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2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7)
“그건 알 수 없지만 아까 들었잖아. 아이티 운영은 자기가 맡겠다고. 자신 있으니까 하는 말 아니겠어?”
“솔직히 의외였습니다. 우리한테 얻을 게 하나도 없는데요.”
쯧쯧쯧, 멍청하긴.
“미국 있잖아. 아이티가 미국 손에서 떠나는 순간 카리브해 제도 국가들은 전부 공산국가가 될 거니까. 그걸 막아 보려고 미국이 투마로우를 내세운 거야. 모르겠어?”
“그럼 투마로우도 대충 시늉만 하겠네요.”
“좀 나아지긴 하겠지. 뭐 공장이나 건설하고 땅이나 개간하는 정도. 우린 옆에서 조언이나 듣는 척하고 돈이나 챙기면 돼. 클로프 그놈도 똑같은 생각일 거야.”
“그래서 클로프가 투마로우에 연락할 때 아무 말씀을 안 하신 거군요?”
“클로프 그놈만 배부르게 먹는 꼴을 볼 수는 없잖아.”
“근데 임재준이 진심이면 어떡합니까?”
“뭐라고?”
푸하하하하하.
“자네 농담이 많이 늘었어. 진심이라고? 세계 제일의 부자가 아이티를 진짜 살려보려 한다고? 이봐, 투마로우야. 전 세계에 먹을 게 널린 투마로우. 그런데 자원 하나 없는 우리를 도와? 이거야말로 닭이 배를 까뒤집고 웃을 말이야.”
푸하하하하하.
“아닐까요?”
“당연히 아니지. 아프리카의 투마로우 벨트를 봐. 착한 척은 다 하면서 아프리카 천연자원을 싹 쓸어 담는 거. 그리고 중국은 어떻고. 러시아 사할린 석유가 어디로 가는지 알아? 아, 아르헨티나 석유도 있네. 프랑스의 곡물은 어때? 그보다 미국의 달러가 전부 어느 집 창고에 처박혀 있는 줄 알아? 전부 월가의 투마로우에 있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선의를 베풀거나 연민으로 상대를 대한 적이 없다고. 그런 투마로우가 아이티를 진심으로 대한다고? 말도 안 돼.”
“그럼 미국에서 무엇을 받는 걸까요?”
“저기 밑에 있잖아. 베네수엘라.”
“아, 석유.”
“그래, 뻔하잖아. 미국이 눈감아 주면 베네수엘라도 투마로우 영역에 포함되는 거야. 아이티가 목적이 아니라고.”
“그렇군요.”
“두고 봐, 임재준이 우리에게 어떤 선물을 선사하는지.”
하하하.
알폰소는 자신이 재준을 이용하고 있다고 착각했다.
***
“스위터는 당장 도날드 대통령의 계정을 살려야 합니다. 이는 민주주의 근간을 흔드는 정치적 결탁이며 치졸한 경영자 마인드입니다.”
엘론이 공식 석상에서 스위터를 거침없이 공격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재준과 스위터 인수에 대해 고민하던 중 거대한 사건이 일어났다.
스위터가 도날드의 계정을 중지한 것이다.
바로 블러드 패니의 부활을 외치는 현직 대통령이 이끄는 시위대가 무슨 삼류 만화에서나 나올 법한 일을 저질렀다.
이 시위대가 의사당에 진입해서 네 명이 죽고 경찰 한 명이 죽었다.
이에 도날드가 시위대에 용기를 전하는 메시지를 스위터에 올리자 계정이 중지된 것이다.
엘론은 도날드에게 감동도 했고 스위터와 한판 붙을 만한 구실을 찾았다.
그리고 엘론의 스위터에 스위터 경영진을 조롱하는 글이 실렸다.
‘스위터 경영자 누구? 초등학생인 줄. 꼴 보기 싫다고 부모 번호를 스팸 처리함.’
스위터 경영진들이 엘론을 향해 불을 뿜었다.
“엘론은 스위터 경영 방침에 일절 관여하지 않아야 합니다. 니콜라모터스나 스카이링크에 스위터가 이래라저래라 간섭하면 웃기는 일 아닙니까?”
얼마 후 엘론의 스위터에 충격적인 글이 실렸다.
‘나 대주주 됐음. 투마로우한테 스위터 주식 9% 넘게 어제 삼. 이제 임시 주총 요구할 것임. 각오하도록.’
월가가 요동쳤다.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그러게 요즘 엘론과 투마로우가 함께 아프리카에서 사업을 한다더니 스위터에 한 방 먹이는 건가?
-그렇지, 임재준이랑 도날드가 친하잖아. 근데 스위터가 갑질을 했으니 둘이 손을 잡았네.
-그래도 9%면 40에서 50억 달러는 될 텐데. 스위터 하나 혼내 주는 데 쓰기엔 금액이 너무 크지 않아?
-임시 주총 열어서 배당금 높이면 되지. 경영진 적대 세력과 손잡고 경영진 교체할 수도 있고.
-야, 야. 엘론 스위터에 또 글이 떴다.
‘아무래도 안 되겠음. 나 스위터에 요구해서 이사회에 합류할 것임. 결심했음.’
-이게 뭐야? 스위터 이사회에 가겠다고?
-경영진 교체하려는 것 같은데?
그리고.
얼마 후 스위터 CEO는 엘론의 이사회 합류에 대해 코멘트를 달았다.
“엘론이 트위터 이사회에 합류한다니 정말로 기쁩니다. 그는 이 세상 그리고 그 안에서 스위터의 역할에 대해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습니다. 스위터와 엘론은 열정으로 이끌어 가는 멋진 팀이 될 것입니다.”
-뭐해? 당장 스위터 주식 쓸어 담아.
-지금 손놀리는 거 안 보여?
-지금 인공지능이 쓸어 담고 있잖아. 이걸 어떻게 이겨?
-더 빨리 누르란 말야.
스위터의 주식은 엘론의 공격으로 50달러에서 39달러까지 하락한 상태였는데 엘론 이사회 합류 소식에 54달러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또 얼마 지나지 않아서 엘론은 스위터에 다시 글을 남겼다.
‘생각해 보니 이사회 안 가야겠음. 이사회 신분이 되면 주식을 14.9% 이상 보유할 수 없다고 함. 그래서 안 함.’
-또 뭐야? 장난하는 거야?
-멍청아, 14.9%에 주목해야지.
-그게 왜?
-적대적 인수도 염두에 두고 하는 말이잖아.
-아, 정말?
하지만 월가의 기대와는 달리 엘론의 스위터에 대한 공격은 중구난방으로 도통 감을 잡을 수 없었다.
‘투표 좀 해줘. 스위터(Sweeter)에서 ‘w’자를 삭제하는 게 낫지 않을까? Seeter, 마치 감시자 같은데. 아닌가? 발음상 아무 일도 안 하고 앉아있는 사람인가. 이게 낫겠네. 암튼.’
‘투표 좀 해줘. 스위터의 샌프란시스코 본사에 아무도 나타나지 않으므로 노숙자 쉼터로 전환해도 될 거 같은데.’
‘투표 좀 해줘. 스위터가 너무 조용한데. 죽었는지 살았는지.’
-뭐 어쩌라는 거야?
-주식을 사야 해? 말아야 해?
-엘론이 심심해서 저러는 거 같지는 않고. 임재준과 무슨 계략을 꾸미는 거 아냐?
-도통 모르겠어. 9%나 가지고 있는데 주가를 올리고 던지겠다는 거야? 아니면 주가를 떨어뜨려서 추가 매집을 하겠다는 거야?
결국, 올 것이 오고야 말았다.
‘결심했음. 나 스위터 적대적 인수 할 거임. 나를 따르는 병사들은 현금 준비하고 대기 바람. 내가 돈 벌게 해 줄 거임.’
엘론의 이번에도 장난스럽게 스위터를 인수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장난스러운 말로 시장을 교란한 엘론의 말을 월가는 믿지 않았다.
하지만.
‘짠! 계약서임. 나 오늘 스위터 인수 계약했음.’
엘론의 스위터에 계약서 한 장이 업로드되었다.
-이번엔 진짜였어?
-뭐해? 클릭 안 해?
-좀 충격을 먹어서. 뭐 내가 아니어도 인공지능이 할 거잖아.
-그래도 어서 클릭해.
다시 주가는 춤을 추었고 엘론이 스위터를 인수하면 발생할 일에 대해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진짜 엘론이 스위터를 인수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어떻게 되긴 뭐가 어떻게 돼. 주가 상승하는 거지.
-엘론이 그렇게 한가하냐? 스위터에 집중하게.
-엘론이 경영하냐? 전문 경영인을 앉히겠지?
-아니야, 저거 가짜일 수도 있어. 엘론이 한두 번 우릴 물 먹였냐고.
-그러다 진짜면 어쩌려고 그래?
-난 일단 보류. 스위터의 공식 발표를 기다릴 거야.
역시나 ‘늑대가 나타났다’라고 몇 번 소리 친 엘론이기에 시장의 반응은 반반으로 갈렸다.
그리고.
‘나 인수 안 함. 스위터가 약속을 안 지킴. 스팸 봇 계정 비율이 5% 미만이라는 데 믿을 수 없음. 난 20%라고 봄.’
스워터 CEO는 성명을 발표했다.
“엘론과 스위터가 맺은 계약에는 계약 파기 시 10억 달러의 수수료를 물어내야 한다는 조항이 포함돼 있습니다. 엘론은 책임을 지고 10억 달러를 내놓든가 500억 달러에 스위터를 인수하든가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와, 도대체 뭐야?
-나도 모르겠다. 이제 뭐가 진실인지. 무조건 보류다.
-거봐, 나처럼 일찍 보류 타라니까.
-여기서 뭐 하나 터지면 진짜 스위터 주식 끝장난다.
시장이 우려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가히 핵폭탄급 사건이 터졌다.
[마이크로 창업자와 미국 전 대통령 등 유명 인사들과 힙합 가수 칸예 웨스트, 애플, 우버, 심지어 엘론의 스위터 계정이 대거 해킹을 당하는 사태가 벌어졌습니다. 이번 해킹은 주요 소셜미디어 플랫폼에서 발생한 해킹 사건 중 최악의 사건입니다. 해킹당한 계정에는 자신의 비트코인 지갑에 돈을 보내면 두 배로 불려 준다는 내용이 실렸습니다. 이는…….]
-던져!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던져.
그리고 투마로우의 수천 개의 계정은 조용히 스위터의 주식을 쓸어 담았다.
***
베네수엘라.
“이름이 뭐라고?”
-오시리스, 부활의 신 이름을 따왔어요.
드디어 진이 ‘블랙’과 함께 아이티를 운영할 인공지능을 만들었다.
“의미는 좋네.”
-‘블랙’처럼 스마트폰으로 부르시면 될 거예요.
“그래, 수고했다. 나중에 보자.”
-네.
툭.
재준과 진이 통화를 마치자 페렐라가 다가왔다.
“인공지능이 완성된 겁니까?”
“드디어 나왔어. 이름은 ‘오시리스’래.”
“부활의 신이라면 아이티에 딱 알맞은 이름이네요.”
“자, 어디 이놈이랑 이야기 좀 해 볼까?”
재준은 진이 알려준 번호로 전화를 걸어서 스피커폰으로 전환했다.
【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거, 처음엔 다 이런 건가?
무슨 AS센터 직원도 아니고 인사하는 센스가 영.
“오시리스, 다음부터는 ‘네’라고 해. 인사 같은 거 하지 마.”
【인간은 항상 인사를 한다고 알고 있습니다.】
“그래, 하지만 나 같은 인간은 인사 주고받는 거 싫어해.”
【알겠습니다.】
“자, 아이티에 대한 기본 지식은 전부 알고 있겠지?”
【네.】
“그럼 가장 적합한 산업이 무엇이 좋겠어?”
【농업입니다.】
뭐래?
땅이 있어야 작물을 재배하지.
이거 인공지능 맞아?
“작물을 재배할 땅은 어떻게 마련할 건데?”
【고층 농장형 아파트를 지어서 작물을 재배하면 됩니다.】
“아파트?”
오, 그렇구나.
꼭 땅에다 작물을 재배하라는 법은 없지.
“아파트 설계는 얼마나 걸릴까?”
【이미 있습니다.】
“그래, 어떻게 볼 수 있지?”
【브로, 노트북을 켜.】
명령조?
이거 베이스가 나인가?
“야, 너 나한테는 말투가 왜 그래?”
【지시받은 몇 명 빼고는 격식을 갖춰선 안 돼. 난 국가를 경영하는 인공지능이니까.】
“지시받은 그 몇 명이 누군데?”
【알려줄 수 없어. 비밀이야.】
“와, 이걸 그냥. 페렐라, 이거 어떡하지?”
“뭘 어떡해? 오시리스랑 이야기 안 하면 되지. 우린 블랙이 있잖아.”
【워서스틴, 노트북을 켜.】
“워서스틴, 노트북이나 켜라.”
나 참, 컴퓨터한테 이런 취급을 다 받네.
【난 컴퓨터가 아니라 인공지능이야. 많은 차이가 있어.】
중얼거리는 워서스틴의 말에 오시리스가 곧바로 반응했다.
그래, 너 잘났다.
워서스틴은 화를 삭이기 위해 이빨을 깨물며 노트북을 켰다.
딩딩딩딩.
노트북이 켜지자 파파파팍 화면이 바뀌고 거대한 건물이 하나 떴다.
오, 신박한데.
재준은 아주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50층 높이의 얼기설기 철골로 이루어진 구조물로 벽 없이 사방이 뚫려 있어서 공기 순환과 태양 빛을 그대로 받을 수 있는 건물이었다.
“미친, 이거 농장이네.”
워서스틴이 감탄하며 입을 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