩에 또 다른 기능이 있는데.”
재준의 말에 갱단 몇몇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여기, 여러분이 이제부터 일해야 하는 이 건물에서 100m를 벗어나면 이 주변에 아름다운 음악이 자동으로 재생된다는 거예요. 신기하죠. 이게 다 GPS 기술 때문이에요. GPS라고 들어 봤죠. 그러니까 도망갈 생각 말고 이 농장에서 생명의 아름다운 생장을 느껴봐요. 내가 왜 이런 찬란한 생명의 소중함을 지금껏 느끼지 못했을까? 깨달음을 얻으란 말이죠. 헛짓거리하지 말고.”
끙.
갱단의 얼굴이 새하얗게 변했다.
흑흑흑흑.
어떤 놈은 울기까지 했다.
이걸 믿네.
하긴 GPS가 뭔지도 모를 놈들이니까.
그럼 더 해 볼까나.
“아, 그리고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그 생체 칩 말이에요. 그게 아무리 많이 진동해도 너희는 절대 죽지 않아요. 아예 그렇게 설계를 했으니까. 너희가 죽을 것 같으면 진동이 멈추거든. 이해했죠.”
부르르르르.
갱단들의 원망에 가득 찬 눈동자가 재준을 향했다.
폭력을 쓸 수도 없고 도망도 못 간다.
여기서 평생 일하면서 살아야 한다.
근데 돈도 못 번다.
이건 그냥 가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부장 놈의 미간을 잔뜩 구겼다.
개새끼.
“아 참, 그리고 여기 모두 생산량이 정해져 있어요. 뭐 보통은 다들 100% 달성하는데 너희도 달성해야죠. 어디 구석에 짱박혀서 잠이나 퍼질러 자고 퇴근 때만 나타나면 안 돼요. 그 머리에 있는 생체 칩이 활동을 멈추면 바로 드론이 와서 왜 그런지 상황을 파악할 거예요.”
결국, 모든 갱단의 고개가 떨어졌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듯.
이야 이걸 믿네.
이런 기능이 있으면 정말 좋겠다.
그러고 보니 이거 진짜 되는 기능이 너무 없는데.
고주파 증폭하는 거 말고는 아무 기능도 없잖아.
진하고 진지하게 추가 기능에 대해 이야기를 해야겠어.
재준이 생체 칩의 업그레이드를 생각할 때.
“놔, 놓으란 말야. 이놈들이 내가 누군지 알아?”
알폰소와 비서가 경찰의 손에 잡혀 왔다.
그리고 주변에 벌거벗겨져서 무릎을 꿇고 있는 갱단을 보자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어떻게 된 거야?
전부 잡힌 거야?
마라 살바트루차-13이?
“어서 오세요.”
목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가 휙 돌아갔다.
임재준.
“자, 먼저 말을 할래요? 아니면 다른 사람 입을 통해 들을래요?”
“뭘 말입니까?”
“몰라서 물으시는 거예요?”
“날 왜 잡아들인 겁니까?”
쩝.
그냥 쉽게 가는 법이 없네.
“어이 친구? 고개를 들고 저 사람 좀 쳐다볼래?”
부장이 힘겹게 고개를 들었다.
그리고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저놈이 무조건 맞다는 듯.
“아시는 분이시죠?”
“저 사람이 아이티로 들어와 터전을 잡으라고 했습니다.”
푹.
말을 마치고 고개를 떨구었다.
알폰소의 얼굴이 파르르 떨렸다.
“무슨 말을 하는 겁니까? 나는 저 사람을 알지도 못합니다. 이봐, 당신. 당신 나를 알아? 오늘 처음 보는 거잖아.”
부장이 다시 고개를 힘겹게 들고 하늘을 쳐다보며 두 눈을 꼭 감았다가 떴다.
“그만해. 지금 우리 충분히 힘들어. 죽을 것 같단 말야. 그냥 다 말하고 끝내자.”
“뭘? 뭘 끝내자는 거지? 난 당신을 모른다니까.”
후.
긴 한숨이 부장의 입술을 비집고 나왔다.
“스위스 은행 계좌 XXXXXXXXXX 비밀번호는 몰라요. 저 사람이 알고 있으니까. 열쇠는 내 가방 안에 있습니다. 확인해 보세요.”
너, 너, 너, 너.
알폰소의 입술이 파르르 떨리고 손발이 가만히 있지를 못했다.
“아이티에 정착하면 다시 돌려주기로 하고 열쇠를 맡긴 겁니다. 담보물이라고 보면 됩니다.”
푹.
그리고 다시 고개를 숙였다.
이제 진짜 말할 힘도 없다는 듯이.
재준이 알폰소를 보며 빙글 웃었다.
“알폰소, 10억 달러 포기해야겠네요. 난 열쇠를 절대 당신에게 주지 않을 거고 당신도 절대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을 테니까요.”
“무슨 소리인지…….”
으으으으.
알폰소의 목소리가 쥐어 짜여서 나왔다.
재준이 핸드폰을 들고 살랑살랑 흔들었다.
“응, 난데. 스위스 은행에 연락해서 방금 말한 계좌에 있는 10억 달러 확인하고 아이티 국고로 환원 조치시켜.”
【네, 알겠습니다.】
뭐? 뭐?
“뭐 하는 겁니까?”
“모른다며, 왜요? 아는 돈입니까?”
“아니……. 그건 뒤발리에 돈입니다. 개인 자산을 그렇게 맘대로 하는 건 절도입니다.”
말을 마친 알폰소의 표정이 미묘하게 떨렸다.
재준이 그런 알폰소 얼굴 앞으로 다가갔다.
“뒤발리에? 난 뒤발리에라고 말한 적 없는데. 여기 부장도 그렇고.”
알폰소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
“이……. 개 같은.”
큭큭큭.
“그러네. 아이티고 나발이고 다 거짓이었어. 이 모든 건 돈이네. 돈 때문에 이런 사달이 난 거야.”
알폰소는 재준의 결론이 무척 맘에 들지 않았다.
뭐라고 항변하고 싶었다.
“돈 때문만은 아니야?”
“그럼 뭔데요?”
“그건…….”
“에이 전에도 말을 더듬더니 또 그러네. 습관인가? 알폰소. 그거 알아요? 당신 정말 구제 불능이에요. 앞에선 국민을 위하는 척 다 하더니 결국 국민을 버렸네. 그것도 몹시 나쁜 짓까지 벌이면서. 어떻게 국민의 목숨을 아무렇지 않게 갱단한테 팔아 버릴 수 있지? 겨우 돈 때문에? 갱단이 들어오면 여기 사람들을 죽이고 강간하고 착취할 걸 뻔히 알면서?”
이…….
“당신이 뭘 알아? 내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난 최선을 다했어. 클로프 저놈만 아니었어도 아이티는 이 꼴이 나지 않았을 거라고. 다 저놈 때문이야.”
와, 진짜 죽이고 싶다.
“참나, 이런 거지 같은 인생을 봤나. 야당 대표, 웃기지도 않아. 당신 눈에는 저기 둘러서 있는 국민이 안 보여? 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정말 모른다고? 그리고 남의 탓을 해? 당신은 뭐 했어? 국민이 진흙으로 쿠키를 만들어 먹을 동안에 당신은 뭘 먹었냐고. 당신도 국민과 함께 진흙 쿠키를 먹었어야 했잖아. 당신이 안 한 거 아냐? 아무것도 안 한 건 당신이라고. 그저 클로프만 쳐다보면서 언제 내려오나 두 손을 놓고 있는 건 당신이었다고.”
“그건…….”
“그러면서 돈을 잃지 않으려고 갱단을 끌어들여? 그것도 가장 잔인하다는 이놈들을? 쯧쯧쯧. 쓰레기 같은 새끼.”
팜봇.
재준이 손짓을 하자 팜봇 하나가 알폰소에게 다가와 머리를 붙잡았다.
뭐야? 이거 왜 이래?
푹.
생체 칩 하나가 알폰소의 머리에 들어갔다.
그리고,
샤랄랄라. 빰빰. 빰빰. 샤랄랄라. 빰빰. 빰빰.
아름다운 음악이 흘러나왔다.
아아아아아악.
알폰소가 괴성을 지르고.
아아아아아아악
갱단이 비명이 이어졌다.
알폰소가 머리를 부여잡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갱단들도 온몸을 떨며 부들부들 경련을 일으켰다.
이때.
이 개새끼야.
부장이 온 힘을 다해 알폰소를 향해 돌진했다.
그리고 입을 한껏 벌리고 알폰소의 귀를 물었다.
아아아아악.
찌익.
부장은 입에 물려 있는 알폰소의 한쪽 귀를 물고 그 자리에 쓰러져 부들부들 떨었다.
그만.
음악이 멈추고 다시 축 늘어졌다.
와 이놈도 보통 독종이 아니네.
하긴 그러니까 이런 괴상망측한 조직을 이끄는 거겠지.
어쨌든 이제 다 된 거 같은데.
재준은 지금까지 지켜보고 있던 클로프를 바라봤다.
여기까지 만들어 줬으면 당신이 처리해야지.
클로프는 말없이 경찰에게 데려가라는 신호로 손을 훠이훠이 저었다.
경찰이 피를 질질 흘리는 알폰소를 붙잡고 끌고 갔다.
클로프는 경찰에게 다시 훠이훠이 손을 흔들었다.
경찰이 모여 있던 사람들을 해산시켰다.
자, 이제 다들 돌아가세요.
다 끝났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둘 사라지며 알폰소와 갱단을 향해 욕을 하기도 하고 손가락질을 하기도 했다.
재준은 갱단을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후 말했다.
“얘네도 치워.”
메렛이 갱단을 데리고 1층에 마련된 컨테이너로 인솔해 갔다.
이제 클로프 대통령과 재준만 남았다.
“감사합니다. 매번 도움만 받는군요.”
“뭘 새삼스럽게.”
클로프 대통령은 재준에게 고개를 숙였다.
근데, 재준이 빙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내놓아야죠.”
“네?”
“선수끼리 왜 이래요?”
“무슨?”
재준이 손가락으로 목덜미를 톡톡 두드렸다.
너도 맞을래?
“생각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건가? 거참 사람들. 그래요. 생각 좀 하시고. 내일까지 8억 달러 계좌 번호랑 비밀번호 가져오세요.”
클로프의 미간이 찌그러졌다.
늑대 같은 새끼.
잘도 냄새를 맡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