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9화 참 변하지 않는 것도 능력이야(4)
“로봇 때문이에요. 과거 과학의 혜택은 모든 사람들을 위한 거였어요. 건강한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건강한 군대, 건강한 노동자. 건강과 활력을 주기 위해 공공보건과 편의 시설이 있는 환경을 조성했어요. 예방 접종, 병원, 심지어 하수도도 만들어 인간을 보호했어요. 그 결과 기아와 전염병이 사라졌죠. 하지만 인공지능을 가진 로봇이 등장하면 더 이상 사람들의 건강과 활력을 위한 과학이 필요할까요?”
“소수 엘리트를 위해 과학이 존재하게 된다는 거네.”
“그게 인류를 더 잘 살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왜? 네가 방금 과학은 소수를 위한다고 했잖아.”
“히히, 과학 발전 속도가 빨라져야 일반 사람들도 혜택을 누릴 수 있잖아요. 지금은 1억 달러나 하는 임모탈 시술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면 그 기술은 소수 엘리트에게 적용이 되겠지만 이전 단계의 기술은 일반 사람들이 누릴 수 있어요.”
“우리는 과학을 더 빨리 발전시키면 그 혜택이 인류에게 빨리 돌아간다?”
“네. 그래서 저희에게 많은 투자를 하고 있잖아요.”
“음. 그렇긴 하네.”
“그래서 인구가 많은 국가들은 앞으로 불리해지는 거예요.”
어라? 그게 그렇게 되는 건가?
“먹여 살릴 입이 많은 국가는 발전 속도가 늦을 수밖에 없긴 하겠네.”
“중국과 인도, 브라질 같은 인구가 많은 국가들은 자국민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 과학 기술의 힘을 빌릴 수밖에 없어요. 결국 우리에게 무릎을 꿇어야 해요. 요즘 저출산 걱정을 하던데, 저출산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닐 거예요. 물론 과학이 좀 더 빠르게 발전해야 하겠지만.”
“그런데 말이야…….”
재준이 눈매를 가늘게 떴다.
“그렇게 되면 19세기의 상황이 벌어질 것 같은데. 유럽이 아프리카를 대하듯, 소수 엘리트가 보통 인간을 하등하게 취급하는 사회 말이야.”
“당연히 그렇게 되겠지만 좀 다르지 않을까요? 저희를 보세요. 저희는 아마 투마로우 시티에서 자랄 거예요. 그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의 경험을 모를 거예요. 배고픔, 기아, 전염병, 전쟁의 경험보다는 불멸, 행복, 신성에 대한 경험에 더 친숙하겠죠. 장 발장의 이야기는 지루해지고 평범한 회사원이 성공하는 드라마는 전혀 감동을 주지 못해요. 경험 자체가 다른 거예요.”
“세계가 다르다?”
“네, 과거에는 아프리카인도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면 유럽 사회에서 인정을 받을 수 있었어요. 하지만 미래에는 보통 인간은 유전자 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엘리트의 집단에 들어올 희망 같은 건 없어요.”
“그럼 보통 인간은 너무 암울하지 않니?”
“글쎄요. 과학이 발전하는 속도가 워낙 빠르기 때문에 그런 사색을 할 시간이 있을지 모르겠어요. 암울한 태생을 걱정하기보다는 신기한 일들이 더 많이 벌어질 텐데요? 만약 경두개 직류 자극기를 이용한 가상현실 게임이 나오면 어떻게 될까요?”
“그럼 하루 종일 게임만 하겠지.”
“거기다 로봇이 일하는 세상이니 직장을 구하지 않아도 정부에서 매달 일정한 생활비를 지급한다면요?”
“더 매달리겠네.”
“그리고 게임이라는 건 보상이 주어지잖아요. 게임을 잘했더니 그쪽 분야에서 스타가 되고 유명인이 된다면요? 아마 저희의 존재를 생각할 시간조차 없을 거예요. 그리고 유전자 검사가 보편화 되고 질병의 확률이 낮아지고 어쩌면 임모탈 가격이 저렴해져서 누구나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면 과연 암울하다고 생각할까요? 차라리 생물학적 계급을 인정하고 그 혜택을 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할 거예요. 어쩌면 종교가 될지도 모르죠.”
종교?
하긴 지금도 과학은 종교의 신화를 하나씩 깨부수고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는 하다.
“현재 종교인들이 가장 관심을 가지는 곳은 성지 순례지도 아니고 미국 남부와 중서부의 성경 벨트도 아니에요. 여기 투마로우 시티죠. 이미 어느 정도 세계는 투마로우 시티에서 쏟아지는 과학을 숭배하고 있잖아요. 이제 죽어서 천국에 가기보다는 임모탈에서 새로운 삶을 부여받는 걸 간절히 원하는 사람이 늘고 있어요. 사후 세계의 관심이 지상의 기술로 바뀐 거죠. 더 빨리 발전하여 자신에게도 기회가 오기를 간절히 기도하면서요.”
헐.
어느 정도 생각은 했지만, 어느새 막연한 꿈이 현실이 되어가고 있구나.
“개념 자체를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 시대가 온 거네.”
“맞아요. 좀 더 적극적으로 마음을 열어야 할 거예요. 막연히 반대만 하다간 뒤처지게 되거든요. 뒤처진 후에 할 수 있는 일은 테러밖에 없는데, 지금은 어찌할 수 있다고 해도 앞으로 테러는 아주 고급 기술이 필요할 거예요.”
“고급 기술?”
“네, 예로 투마로우 시티를 테러하려면 먼저 ‘블랙’을 잠재워야 가능하잖아요. 그 정도 기술이면 테러 같은 건 하지 않겠지만.”
하하하하.
재준은 한바탕 웃었다.
지난번 소말리아에서 알 카에다를 몰아내고 경고를 한 게 떠올랐다.
수백 번은 재준을 타깃으로 테러를 했을 알 카에다인데 지금껏 단 한 건의 테러도 없었다.
어쩌면 ‘블랙’이 원천 차단했을 수도 있는 건가?
아니면 수백만 대의 드론으로 한 지역을 몰살시키겠다는 경고에 쫄아서 몸을 움츠리고 있는 건가?
알 수는 없지만, 진의 말은 타당했다.
‘블랙’을 뚫고 들어 올 수는 없지.
“근데 마음을 열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지금 아이티 문제도 결국 그들이 마음을 여느냐 마느냐의 문제잖아. 인공지능이 통치한다는 걸 알았을 때 그들도 테러 집단으로 변하지 않을까?”
“아빠, 마음을 고치려고 하지 말고 업그레이드에 초점을 맞춰야 해요.”
“마음도 업그레이드를 한다고?”
마음이 어떻게 업그레이드가 돼?
뇌라면 모를까.
“심리학이 과거에는 마음의 병에 관심을 가졌다면 현재는 마음의 힘에 집중하고 있어요.”
“마음의 힘?”
“네, 자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을 닫는 건 마음이잖아요. ‘해서는 안 된다’, ‘하고 싶지 않다’, ‘불가능하다’라고 말하는 마음이요.”
“아, 그렇지, 그건 뇌하고는 또 다른 인간의 능력이지.”
“우린 지금도 자신도 모르게 상대의 두려움과 용기 같은 감정을 감지할 수 있어요. 냄새나 소리, 그리고 맛 같은 오감으로요. 오래전에 인류가 가지고 있던 능력이었지만 집단생활을 하면서 점점 자제하게 되고 결국에는 봉인해 버렸어요.”
“그게 가능한 거였어?”
“50만 년 전 초기 인류가 미분방정식이나 추상적 추론 같은 걸 할 리는 없잖아요. 그들의 뉴런이 오감에 집중했다면 충분히 발전시켰을 능력이에요. 현재의 사회 시스템이 뉴런을 다른 곳에 사용하게 하니까 능력이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뿐이에요. 아이티 국민의 마음을 업그레이드하는 첫 번째는 바로 오감을 이용해 사람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하는 거예요.”
오호라.
이건 꽤 괜찮은 생각인데.
우린 너무 인간에게 무관심한 세상에 살고 있다.
요리는 맛있는 요리를 해준 요리사의 고마움보다는 U튜브 동영상을 보면서 입에 쑤셔 넣는 용도로 전락했다.
멀리서 온 친구는 다정하게 대화를 하기보다는 SNS에 뭐가 올라왔나 같이 확인하는 대상일 뿐이다.
소외되기 싫어하면서도 집중하기 귀찮아하게 되었다.
“그럼 두 번째는 뭐지?”
“마음의 조작이요. 경두개 직류 자극기나 전에 베네수엘라 국민에게 사용한 항우울제와 비슷한 방법이에요. 하지만 조금 더 적극적으로 할 수 있어요.”
“적극적으로?”
“네, 내면의 목소리를 통제하는 거예요. 불편한 목소리를 꺼 버리거나 행복한 소리를 켜는 거죠.”
“약물이나 기계를 이용해서?”
“정확히는 생화학적 시스템을 이해하는 거예요. 약물이나 기계는 거기에 맞게 사용하면 돼요. 주의 산만한 사람은 리탈린(ADHD 치료제)를 먹거나, 죄책감이 심한 사람은 프로작(항우울제)를 주고 결혼생활이 불만인 사람에게는 에스시탈로프람(항우울제)를 주는 식이죠.”
“무슨 말인지 이해는 하는데 그게 좋은 방법이 맞는 건가?”
“베네수엘라 경우를 생각해 보세요. 시도 때도 없이 떠오르는 아들과 남편이 죽어가는 장면, 자신의 눈앞에서 강간당하는 딸, 태어나오자마자 먹을 게 없어 죽은 아기. 이런 경험이 떠오를 때마다 현실을 마주하고 적극적인 자세로 극복하라고요?”
“헉! 그건 아니다.”
“무책임한 충고예요. 인간은 그리 대단한 정신력을 소유하지 않았고 그런 정신력을 소유할 필요도 없어요. 적절한 약물과 기계의 도움으로 행복한 느낌을 간직하는 게 더 나아요.”
“그렇지, 베네수엘라 국민은 여전히 평온한 마음으로 사니까.”
“맞아요.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은 현실을 바라볼 때 호르몬의 결합으로 다른 세상을 보는 거예요. 그럼 그 호르몬을 거둬 줘야 올바른 세상을 볼 수 있어요. 우리 ‘티처’도 같은 원리잖아요. 머릿속의 잡음을 꺼 버리면 훌륭한 명사수가 되기도 하고 훌륭한 수학자가 되기도 해요.”
후.
아이티 국민에게 카킬표 밀과 옥수숫가루를 처방해야겠네.
“아빠, 지금 세상은 경험과 욕망이 중심인 세상이에요. 하지만 불행은 경험과 욕망이 만들어 내는 거죠. 그래서 옛 성인들이 명상과 참선으로 해탈의 경지를 이룬 것이니까요. 지금 아이티 국민에게 모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단전 호흡부터 하라고 하면 미친놈 취급할 거예요.”
“그럴 마음은 나도 없어. 그게 어디 가능한 일이냐?”
“사회에서는 경험과 욕망이 사라지면 인생의 목표가 사라진다고 가르치고 있어요.”
그러게, 경험과 욕망이 없으면 뭘 보고 살아?
“새로운 기준이 있는 거야?”
“네, 그렇게 말하는 건 아직 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니까 하는 말이에요. 이 세상은 이제 정보라는 매개체로 움직이고 있어요. 우리는 아침을 무얼 먹을지 고민하기보다는 현재 내 몸의 상태와 지금까지 아침을 먹고 가장 편하고 안전한 먹거리를 데이터에서 찾아주는 인공지능에게 부탁하는 거예요.”
정보.
“그럼 아이티 국민에 대한 정보가 필요하겠네.”
“그런데 그쪽은 데이터가 없어요. CCTV도 없고 스마트폰 사용률도 저조해요.”
“그게 문제이긴 하네.”
“인구가 1,000만 명. 이건 저로서도 방법을 찾아봐야 해요.”
도시 안에는 1,000만 명이 구겨져 있다.
도시를 정비하는 것도 불가능하다.
차라리 핵이라도 한 방 쏘고 다시 시작하고 싶을 만큼.
일단 먹을 걸 들고 가면 아이티 국민을 통제할 수는 있다.
당장 굶어 죽게 생긴 사람들이 선택할 수 있는 건 거의 없으니까.
그래. 카킬에서 곡식을 실어 오자.
그리고.
“꼭 첨단 과학 기술로 해결하려니까 방법이 없는 거야.”
“그럼 아빠는 방법이 있어요?”
“있지. 어떨 때는 단순 무식하게 가는 것도 좋아.”
“단순 무식하게요?”
“그래, 컨테이너 1,000대를 싣고 가서 아이티 주변 해안가를 다 장악하고 시작하자. 컨테이너 한 대당 만 명을 담당하는 거지.”
네?
왜 그렇게 놀래.
방법 있어?
팜봇은 로봇이라 피곤함도 모를 텐데.
이럴 때 아주 부려 먹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