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23화 자, 돈들 쓰세요. 돈(13)
진코퍼레이션.
“진, 이번 살인 사건 재판 동영상 봤어? 우리 작품이 꽤 괜찮던데.”
진과 함께 뇌과학을 연구하며 ‘트루로’사와 함께 ‘코트’라는 거짓말 탐지 로봇을 만든 주디가 물었다.
“응, 그래도 아직 부족해. ‘블랙’이 지속해서 범죄 사건 사례를 업그레이드하니까 좀 더 정확해질 거야.”
“근데 살인을 저지르고 왜 거짓말을 하는 거지?”
“주디, 너 좌뇌에서 언어 이외에 거짓말쟁이가 숨어 있는 건 알지?”
“거짓말쟁이?”
“응, 인간은 납득하기 어려운 일을 당하면 그럴듯한 이야기를 지어내잖아.”
“아, 기억의 통역. 자기 합리화.”
“자기 합리화 그 이상도 해. 전혀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서 진짜 자신이 그렇게 행동했다고 믿어버려.”
주디가 고개를 끄덕이며 마지막 남은 푸딩을 입안에 집어넣은 후 유리 접시를 쓰레기통에 집어 던졌다.
쨍그랑.
“아유, 결벽증 환자.”
“호호, 미안 어쩔 수 없어. 이것도 내 뇌가 그러라고 시키는 거야. 절대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야.”
“이해한다. 이해해. 접시는 충분히 쌓아 놓을 테니 맘껏 버려.”
호호.
***
헉, 헉, 헉.
덜덜덜덜덜덜.
안토니스는 방금 자신 아내의 머리를 박살 냈다.
온몸이 떨리기 시작했다.
내가 아내를 죽였다.
내가 아내를 죽였어.
이때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안토니스, 안에 있나? 나 왔어? 들어간다.”
“사키스, 안 돼. 들어오지 마. 내, 내가 나갈 거야.”
“자네 목소리가 왜 그래? 어디 아픈 거야?”
“나간다니까. 나, 나 하나도 안 아파.”
안토니스는 바닥에 널브러져서 두 눈을 감지도 못하고 죽어 있는 아내를 보았다.
왜 그렇게 쳐다보는 거야?
네가 잘못한 거잖아.
네가 미끄러진 거라고.
시선을 떨구자 피 묻은 자신의 두 손이 보였다.
“안토니스, 괜찮은 거냐고?”
“잠깐만 기다리라니까.”
안토니스는 세면대에서 물을 틀어 두 손을 씻었다.
“안토니스.”
저 새끼가 진짜.
근데 저놈이 왜 자꾸 나를 부르지?
혹시 이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는 거 아냐?
아니야 알 리가 없지.
다시 흐르는 물에 손을 대고 빡빡 문지르자 두 손이 깨끗해졌다.
“안토니스.”
“아 좀, 나간다니까.”
왜 이렇게 보채는 거야?
어? 그러고 보니 저놈 왜 평상시대로 들어오지 않는 거지?
평상시에는 잘도 들어와서 아내와 농담을 따먹으며…….
아내와?
가만, 저놈이 아내와 바람이 난 거 아냐?
그리고 나한테 뒤집어씌우려고.
안토니스는 아내의 치마를 들추고 속옷을 벗겼다.
아내의 하체가 드러났다.
저 새끼.
***
주디가 새로운 접시에 푸른색 푸딩을 가지고 오며 말했다.
“그래도 힘든 경험은 정신을 피폐하게 만들 텐데.”
“그렇지. 근데 기억에 남아야 힘들지. 기억에 남지 않으면 아무것도 아니잖아. 경험도 무엇도 아니야. 그저 스쳐 지나간 바람 같은 거지.”
“기억에 남지 않게 하는 방법이 있어?”
“방법? 그런 건 없어. 경험은 원래 기억에 남지 않아.”
“정말?”
“응, 인간은 경험하는 뇌와 이야기를 만드는 뇌가 존재하거든. 경험을 만드는 뇌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않아.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경험은 아무 쓸모가 없어. 기억을 끄집어내고 중요한 결정을 하는 건 모두 이야기하는 뇌가 혼자서 하는 일이야.”
“뇌는 경험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만드는 것 아닌가?”
진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아니, 너도 잘 생각해 봐. 네가 기억하고 있는 기억이 어떤 건지. 이야기를 위해 필요한 건 중요한 순간과 결과란 재료뿐이야. 그렇지 않고 경험을 기억하기 시작하면 인간은 너무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게 되거든. 지름길을 선택하는 거지. 이게 다 생존을 위한 거야.”
“사람을 죽인 게 기억되지 않는다고?”
“내가 말했잖아. 경험은 기억되지 않아. 지어낸 이야기만 남는다니까. 그 이야기가 경험이라고 믿는 거지. 결말만 보고 만들어 낸 이야기일 뿐인데.”
흥.
뇌과학에선 내가 진보다 한 수 위라고 생각했는데.
오늘도 진에게 배우게 된 주디가 살짝 뾰로통해졌다.
***
벌컥.
안토니스는 밖으로 나와 싱글벙글 웃고 있는 사키스를 봤다.
“왜 이렇게 늦은 거야? 방 안에서 무슨 일 있었어?”
“무슨 일?”
“아내랑 방금까지 뭐 그런 거 하고 있었다든가. 흐흐.”
이놈이 아내랑 바람이 난 게 확실해.
“너 이 새끼. 죽여버린다.”
안토니스가 갑자기 사키스의 멱살을 잡았다.
“왜 이래. 이 새끼 미쳤나.”
사키스는 안토니스의 손을 뿌리치고 뒤로 물러났다.
안토니스의 눈이 시뻘겋게 충혈이 되어 사키스를 죽일 듯이 노려봤다.
“너 죽인다.”
“안토니스, 왜 그래?”
“네가 죽였잖아. 내 아내. 네가 죽인 거 내가 다 봤어.”
“뭐라고? 내가 네 아내를 왜……. 안토니스, 아내가 죽었어?”
“네가 죽였잖아. 내 아내의 몸을 더럽히고 네가 죽였잖아. 이 미친 새끼야.”
안토니스가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무슨 일이야?
-안토니스 아내가 죽었다는데.
-사키스와 바람이 났다나 봐.
-사키스가 강간을 하고 죽였대.
사키스는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느꼈다.
“안토니스 진정해. 도대체 내가 왜 네 아내와 바람이 났다는 거야? 우린 어릴 때부터 친한 친구였는데 내가 왜?”
“그렇지 어릴 때부터. 너 15살 때 내 아내랑 사귄 적 있잖아. 그때 감정이 아직도 남아 있는 거 아냐?”
“야, 그게 20년 전 이야기야. 넌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있냐.”
“너도 대단한 놈이다. 20년 동안이나 집요하게 아내를 따라다니다가 결국 겁탈을 하고 죽이고. 너 같은 놈은 친구도 아니야. 그러니까 죽어!”
안토니스가 다시 사키스를 향해 돌진했다.
***
주디가 다 먹은 접시를 쓰레기통에 버리면서 진의 말에 귀를 쫑긋했다.
“잘 알지? 소아과에 가면 항상 사탕이 있는 거. 아이들은 소아과에서 무서운 주사보다는 마지막에 의사가 쥐여 준 사탕 몇 개가 기억에 선명하게 남는 거야.”
“하하. 그러네.”
“인간에게 가장 힘든 고통이 뭐지?”
“그건 분만이잖아.”
“맞아. 그래서 산모가 출산하면 코르티솔과 베타-엔도르핀을 주사하잖아.”
“고통을 줄여주기 위해서?”
“아니, 물론 고통도 줄여 주지만 이야기를 만들 시간을 주는 거야. 아기를 낳았다. 새 생명을 잉태했다. 아기에 대한 사랑과 가족, 친지, 종교, 국가에 기여한 자신을 벅차게 만들어 줄 이야기. 그럼 어느새 출산의 고통은 찬란한 결과를 위한 긍정적인 이야기로 바뀌는 거지.”
“재밌네.”
“응, 범죄자 중에 가끔 자신이 만든 이야기를 진짜로 믿는 사람들이 있어.”
“그게 말이 되나?”
“한 번 믿음이 생기면 그건 아주 단단해지지. 특히 자신이 인정하기 싫은 경험을 겪었다면.”
“그런 사건을 우리 ‘코트’가 해결할 수 있을까?”
“얼굴 표정이나 행동, 미세한 떨림까지 범죄의 단서가 된다는데 그것도 사실 통제할 수 있어. 잘만 하면.”
“정말?”
“그러니까 연쇄살인마가 나오는 거 아냐?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인간.”
“하긴 그럴 수는 있겠다. 곧은 심지만 있다면.”
“하지만 두뇌의 활동 영역이나 호르몬은 통제가 안 되지. 그리고 정확해. 내가 말을 하는 데 좌뇌를 사용하지 않을 수는 없으니까.”
****
이거 놔!
안토니스와 사키스는 마을 사람들에 의해 진압당했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어른이 나섰다.
“무슨 일이지?”
안토니스가 먼저 소리를 질렀다.
“저 새끼가 내 아내를 겁탈하고 죽였습니다. 억울해서 참을 수가 없습니다. 저놈을 죽여 버리고 말 거야!”
사키스는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어르신 저는 모르는 일입니다. 저 미친놈이 갑자기 내가 자기 아내를 죽였다는데. 전 정말 모르는 일입니다.”
나이 많은 어른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고갯짓했다.
“안토니스 집 안을 확인해 봐.”
사람 몇이 안토니스 집안에 들어가고 바로 비명을 질렀다.
사람이 죽었다!
한 명이 뛰어나오며 고했다.
“안토니스의 아내가 죽었습니다.”
“그래?”
나이가 많은 어른의 표정이 굳었다.
“예전 같으면 우리 부족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면 하늘에 물어 그 죄를 다스렸다. 하지만 우리가 알고 있듯이 더 잘 아는 분이 지금 계시다. 그분에게 모두를 데려간다. 이 둘을 끌고 와.”
이들은 마을에서 가장 큰 건물인 병원으로 이 둘을 데려왔다.
그리고 다합실은행 직원을 찾았다.
다합실은행 직원은 급하게 재준을 찾았다.
자초지종을 다 들은 재준은 모두를 바라보며 빙글 웃었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알겠어요. 하지만 저는 인간입니다. 그리고 인간이 어떤지는 잘 알죠. 그렇다고 누가 범인인지는 알 수가 없어요.”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나이가 많은 어른이 재준에게 물었다.
“하지만 과학은 누가 범인인지 알 수 있을 겁니다.”
“과학이 범인을 알아낼 수 있단 말입니까?”
“아마도요. 따라오세요.”
재준은 병원 옆에 마련된 법원을 찾았다.
거기엔 변호사도 검사도 없었고 판사석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었다.
먼저 사키스를 팜봇이 스캔을 하고 이에 대한 상황을 커튼 뒤의 음성이 판결을 내렸다.
“진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다음 안토니스 차례에 결국 듣고 싶은 자백을 들었다.
“아니야. 내가 아니라, 맞아. 아내가 발을 헛디뎌서 죽은 거야. 내가 아니라니까. 진짜야. 진짜라고.”
나이가 많은 어른이 재준 앞으로 나왔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재준은 나이가 많은 어른을 바라봤다.
“그건 당신들이 할 일입니다.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여기까지입니다. 용서하고 같이 살아갈지. 아니면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 죽일지. 선택은 당신들의 몫입니다. 모든 행동에는 책임이 따르는 거니까요.”
“이게 과학입니까?”
“네, 과학은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단지 사실만을 알려줄 뿐입니다. 나머지는 우리 인간의 몫입니다. 데려가세요.”
“알겠습니다.”
나이가 많은 어른은 안토니스와 사키스를 데리고 사라졌다.
지금까지 지켜보던 엘론이 재준에게 다가왔다.
“이래도 되는 겁니까? 살인범이잖아요.”
“아니요. 모든 건 부족 안에서 결정할 일이에요. 우린 타인일 뿐입니다. 저들의 결정에 절대 참견해서는 안 돼요.”
“이해할 수 없어요.”
“이해하는 게 이상한 거라니까요. 남의 일이에요. 우린 사실만 알려주면 돼요. 우리의 잣대로 절대 저들의 문화를 평가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 저 살인자는 어떻게 될까요?”
“글쎄요. 그냥 여기까지만 기억하세요. 더 나아가면 참견이 되니까.”
“그렇군요.”
“여긴 우리가 아는 세상과 다른 곳이라고 생각하세요. 우린 돈만 벌면 돼요. 그 이상은 나가고 싶지 않아요.”
“그럽시다. 돈만 법시다.”
하지만 재준의 속은 달랐다.
이거 훌륭한데.
그 어느 때보다 가장 훌륭한 상품이잖아.
이제 국가를 사고팔아 볼까?
디플레이션이 찾아오면 국가를 사고팔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