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3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8)
“오시리스, 이런 걸 몇 개를 세워야 하지?”
【2,000개 이상 지어야 합니다.】
“헉! 너무 많은 거 아냐? 건설 비용이 장난이 아니잖아.”
【철골 구조물이라 건설 비용은 그렇게 많이 발생하지 않습니다.】
“공사 기간은 얼마나 되지?”
【건물 한 동당 7일입니다.】
일주일 만에 50층을 짓는다고? 놀라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지만, 현대 건축물은 시공 이전 단계별로 철저히 검증해 시공 과정에서 재작업이나 시행착오를 미리 방지해 단번에 건물을 올려서 시공 기간을 말도 안 되게 단축한다.
이걸 프리콘이라 부른다.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올린 건물은 30층 호텔을 15일 만에 지은 기록도 있다.
전기와 인테리어를 포함해서 말이다.
하물며 인공지능이 설계하고, 로봇이 올리고, 건물이 달랑 철골뿐인 구조물이라면 일주일로 충분하다.
재준은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을 했다.
“건물 지을 땅은 물색해 놓았고?”
【아이티는 해안가를 따라 작은 구릉지가 있고 그 너머 불모지가 있습니다. 이 불모지를 정부로부터 전부 분양받았습니다.】
“근데 왜 불모지에 건물을 올려?”
【이 지역의 폭은 작게는 100m에서 넓게는 1km에 달합니다. 건물과 도로를 짓기에 충분하며 태풍을 피하기에도 좋습니다.】
역시 인공지능이라 꼼꼼하네.
“작물을 재배하려면 온도, 습도를 자동으로 조절해주는 시스템도 들어가는 건가?”
【자동 조절 시스템 대신 아이티의 노동력을 이용하십시오. 업그레이드는 나중에 해도 늦지 않습니다.】
“아, 그렇지. 굳이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는 없겠네. 좋아 어떤 작물을 심어야지?”
【아이티 인들의 주식은 쌀과 콩, 채소이며 그 외에 열대성 과일입니다. 재배 작물은 채소는 내수용으로, 열대성 과일은 재배 후 가공하여 수출용으로 재배해야 합니다.】
“쌀만 카킬을 통해 들여오면 되겠네. 주요 기간 사업체는 장악할 수 있겠어?”
【이미 완료했습니다. 명령만 내리시면 모두 정지시킬 수 있습니다.】
좋아, 좋아.
“워서스틴, 페렐라, 다 들었지. 이제 너희는 지켜보면 돼.”
“지금 우리한테 맡기시는 거예요?”
“너희들이 뭐 할 게 있어? 일단 오시리스가 다 할 텐데?”
“그런가요? 정말 할 일이 없나?”
“없지. 사람들 인솔하고 정리하는 건 메렛이 다 할 테고. 사고가 나면 팜봇이 할 거고. 오히려 인간이 눈에 띄면 괜히 이것저것 물어보고 귀찮은 일만 생겨. 처음부터 로봇이 정리하는 게 나아.”
그러고 보니 진이 말한 대로 인간이 할 일이 점점 없어지네.
“근데, 보스.”
“왜?”
“아이티에 줄 밀과 옥수숫가루는 어떡하죠? 베네수엘라에 있는데.”
“그건 쌀을 수확할 때까지 아이티 국민에게 나누어 줘야지.”
“무상으로 나누어 주나요?”
“아니지, 임금으로 줘야지. 근데 그것도 오시리스가 알아서 하니까 신경 안 써도 돼.”
“아, 네.”
워서스틴은 뭔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자꾸 잉여 인력이 되는 듯 아닌 듯한 느낌.
아냐, 아이티는 최빈국이라 내가 할 일이 없는 거야.
역시 내가 할 일은 기업 인수, 합병이지.
애써 자신을 스스로 위로했다.
***
아이티 총리는 국민에게 담화문을 발표했다.
“……국민의 안전과 경제 회복을 위해서 투마로우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앞으로 투마로우의 시스템이 가동될 것이며 처음엔 다소 당황스러운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건 모두 우리 아이티가 스스로 자립할 수 있는 길임을 여러분께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이제 우리는……”
베네수엘라를 출발한 컨테이너선이 수도 포르토프랭스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라피토 항구에 도착했다.
그리고 컨테이너와 건설 자재, 장비를 실은 대형 트럭들이 줄지어 도시 외곽을 향해 달렸다.
그 수가 수십 대에 이르러서 항구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시선을 받기에 충분했다.
-뭐야? 저 거대한 컨테이너는 40피트보다 훨씬 큰 것 같은데.
-정부 발표 못 들었어? 저기 컨테이너에 쓰여 있잖아. 투마로우라고.
-저게 투마로우야? 저 안에 로봇이 들어 있다고?
-그래.
-근데 어딜 가는 거야?
-그야 나도 모르지.
컨테이너를 지켜보던 투생은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궁금했다.
-야, 나 잠깐 갔다 올게.
-어딜 가려고?
-저거 따라가 보려고.
-투생, 반장한테 걸리면 죽어.
-잠깐이면 돼.
원래 재준은 해안가를 생각했지만 아무리 최빈국 아이티라도 해안가는 이미 관광지로 그나마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물론 휴양지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다시 광활한 판자촌의 행렬이 이어지지만.
이 판자촌을 벗어나면 전기와 식수가 공급되지 않는 불모지가 나왔다.
오시리스의 선택도 이 불모지에 건물을 올리는 게 가장 효율적이라고 했다.
아이티가 최악의 인구 밀도를 보이는 이유도 전기와 식수다.
해안가를 중심으로 전기와 식수가 공급되니 내륙 쪽으로 들어가면 전기와 식수가 제대로 공급이 안 되어 불모지로 변했다.
‘거기엔 왜 시설을 확충하지 않는 거야?’라고 따질 수도 있지만, 비행기를 타고 아이티 근처를 가보면 안다.
산은 말할 것도 없고 구릉지도 보통 구릉지가 아니다.
우락부락한 산세가 공사에 들어가는 돈이 한두 푼이 아니게 생겼다.
가뜩이나 돈 없는 정부가 산세를 뚫고 몇 안 되는 국민을 위해 공사할 리가 없었다.
트럭은 항구로 한 시간을 달려 한적한 곳에 정지했다.
농사를 지은 흔적은 있는데 땅은 메말라 있었다.
텅, 텅, 텅, 텅.
컨테이너 문이 열리고 업그레이드된 메렛이 등장했다.
자제를 실은 트럭이 도착하자 메렛이 바닥을 파고 기초 공사를 하기 시작했다.
***
일주일이 지났다.
투생은 투마로우 공사 현장에서 본 로봇의 모습에 아직도 심장이 벌렁거렸다.
나름 건설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자신이었다.
속도가 미쳤어.
하루 만에 수백 대의 로봇이 수십 군데에 기초 공사를 끝냈다.
대단위 공사가 진행되는 것 같아 이튿날에도 몰래 숨어서 지켜봤다.
수십 대의 로봇이 H빔을 들고 코어 월을 올리기 시작하자 가로 세로로 H빔들이 쌓아 올려지기 시작했다.
층이 올라갈수록 지면과 수직을 맞춰야 균형을 유지하는데 로봇들은 자체 GPS 계측기가 내장됐는지 서로 다른 크기의 H빔을 정확히 수평으로 얼기설기 엮어 나갔다.
오직 뼈대만 앙상한 50층짜리 건물 수십 채가 동시에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고작 하루였다.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었다.
투생은 다시 밖으로 나와 건설현장을 가봤다.
로봇들은 저녁인데도 쉬지 않고 건물을 올리고 있었다.
진짜 미친 속도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층마다 흙이 깔리기 시작했다.
몇몇 로봇은 전기와 배수로를 만들고 있었다.
이때 한쪽에서는 거대한 야외 엘리베이터가 설치되고 있었다.
도대체 무얼 만드는 것일까?
궁금증은 7일째 되는 날 풀렸다.
농림부장관의 발표가 있었다.
“리피토 항에서 10km 떨어진 곳에 투마로우가 1차 고층 농장형 아파트를 건설하였습니다. 농사를 지을 인력 8만 명을 모집합니다. 많은 지원자가 나왔으면 합니다.”
TV를 보던 투생은 동료인 장자크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저거 보여?”
“뭐? 근데 아까 그게 무슨 말이야? 농부를 모집한다는 게.”
“잔말 말고 저거 보이냐고!”
투생은 손가락으로 작은 구릉 너머 위로 솟아올라 있는 철골 건물을 가리켰다.
“저게 뭐야? 저런 게 언제 생긴 거야? 도대체 몇 개야?”
“저게 방금 장관이 말한 고층 농장형 아파트야. 저기서 작물 재배를 한다는 거지.”
“무슨 말이야? 알아듣게 설명해. 투마로우가 컨테이너를 싣고 간 지 이제 일주일이 지났는데 무슨 건물을 올려?”
“내가 일주일 동안 저 건물 올라가는 거 봤거든. 미친.”
“왜? 그리고 일주일 동안 어떻게 저렇게 많은 건물을 올려? 너 약 한 거 아냐?”
“약 할 돈이 어딨어?”
“하긴.”
“우리 저기로 가자. 저기 가서 일하자고.”
“좀 알아듣게 얘기를 해.”
“아, 싫으면 관둬. 난 지금 갈 테니까.”
“야, 투생. 투생!”
저거 미친 거 아냐? 저렇게 일하다 말고 간다고?
원래 저런 놈이 아닌데…….
장자크는 투생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어릴 때부터 둘은 안 해본 일이 없을 정도로 닥치는 대로 일을 했다.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대신 가장으로서 가족을 부양할 책임이 있었다.
에이, 진짜 아니기만 해.
“야, 같이 가. 네가 가는데 내가 없으면 되겠냐?”
장자크는 투생을 따라 걸었다.
점점 가까워지는 건물을 보며 눈이 빙글빙글 돌았다.
이게 몇 층이야?
근데 사람이 사는 것 같진 않네.
저거 뭐야?
“야, 투생. 여기 뭐 하는 곳이야?”
“아까 장관 말 못 들었어? 여기 농장이라고 농장.”
“아니 누가 작물을 건물 데다 심어?”
“저거 봐. 층층이 흙이 두껍게 쌓여 있잖아. 저곳에서 작물을 재배하는 거야. 이야, 누군지 대단한 아이디어다.”
“저기서 작물을 재배한다면 엄청나게 쏟아지겠는데.”
“저쪽으로 가자.”
둘은 수천 명이 모여있는 곳으로 갔다.
“엄청나네.”
“그럼, 일을 할 수 있다는데. 뭉그적거리는 놈이 바보지.”
“진짜 일을 하면 돈을 주는 건가?”
“안 주면 작물로 가져가면 되지. 그래서 온 거야.”
“이야, 천잰데.”
치~ 치이이익.
건물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잡음이 새어 나왔다.
“야, 무슨 말을 하려나 보다.”
치이이익.
【안녕하십니까? 투마로우 관리자 오시리스입니다. 앞으로 여러분을 농장에서 일을 시키고 임금을 주는 임무를 맡았습니다.】
-임금, 돈을 준대.
-돈이야. 돈.
사람들은 돈 이야기에 웅성거렸다.
【임금은 20달러입니다. 또한, 40달러에 해당하는 밀과 옥수숫가루로 받을 수도 있습니다. 작물이 재배되면 원하는 작물을 40달러에 해당하는 수량만큼 받는 것도 가능합니다.】
-뭐야? 지금 아이티 임금이 5달러잖아. 근데 20달러나 주겠다고?
-야, 그보다 40달러어치 곡물을 준다잖아.
-그럼 반은 시장에 내다 팔아도 남는 거 아냐?
-그걸 왜 그냥 내다 팔아. 빵을 만들어 팔면 몇 배는 받을 수 있는데.
-어, 그러네.
-그러면. 난 곡물로 받겠어.
-나도, 나도.
【또한 원하는 사람에 한하여 건물 1층에 마련한 주거 장소에 4인 가족이 살 수 있는 컨테이너 주택을 무상 제공하겠습니다.】
-집을 준다고?
-근데 이 주변에 전기랑 식수가 없잖아.
-아, 그림의 떡이네. 이곳이랑 가까워서 좋은데.
【여러분의 걱정된 목소리가 들립니다. 전기와 식수는 공급됩니다. 이미 건물 옥상과 외벽에 태양광 패널이 설치되어 있어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고 있습니다. 식수는 일주일 안에 관개 시설을 마련할 것입니다.】
-야, 그럼 와야지. 그 지옥 같은 빈민촌을 벗어나는 건데.
-그런데 아이들 학교는 어쩌냐?
-그러게 학교는 지어 주나?
【이번에도 여러분의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는 재진버추얼사의 ‘티처’가 교육할 것입니다. 좀 더 수준 높은 대학 교육도 가능합니다. 지적 욕구가 있는 사람은 언제든 수준에 맞는 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봐요!
대중 한가운데 누군가 손을 들며 고함을 쳤다.
【말해 보세요.】
“일은 언제 시작합니까?”
【신체검사 결과 통과한 사람이면 내일부터 가능합니다.】
-신체검사라니?
-질병이 있나 보는 거지. 지금 코로나도 유행이고.
-그러네.
이때 건물 1층 입구가 열리며 팜봇이 등장했다.
월컴 투 파라다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