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증권 재벌의 천재 손자가 되었다-335화 (335/477)

제335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10)

진코퍼레이션.

“이름이 왠지 낭만적이지 않아요?”

진이 싱글싱글 웃으며 말했다.

카리브.

“근데 지난번엔 이집트 신의 이름을 쓰더니 이번엔 뜬금없이 카리브? 좋긴 한데 연관성이 없잖아. 이번에도 신의 이름으로 하지 그랬어?”

재준은 내심 못마땅한 듯 말했다.

카리브, 꼭 여행사 이름 같잖아.

히히.

“그 연관성을 남들이 알면 재미없잖아요. 투마로우는 이번엔 이렇게 짓겠지? 예상은 빗나가야 기억에 남는 거예요.”

“그래, 그렇다면야. 이름이 뭐면 어때? 사람들이 승인만 열심히 누르면 되지.”

히히.

“근데 이게 웨이즈나 코타나, 나우, 시리 같은 거란 말이지?”

“네, 근데 그쪽은 아직 진화가 덜 되었고요. 카리브는 아주 똑똑해요. 주인을 아주 잘 알고 행복하게 만들어 주죠.”

“이런 건 언제 만든 거야?”

“오시리스를 만들고 있을 때 윌켄 아저씨가 스위터를 인수했다고 하길래, 스위터의 검색어와 버튼을 분석해서 만든 거예요.”

“승인을 누르면 어떻게 되는데?”

재준이 자신의 스마트폰에 카리브의 승인 버튼에 손가락을 누를까 말까 고민하며 말했다.

“누르는 순간 스마트폰의 파일, 이메일, 웹에 접근해서 사용자의 수많은 글과 행동을 분석하죠. 그리고 자신의 주인이 이익이 되도록 조언을 해줘요.”

“해킹이네.”

재준이 손가락을 얼른 떼면서 가늘게 눈을 떴다.

“승인했는데 왜 해킹이에요. 자료 요청이죠.”

“그러면 전에 말한 것처럼 모든 행동에 대해 질문을 하면 조언을 한단 말이지.”

“맞아요.”

“처음엔 중요한 일에 관해 물어보겠지만, 점점 더 사소한 것까지 카리브에 의존하게 될 거고.”

“네. 나중엔 먹는 음식과 입을 옷, 읽을 책, 봐야 할 동영상까지 모두 물어볼 거예요.”

하긴 사소한데 생각하기 귀찮은 것들이 있다.

특히 요리와 옷.

친구들끼리 술 한잔하러 가서 ‘뭐 먹을까’란 질문에 대부분 대답은 ‘아무거나’다.

이럴 때 ‘카리브’에게 물어보면 아주 편하다.

‘오늘은 하루 종일 맑은 날씨여서 주인님의 체온과 혈압이 약간 상승해 있습니다. 특히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도 심박수를 크게 뛰게 만들고 있고요. 이럴 땐 주인님이 좋아하는 음식 중 차가운 냉채족발에 맥주로 시작해서 소주로 마무리하는 게 도움을 줄 겁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답인가.

옷도 그렇다.

오늘은 뭐 입고 나갈까 항상 고민한다.

이럴 때 ‘카리브’에게 물어보면.

‘오늘은 약간 구름이 낀 날씨에 주인님의 기분이 약간 우울해 있습니다. 특히 여자친구를 만나러 가는데 어두운 색깔의 옷은 어울리지 않습니다. 옷장에 청색 데님 팬츠와 흰색 하프 터틀넥, 갈색 스웨트 조끼가 있으니 입고 나가세요. 모두의 시선을 받을 겁니다. 물론 여자친구 포함.’

이 얼마나 아름다운 대답이냔 말이다.

“잘하면 뇌를 비우고 살아도 되겠네.”

히히.

“우리가 이걸 만든 이유는 아시죠?”

“그래, 아이티 대통령 선거에서 이기려고 만든 거잖아. 물론 오시리스가 선거 전략을 잘 짜주고 있지만 방심은 금물이지. 결정타는 우리가 먹인다, 이거잖아.”

“그렇죠.”

3개월 후 아이티 선거에서 유권자는 ‘카리브’에게 자신의 투표권을 넘길 확률이 높다.

이건 비단 아이티 선거에서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도 언젠가는 ‘카리브’ 같은 비서가 등장한다면 자신을 믿기보다는 ‘카리브’를 더 믿을 것이다.

왜? 인간은 시시때때로 변하니까.

나보다 나를 더 잘 아는 ‘카리브’에게 물어보는 것이 정답이다.

투생 같은 경우 4년 동안 야권의 비열함에 불만을 느꼈고 장자크에게 ‘알폰소는 나라를 망칠 놈’이라고 욕을 했다고 치자.

하지만 선거 몇 달 전부터 알폰소는 세금을 깎아주고 서민 대출을 해준다고 떠들었다.

그뿐인가?

최고의 카피라이터들을 고용해 클로프의 우유부단함을 성토해서 투생의 뇌의 두려움 중추에 위협을 호소하고 자신의 희망에 찬 약속을 적절히 섞어가며 탁월한 선거운동을 펼친다면?

게다가 투표 당일 아침에 일어나니 어제 먹은 술이 덜 깨서 몸 상태가 메롱이라면? 나라를 운영하려면 우유부단함보다는 세금 감면과 대출이 최고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라를 망칠 놈’에게 한 표를 던지고 개표 과정을 보면서 내가 왜 그랬을까를 후회하며 머리를 쥐어뜯을 것이다.

자 그럼, 투표의 권한을 ‘카리브’에 넘기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카리브’는 최근의 감세정책과 선거공약을 자세히 살리고 지난 4년 동안의 모든 일을 기억하고 있다.

또한, 투생이 기사를 읽을 때마다 혈압이 얼마나 올라갔는지, TV에서 알폰소를 보면서 도파민의 수치가 얼마나 내려갔는지 안다.

‘카리브’는 알폰소의 텅 빈 선거공약을 가려낼 수 있고, 투생이 취하면 알콜의 힘으로 평소보다 엉뚱한 짓거리를 한다는 사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투표 당일, 취한 투생의 일시적인 마음 상태와 스스로 빠지는 자아도취를 따르지 않고 원래 투생이 느껴왔던 생화학적 알고리즘이 느끼는 진정한 선택을 강력히 주장할 것이다.

클리프에게 투표하세요.

이렇게 투생은 비열한 알폰소에게 찍으려던 표를 클로프에게 던질 것이다.

“그럼 ‘카리브’는 언제 세상에 내보내 줄 거니?”

“아이티 선거 끝나고 보완할 게 있는지 살핀 다음 바로 스위터를 통해 내보내야죠.”

“그럼 얼마 안 남은 거네.”

“네.”

재준은 진을 보며 빙글 웃었다.

전 세계 사람들을 내 알고리즘에 가두어 둘 날이 머지않았네.

***

어느 프랑스 농가.

“데살린, 자네 참 똑똑해.”

농가의 주인 부르봉은 아주 만족한 웃음을 지으며 한 청년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부르봉 부부는 나이가 들어 자신의 포도주 농장을 더 이상 경영할 수 없었다.

자식들은 전부 파리에서 어엿한 직장을 가지고 있고 시골에서 포도주나 만들며 인생을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단호히 말했다.

구인광고를 내 보았지만 고된 포도 농사를 짓겠다는 젊은이는 없었다.

VDQS(고급 원산지 지정) 등급.

프랑스 포도주의 2%에 해당하는 인정받은 포도주 농가인데, 몹시 안타까웠다.

힘은 딸리고 아쉬움은 남고.

이때 거대 곡물 기업 수에즈에서 아이티에 투마로우가 키우는 인재가 있으니 한번 써보는 게 어떻겠냐고 요청을 했다.

아쉬운 대로 이번 수확기만 지나면 손을 털려고 했는데.

“프랑스어도 잘하고 영어도 잘하고 손맛도 좋아.”

아이티는 프랑스가 국어라 데살린은 ‘티처’에게 영어와 요리를 배웠다.

요리 하면 프랑스 아닌가.

언젠간 프랑스에 가서 성공하리라 마음을 먹었는데 기회가 왔다.

다만 요리사가 아니라 포도주 농가였지만.

하지만 데살린은 실망하지 않았다.

‘티처’로 포도주에 대한 지식을 쌓고 프랑스로 건너가 열심히 포도주에 대해 배웠다.

역시 ‘티처’의 위력은 대단했다.

일한 지 석 달도 안 돼서 부르봉과 손발을 맞출 수 있었다.

“감사합니다. 사장님.”

“혹시 나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뒤를 이어 이 포도주 농가를 맡아주게.”

“아니, 그런 말씀 마세요. 무슨 일이 생긴다니요. 오래오래 사셔야죠.”

“하하하, 아들보다 네가 낫네. 네가 나아.”

이렇게 세계 각지에서 아이티 인재들이 빛을 발했다.

***

아이티 농민행동당.

“이게 어떻게 된 일이야?”

알폰소의 분노가 선거사무실 안에 울려 퍼졌다.

알폰소는 농민행동당의 후보로 대통령 선거에 나왔다.

대통령이 죽고 그 자리를 이어받아 우왕좌왕하며 미국에 매달리다 욕만 왕창 먹은 클로프 총리를 못 이기는 게 이상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거야 뻔하지.

세금 적게 내고 대출 왕창 해주면 되는 거 아냐?

물론 대통령에 당선되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공약을 뒤로 뒤로 미루면 됐다.

역대 대통령이 다 그런 식으로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정을 운영했다.

선거 유세가 시작되었다.

역시 클로프는 30% 지지율인 반면 자신은 60%가 넘는 지지율을 보였다.

두 배 차이면 뒤집힐 염려는 전혀 없었다.

세금 감면과 저리의 대출을 공약으로 말하자 지지율이 70%까지 치솟았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발견되었다.

클로프가 전혀 반응을 하지 않았다.

이쯤 되면 감세와 대출에 대한 세수 확보는 어떻게 할 것이냐부터 시작하여 자신의 과거 부정행위를 들쑤셔야 마땅한데 너무 조용했다.

클로프가 보인 거라고는 투마로우 스트리트에 가서 사람들과 밥을 먹고 술도 한잔하고 인사를 나누는 게 다였다.

아무리 투마로우 스트리트에 사람이 몰려든다고는 하지만 전국으로 보면 10%도 안 되는 인구 아닌가.

알폰소는 무시했다.

투마로우 스트리트에 가서 괜히 클로프를 따라 하기는 싫었다.

전국 유세를 돌았다.

서쪽 끝 담므 마히부터 남쪽 자크멜을 돌아 북쪽에 있는 고나이브와 카프아이시앵을 차례로 돌았다.

사람들은 열렬히 환호했고 자신에게 지지를 보냈다.

그런데 왜인지 전국 유세를 돌고 포르토프랭스로 돌아오자 지지율이 역전되었다.

앞으로 선거는 일주일도 안 남았는데.

“역전된 이유가 뭐야?”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무슨 말이라도 해 봐.”

저.

그래도 선거사무실에서 유학까지 다녀온 마르텔리가 손을 들었다.

“왜 마르텔리.”

“혹시 대표님 ‘카리브’라고 들어 보셨습니까?”

“카리브가 뭐야?”

“투마로우에서 만든 스마트폰 인공지능 비서입니다. 스마트폰에 문자 안 갔습니까?”

“아니, 안 왔는데.”

“그래요?”

마르텔리가 주변 사람들을 돌아봤다.

“혹시 여기서 ‘카리브’ 문자 안 받은 사람 있습니까?”

하나도 없었다.

뭐야?

알폰소는 자신을 그림자처럼 쫓아다니는 비서를 매섭게 노려봤다.

“너도 받았어?”

“네.”

“근데 왜 말 안 했어?”

“그게. 이건 누구나 받는 건데요?”

“뭐?”

“주변에 안 받은 사람이 없습니다. 다 받았어요.”

에이 쌍.

알폰소는 마르텔리를 보았다.

“이게 뭔데?”

마르텔리는 어깨를 으쓱했다.

“말 그대로 개인 비서입니다. 뭔가 알고 싶을 때 물어보면 바로바로 답을 해주는 비서요. 뭐, 오늘 점심으로 뭐가 좋을까? 물어보면 ‘닭고기를 곁들인 밥과 튀긴 바나나를 드세요’ 같은 겁니다.”

“근데 이게 왜?”

“근데 요즘 유행하는 게 있습니다.”

“유행?”

“네, ‘이번 대통령으로 누가 좋을까?’ 이렇게 물어보면 ‘카리브’가 ‘클로프’라고 말을 해 줍니다.”

“뭐? 그거 누가 만든 거야. 당장 지우라고 해.”

“투마로우가 만든 겁니다.”

투마로우?

이런 빌어먹을 임재준, 클로프와 짜고 나를 물 먹여!

“다, 나가!”

알폰소는 선거원들이 다 나간 걸 확인하고 비서에게 속삭였다.

“이대로 가면 우린 죽어.”

“설마 클로프가 그러겠습니까?”

“이봐, 베르트랑. 우리 계좌 들통나는 건 시간 문제야. 알아? 투마로우란 말이야. 그들이 다 들추어낼 거라고.”

“대표님.”

“MS-13에 연락해. 아이티 열어주겠다고.”

“위험한 생각입니다.”

“그리고 우린 쿠바로 떠난다.”

“알겠습니다.”

MS-13, 마라 살바트루차-13(Mara Salvatrucha-13).

잔인하기로 남미 최고의 갱단.

엘살바도로를 거점으로 활동했는데 나이브 부켈레 대통령이 등장하면서 코너에 몰렸다.

아이티를 거점으로 삼으려 알폰소에 접근했지만 거절당한 상태였다.

알폰소가 이 미친개들을 아이티에 풀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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