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6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11)
아이티 대통령 집무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클로프는 재준에게 여러 번 머리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초반의 열세를 극복하고 당선됐다.
드디어, 진짜 대통령이 되었다.
‘아무것도 하지 마세요. 차라리 투마로우 스트리트에 가서 사람들과 술이나 좀 마시고 술값 대신 내주는 정도만 하면 될 것 같은데.’
처음에는 반신반의했지만, 어차피 인공지능이 통치하는 나라이니 다 알아서 해 줄 거라 믿었다.
믿음의 결과는 바로 대통령이란 자리였다.
“축하드립니다. 이제 아이티를 위해 할 일을 하셔야죠.”
“아, 네.”
클로프는 재준의 저 말이 무슨 뜻인지 잘 알았다.
아무것도 하지 마라.
차라리 잘 됐다.
지금까지 인공지능이란 놈이 하는 걸 보니 거의 완벽했으니까.
하나 아쉬운 건 선거 때 열심히 뛰어준 동지들에게 뭐라도 챙겨주고 싶은데 그걸 할 수가 없다는 거.
보통 대통령 선거가 끝나면 측근들을 주요 자리에 배정해줘야 하는데, 인선도 저놈의 인공지능이 다 알아서 처리하고 있었다.
“대통령님, 혹시 알폰소를 어찌할지 생각은 해 두었습니까?”
알폰소? 뜬금없이 갑자기 그놈은 왜?
혹시 한번 떠보는 건가?
아직도 정치에 관심이 있는지?
“어찌하다니요?”
“아무 생각이 없으시군요.”
“저는 이제 해외 순방을 준비할 겁니다. 아이피의 성공적인 경제 상황을 알리는 일에 전력을 다할 겁니다. 알폰소야 알아서 잘 살겠지요.”
재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직 얘기할 단계는 아니지만, 중간에 헌법을 한 번 고칠 수도 있어요.”
“헌법이요?”
“네. 오시리스가 그러던데, 지금 대통령님보다 더 나은 사람을 찾지 못하면 헌법을 개헌해서라도 연임을 해야 한다고.”
“연임이요?”
클로프는 자칫 벌떡 일어설 뻔했다.
“대통령을 연임할 수 있다고요? 생각도 못 했습니다.”
“그러니까 인공지능이 인간보다 나은 거예요. 인간이야 자기 욕심으로 연임을 생각하지만, 인공지능은 오직 국가의 이익을 위해 연임을 계획한다니까요.”
“정말 그렇군요.”
“그렇다면 대통령님이 할 일이 뭔지 아시죠?”
“그럼요. 방해하지 않으면 되는 일 아닙니까.”
하하하.
“잘 아시네. 어쩌면 난 다음 나라로 갈지 모릅니다. 아이티 상황을 보고 최빈국 몇 개국이 요청했거든요. 또 가서 좋은 나라로 만들어 주어야겠어요.”
“역시.”
띠링.
이때, 워서스틴의 핸드폰으로 문자 하나가 전송되었다.
【해상에 MS-13 1,000여 명 접근 중.】
보스.
워서스틴이 급하게 재준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재준이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뭐야, 이 전개는.
재준이 핸드폰을 들었다.
“아이티로 향하는 거야?”
【알폰소가 불러들였습니다.】
“아하, 그러면 이야기가 달라지겠네.”
【해상에서 격추할 수 있습니다.】
“아니야. 전부 산 채로 잡아들여.”
【네.】
재준의 통화 내용에 클로프의 귀가 쫑긋 섰다.
산채로 잡아들이다니.
누가 쿠데타라고 일으킨 건가?
아닌데, 군대는 아주 만족하고 있는데.
재준이 입맛을 다시며 귀찮다는 듯이 한쪽 볼을 긁었다.
“가기 전에 할 일이 하나 생겼네요.”
“그게 뭐죠?”
“어디 보자. 노트북 좀 줘.”
재준은 워서스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워서스틴이 노트북 전원을 켜서 탁자에 놓았다.
“이걸 한번 보세요.”
클로프는 미간을 찡그리며 화면을 응시했다.
“이게 뭡니까?”
“보시면 압니다.”
드론이 공중에서 촬영하는 것 같았는데 수평선 너머에서 쾌속하게 다가오는 배가 보였다.
“이건 배 아닙니까?”
“맞아요. 잠시만 기다려 보세요.”
잠시 후 배는 한 척이 되고 네 척이 되더니 순식간에 십여 척, 수십 척으로 불어났다.
“저건 배 아닙니까?”
“확대해 드릴게요.”
가장 선두에 선 배가 확대되자 클로프의 동공이 더 이상 커질 수 없을 만큼 확장되었다.
온몸에 문신을 한 익숙한 무리가 보였다.
“저, 저, 저건 갱단 같은데요.”
“맞습니다. 엘살바도르의 마라 살바트루차-13란 놈들이죠.”
“네?”
마라 살바트루차-13라면 엘살바도르의 잔인한 갱단인데.
저놈들이 왜 아이티에?
“음, 숫자로 보니 대략 1,000명쯤 돼 보이네요.”
“투마로우가 불러들인 겁니까?”
클로프의 얼굴에 후회가 서렸다.
재준이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
이 사람이 날 어떻게 보고.
“나는 사람을 쓰지 않습니다. 로봇이라면 모를까.”
“로봇, 그렇죠. 굳이 갱단을 불러들일 리가 없겠죠. 근데 왜 아이티로 저 많은 갱단이 오는 걸까요?”
“그거야 나도 모르죠. 인공지능이 대통령님이 당선되면 가장 손해를 보는 사람이 불러들인 거라 하던데. 혹시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알폰소……. 이놈.”
“알폰소 맞아요?”
“네, 제가 당선되면 알폰소의 해외에 있는 비자금을 전부 조사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요? 비자금이 얼마나 되는데요?”
“대략 10억 달러 정도 됩니다.”
“10억 달러라. 아이티에서 10억 달러면 꽤 되는군요. 그렇게 많이 해 먹었는데 아직도 야당 대표에 앉아있는 것도 능력이네요.”
“알폰소가 숨겨둔 게 아닙니다.”
“그래요?”
이건 또 뭐야?
“뒤발리에 대통령과 그의 아들 비자금을 찾은 겁니다.”
“아, 그렇군요.”
띠링.
이때 워서스틴의 핸드폰에 문자가 도착했다.
보스.
워서스틴이 또 재준에게 문자를 보여주었다.
음.
“대통령님, 잠깐 같이 가시죠. 갱단을 전부 잡은 것 같은데.”
“네?”
***
“내려.”
유별나게 문신을 많이 한 이들이 배에서 내렸다.
항구에서 일하던 사람들이 그들을 보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가기 시작했다.
먼저 내린 놈 중의 하나가 총구를 겨누었다.
“아직 아니야.”
우두머리쯤 되는 놈이 총구를 잡았다.
쩝.
아쉬운 듯 총구를 내리며 말했다.
“부장님. 정말 아이티에 자리를 잡을 겁니까?”
“응, 지금 엘살바도르는 부켈레 그 자식 때문에 숨을 못 쉬겠어. 지금까지 9,000명의 형제가 감옥에 갇혔어. 부켈레도 멈추고 싶어도 멈출 수 없을 거야. 거기 있어 봤자 언제 군대와 충돌할지 모르는데. 차라리 아이티가 나아.”
부하가 심통 난 표정을 지었다.
“차라리 미국이 낫지 않을까요?”
“야, 네 몰골을 봐. 이 새끼는 얼굴에도 문신을 해놓고. 그 꼴로 미국에 가고 싶냐? ‘나 갱단이요’라고 떠들고 다닐 일 있어?”
“이거 아튼데요.”
“지랄하고 있네.”
“그나저나 여기 투마로우가 있다는 소문이 있던데, 괜찮겠습니까?”
“그래서 저거 가져왔잖아.”
뒤에서 낄낄거리는 놈이 자신의 손에 든 칼 구스타프 M3 모델 무반동포를 흔들었다.
“저건 로봇이라도 한 방에 가는 거야.”
드디어 수십 척의 배에서 문신을 온몸에 덕지덕지한 천여 명의 놈들이 모두 내렸다.
누가 봐도 하나같이 중범죄자로 보였다.
부장이란 놈이 배에서 내린 놈들을 향해 소리쳤다.
“총 장전해. 이제 보이는 건 무조건 갈긴다.”
“네.”
철컥.
부장이란 놈이 권총을 꺼내 장전을 하며 고개를 옆으로 꺾었다.
한바탕 놀아 볼까.
이때.
치~치이이익.
항구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잡음이 새어 나왔다.
치이이이익.
부장의 고개가 돌아갔다.
뭐야? 저건.
【아이티에 온 걸 환영합니다.】
잉? 환영?
하하하하.
부장이란 놈이 한바탕 웃자,
하하하하하하하하.
뒤에 있던 놈들도 동시에 웃었다.
“뭐야? 환영 메시지를 벌써 보내는 거야?”
【모두 산 채로 체포하겠습니다.】
뭐? 우리를?
갱단이 놀라는 표정을 짓는 사이 저 멀리서 시꺼먼 메뚜기떼 같은 플라이드론이 하늘을 장악하고 날아왔다.
이런 fuck! 저거 뭐야?
놀랄 틈도 없었다.
으아아아악.
플라이드론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는 기절한 천여 명만 남았다.
***
으으으으으.
깨질 듯한 머리를 흔들며 갱단이 하나둘씩 깨어났다.
그래도 부장이라고, 우두머리가 제일 먼저 눈을 뜨며 험악한 인상으로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무언가 허전한 자신을 발견했다.
모두 팬티까지 벗겨진 상태로 두 손이 묶인 채 바닥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때 들리는 목소리.
“깨어났어요?”
재준이 부장 놈을 내려다보며 인상을 썼다.
“어유, 무슨 몸이 도화지야? 무슨 그림이 이렇게 많이 그렸어요. 어릴 때 그림 그리는 게 소원이었나?”
부장 놈은 금세 사태 파악이 되었다.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빌어먹을 총 한 번 쏘지 못하고 끝나게 생겼네.
“죽이려면 빨리 죽여. 서로 피곤한데.”
“죽여?”
재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죽이려면 거기서 다 죽이지 내가 왜 이렇게 수고롭게 여기까지 모셔 왔을까? 사람들이 다 보는 앞에서.”
사람들?
국장 놈은 고개를 좌우로 돌렸다.
빌어먹을.
수많은 아이티 사람들이 멀찍이 이 장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벌거벗은 제 모습을 생각하니 수치심이 확 올라왔다.
“왜? 창피하죠. 그 작은 물건까지 다 내놓고 있으려니까.”
“우릴 욕보이려는 거냐?”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뭐 나올 게 있다고 당신들을 욕보여요?”
“그럼 뭐야?”
“천천히 갑시다.”
이거 다 촬영해.
재준의 명령이 떨어지자 대형 드론의 카메라가 촬영을 시작했다.
부장 놈이 이를 부득 갈았다.
“비겁하게.”
부장의 말에 재준은 피식 웃었다.
“비겁이란 단어의 뜻을 모르는 건가? 그건 겁이 많다는 뜻인데. 내가 당신에게 겁을 먹을 이유가 있나요?”
“그럼 왜 우리 알몸을 촬영하는 건데? 뭐, 세상에 알리려고? 우리가 쪽팔려 할 것 같아?”
“역시 생각하는 게 단순하네요. 하긴 그러니까 갱단을 하는 거겠지. 자기 자신, 자기 자신을 보란 뜻이에요.”
재준이 빈정거리자 부장이 소리를 질렀다.
“그냥 죽여.”
어허. 이놈은 머리가 정말 안 돌아가네.
“안 죽인다니까. 왜 자꾸 죽이래. 정말 나쁜 사람을 만드네. 내가 너처럼 사람을 막 죽이는 사람으로 보여요?”
“우릴 살려 놓으면 언젠간 네놈의 목이 사라질 거다.”
큭!
좀 웃겼다.
“아, 그래요? 그럼 안 되는데.”
재준이 자신을 목을 쓰다듬으며 미간을 찡그렸다.
“어쨌든 당신은 죽지 않아요. 아주 평생 여기서 일을 해야 할 테니까. 알죠? 유노동 무임금이라고.”
“큭큭큭, 우리보고 노동을 하라고? 큭큭큭. 미친놈. 완전 미친놈이네. 큭큭큭큭.”
부장 놈이 아주 대놓고 비웃었다.
“자기 자신을 대단히 신뢰하는군요.”
“너 같은 놈은 우릴 전혀 이해할 수 없지. 우린 어떤 고문에도 굴하지 않아. 죽으면 죽었지. 절대.”
“정말? 그럼 좀 아쉬운데. 뭐 어쨌든 그렇게 알고 있을게요.”
시작해.
재준의 지시에 팜봇이 앞으로 나왔다.
“약간 따끔할 거예요. 측두엽에 생체칩을 이식할 거거든요.”
“뭐 생체칩?”
그게 뭐야?
팜봇이 다가오자 발악하려고 했지만.
아직 마취에서 덜 깨어난 상태였고 팜봇이 집게 손으로 머리를 움켜잡자 움직일 수 없었다.
픽.
관자놀이를 통해 주삿바늘이 찔러 들어가 칩이 주사되었다.
악.
“따끔하죠? 괜찮아요. 금방 나아질 거예요.”
으.
“이런다고 우리가 굴복할 거 같아? 우린 마라 살바트루차-13이라고. 우리가 누군지 몰라서 그러는데, 이 사실이 미국에 알려지면 투마로우는 테러의 대상이 될 거다. 그때 후회하지 말고…….”
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