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0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5)
베네수엘라.
[투마로우는 경제를 살려서 최빈국의 지위에서 탈출을 도와 달라는 아이티 정부의 요청을 승낙했습니다. 어떤 산업 분야를 살릴지는 아직 알려지지 않았으며 어떻게 아이티 경제를 살릴지 궁금증을 유발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번 투마로우다운 해법이 등장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습니다.]
[속보입니다. 베네수엘라, 가이아나, 수리남, 프랑스령 기아나, 브라질의 코로나에서 백신 생산 이후 중단했던 팜봇 공장이 일제히 가동을 시작했다는 소식입니다. 여기서 생산된 팜봇이 아이티로 향할 것이라는 추측이 나오고 있습니다.]
윙, 윙, 윙, 윙.
가동을 시작한 팜봇 공장 주변으로 사람들이 몰렸다.
-팜봇을 다시 생산하나 봐.
-그러게, 뉴스를 보니까 아이티로 갈 물량을 생산한다고 하던데.
-진짜 아이티를 살리려고?
-우리도 살아났는데 아이티 정도야 금방이지 않을까?
-근데 땅덩어리가 너무 작아서 뭘 재배할 수가 없잖아. 우린 곡물 심을 땅이라도 충분했지. 아이티는 정말 작고 거친데.
-공장을 지으면 되지 않을까?
-이 사람, 거기 다 까막눈이야.
-에이, 그러네.
사람들 뒤로 멀리 떨어진 곳에서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팜봇 공장을 바라보고 있었다.
“제기랄, 아이티를 갔다 오더니 결국 보스가 결정을 했어.”
“정말 의외란 말야. 베네수엘라 석유 생산량도 늘려서 아이티에 보내라는 데. 돈은 뭘로 받으려고 그러지.”
“땅 있잖아.”
“땅도 땅 나름이지. 저게 땅이야?”
“아프리카처럼 컨테이너를 집으로 공급한다고 하던데. 컨테이너를 서로 연결해서 자연재해에 대비하겠다고.”
“생각은 좋아. 일단 태풍은 대비할 수 있으니. 근데 지진은 어떻게 할 거야.”
“뭔가 생각이 있겠지.”
“아, 정말, 머리 복잡해. 머리가 아주 지끈거려.”
“왜? 그냥 보스를 믿어 봐. 언제는 안 그랬어?”
“그게 아니라, 아이티에 들어가야 하잖아.”
“저길 왜 들어가?”
“그럼 진행 상황을 누가 체크해. 어느 순간부터 우린 남미를 책임지고 있다고.”
“어라, 그러네. 아르헨티나도 우리가. 베네수엘라도 우리네.”
“그렇다니까?”
“이거 너무하는 거 아냐? 인수 합병으로 명성을 날리던 우리가 왜.”
“내 말이.”
이때, 페렐라의 핸드폰이 울렸다.
띠리리링.
보스다.
“네, 보스.”
-페렐라, 나 지금 베네수엘라로 출발했어.
“여기는 왜요?”
-왜긴 같이 아이티 들어가야지.
“네?”
-먹을 거랑 입을 옷 좀 챙겨. 저번처럼 진흙 쿠키를 먹을 순 없어.
“아이티는 왜 들어가는데요?”
뭐? 아이티?
부들부들부들.
옆에 있던 워서스틴은 갑자기 오한이 왔다.
-왜 들어가긴. 이제 총리를 만나서 본격적인 작업을 해야지.
“보스가 꼭 들어가야 하는 건가요? 통화로 해도 되잖아요.”
-할아버지가 말씀하시길 사람을 상대할 때는 얼굴을 보고 차도 한잔 마시고 술도 같이 마시면서 하라고 했어.
아니, 언제부터 회장님 말을 들었다고.
-아무튼 준비하고 있어. 곧 도착할 거니까.
“네? 네.”
통화가 끝나고 페렐라는 워서스틴을 봤다.
왜? 왜? 왜?
워서스틴은 괜히 페렐라의 멱살을 잡았다.
***
아이티.
“어서 오십시오.”
아이티 총리 클로프는 재준과 일행을 반갑게 맞아 주었다.
얼굴은 상당히 피곤에 찌들어 있었지만.
재준은 클로프 총리를 보고 짧게 숨을 뱉었다.
아유, 눈 밑에 아주 동굴을 팠네.
재준이 먼저 악수를 하고 워서스틴과 페렐라가 차례로 악수를 나누었다.
“자, 앉으시지요.”
자리에 앉자 따듯한 커피가 나왔다.
재준은 향을 음미하고 한 모금 마셨다.
“좋군요. 아이티 커피는 유기농 재배를 한다더니 헛말이 아니네요.”
“하하, 그렇습니까.”
후.
아니 칭찬을 해도 한숨을 쉬고 그래.
“말이 유기농이지 살균제, 살충제, 비료를 살 돈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는 겁니다. 그래서 수확량이 일정치가 않습니다.”
“아, 그렇군요.”
자책이 습관이 되었네.
“우선 정말 감사합니다. 이렇게 아이티를 위해 나서 주신 것만으로도 고개 숙여 감사드립니다.”
말을 마친 클로프 총리는 일어서서 허리를 숙였다.
“어, 어, 이러실 필요 없어요.”
“아닙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허, 거 참.
“지난번에 아이티에 잠시 들렀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아이티 상황을 좀 살펴보려고 왔었어요.”
“보셔서 아시겠지만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막막합니다. 조브넬 모이즈 대통령이 갑자기 돌아가시는 통에 국민도 정부도 아무것도 할 수가 없습니다. 미국의 도움을 요청했지만, 답을 안 주고 있습니다.”
아이티를 보면 답을 줄 수가 없지.
“뭐 과거는 과거로 묻어 버리세요. 굳이 떠올려 봐야 마음만 아프죠.”
“맞습니다.”
아이티 대통령이 암살당했다.
암살한 범죄자들은 미군과 합동으로 잡았다.
콜롬비아 용병 15명, 미국인 2명이었다.
마이애미와 아이티는 비행기로 1시간 거리에 있다.
좋든 싫든 미국의 영향력에서 벗어날 수 없는 나라였다.
미국은 아이티에 식량도 원조하고 코로나 백신도 주었다.
불행하게도 카리브해 주변국은 웬만하면 석유가 나오는데 아이티만 석유가 나오지 않았다.
지지리도 복도 없는 나라가 아이티다.
“자, 이렇게 합시다. 조만간 아이티 해안으로 팜봇을 실은 컨테이너 1,000대가 도착할 거예요.”
“1,000대요? 그렇게나 많이…….”
“먼저 국민이 건강해야 뭐든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카킬에서 밀과 옥수숫가루가 올 거예요. 물론 배급은 팜봇이 직접 합니다. 배급과 동시에 건강 상태를 체크 할 거고요.”
“오, 감사합니다.”
“그리고 18세 이상 청년들을 대상으로 ‘티처’가 교육을 시작할 거예요. 우수란 잠재력을 가진 사람은 해외로 보내 외화를 법시다.”
“아, 네.”
재준은 무작정 아이티 국민을 이주시키기보다는 교육을 통해 능력을 인정받아 정상적인 활동을 할 수 있기를 바랐다.
한국은 그 어렵던 시절 중동, 독일, 일본, 미국 등 해외로 외화를 벌러 나갔던 역사가 있지 않은가.
아이티라고 못 할 것도 없지.
“일할 기업은 투마로우가 철저히 조사를 마친 기업으로 한정할 거예요. 차별이나 노동력 착취 같은 문제는 걱정 안 해도 되고요.”
“아, 네.”
“그런데.”
재준이 말을 끊자 그동안 잠자코 고개만 주억거리던 클포프 총리가 재준을 바라봤다.
“가장 중요한 문제가 있어요.”
“네, 말씀하십시오.”
마치 무슨 말이든 들을 준비가 되었다는 눈빛의 클로프 총리였다.
“대통령 선거를 합시다.”
“네?”
“대통령 후보로 적당한 사람을 추천하세요. 아, 물론 본인이 해도 되고요. 누가 되었든 투마로우가 적극 뒤에서 도울 테니 걱정 마시고.”
“아, 네.”
“그리고 국정 운영은 인공지능이 대신할 겁니다. 총리가 되시면 외교 활동에 전념하세요.”
갑자기 인공지능?
“무슨 말씀입니까? 인공지능이라뇨?”
“말 그대로 인공지능입니다.”
클로프 총리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재준을 쳐다봤다.
인공지능이라니.
그럼 국정 회의는 어떻게 하겠다는 걸까?
총리라면 만나야 할 사람도 굉장히 많을 텐데.
재준은 손사래를 쳤다.
알아, 당황스럽겠지.
“지금까지 이런 경우를 들어보지 못해서 당황할 수는 있어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그렇게 황당한 일은 아니에요. 이미 금융계는 인공지능에게 대부분의 투자를 맡기고 있어요. 월가 이야기는 들어보셨죠?”
“월가……. 네, 들은 적이 있습니다.”
“뭐 요즘 인터넷을 이용한 사업은 다 인공지능이 사업을 맡아서 하잖아요. 조만간 국가 운영도 인공지능이 할 거니까 우린 이 분야에서 선각자가 되는 거예요.”
“그래도 이건 정치인데…….”
“거참, 믿으라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인공지능은 부정부패가 없다는 거예요. 지금 아이티에 가장 시급한 것이 국민의 신뢰 아니겠어요? 매일 그 문제로 시위가 끊이지 않던데. 설마 인공지능이 해외로 돈을 빼돌려 개인 자산을 축적하겠어요?”
“그럼 투마로우가 국정 운영을 안 하는 겁니까?”
“당연하죠. 우리도 인공지능의 지시를 따를 거예요. 인간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실시간으로 변하는 국제 정세와 상품의 이동 경로를 전부 파악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민 모두에게 생체칩을 이식할 겁니다.”
“네?”
어허, 이 사람.
“뭘 그렇게 놀라세요. 이미 1998년부터 이식하기 시작한 건데요. 요기, 손등에 아주 조그마한 칩을 집어넣으면 됩니다.”
“아무래도 그건…….”
“두려우세요? 혹시 정신을 조정해서 살인을 저지르고 테러에도 이용하고 할까 봐요?”
“그건 아니지만.”
아니긴 얼굴에 다 나타나는데.
“아직 인간을 지배할 정도 칩은 지구상에 없어요. 단순히 신분 파악 용도로 사용될 거예요.”
“아, 네.”
“한번 투마로우를 믿어 보세요. 어쩌면 아이티도 가장 살기 편한 나라가 될 수 있어요. 지금 아프리카가 평화를 찾은 건 아시죠. 뭐, 하긴 아프리카 보고 연락을 주셨겠지만.”
“네, 맞습니다. 더도 바라지 않습니다. 아프리카만큼만 살 수 있게 해주십시오.”
“걱정 마세요. 다 잘 될 겁니다.”
“네, 감사합니다. 믿겠습니다.”
뭐지? 너무 순순히 말을 듣는데?
재준이 슬쩍 워서스틴과 페렐라를 봤다.
역시 둘도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었다.
인공지능이 국가를 다스리고 전 국민에게 생채 칩을 넣겠다는데 반응이 밍밍했다.
모든 대화를 마치고 재준과 일행은 대통령 관저를 나와 공항으로 향했다.
두리번거리던 페렐라가 재준에게 다가와 속삭였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은데요.”
“누가?”
“그야 모르죠. 근데 너무 대놓고 따라오고 있어요.”
“레이몬드가 움직이지 않는 걸 보니 무기는 소지하지 않은 것 같은데. 좀 두고 보는 게 좋을 것 같아. 혹시 우리한테 할 말이 있을 수도 있고.”
“할 말이요?”
“여기라고 무조건 정부의 말을 듣겠어? 반대 세력도 존재하겠지. 야당 있잖아.”
“야당이라면 프리츠 알폰소를 말하는 건데. 그 사람 아주 과격하다고 알려졌어요.”
“과격?”
“네.”
“나라가 이 지경이면 과격해지는 건 당연한 거 아냐? 난 오히려 클로프 그 양반이 너무 온순해서 믿음이 안 가.”
“하긴 저도 그런 감이 있었어요. 보스가 황당한 제안을 했는데. 네, 네, 그러는 게 영 믿음이 안 가요.”
“나도 그렇긴 해.”
공항에 들어서자 재준의 전용기 보잉 747-8 VIP가 있는 쪽으로 이동했다.
여전히 미행하는 일행은 재준을 따라왔다.
너무 당당히 걸어오니까 미행이라고 말하기도 뭐했다.
재준이 보잉 747-8 VIP 입구에서 재준이 뒤를 돌았다.
음, 역시 미행은 아니고 그냥 뒤따라 왔네.
미행하던 일행이 멈추었다.
재준이 손을 들어 인사를 대신했다.
그제야 그들도 무슨 뜻인지 알고 다가왔다.
“우리한테 뭐 할 말이라도 있습니까? 졸졸졸 따라오게.”
“공항 밖은 듣는 사람이 많아 부득이하게 미행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요? 근데 그쪽은 누굽니까?”
“프리츠 알폰소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